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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들이야 명분 서는 징역살이기에 비난하는 대상이 분명하지만, 일반수들로서는 바깥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가 아우성으로 터져 나오는 형국인지라 욕하는 대상이 분명치도 않다.(77)
*문득 이 말을 보고 "돈 이상의 것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차이란 어떤 '교육'의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교육이란 지식의 습득보다는 묵직한 말이다. 이는 우선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어떤 '높은' 것으로 보이는 집단에 진입할 기회를 의미한다(혹은 이를 갖지 못한 자에게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의 준거, 가치기준을 자신 외부의 것에서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이 겪고 대응했던 것의 집합으로서의 경험이다.
하지만 경험은 정직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경험과 부딪힐 때 어떻게 조율해야 될지, 어떤 방법이 '옳은지'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야기되는 혼란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교환'가치', 즉 화폐, 돈이다. 설령 상대가 정말로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도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의아할 뿐이다. 어떻게 저렇게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따르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지적으로는 촌스러운 '빨갱이'같은 수사와 이미지들이 그들에게 답변을 제공해 준다. 촌스러운 말을 촌스럽다고 비웃는 건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 그 말들은 촌스럽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세계상을 제공하고, 그래서 힘이 될 수 있다.
친구의 복수를 결행하다 불구가 된 채 밑바닥을 기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주윤발과 가족을 생각해 어둠의 세계에서 발을 빼려는 적룡은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며 갈등하지만, 끝끝내 서로를 위해 몸을 던진다. 거기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뇌가 짙게 따라 다닌다. (...) 1987년 민주화 이전만 해도 학생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한다는 건 '자기 인생을 거는 결단'을 전제로 삼는 행위였다. 더 이상 고뇌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 개인적 고뇌는 대열에서의 이탈로 직결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의 진행은 이제 그런 결단 없이도 생활 속에서 '알면 행하는 식'의 운동 참여가 가능하도록 세상을 열어 주었다. 그 덕에 운동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선택의 고뇌를 싸안은 채 참여하는 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나는 '미래에 서로 인생행로가 갈려 입장이 달라지더라도 당대의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하며 한곳을 봤던 동료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웅본색]을 해석했다.(186~7)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강조되는 것 두 가지는 1)개인, 그 중에서도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긍정의 (삶에 있어서든 사회활동에 있어서든) 불가피성과 그리고 이에 기초한 2)타인의 삶에 대한 긍정과 믿음이다. 이러한 긍정과 믿음은 이것 자체로 어떤 정치적 결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왕년의 운동권이었음에도, 그리고 지금도 당시 가졌던 이념들을 옳다고 여기고 관련된 활동들을 지속함에도, 이런 태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적 의식으로 가공될 필요없이 그 자체로. 이것은 하나의 '성숙'이다. 성숙이라는 말로 지칭되는 것들이 그런 반격을 받듯이 이는 꽤 심심하고 당연하고 뭔가 뜨뜻미지근한 그런 얘기들이다. 나로서도 이런 태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그냥 다만 갈수록 어찌됐듯 결론을 삶에서든 정치에서든 이 투박한 이분법에서든 내는 게 아니라 '사는 게' 우선이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많은 일들의 '결론'은 이런 곳에서 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보는 책들은 이런 현장들의 너저분함을 견디지 못해 정리해왔지만 결국에는 이런 경험들이 증발된 정리만 남은 것이 아닐까 .
함께 수감 생활을 하던 옛날의 화려한 선배들이 운동의 일선에 같이 서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워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렇듯 그도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대한 공감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믿고 있기에 (...) 그나 나나 세상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행복은 아주 잛게 스쳐 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나이다. 그리고 그 짧은 행복의 기억은 가슴 깊은 곳에서 매우 은밀하고도 뜨겁게 꿈틀거리며 고통보다 강한 힘으로 우리 삶을 끌어간다는 사실도 안다.(243)
넓게 보자면 이념적 지향이 비슷한데, 왜 우리네 삶의 행태는 이리도 다를까? (...) 매우 음모적인 성향, 과민 반응, 고집과 편견, 무례함과 독선, 자기과시욕과 비둘어진 엘리트주의, 권위주의와 성차별, 너무나 민감한 여성주의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엄숙함 등 우리 내부에도 문제는 많았다. (...) 소설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보면서 나는 그제서야 '사람은 서로 다르다'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는데 1992년 말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인권 씨에게 정치인 중 누구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전인권 씨는 김영삼 후보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가 참 흥미로웠다. 장발 단속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에 야당 구고히의원이었던 김영삼 후보가 긴 머리에 새하얀 백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보기 좋고 속이 시원했단다. (...) 사회에서는 '광대'쯤으로 취급받는 가수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정치적 태도를 형성해 가는지가 훨씬 흥미로웠다. (...) 노래만 알 것 같은 가수 전인권 씨, 바둑판만 볼 것 같은 조훈현 선생. 그러나 그들 역시 수많은 좌절과 고민으로 얼룩진 자신만의 세계를 통해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고, 자신의 삶에서 얻은 문법으로 세상을 읽는 눈을 갖게 되었으리라. 난 이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210~4)
***사람이 어떤 생물학적 나이를 지나면서 얻는 직관이나 '삶'같은 주제에 대한 성찰은 젊은 나이의 급진적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 전혀 달갑지 않은 '꼰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꼰대라는 레토릭에 지나친 가치판단을 부여하는 순간 잃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큰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위치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 나이가 다르고 겪은 게 다르다는 어떤 사회적 차이에 대한 간과가 될 것이다. 물론 이 말은 곧바로 역으로 적용되어 어른/꼰대의 객관화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징역과 같은 극단적인 경험을 겪었지만 어쨌든 직업을 얻고 안정을 찾은 386세대의 정서, 그리고 정치적 입장 또는 무덤덤함 등.
****어쨌든 중요한 건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그걸 이해하면 어쨌든 화낼 일은 좀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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