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
김원태 씨의 논문 발제를 세미나에서 다뤘다. 항상 그렇듯이 처음 정리할 때 최대한 신경을 쓴다고 썼건만 세미나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거나 미흡한 부분들이 드러났다. 이런 부분을 반영해서 블로그 포스트도 수정을 해놓았다. 수정된 부분은 해당 포스트에 적혀 있다.[
링크]
2.
최근 우울감과 짜증의 빈도가 높아졌다. 첫째 이유는 날씨가 더워서이고, 둘째 이유는 조만간 일신상의 적지 않은 변화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런 외적 요인들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나름 한심하게 쳐다보고 나 자신은 그러지 않겠노라고 여러 번 다짐했었더랬다.
나는 내 자신의 지성과 의지의 존재와 그것의 상대적 우월성을 믿었었고, 좋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런 자신의 엘리트주의적 경향에 대해서 반성을 어느 정도 하게 된 지금에도 그것은 남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반성 능력 역시 나의 능력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보다 교활한 형태의 우월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철덕후스러운 소리를 하지면 이런 의미에서 나는 칸트주의자였다.) 하지만 이런 반성에 대한 반성을 수행하는 것도 나이다. '홀로 방구석'에 행하는 사고 실험으로는 이런 자폐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
뭔가 더 큰 깨달음을 얻는 때는 이렇게 스스로의 찌질함을 마주치게 되는 순간, 풀어서 말하면 '아 나도 남들과 같은 상황에 놓이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유물론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정교한 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냥 나 자신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유물론적 일상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출발은 된다는 것이 요즘 드는 생각이다.
3.
어제 꿈 하나를 꾸었다. 내가 가수가 됐는지 뭐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는 방송국의 대기실인가 쫑파티장인가에서 아이돌 가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소녀시대가 들어와 왔는데, 꿈이 깬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곧바로 나를 쳐다보고 살짝 놀랍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꿈 속이었으니 난 그닥 놀라지는 않았고 처음에는 뭔가 부끄러워 벽 뒤에 숨었으나 효연과 누님 동생하며 마치 그녀들을 원래 알고 있었다는듯이 이야기를 나눴다. 효연과 주로 반갑다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태연과 써니가 멀찍이서 나에게 (각오하고 쓰는 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쓰기에는 참 민망한 표현이지만)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두 분이서 다가왔는데 태연(참고로 나는 태연의 팬이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옆에 태연의 팔짱을 끼고 있던 써니가 내가 아닌 태연에게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나의 오늘 분량의, 어쩌면 향후 몇 개월 분량의 행복을 책임졌다. "야, 너 쟤한테 할 말 있대매?"
내가 기억하는 꿈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정작 태연은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써니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사태,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 꼭 적극적인 관심이 아니더라도 '용건이 있다'는 사태가 그렇게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연이 친한친구 마지막 방송에서 강동원의 종방 축하 멘트를 듣고 "여러분, 들으셨어요? 태연이라고 5번 말했어요!"라고 말하며 비명을 질렀는데, 처음 볼 때는 그저 참 좋았겠구나 싶었는데 이제 뭔가 그 마음이 이해된다(태연에게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환상에서 나오는 기쁨은 보너스다). 태연이 올해 자기 생일 아마도 SM빌딩에서 있었던 파티에서 "요즘 팬서비스를 왤케 잘 해주시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팬들이 낯설고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는데, 매일 부모님으로부터 부모님 매장에 찾아온 팬들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하다보니 아 이제는 팬들에게 다가가야 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운. 별 거 아닌 짧은 답변, 립서비스일 수 있지만 사고하는 데 드는 소량의 열량과 소량의 시간을 팬을 위해서,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나를 위해서 사용해줬다는 이런 멘트는 뭔가 감동스럽다. 이것이야말로 조련... 좋은 무대도 무대지만, 사실 (태연에게는 정말 미안하게도) 음악보다 더 좋아하는 부분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일상의 (실재적이든 상상적이든) 공유, 같은 시대에 비슷한 꿈을 꾸고 비슷한 것을 느끼면 살고 있다는 이러한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다.
여하튼 이 꿈은 내가 올해 겪었던 일 중 가장 기쁜 일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들뜨고 나니 이런 꿈을 꾸었다는 것을 소중히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퍽이나 기쁜 일이 없이 지냈구나라는 사태에 우울해 해야할지 헷갈렸다.
4.
밤섬해적단의 가사에는 국가와 대중을 포함한 기성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일상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조롱하는 진보적 엘리트 젊은이로서의 자의식이 혼합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 양자의 관계는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매우 가깝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엘리트주의, 잰 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밤섬이 표현하고 있는 것, 우리로 하여금 목격하게 하는 것은 좀더 복잡한 형태를 가진다. 그것은 멍청해 보이는 국가와 자신이 행하는 일들의 사회적 결과를 모르고 자기자신의 자존심이나 재산을 지키기 바쁜 이기적인 대중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비판인 동시에, 또한 그런 비판을 수행하는 (유사-)지식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것이다. 후자의 경향이 밤섬 자신의 엘리트주의적 성향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를 밤섬의 가사에서 확인하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면 밤섬의 가사는 항상 남을 '조롱하는 자'의 위치에 서있고 따라서 모순은 항상 자신의 내부가 아닌 타자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섬은 그러한 가사 스타일에서 카타르시스를 산출하는 밴드이다.
한 가지 추가적으로 궁금한 것은 밤섬을 듣는 사람들은 과연 어디에 동일화를 하고 있냐는, 어디에 자신의 위치를 잡고 이 음악을 듣고 낄낄(경멸적 의미는 없다)대고 있냐는 것이다. 진보적이고 쿨하기 해보이는 조롱하는 자로서의 밤섬? 그런 밤섬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자? 아니면 밤섬이 조롱하는 사람? 리스너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는 항뮤직 회원리뷰나 블로그에서의 반응을 통해 확인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세 번째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청자의 자기방어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아티스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밤섬의 가사에서 조롱의 대상은 그야말로 난도질당한다. 그런 난도질이 또 듣는 맛이기도 하지만 조롱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향을 자신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나오는 일종의 공감의 실마리를 찾기도 힘들다. 이렇게 짜인 판에서 자존심의 모멸을 감안하면서까지 조롱의 대상과 동일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홍대 펑쓰들과 헤비 리스너들, 소위 진보적 젊은이들이 서로의 부차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밤섬을 즐겁게 듣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으련지 모른다.
밤섬에 대해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메모.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가사 하나하나를 보며, 음악을 한 트랙 씩 집중해서 듣고 작성해 볼 예정이다.
5.
얼마 전 아이돌과 네이션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해당 포스트 링크] 한 가지 까먹은 게 있어 추가적으로 기록을 해놓는다. 사실 내가 이 문제를 문제로서 생각하게 된 동기는 승승장구 소녀시대편 마지막의 쿠웨이트에 왔다는 삼촌 팬과 친한친구 마지막 방송에서 등장했던 캐나다 미국 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유학생들의 사연을 듣고 나서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인민덕후라고도 불리우는 정대세의 텔미 댄스가 있다.
정대세까지를 비롯한 내용들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그 진심의 강도 역시도 마찬가지로 강렬한- 다들 소녀시대(와 태연)의 활동에서 타향 생활을 이겨낼 힘을 얻었으며,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하고 무엇보다 크게 응원한다는 것이었다. 연예인이 이렇게 지리적으로 떨어진 '국민'들을 통합하는 기제로 기능했던 것은 꼭 오늘날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인정하고서라도 과거의 그것과 오늘의 그것 사이에는 환원불가능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정치적으로 무얼 시사하는지는 나중의 과제로 차지하고서라도 이렇듯 소녀시대라는 '국민적' 걸그룹을 통해 형성되는 공감의 범주가 무엇인지,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알아보고 생각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이는 꼭 소녀시대만의 특이성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좀 들자면 인도 음식점에 가면 항상 인도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밥을 먹다가 화면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인도인 사장과 인도인 손님의 시선에서 꼭 이 낯선 뮤직비디오가 '인도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인테리어의 용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 목록
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오- 꿈으로 축복을 받으셨군요(^-^). 그런데 내 꿈에는 왜 안 나오는 거야(ㅠ_ㅠ).부가 정보
관리 메뉴
본문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오)德을 좀 더 쌓으시라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