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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권의 독서와 직관으로 할 수 있는 얘기를 백권의 책을 읽으면 더 정교하게 할 수 있다는 자기정당화를 체계적으로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이 아닐까여..." -Y 모씨와의 대화 중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안 움직이는 나약하고 안이한 부류들. 아무도 안 읽는 글을 읽거나 쓰는 데 홀로 만족하고, 교수의 심부름을 하느라 온 청춘을 다 보내도 끝내 저항하지 않을 자들.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현실이 가까운 미래인 줄 알면서도 그저 참는 자들. 대학원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꼭 죄짓는 것만 같다." -오혜진 [원문 링크]
누가 뭘 할 거냐고 물으면 항상 당당하게 "일단 대학원생"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요즘 누가 이후에 뭘 할거냐 물어보면 같은 대답을 하긴 한다만 굉장히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일단 대학원생..."
대학원생이 정말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학부의 뭔가 비체계적이고 건성건성인 수업이 아니라 제대로 각잡힌 커리큘럼에 뇌를 단련하고 그리하여 뭔가 더 낫고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 욕심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기대가 많이, 꽤나 심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일종의 '실망'은 단지 '대학의 현실'을 알아서만이 아닌 것 같다. 여기에도 어떤 좀더 '개인적'인, 또 그러하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더 잘 들어맞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적인' 맥락이 있다.
뭔가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한 것이 사회에 책임과 소속감을 느끼며, 그러기에 사회에 지적인 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기여하려는 것과는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저 나는 그냥 학생이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익숙한 것을 계속하려는, 관성 속에 살려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이가 하는 말과 글이란 과연 세상이라는 운영체제와 호환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일까 아니면 몇몇 만의 비밀 채팅방일까.
좀더 꼬아서 이야기해보자. 부모의 기대와 달리 성숙한 인간과 시험을 잘보는 모범생 사이에는 갭이 있다. 고등교육으로만은 완성되지 않는 그런 인간적 면모와 교활한 지혜, 그리고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훨씬 더 쉽고 더 명확하게 얻어지는 통찰력과 순발력 등. 나는 이 둘 사이의 갭을 눈치채고서는 내가 지금까지 사는 식으로 살아도 되는 곳으로 가려한 것이 아닐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요즘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렇다. "인생을 유예하기" 인생이라는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에 대한 상환을 조금만 더라며 유예하기. 이 부채를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빌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그토록 부정했지만 결국 '철이 들며' 알아가게 되듯이 부모에 대한 빚일까? 아님 멋진 인생을 살겠다던 자신에 대한 빚일까(그래서 우리는 "아직 잠깐만..."이라 말하며 등교하는 것일런지 모른다) ?
몇 년 전에 어떤 선배가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더랬다. 원하던 대학에 과에 지도교수를 만났지만, 뭔가 마음이 편치 않다고, 스스로가 이 길을 와야만 했는지, 이것밖에 할 수 없었는지, "결국 여기로 왔구나"하는 식의 패배감이 든다고. 대학원생들 스스로가 내가 말한 부분에 무지하다거나 정직하지 못하거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과 그녀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매우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나누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원생의 자의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들의 초상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특히 젊은이들의 어떤 재미있는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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