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관련 서적들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열심히 읽던 때, 주변에 심리학과 친구들과 정신분석의 과학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저도 정신분석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거니와, 그 친구들 역시 심리학에 대해 마찬가지여서
'정신분석은 신비주의' VS '(자아)심리학의 전제로 평가하면 안 돼' 식의 서투른 말싸움으로 끝났더랬죠. 하지만 이후에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분과의 독자적 지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인 인간의 정신을 다룬다고 하는 다른 학문분과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소통하거나 소통하지 못할 경우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가지는 학문적/실천적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의 논리를 내적으로 철저히 설명해 정신분석의 고유성을 규명하려는 글들은 있어도, 다른 학문(대표적으로는 심리학)과의
차이점 혹은 구별되는 이론적 쟁점들을 집어가는 글들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2005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는 정신분석 흑서와
이에 대한 자크 알랭 밀레의 지극히 '전형적인' 반응을 보면 이런 상황은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300)
이렇게 서로간의 쟁점조차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분석 이론들이 한국에 수입되어 들어오고 이것이 (학계보다는)
출판시장이나 블로그 공간들에서 '정신분석의 과학성'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들이 자주 발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Clockoon님이 번역하고 계시는 딜런 에반스의 글은 그의 논지에 찬반은 차지하고서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든 번역하든 읽고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분석이 하나의 '의료행위'로서 한국
사회에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착되는 것이 아닐까요. 정신분석이 의학을 넘어 철학/사회과학/문화이론에 풍부한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학문 자체는 결국은 구체적 상황에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탄생된 것입니다.
환자와의 만남이야말로 정신분석이 형이상학화하는 것을 막는 '근거' 내지는 '대상'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임상이 실천되지 않는
이상 이런저런 논쟁들이 결국 서로 하고 싶은 말만 떠드는, 자기에게 유리한 논거만 모아 나열하는 공론(空論)장이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자연주의는 결코 자유의지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의지에 긍정적인 설명을 제공하며, "모호하고 전전긍긍하는 형이상학"으로 자유의지를 과학의 마수에서 보호하려고 시도하는 견해들보다 사실 자유의지의 당혹스러운 측면들을 더 잘 다룬다."(36쪽)
"마지막으로 '피할 수 있음'이 결정론과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불가피성도 비결정론과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해 두자. 무언가에 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불가피한 것이다. 당신이 결정되지 않은 번개에 맞아 죽는다면, 돌이켜 볼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사전 경고를 전혀 받지 못했다. 사실 번개가 칠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 번개가 치는 시간과 위치가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편이 당신에게는 훨씬 낫다. 그러면 당신이 예측할 수 있고, 따라서 회피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결정론은 불가피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친구이지 적이 아니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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