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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04
    이건범의 [내 청춘의 감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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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6/13
    글을 써보자 + 왜 분노하지 못할까(2)
    닉네임

이건범의 [내 청춘의 감옥]에서

 

 

정치범들이야 명분 서는 징역살이기에 비난하는 대상이 분명하지만, 일반수들로서는 바깥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가 아우성으로 터져 나오는 형국인지라 욕하는 대상이 분명치도 않다.(77)

*문득 이 말을 보고 "돈 이상의 것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차이란 어떤 '교육'의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교육이란 지식의 습득보다는 묵직한 말이다. 이는 우선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어떤 '높은' 것으로 보이는 집단에 진입할 기회를 의미한다(혹은 이를 갖지 못한 자에게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의 준거, 가치기준을 자신 외부의 것에서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이 겪고 대응했던 것의 집합으로서의 경험이다.

  하지만 경험은 정직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경험과 부딪힐 때 어떻게 조율해야 될지, 어떤 방법이 '옳은지'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없다. 여기서 야기되는 혼란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교환'가치', 즉 화폐, 돈이다. 설령 상대가 정말로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도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의아할 뿐이다. 어떻게 저렇게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따르지?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지적으로는 촌스러운 '빨갱이'같은 수사와 이미지들이 그들에게 답변을 제공해 준다. 촌스러운 말을 촌스럽다고 비웃는 건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 그 말들은 촌스럽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세계상을 제공하고, 그래서 힘이 될 수 있다.

친구의 복수를 결행하다 불구가 된 채 밑바닥을 기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주윤발과 가족을 생각해 어둠의 세계에서 발을 빼려는 적룡은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며 갈등하지만, 끝끝내 서로를 위해 몸을 던진다. 거기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뇌가 짙게 따라 다닌다. (...) 1987년 민주화 이전만 해도 학생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한다는 건 '자기 인생을 거는 결단'을 전제로 삼는 행위였다. 더 이상 고뇌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며, 개인적 고뇌는 대열에서의 이탈로 직결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의 진행은 이제 그런 결단 없이도 생활 속에서 '알면 행하는 식'의 운동 참여가 가능하도록 세상을 열어 주었다. 그 덕에 운동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만큼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선택의 고뇌를 싸안은 채 참여하는 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나는 '미래에 서로 인생행로가 갈려 입장이 달라지더라도 당대의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하며 한곳을 봤던 동료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웅본색]을 해석했다.(186~7)

**이 책에서 가장 크게 강조되는 것 두 가지는 1)개인, 그 중에서도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긍정의 (삶에 있어서든 사회활동에 있어서든) 불가피성과 그리고 이에 기초한 2)타인의 삶에 대한 긍정과 믿음이다. 이러한 긍정과 믿음은 이것 자체로 어떤 정치적 결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왕년의 운동권이었음에도, 그리고 지금도 당시 가졌던 이념들을 옳다고 여기고 관련된 활동들을 지속함에도, 이런 태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적 의식으로 가공될 필요없이 그 자체로. 이것은 하나의 '성숙'이다. 성숙이라는 말로 지칭되는 것들이 그런 반격을 받듯이 이는 꽤 심심하고 당연하고 뭔가 뜨뜻미지근한 그런 얘기들이다. 나로서도 이런 태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그냥 다만 갈수록 어찌됐듯 결론을 삶에서든 정치에서든 이 투박한 이분법에서든 내는 게 아니라 '사는 게' 우선이 맞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많은 일들의 '결론'은 이런 곳에서 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보는 책들은 이런 현장들의 너저분함을 견디지 못해 정리해왔지만 결국에는 이런 경험들이 증발된 정리만 남은 것이 아닐까 .

함께 수감 생활을 하던 옛날의 화려한 선배들이 운동의 일선에 같이 서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워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그렇듯 그도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대한 공감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믿고 있기에 (...) 그나 나나 세상은 대부분 고통스럽고 행복은 아주 잛게 스쳐 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나이다. 그리고 그 짧은 행복의 기억은 가슴 깊은 곳에서 매우 은밀하고도 뜨겁게 꿈틀거리며 고통보다 강한 힘으로 우리 삶을 끌어간다는 사실도 안다.(243)

넓게 보자면 이념적 지향이 비슷한데, 왜 우리네 삶의 행태는 이리도 다를까? (...) 매우 음모적인 성향, 과민 반응, 고집과 편견, 무례함과 독선, 자기과시욕과 비둘어진 엘리트주의, 권위주의와 성차별, 너무나 민감한 여성주의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엄숙함 등 우리 내부에도 문제는 많았다. (...) 소설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보면서 나는 그제서야 '사람은 서로 다르다'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는데 1992년 말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인권 씨에게 정치인 중 누구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전인권 씨는 김영삼 후보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가 참 흥미로웠다. 장발 단속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에 야당 구고히의원이었던 김영삼 후보가 긴 머리에 새하얀 백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보기 좋고 속이 시원했단다. (...) 사회에서는 '광대'쯤으로 취급받는 가수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정치적 태도를 형성해 가는지가 훨씬 흥미로웠다. (...) 노래만 알 것 같은 가수 전인권 씨, 바둑판만 볼 것 같은 조훈현 선생. 그러나 그들 역시 수많은 좌절과 고민으로 얼룩진 자신만의 세계를 통해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고, 자신의 삶에서 얻은 문법으로 세상을 읽는 눈을 갖게 되었으리라. 난 이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210~4)

***사람이 어떤 생물학적 나이를 지나면서 얻는 직관이나 '삶'같은 주제에 대한 성찰은 젊은 나이의 급진적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 전혀 달갑지 않은 '꼰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꼰대라는 레토릭에 지나친 가치판단을 부여하는 순간 잃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큰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위치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 나이가 다르고 겪은 게 다르다는 어떤 사회적 차이에 대한 간과가 될 것이다. 물론 이 말은 곧바로 역으로 적용되어 어른/꼰대의 객관화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징역과 같은 극단적인 경험을 겪었지만 어쨌든 직업을 얻고 안정을 찾은 386세대의 정서, 그리고 정치적 입장 또는 무덤덤함 등.

 

****어쨌든 중요한 건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그걸 이해하면 어쨌든 화낼 일은 좀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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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보자 + 왜 분노하지 못할까

1. 이렇게 번호로 시작하는 포스트는 확실히 읽는 부담이 덜하다. 우선 길어야 2~3문단 내로 한 논지가 끝난다는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은 "끝까지 안 읽어도 메세지 하나는 읽겠군"이나 "하나 읽고 쉬었다 또 하나 읽는 식으로 읽으면 되겠군" 식의 안도감으로 이어진다. 음식으로 비유를 하면 크라운산도와 냉면으로 예를 들 수 있겠다. 질소포장된 봉지과자들과 달리 크라운산도는 한 봉지를 까도 2개만 먹으면 되지 전체를 먹지 않아도 괜찮다. 냉면은 그냥 먹으면 면을 씹고 끊느라 지치지만 가위로 잘라먹으면 먹었다 숨좀 고르고 다음 젓가락을 들 수 있다. 

 

그동안 뭔가를 써야겠다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는 습관은 메모 수준도 들이지 못했으니 안 되고, 컴퓨터를 잡게 되었다. 워드는 쓸쓸했고, 트위터는 지금도 잘 쓰고 있지만 뭔가 다른 글쓰기를 해야 겠다 싶었다. 호흡을 가진 활자 맛을 알아서 그런 것인지, 그나마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싶은 게 글인데 긴 글 비슷한 것이라도 쓰지 않으면 그야말로 '탈숙련 노동자'가 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냥 자기와의 대화 시간을 늘려보겠다 싶은 심산인지. 아마 이렇게 주저리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모두이겠지. 

 

항상 마음은 먹지만 잘 안 되는 것이 한정식같은 블로그를 꾸리려 마음을 먹지 말자는 것이다. 재료도 없고 들일 품도 없는 주제에 당연하다. 하지만 옆동네 맛집이란 것들이 3분요리같은 것을 상에 올려놓고서 한정식이네 하고 있는 꼴을 보면 죄다 뒤짚어 엎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긴 글'을 못 쓰다 보면 단타성으로 투덜거리게 되는데 이 꼴이 사실 징징대는 거랑 그리 별다를 바가 없고, 스스로가 뻔뻔하지 못해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 나도 저치들이랑 같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안 쓰니 저치들보다 훨씬 못한 인간이 아닌가....생각을 하면 열불이 터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긴 글을 앞으로 쓰겠다는 장담은 차마 호기롭게 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난 대체 뭘하고 있는 것인가. 아마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게 내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니 이해 좀 해달라는 말을 길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써서 어쩌자는 거지...힘들게 달려온 사람들에게 상은 아니어도 물이라도 줘야 할텐데 "아무것도 없음 ㅈㅅ ㅋ" 이러고 있으니.... 게다가 반성의 전시를 통해 블로그들에 흔하디 흔한 넋두리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으니 이건 돈까스 위에 치즈 한장 얹어놓고 치즈돈까스라고 우기고 있는 꼴이다...

 

2. 얼마 전 자전적 텍스트에 대한 논평 하나를 들을 일이 있었다. 가장 최근인 대략 4개월 전 그 텍스트에 대해 들은 평은 "지인이 아니면 볼 필요가 없다" "너무 오글거린다" "항상 끝까지 하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회피의 삶이었다" "별 특이한 것도 없는데 엄청 길다"는 것들이어서 나 스스로도 그런 면이 있구나하면서 또 역시 한 때의 기억으로 남기려던 텍스트였다. 본래 제한적 시간에 제한된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글이고 그래서 더이상의 피드백은 없이 이렇게 끝났구나 하고 있던 와중에 최근에 한 피드백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우선 피드백 자체가 왔다는 것이 긍정적이었으며 내용 역시 매우 긍정적인(혹은 낙천적인) 것이었다. 그 평은 나를 위로해주는 것 또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기만케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이 나이 때 이렇게 사적인 부분에 대한 정리를 해놓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자전적인 것은 나중에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보다 내 비대한 인정욕의 갈증을 달래주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말은 지금 해봤자 아무 짝에도 의미가 없다. 사적인 것에 집중한다는 말 자체도 좀더 구체화되어 반성의 거울로 동원되어야 할 테고 추진을 해야 뭐라고 말을 하지....

 

이런 듣기 좋은 말보다 훨씬 크리티컬한 지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텍스트 어디에도 "화를 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과거를 돌아보는 데 있어 분노와 같은 격렬한 감정이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뭔가 쓰고 싶었다.

 

트위터를 들여다 보면 사람들이 온갖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을 본다. 정부의 정책부터, 진보정당의 배신, 폭리를 취하는 사학 재단, 오역이 난무하는 번역서, 서비스가 안 좋은 식당 등등. 이 일들에 있었던 시간에 내가 살았고 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 일들과의 거리가 그리 '멀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런 일들에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대학 시작부터 순차적으로 쓰자면 학생운동권의 과반공동체에 대한 소홀함, 과반공동체에 헌신하지 않는 이들의 비협조, 고도의 이론서를 접하지 않는 세속인의 활자생활, 운동과 세상을 망친다고 본 얼치기 이론가들과 그의 워너비들, 나태한 교수들 등의 대상이 있었던 것 같다. 헌데 어느 순간 나는 이런 분노의 전부 내지는 거의 모든 것들이 굉장히 '거짓'되었다고 느껴졌다. 욕먹을 각오하고 말하면 난 솔직히 프롤레타리아의 애환은 물론이고, 저기 저 철거민들의 고통조차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 동일시가 되지 않는다. 내 삶의 어떤 장면과도 중첩되지 않는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솔직한 정서의 최대치는 "안타깝다"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 그녀들에게 도약하기에는 내 상상에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너무 없다.

 

나 자신이 이런 '장애'를 안고 있다보니 남들의 분노와 같은 감정을 볼 때도 매우 엄격한 기준이 작용된다. 격렬한 감정을 믿기 힘들다. 그 감정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어떤 특이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민한 노력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애씀을 부인하거나 죄악시하고 싶진 않다. 난 이것을 사회관계의 중요한 기초 중 하나로 여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게 '정직'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직의 절대적 기준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도 그것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공간에 온 것은 굉장히 '의식적'인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도 큰 일이 없는 한 이렇게 의식적으로 이 공간에서 집중할 수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려 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 바닥의 글을 보고 한소리를 얹어왔다는 관성이 이런 의식적 관심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크게 절약해 줄 것이다. 어느 순간들에는 완전히 대체해 주기는 하겠지.

 

굉장히 허무주의적일 수 있는 내용을 썼는데 요즘은 그냥 사람 사는 문제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을 어딘가로 억지로 끌고 가거나, 익숙한 모에 요소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그 곳에 자리잡고 사는 것. 그래서 사람의 삶은 그 어떤 외적 내적 굴곡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일관성을 띠게 된다. 그 일관성들이 여러 자극을 받고 또 자신을 관철시키며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그렇게 형성되는 삶이란 것이 그 전개가 예정된 형태의 것은 아니다. 삶은 예측불가능했고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어떤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맞다. 다른 야심은 많이 죽었지만 이런 부분들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 정도는 가지고 싶다.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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