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스탈린주의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1/26
    결백한 개념은 없다(2)
    닉네임

결백한 개념은 없다


"반면에 나는 지성의 명철성을 믿으며, 그리고 지성에 대한 민중운동의 우위성을 믿는다. 왜냐하면 지성은 최고 결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 어쩄든 우리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가능하며, 오직 이런 점에서만 가능하다. (…) 여기서 우리는 정치 한가운데 서게 된다."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2008, 297쪽.


수많은 좌파 '이론가'들의 바람과는 그 어떤 외적 조건과 무관하게 '해방'을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이론이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계몽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합리적인 정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문제적 상황에도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런 내적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원리라는 플라톤주의적 바람, 개념적 순수주의의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 데이비드 하비의 희망의 공간, 가라타니 고진의 자본의 축적을 발생시키지 않고 단순히 물물교환을 도울 뿐인 중립적인 통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소멸된 스탈린의 사회주의, 그 사상적 기원으로서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국가의 사멸"에 대한 옹호, 배제없는 재현/대표라는 직접적 민주주의의 오래된 환상 등등.

이 모든 개념들은 현실이 가지고 있고, 또 현실이라는 범주 자체에서 제거할 수 없는 '우연성', 노골적으로 말하면 '더러움'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어떤 정세에서건 역사에서건 결백할 수 있는 개념을 각자 내세운다. 일단 내 지금 잠정적인 생각은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윗 개념들이 지시하는 상황은 극단적인 현실의 우연성을 통제하는 한에서만, 어떤 잘 꾸며진 '실험실'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유토피아주의적 개념들의 계열에 한 두개를 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진리'의 핵심적 계기는 투명성, 순수성이 아니라 우연성, 우발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해방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이 어떤 구체적인 정세와 역사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분석하고 이를 고려해 이 개념에 내재된 해방적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지성은 해방을 보증하지 않는다. 해방을 보증하는 것은 현실의 실천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해방을 보증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것이다. 해방이라는 범주는 그보다 훨씬 역동적인 범주로 우리는 이것을 보증하진 못하고 다만 활성화할 수 있을 따름이다.

헌데 이는 매우 역설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발성을 포함한 개념을 우리는 여전히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극단적 상대주의, 경험주의에 빠져 자신의 지적 게으름을 개념의 무용성으로 전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아니다. 나는 절대로 모든 개념이나 이론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개념'과 '이론'의 규정 또는 역할이 말 몇 마디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아닌 다른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일례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것 자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분명히 평등-자유라는 '한걸음'을 성취해낸 것은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그 이후 우리의 삶의 모든 이상들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나는 공산주의도 이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근대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개념을 통해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모든 개념이 민주주의라는 말만큼의 무게를 지닐 수는 없고, 또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무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저 '우발성을 내포한 개념'이라는 말이 이 '한걸음'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진리'는 이렇게 철저히 현실과의 연루 속에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P.S 기본소득은 그 "한걸음"에 해당하는 개념일까? ㅎㅎ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