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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보다 일상,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뭔가를 배우게 된다.
원래 배움 자체는 모욕적인 과정이다. 왜냐면 그것은 자신이 잘못이나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혹은 뒤늦게서야, 이 뒤늦음 역시 모욕감의 한 구성요소이다)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관계로부터의 배움이란 더더욱 모욕적이다. 왜냐면 책은 나와 직접 마주하고 있지 않기에 한 대 얻어맞더라도 그것은 결국 내 허가를 통과해야 하기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부분만 때리는 반면, 사람은 내 면전 앞에 서서 내가 아무리 좀 나중에 천천히 듣고 싶다고 말해봤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상대방의 주의와 배려에 의해 어느 정도는 조절될 수 있지만 어쨌든 그럼으로써 '괴롭힌다'는 근본적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이 과정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듣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일이지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일단 잉여롭게 자기성찰에 투자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아가 답변을 시도해 봐야 한다.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방 역시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호환성을 갖춰서. 그러나 이 포스팅은 이를 직접적으로 목표로 하기보다는 그 전 단계일 자신을 살짝 추스려 보는 것을 일단 목표로 하겠다...
1.
나는 얼마 전 다양 다질한
원인에서 비롯되는 내 피폐한 정신 상태에 단일한 인격적 원인을 가상으로 부여함으로써 쉽게 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인격적 원인에 대한 애착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은 '오늘의 나'이기를 억지로 거부하는 것이기 대문이다. 물론 찬찬히 보면 그 감정은 해당 인물과의 인간 관계가 아닌 외적 요소들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며, 또 그렇기에 어렵지 않게 그 열정이 그리 멀지 않아 식으리라 짐작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고 해서 내가 그 거짓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좀 이상한 예를 들자면 이건 마치 네가 우울한 이유는 군인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서 군인이 '아 나는 내 감정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어떤 허구 속에서 살고 있는지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쨌든 거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껍질만 남을 것이다, 거짓말밖에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내가 아닌 척 하는 동안 내가 내 삶으로서 누려야 했을 것들(그것이 기쁘건 슬프건 뜨겁건 차갑건)을 그대로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여기를 살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나'가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반쪽짜리지만 이를 부인하면 나는 그 반쪽마저도 안 될 것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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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배움이 모욕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어요ㅎ스스로를 너무 후하게 평가 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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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 전의 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너무 후하게 생각하고 있단 말씀이 많죠 ㅎㅎ 그래서 모욕감도 배우며 느끼고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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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paragraph 내용이 넘 좋네요. 무한 공감임미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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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패러그래프가 '배움'에 관한 건가요, 1절인가요? ㅎㅎ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금요일은 아니어도 언제 한 번 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