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사키 아쓰시, 『현대일본사상』, 송태욱 옮김, 을유문화사, 2010.
1.
이 책은 일본에서도 2009년에 출간된 번역서치고는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1980년대 아사다 아키라로부터 대표되는 이른바 '뉴아카데미즘'부터 2000년대 후반 아즈마 히로키의 『비평지도』까지를 '현대일본사상'이라는 규정에 묶어내 그 변천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책이다. 논술 교재로도 활용되는 푸코나 롤스, 그리고 최근 사람으로는 마이클 센델같은 유럽이나 영미권 사상가들에 비하면 일본의 사상, 특히 현대일본사상이 상대적으로 낯설기도 하고 관심이 덜 동하는 주제임은 사실이다. 하물며 현대일본사상'사'라니?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아사다 아키라의 『구조와 힘』과 『도주론』같은 책과 아즈마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특히 가라타니 고진의 경우에는 80년대 이후의 주저들이 띄엄띄엄 번역되어 오다가 최근 들어 거의 다 번역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 이렇게 번역된 저서들이 젊은 대학원생들의 학위 논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아직 스테디나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출간만 되면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 1,500은 넘기고 서평도 2~3개는 꾸준히 올라오는 것을 볼 때 한국 인문학계에서 현대일본사상은 꼭 그리 낯선 주제만은 아닌 듯싶다. 오히려 한국 인문학 시장에서 현대일본사상에 대한 수요는 이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물론 본서에서 보여주듯이 오늘날 이 둘의 경계는 모호하다) 증대하고 있는 추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진 않았지만 젊은 인문학 소비층이 현대일본사상을 어떻게든 소화 활용하려는 모습을 세미나나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상 자체의 수요 증대는 사상사에 대한 진지한 수요 증대를 수반할 수 밖에 없는데 개별 저자들의 개별 저술만을 읽는 것으로서는 해당 저술의 문제의식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상이란 어떤 공백에서 시작되는 순수한 정신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사상은 언제나 배경을 가지는데 첫째, 그 이전에 있었던 사상에 대한 논평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고 둘째, 그 사상이 처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과 셋째
그 조건과 관계맺는 자신, 그 안에서 사상이란 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를 간과하면 독자는 유사한 부분들을 찾아 끼워맞춰보는 그림맞추기 수준 이상으로 개별 사상들을 묶어낼 수가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본서는 너무 일찍 도착한 손님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일본어를 할 줄 알고 현대일본사상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소수 이외에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 이런 책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만한 독자 풀이 충분히 형성될 수 있는 출판조건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물론 서평자 자신도 후자에 속한다).
2.
그러나 모든 독서의 경험이 그러겠지만 특히 본서에서 독자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자신에게 부족했던 지식을 채우는 경험만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또 가장 강한 매력 가운데 한국 사상 시장과의 '동시대성'이다. 달력 위의 시간상으로만 봐도 본서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지금 여기'와 매우 가깝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시대적 조건이 지금 한국의, 특히 출판시장, 대안담론/비판담론 시장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이를테면 맛뵈기로 뉴아카데미즘 유행시 학생들의 상태를 회고적으로 묘사한 사사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자.
"비정치적이고 무슨 일에나 관심이 없는 세대라 불렸던 당시의 젊은이지만, 지적 호기심이나 향학열이라 부를 수 있는 에너지를 학생 운동이나 입시 전쟁에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비축하며 부풀리던 사람도 있었습니다(부끄럽지만,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지적 리비도가 향한 곳으로, 아사다나 나카자와의 책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37쪽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지 않은가? 이러한 유사성은 시공간적 근접성 때문에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 그보다는 사사키의 '사상사'가 내용보다는 형식, 그것의 옳고 그름보다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행위로서 행해졌던 방식을 기술한다는 관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사키는 자신의 방법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일본의 사상>을 개괄한다고 하면서도 이 책에서는 개별적인 사상의 내실과 내용에 일일이 깊이 파고들어 각각의 변천을 논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 이유는 필자가 애초에 <일본의 사상>은 사상의 '내용' 자체보다 오로지 그 사상의 '행위'에 의해 성립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 그 사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상으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아니 그것을 그렇게 말함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하(려 하)고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8쪽
혹자는 이런 사상사가 사상의 컨텐츠, 핵심을 외면하는 몰지성적인 태도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상이 현실에 끼친 영향도로 따지자면 '담고 있는 것'이 우선이었을까 아니면 '담고 있다고 가정되는 것'이 우선이었을까? 사사키는 "때로는 내용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해되고 있지 않는데도(또는 내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경우조차도?) 어떤 유효한 퍼포먼스에 의해 그 사상이 효력을 발휘하는 일도 있습니다(19쪽)"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상이 '보이고 싶어하는' 주관적 모습이 아닌 실제 '보인' 객관적 모습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상과 깊은 사랑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이런 객관화는 모욕적인 것일 수 있겠지만 사사키는 거침없이 솔직한 관점을 택한다. 그는 거친 말투를 쓰진 않지만 현대일본사상가는 끊임없는 구별짓기의 과정이었으며 이를 멀리서 보면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시소'에 불과했다고 굉장히 거친 논의를 펼친다(하지만 자세히 읽다 보면 그는 현대일본사상에 '성과'가 없다고까지는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사상>의 역사를 '행위=퍼포먼스'의 응수로 그리려 하면 그 변천의 양상도 내용을 좇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예컨대 어떤 사상이 새롭게 등장할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은 그 이전의 사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 적어도 타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는 것입니다." -19~20쪽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의 사상>의 변천을 더듬어 가는 것은 시소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수없이 역전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전보다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가 않습니다." -22쪽
이렇게 사상을 철저히 탈신비화해서 보려는 태도에 입각해 『구조와 힘』15만부 판매로 시작된 화려한 뉴아카데미즘의 성공 요인을 그 내적 논의의 정교함이나 위대성이 아닌 마치 마케팅론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 아사다나 나카자와의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해외 문헌이 아직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해외 문헌을 원문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독자의 흥미와 갈망을 더한층 자극하여 그들의 책이 단지 '소개'라는 기능 이상의 흡인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읽을 수 있다/아직 읽을 수 없다'는 이 미묘한 상태도 뉴아카데미즘 현상의 절묘한 지점이었을 것입니다." -40쪽
"뉴아카데미즘의 전성기인 1984년 말에 (...)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한 현대 사상 입문』이라는 무크지가 간행되었습니다. (...) 이 '알고 싶은 당신'이야말로 뉴아카데미즘 현상이 산출한(또는 드러낸?) 새로운 독자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뉴아카데미즘의 퍼포먼스는 '알고 싶은 당신들'을 위해 이루어졌고 그것에 의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을 대량 생산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92~3쪽
"여기에는 <일본의 사상>의 그 이후 흐름을 생각할 때 아주 시사적인, 어떤 중요한 동기 부여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알고 싶은 당신'들에게는 알 수 있는지 없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것보다 될수록 빠르고 편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어(알 수 있게 되어) 그것에 대해 '말(할수 있는)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사다 아키라나 나카자와 신이치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든, '작품=텍스트'를 '읽는' 행위(이것도 일종의 '노동'입니다)를 경시하는 뉴아카데미즘의 특징은 그들이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123쪽
헌데 이런 문제의식, 사상이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의해 성립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문제의식 내지는 위기의식은 사사키 자신의 고유한 관점만은 아닌 아사다나 가라타니같은 뉴아카데미즘의 논자들에 대해서 작든 크든 자각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사키는 고진의 「비평과 포스트모던」같은 논문이나 『탐구』이후 '타자'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작업을 이런 맥락에서 높게 평가한다. 또한 아사다 역시 그러한 반성을 수행했다는 것을 1987년 12월 『겐다이시소』 임시증간호에 실린 「어린이의 자본주의와 일본의 포스트모더니즘 - 하나의 요정 이야기」라는 강연기록문에서 찾는다.
"[아사다는] <1980년대 일본>에 나타난 '포스트모던'은 사실 1930년대의 전전 '포스트모던'과 비슷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아사다는 그런 비전을 '관념론적 도착의 극치'로 단정하고 마치 자신이 제기한 논의를 내팽개치듯 강연을 끝내 버립니다.
아사다는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분명히 자조적으로 "이 비전이 자괴에 이르는 것처럼 저는 감히 그로테스크한 패러디를 계속해 왔다"고 말한 뒤 "이 도착을 철저히 해체하고 그 안에서부터 현실적인 분석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발언은 이 강연에서의 논지에 대한 것이겠지만, 뉴아카데미즘의 스타인 아사다 아키라의 '행위' 전반에 대한 자기반성의 변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86쪽
회고담이긴 하지만 아사다와 함께 뉴아카데미즘을 주도한 나카자와 신이치에 따르면 이런 불안과 반성, 자각은 뉴아데미즘의 시작 때부터 있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사키는 그런 사후적 회고가 진실이든 말든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뉴아카데미즘에 대해서 가차없는 평가를 아끼지 않으며 이를 재밌게도 가라타니의 메인 테마이기도 했던 '아는 자'와 '행하는 자' 논의를 활용해 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해도, 그들은 계속 '뉴아카데미즘'이라는 춤을 추었습니다. 그 춤은 밝고 경쾌하고 멋있었고, 무엇보다 무척 즐거운 것이어서 옆에서 보기에는 그런 의심이나 아이러니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춤'이 확실한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는 '쇼와'가 끝나고 '1980년대'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139~40쪽
어찌보면 이런 비평을 사상의 주논지를 무시한 '탈맥락화' 내지는 '트집잡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사키의 비판에는 치명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론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사상을 다룰 때에도 사사키는 판매 데이타나 '몰이해한' 독자들만을 근거로 내세우는 것만이 아니라(그런데 이들을 근거로만 내세우면 과연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뒤에서 우리는 이 질문에 다시 답해볼 것이다.) 해당 사상가들이 딛고 서있으나 뚜렷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론적' 전제를 함께 제시한다. 이를테면 사사키는 아사다 아키라가 뉴아카데미즘 풍조와 이를 따랐던 사람들에 대해서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식으로 가혹한 비판을 하는 대목을 두고 "<일본의 사상>의 '병적인 성격'" 중 하나를 본다.
" (...) 아사다 아키라는 여기에서도 철저하게 '올바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일 정도로 다음의 두 가지 물음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왜 사람들은 때로 그렇게 '바보'같고 '하찮은' 생각에 빠지는 것일까? 둘째, 도저히 그런 '바보'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일까?하는 물음입니다. (...) 굳이 말하자면 '지성'의 차원과는 별도로, 그래도 사람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히는 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 옴진리교가 뜻밖에 가르쳐 준 것은 오히려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단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정리해 버리는 것은 간단합니다. 아사다 자신이 '지진아'라는 말을 쓰고 있기 때문에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에는 사실 그 자체가 현실을 회피한, 지적 엘리트주의가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짐)" -215~6쪽, 강조는 인용자.
사사키는 여기서 아사다, 그리고 뉴아카데미즘을 규정해 오던 근본적인 '부도덕'을 본다. 그것은 '비판적'이기는 했으나 동시에 '초월적'이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멍청'하기도 한 타자를 용인할 수 없이 자신의 템포로만 세계를 재단하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다. 사사키가 보았을 때 90년대의 사상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된 것이며 80년대와의 차이가 가장 뚜렷히 드러난는 대목이 바로 천황제에 대한 태도와 옴진리교 사건에서였다.
"하지만 그[오쓰카 에이지]는 아사다 아키라와 같은 세대이기는 해도 '1980년대 뉴아카데미즘' 논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쓰카의 연구는 철학적인=이론적인 해독 코드를 '현실=현재'에 적용해 가는 '현대사상'적인 것과는 정반대로 어디까지나 '현실=현재'를 향한 시선과 필드 워크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182쪽
"그러나 아사다 아키라나 가라타니 고진과 달리 세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천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일본의 사상> 사이에 가로놓인 중요한 차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요쿠'(좌익)와 '우요큐'(우익)의 차이가 아니라 '이념(ideal)'과 '리얼(현실=현재)'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1990년대의 세 사람은 현실로서는 어떻게든 천황이 존재한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여기기 때문입니다." -199~200쪽
"'바보 같고 하잖은 현실=세계'는 논할 가치가 없다고 하는 1980년대의 사상과, 아니, 바로 그것을 논해야 한다는 1990년대의 사상, 이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 '옴진리교 사건'이었습니다." -216쪽
하지만 그렇다고 사사키가 뉴아카데미즘을 지워야 할 부끄러운 과거로 넘겨버리고 90년대 사상에 양 손을 들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우선 90년대 사상의 경우에는 철저히 가장 평면적인 의미에서의 '현실'에 근거하려고 했다는 점은 중요한 전회로 본다. 비록 서문에서 현대일본사상을 '시소'에 비유하긴 했으나 그는 이런 반성들과 그에 기초한 작업들을 나름의 '성과'로 보기는 하는 것 같다. 다만 세계에 내재적으로 접근해 변혁보다는 기술에 초점을 두다보니 비판을 포기하고 세계를 그냥 긍정하는 것으로 기울 위험이 90년대의 사상에 있었다.
뉴아카데미즘에 있어 그는 그 컨텐츠가 있던 없던 자기과시였던 말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건 사회적 사실이고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유행이든 스노비즘이든 '사상'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가 일정한 수의 '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연합 적군 사건' 이후 대략 1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93쪽)" 그리고 그 의미를 '도주'와 같은 시대적 과제나 전복 전략보다는 좀더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찾는다. 즉 아사다라는 인물 자체도 시대를 속해 있는 인물로서 비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도주론』]이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론적인 틀을 거의 억지로 '대학론'에,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대학생(젊은이)으로서의 생활방식론'에 적용시키고 있는 점입니다. 차이화라는 용어는 단숨에 생활 방식의 모드로, 이른바 처세술로 변환합니다. (...) 마지막 문장에 아사다 아키라의 '대학생=젊은이' 에 대한 메시지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집필 당시 스물네 살의 젊은이였던 스스로에게 한 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55쪽, 강조는 인용자
3.
사사키가 보기에 2000년대의 아이콘, 아즈마 히로키는 이런 <일본의 사상>의 특성에 대해, 그리고 이에 속한 사람으로서의 자신과 동료들에 대해 객관적인 인식을 수행한 사람이었다. 아즈마는 데뷔 이후 뉴아카데미즘에 거리를 두는데 흔히들 그 단절점을 오타쿠 분석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찾는 것과 달리 사사키는 그의 데뷔작 『존재론적, 우편적』의 말미에서 찾는다. 거기서 아즈마는 데리다가 왜 이런 기묘한 텍스트를 썼을까 묻다보니, 결국 자기가 궁금했던 것은 내가 왜 이런 기묘한 텍스트는 읽는 것일까이였으며, 이것이 하나의 "함정"이었다고 말한다. 사사키이 대목에서 아즈마를 80년대와 90년대가 주는 교훈을 가장 의식적으로 잘 섭취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언급적인 함정'이란, 뭔가에 대해 말하는(생각하는) 것이 어쩐 일인지 '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말하는) 것으로 반전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 여기서 아즈마가 말하는 것은 분명히 일종의 '문학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문학'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더한층 '이 나'를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즈마 히로키는 어떻게든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지 않은 사고의 양상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 나'가 품고 있는 '악순환'을 어떻게 뒤집을까, '자기 언급'이라는 '함정'에 어떻게 '타자'를 도입할까(...) 이를테면 '타자 언급성'을 어떻게 작동할까 하는 시도였습니다." -257~8쪽
이에 근거해 보았을 때, 데리다에서 오타쿠로 넘어간 아즈마의 행보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아즈마의 뉴아카데미즘과의 단절은 앞서 보았던 아사다의 다소 위선적으로도 느껴지는 자기반성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999년 초에 열린 『비평공간』의 심포지엄에서의 아즈마와 아사다의 직접 대화에서 드러난다.
아즈마: 아사다 씨와 저의 의견이 다른 단 한 가지는, 아사다 씨는 좋은 텍스트가 어딘가에 있으면 누군가 읽을 거라는 것이지요.
아사다: 아니, 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아즈마: 읽지 않았다면, 사후적으로 보면 그저 사라진 것일 뿐입니다.
아사다: 사라져도 어쩔 수 없겠지요.
아즈마: 그건 일종의 니힐리즘인데, 글을 쓰고 싶은 저로서는 그런 입장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
필자는 이 어긋남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병 통신'에 대한 위화감과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그 후 아즈마 히로키의 퍼포먼스를 구동시켜 가는 최대의 행동 원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261~2쪽
이렇듯 '읽히는 글'을 쓰고 싶고, 또 그래야만 사상이 의미가 있다는 아즈마의 아이디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하나는 콘텐츠, 내용, 콘스탄티브한 측면의 변화로서 저널리즘적 측면의 강화이다. 아즈마는 이제 데리다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오타쿠나 정보자유에 대해서 말한다. 사사키는 이런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그는 이 논고[「정보자유론」]에서 '뉴아카데미즘'적으로 '현대 사상'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오타쿠'로서 '모에'만 말하는 것도 아니며 확실하게 사회나 공공성에 대해 자극적이고 유효한 말=사상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280쪽
"이에 따라 그는 '이념=이론'에서 '현실'로, 아카데미즘에서 저널리즘으로 전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이행이 아닙니다. 1980년대의 요소도 적당히 유지하면서 1990년대에 다리를 놓고 중심을 이동한 것입니다. (...) 오히려 아즈마는 그 사고의 발판을 커다란 '거대 서사'에서 작은 '거대 서사'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철학이나 문학이라 불리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사상'에서 좀 더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학이나 심리학에 대한 강한 관심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 사회학도 심리학도 이를테면 '거기에 있는 것'에서 출발하는 학문입니다. 거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수집과 그 해석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여기에 없는 것'을 희구하는 철학이나 문학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공학이나 법학에 대한 관심도...)" -285쪽
다른 한 가지 측면은 스타일, 행위, 퍼포머티브한 측면의 변화로서 아즈마는 현대일본사상가들 중 거의 최초로 자신이 사상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려고 한다. "(...) 단지 콘스탄티브하게 뛰어난 '텍스트=작품=사상'을 쓰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퍼포머티브한 '효과'를 짜 넣으면서, 그러나 콘스탄티브이기도 하는 '텍스트'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퍼포먼스'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책 서두에 등장하는 비평가 양성 프로그램 '아즈마 히로키의 제로아카 도장'이다. 이 이벤트에서는 거기에 참가한 비평가 예비군들이 차례로 몇 개의 관문에 의해 걸러지고 최종 관문을 돌파한 사람은 단행본으로 초판 1만 부를 내며 데뷔를 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비평가 예비군들은 리얼리티쇼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만든 비평 동인지를 들고 서점에 나가 제한시간 내에 더 많은 부수를 파는 쪽이 우승하게 된다.
사사키는 이런 아즈마와 2000년 <일본의 사상>의 전개를 마냥 긍정하지만은 않는다. 우선 콘텐츠의 측면에 있어서는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지만 스타일의 측면과 얽혀 다음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때때로 후자에서 전제가 되고 있는 '공공성' 개념이 이를테면 '사상'을 하기 위한 구실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서는 진실로 리얼한, 필사적이 되어야 할 '문제'로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누구의 머리가 가장 좋은가 하는 경쟁'의 게임보드로서 일단 '공공성'이라는 규칙"이 내세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90쪽
스타일의 측면에서는 그것은 자본주의나 승자독식의 논리를 그대로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사키는 다음과 같이 현대일본사상의 흐름을 정리한다.
"1980년대의 사상은 현 상황에 대해 '비판적(부정적)'이었습니다. 1990년대의 사상은 현 상황에 대해 '관여적(보류가 붙은 긍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의 사상은 현 상황에 대해 '수용적(긍정적)'입니다. 2000년대의 사상은 세계를 '변혁(개변)'하려고도, 세계를 '기술(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이 세계를 '감수'하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그저 '받아들일' 뿐입니다." -285쪽
나는 이를 '사상과 세계와의 관계설정'을 기준으로 80년대=초월적, 90년대=긴장을 띤 내재적, 2000년대=긴장을 잃어가는듯한 내재적 식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사키는 이런 2000년대 사상의 특색이 그저 안일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름의 극약처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사상이 '현실적'이기 위해서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현실 안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설정된 게임 보드의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쨌든 승패가 확실히 결정되는 것, 둘째는 어떤 구체적인 성공과 결부되는 것입니다. (...) 확실히 거기에는 고이즈미 정권하에서 양성된 '이기는 쪽/지는 쪽'이라는 나쁜 이항 대립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사상'은 그에 대항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아니라 같은 도식에 감히 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한 심심풀이 놀이가 되어 벌비니다. 2000년대의 사상이라는 게임은 이제 '유희'일 수 없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든 진지한 '경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왜 이제 와서 일부러 '사상'같은 걸 하려 하겠습니까?" -292쪽
"다만 한가지 미리 말해 두겠습니다만, 저는 아즈마 히로키가 자신이 '살아남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에 게임 보드를 '재설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일본의 사상'의 생존과 연명을 깊이 생각했기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92쪽
4.
급마무리하자면 사상 역시 다른 인간의 이런저런 활동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세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보여주는 과정이며, 또 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본서는 보다 보편적인 질문 "사상이란 무엇이며 혹은 무엇이었고 현실과 어떤 관계(해석? 변혁? 비판? 규범? 상품?)를 맺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며, 이를 현대일본사상이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사사키를 이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아마 사사키 자신 역시 자신의 고유한 관점을 전개했다기보다는 이들 대답으로부터 배운 관점을 역으로 적용해 본 것일 게다. 아마 우리도 비슷한 것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저것 특히 나같은 잉문학도가 생각해 볼 지점이 널려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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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읽었지만 이런저런 아쉬움도 많은 책입니다. 분명 1970년대 이후의 일본사상가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것은 바로 붙어있는 이웃의 경향을 접하기 힘들었던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면이 있습니다. 읽기 쉬우면서도 결코 저자가 공부를 대충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예전의 리플을 보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논문 준비 때문에 정신 없는 상태에서도(답메일이 늦고 있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슉슉 읽혔고, 사서 본 걸 후회하게 하지는 않는 책이랄까요. 그 점에서는 무연님과 게슴츠레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제일 아쉬운 지점은 사사키 본인이 일종의 아즈마 히로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서사에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상당히 짙게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특히 가라타니와 같이 아즈마보다 앞세대부터 활약했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우회하는' 면도 있고요. 제가 어느 정도 읽은 사람이 가라타니뿐이다보니 유독 그렇게 느껴지는 바가 있겠지만, 'NAM의 실패'라는 짧은 챕터 하나로 슬쩍 '정리'해버리는 걸 보면서 아무래도 다른 사상가들에 대한 저자의 평가도 조금 미심쩍게 됩니다(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경우도 저는 나름 그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일본의 사상사를 '시소 게임'으로 비유하는 건 나름 통찰력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가라타니나 그 전의 마루야마나 그런 인식은 이미 하고 있었기에 굳이 아즈마만이 그 게임을 그만두고 내려왔다고 하는 결말부는 잘 납득이 가지 않네요. 생각해보면 가라타니와 마루야마는 '왜 일본의 사상사는 그처럼 시소게임이 되고 마는가'까지 물었는데, 『일본의 사상』을 의식하면서 썼다는 책치고는 사사키의 정리는 아쉬운 면이 많습니다. 아즈마를 어떤 미래를 위한 대답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일단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 아즈마의 시도(물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는 됩니다만)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분석을 한 것 같지는 않고요.
가장 아쉬운 점은, 물론 1970년대의 '뉴 아카데미즘' 이후로 한 시대를 설정한 것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지만, 이전의 시대적 맥락으로부터 뚝 떼어낸 듯한 정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마루야마와 다케우치 요시미를 읽으면서 가라타니가 생각보다 이 두 사람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중요한 질문 여럿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사사키의 책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고찰이 전혀 없더군요. 뭐랄까, 사상사를 정리하면서 '현대 서양' -> '현대 일본'이라는 도식을 암묵적으로 정립시키고 있는데, '현대일본'이 '1970년대 이전의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아쉬움으로 남는 정도가 아니라 저자 본인이 하나의 흔한 전형에 속하는 것이 아닐지하는 의혹마저 들게 합니다. (사사키와 아즈마가 상당히 친밀한 관계라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아즈마가 사사키와 큰 틀을 공유하고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드네요)
책에 개인적인 총평(?)이라면, 책도 많이 읽었고 중요한 질문도 많이 던졌는데, 정작 그 중요한 질문들에 답변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이제스트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은 듭니다만, 마루야마의 서명을 의식하고 써서 이런 결과라면 별로 변호해주고 싶지는 않네요(마침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사상』을 읽어서 사사키의 책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커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물론 내용을 보면 두 책의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지만요). 자신의 이론서를 준비 중이라고 후기에 나오던데, 거기에서는 이것보다 좀 더 지적으로 성실하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저 자신도 이런저런 이론과 사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그냥 책만 많이 읽어서 공부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의식하게 해 주었네요. '타산지석'이랄까요.
리플을 달고보니 좀 지나치게 박하게 쓴 것 같은데, 긍정적인 면모는 게슴츠레 님께서 이미 충분히 써주셨으니 좀 더 박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ㅎㅎㅎ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한번 더 볼 의향이 있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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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와 하스미 부분에 보면 그들은 어쨌건 '독자'라는 말이 나오지요.ㅎㅎ 저도 촌평을 씀ㄴ서 저자 이름을 자꾸 쓰게 되는 것이 뭘 읽을 때 지적 노력의 흔적을 찾는 어찌보면 올드한 독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ㅎㅎ 그런데 비그레이님은 더 철저하신 거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도 마루야마의 책을 구해봐야겠군요. 적어도 사사키에 관해서는 비그레이님의 열정적이고 비판적인 독해에 못 미칠만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만 너무 많은 부담을 주지 않나 싶고 또 저자가 아즈마 본인은 내려왔다는 듯이 썼다는 등의 점은 동의키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한 리플을 조만간 달도록 하겠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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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독 후에 책을 집에 가져다놓고(곧 기숙사를 나와야 하는지라) 직접 참고를 하지 못한 채로 기억에 의존해서 쓴 평이기에, 꼼꼼하지 못한 독해나 잘못된 인상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일본의 사상』에 대한 제 문제제기가 사사키가 집필에 임했을 태도에 비하면 조금 지나치게 엄격한 면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고백하건대 약간은 의식적으로 아즈마 히로키를 주축으로 한 동시대 일본의 젊은 사상가(후보)들을 겨냥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모쪼록 게슴츠레 님의 알찬 덧글 기다리겠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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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브스님의 글과, BeGray님의 덧글을 종합해 읽으니 이 책의 명암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군요. 두 분의 글, 잘 읽고 갑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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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온라인 상이지만 오랜만에 뵈어 반갑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이제 게슴츠레 님이 아니라 플레브스 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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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전에 호칭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편한대로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게슴츠레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ㅋㅋ.그리고 혹시 BeGray님께서 이 책들을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라타니 고진·하스미 시게히코·아사다 아키라·미우라 마사시·노구치 다케히코 지음, 송태욱 옮김, [근대 일본의 비평: 1868-1989]과 [현대 일본의 비평:1868-1989], 소명, 2002.
가라타니 고진의 대담집 중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기의 끝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아마도 유일한 대담집이 아닐까 합니다. 제목은 '일본의 비평'입니다만, 가라타니의 비평관을 생각해 보시면 비평의 대상을 단순히 문학비평으로 한정하지 않는 대담집이라는 것을 금방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책은 각각의 대담자들이 맡겨진 시대에 관하여 발제 한 발표문과 그 발제문을 토대로 그 이상의 내용을 집단으로 토론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본 근현대사에 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고, 하스미 시게히코와 미우라 마사시 같은 역량이 있음에도 한국어로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학자들의 발언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하스미는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번역되어 있긴 합니다만, 이 번역본은 1983년에 나온 판본을 번역한 것이어서, 하스미가 2003년에 새로 낸 개정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고, 또한 일본 고전 영화에 관심이 없다면, 특히나 오즈의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는다면 많이 난감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해서 선뜻 권하기가 쉽지 않네요(^-^;)). 책의 순서는 [근대 일본의 비평]이 1권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일본에서 [현대 일본의 비평]이 먼저 나온 후 그 다음에 [근대 일본의 비평]이 나왔으며, 책의 전체적인 관점도 [현대 일본의 비평]에서 도출된 관점을 전제로 [근대 일본의 비평]에서의 토론이 진행되기 때문에, 혹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나중에 참고를 하실 때 [현대 일본의 비평]을 먼저 읽는 것이 독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사키가 자신의 책에서 아사다 아키라와 가라타니 그리고 하스미를 모두 비중 있게 다루고 있고, 또한 이들이 함께 모여 일본근현대문학과 사상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역사를 토론하고 있기도 하니까 아마도 하스미를 포함한 여러 비평가들의 포지션을 가늠하는데 약간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덧붙이면 책 상태가 조금 좋지 않으니까 도서관에서 먼저 확인을 해 보시고 구입을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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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 님 //친절하게 덧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저는 그럼 익숙한 대로 게슴츠레 님이라 불러야겠군요ㅎㅎㅎ) 저는 항상 무연 님이 다른 데 남기신 흔적들(사실 두 책을 소개하신 글도 다른 데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ㅎㅎ-제가 읽었던 내용과 비교하면 하스미 시게히코에 대한 추가설명이 붙어있군요)만 봐왔는데, 직접 제게 덧글을 달아주시니 갑자기 TV에 나오는 연예인들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듭니다-^^
두 책 모두 일전에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게는 역시 쇼와 이후(『현대일본의 비평』)가 좀 더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나네요. 그때는 지금보다 일본 근대의 맥락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언제고 여유가 나는 대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요즘 고진의 『역사와 반복』세미나를 하면서 마루야마를 틈틈히 읽고 있는데 추천해주신 책과 서로 연결되는 내용들이 많아 생각할 거리를 이것저것 주더군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때는 번역은 둘째치고 아예 책 자체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이긴 했는데, 지금은 그냥 제책만 나쁘지 않게 되어있다면 사둘까 하고(이쪽의 비평가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소개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고민하던 차입니다... 일본에 대한 관심 자체가 서브컬처쪽을 제외하면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인데, 특히 현대사상 쪽은 무엇이든 보이는 대로 흥미가 갑니다-혹시 두 책과 함께 읽어볼만한 다른 책을 말씀해주신다면 꼭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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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레이님께 재리플을 달아보겠습니다. 다만 이 리플이 얼마나 비그레이님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미지수인데 이에 관해서 역시 재리플 이후에 잠깐 말해보겠습니다.1.먼저 비그레이님은 현대일본사상사를 다룬다고 하면서 사사키가 가라타니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으시는 부분을 비판하셨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무연님도 좀 비슷한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할 거 같은데 첫번째는 슬쩍 넘어가버리는 건 사사키가 아니라 제 요약이 그러한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비록 트랜스크리틱을 대저라고 하면서도 그 내용은 간소하게 다루는 부분이라든지 하는 것은 얼마든지 불만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사사키는 우선 가라타니가 이전에도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뉴아카 때도 비판적 거리를 어느정도 일관적으로 유지코자 했다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지요. 예의 불만거리 역시 사사키가 후기에서도 논변의 부족함을 말하고 현대일본사상 관련 저술을 추가적으로 집필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으니 비그레이님도 느끼셨겠지만 너무 뭐라할 부분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두번째는 제 짐작이긴 한데 비그레이님의 의심을 살 정도 가라타니가 간소하게 다루어진 것은 아무래도 가라타니가 당대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은 아사다나 아즈마의 그것보다는 덜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즉, 사사키의 의도적인 축소라기보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그랬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가라타니나 하스미에 분명히 지면을 할당하는 것을 잊지 않지만 '현대일본사상'이라고 묶어낼 흐름을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그 콘스탄티브한 '내용'이 중요하든 말든 깊이있든 말든간에) 아사다로부터 아즈마로 이어지는 흐름이라고 가정하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 이유를 이쯤에서 부연해보자면 제가 요약에서 비그레이님이 보시기에 모자란 것 같은 사사키의 가라타니 서술 부분마저도 거의 요약하지 않은 것은 이런 관점에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하기 때문입니다. NAM의 실패 역시도 사사키가 소홀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그냥 그랬던 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2. 이런 맥락에서 아즈마만을 강조했다는 것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저는 저자가 아즈마의 고유성을 강조하다보니 그리 보였을 뿐이지 아즈마를 일본현대사상의 최종진화형으로까지 놓는다고 보기에는 좀더 공부와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싶습니다. 저자는 다른 저자들의 작업에 대한 좋은 이해도를 보여주고, 또 그들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용한 '공공성'에 관한 코멘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즈마와 2000년대 사상가들에 대한 예리한 경계의 시선도 아주 늦추진 않고 있죠. 그렇다고 그 부정이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만 그렇다면 긍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2000년 사상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제가 너무 호의적인 것일까요...
3. 그리고 '시소'라는 비유가 일본사상계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었는지는 저보다는 비그레이님이 잘 아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ㅎㅎ. 그래서 더 붙일 말이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어거지로 이야기를 이어가보면 저는 비그레이님의 코멘트가 '사상은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사상은 현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식의 반지성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 경향에 대한 불만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비그레이님의 리플을 읽고 들었던 전체적인 인상, 그리고 재리플 처음에 말했던 내가 무언갈 써도 비그레이님께서 납득하실지 모르겠다는 일종의 불안이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담론 내지 사상과 현실 내지 세계. 이 두 항을 볼 때 우리는 쉽게 어떤 상호적 관계를 생각한다만 저는 실제로 그랬었던 건지 의문이 듭니다. 사실 어쩌면 사상은 그저의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신처럼 상주지도 벌하지도 않는 그런 고립적 존재자로서 있어왔던 것이 아닐까요?? 이런 질문은 분명히 너무 거친 것입니다만 사상에 뜻을 둔 이라면 곧바로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사상을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 한 번 물어봐야되는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사키의 저서는 현대일본사상이 세계를 '변혁'하기보다는 어떤 자폐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또 하나의 '언어게임'에 불과하지 않았나라는 반성을 기본적으로 제공해 줍니다. 아니,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현대일본사상이라는 게 세계의 특정 부분과만 특권적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국가도 사회운동도 아닌 시장이었죠. (물론 이 시장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소비자로서긴 하지만 어쩄든 '대중'과 접촉하는 통로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현대사상이 그 기능면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종류의 아주 '독특한' 상품은 아직은 아니었다 싶기에 이 측면은 논의를 좀 미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여기서 우리는 비그레이님이 또 추가적으로 제기한 노점, 1980년대를 그 이전 사상과 떼어낸 데에 한번 재밌는 짐작을 해볼수도 있을 것 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몰역사성 내지는 탈맥락성 자체가 현대일본사상의 주류의 핵심 중 하나이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상을 그 이전 사상과 보면 후대 사상가의 내적 동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꼭 그런 것을 모두 아는 독자만이 읽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독자가 많은 이상 그 시대 내 사상의 존재(소비) 양태를 그려내는 데 그런 탈맥락적인 글쓰기는 오히려 보다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물며 해당 저자들이 유럽현대사상가들의 번역저술보다 선배 사상가들에 관심이 없다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가라타니는 예외이겠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이 책은 가라타니를 의도적이든 불가피하게든 좀 크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군요. 그리고 아사다나 다른 논자들에 의해 이전 일본 사상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다뤄진 것은 물론 맞습니다만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적어도 이 책이 서술하고자 하는 부분, 일종의 현대일본사상 생태지도 그리기에는 그런 걸 무시하는 쪽이 오히려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과연 가라타니를 제외한 해당 논자들이 동기나 내용의 측면에서 얼마나 이전의 저자들에게 촉발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군요.
저는 어쩌면 비그레이님들의 대놓고 또는 은연중에 제시하는 질문들에 대한 많은 답이 사사키가 사실 이미 책에서 어느 정도 답하고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때문에 네오풀 님의 제 포스트와 비그레이님의 리플을 '종합'했다는 리플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사사키의 경박해 보이고 어쩌면 도발적인 서술은 아마도 저희같은 인문학 걔열의 대학/대학원생 사상 독자층을 겨냥한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경우에는 그 사상이 진행된 현장과 떨어져 있는 데다가 주로 가라타니를 통해 이를 접했기에 왜곡이 좀더 더해지는 측면이 있고요. 이런 우리의 독자로서의 위치를 조금만 더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이 책의 메세지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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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엇, 제가 가라타니를 언급했던 것은 사사키가 자신의 책에서 가라타니의 사상을 소략하게 다룬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니었는데요(^-^;). 제가 말했던 것은 '뉴아카'를 시작으로 청년독자들에게 독서시장에서 어필한 사상가들이 리얼리티를 추출하는 각도는 달랐더라도 모두 리얼리티를 갖는 글을 쓴 것은 아니었는가, 그러기에 이들이 현실의 대상에서 리얼리티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두고 사사키처럼 이념과 현실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어요. 아시다시피 사사키는 리얼리티를 갖는 사상의 척도를 독서시장에서의 판매, 말을 바꾸면 독서시장에서의 대중과의 접점에서 구하고 있는데 저는 이 구도가 어느 정도 유효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면 게슴츠레님께서 사사키의 구도를 완전하게 인정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을 하기 위해 가라타니를, 더 정확하게는 가라티니의 사상을 예로 든 것이었구요. 가라타니를 예로 들면서, 게슴츠레님이 사사키의 설명을 정리하신 부분에서도 특히 이 부분, 그러니까 "나는 이를 '사상과 세계와의 관계설정'을 기준으로 80년대=초월적, 90년대=긴장을 띤 내재적, 2000년대=긴장을 잃어가는듯한 내재적 식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사키는 이런 2000년대 사상의 특색이 그저 안일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름의 극약처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사상이 '현실적'이기 위해서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현실 안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라는 부분을 예로 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명확하게 설명을 못했군요(-_-;).저는 사사키가 80년대부터 제로 년대까지의 사상을 논하는 데에 있어 독서시장에서의 반응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만큼, 사사키의 구도 안에서 '뉴아카'의 아사다로부터 시작해 '제로 아카 도장'의 아즈마까지 나간 후, 아사다와 아즈마의 재회(?)를 책의 끝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은 매우 일관성 있는 구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이거야 말로 이 책에서 언급한 '플레이어'들의 '시소게임'이라고 할 만한 구성이지 않겠습니까?). '뉴카아'라는, 다시 말해 독서시장의 폭발적인 반응과 분리할 수 없는 책을 쓴 아사다가 정작 대중들이 자신의 글을 읽을 것인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에 비해, 아즈마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 만큼, 이 책의 서술이 아사다와 아즈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했다고 생각합니다(이런 의미에서 사사키에게 가라타니는 그의 사상의 심오함의 유무와는 별개로 그리 중요한 설명 축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의 구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 또한 당연하게도 이 책을 매개로 하는 여러 이야기가 가능할 것인데, 덧글로 더 남기기에는 좀 장황해 질 것 같네요(^-^;).
BeGray: 앗, 제가 쓸데없는 추천을 했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위에 언급된 비평가들의 사상을 추적하여 정리한 책은 국내에 나와 있는 것이 없습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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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님 // 언제나 그렇지만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아래 따로 재댓글을 달겠습니다.무연 님// 괜한 추천이라니요...신경 써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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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무연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날랑말랑해서 "비슷"이라는 표현으로 땜질하려고 했는데 다시 자세히 듣고 보니 무리였다싶군요 ㅎㅎ왜곡에 사과드리고 이제는 조금 무연님 말씀에 덧붙여 보겠습니다. 물론 '현실' 리얼리티라는 개념은 매우 논쟁적인 것입니다. 비록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주제넘은 감이 있지만 저는 사상이란 이 리얼리티라는 개념을 의문시 복잡화 나아가 규정 내지 발명하는 데 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사사키가 가정하고 있는 사상의 '현실'로서의 '판매'란 평면적이고 독단적이라 할만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조금 자세히 보면 사사키가 '판매'를 사상의 현실의 기준으로 세우는 데 일말의 망설임을 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하진 않다만 서문 말미쯤에 사사키는 "많이 팔리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상이 팔려가는 상황에서 이는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식의 말을 던지죠. 여기서 그 망설임에 동정표를 굳이 던질 필요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란, 다른 말로 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일반적인 교통 양식으로서의 '판매'란 그 가능한 복수의 현실 규정들 중에서도 특권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무연님 말씀을 듣고 나서 초월/내재1/내재2 식의 구도가 현실 개념이 논쟁적임을 고려하지 않은 나이브한 도식일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가능한 현실 개념, 다른 일본 사상들이 제시한 현실 개념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사사키 식의 관점이 가지는 장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금와서 조금 해보게 되더군요 ㅎㅎ 이런 경향은 제가 예의 발제문에도 썼듯이 H모 선생님에게 배운 것, 그리고 근동이물 세미나에서 근대의 초극 논의를 보면서 느낀 사상의 화려함-무력함, 그 외에도 여러 계기를 통해 느낀 사상의 자리가 꼭 대놓고 '사상'이라고 말하는 것들만이 아닐 수 있다는 그런 생각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사사키와는 다른 구도에서 좀더 세심하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본다고 해도, 저는 사사키, 아니 저자의 고유명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이런 상품메커니즘같은 현 세계(아마도 전부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주요하고 일반적인 대중들의 교통양식으로 설명하려는 관점(걍 '현실주의'라고 써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 자체가 논쟁적임을 인정한 상태에서 악순환이 될 거 같군요. '민속지적' 관점이라 하면 어느 정도는 적절할까요?)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이거야 무연님이 동의하지 않으실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씀하신 다른 구도에서 현대일본사상을 조명하기 위한 시도가 본서의 구도를 '거부'하긴 하되 '절반' 정도 거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사실 그렇다고 저 역시 이 '절반'만의 거부가 그저그런 종합적 논의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요...지금 이 부분은 사상키드 잉문학도로서의 저 자신과 앞서 잠깐 말한 것들로부터 배운 처절한 객관화를 부정할 수 없는 저 자신, 좀더 일반적인 말로 하자면 '세계에 대한 사상'과 '세계 속의 사상'이라는 모순적인 관점을 어떻게 (조화가 아닌 방식으로) 관계맺는가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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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님의 답플에 다시 답변을 합니다. 먼저 다시 한 번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ㅎㅎㅎ일단 항목별로 간단히 답변하자면,
1. 당장 책이 없긴 하지만, 가라타니나 하스미 같은 사람들의 비중에 대한 불만은 게슴츠레 님의 글을 읽기 전 책을 먼저 읽을 때부터 들던 느낌입니다. 적어도 이 문제로는 게슴츠레 님의 글에 불만을 갖진 않았습니다ㅎ / 가라타니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은 제 생각에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상가를 볼 때 국내의 시각과 국외의 시각이 다른 경우는 흔하고(예컨대 저는 90년대의 사람으로 소개된 후쿠다 등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사사키가 인용한 후쿠다의 가라타니 비판도, 물론 원문의 맥락을 봐야겠지만, 인용문만 보면 전혀 동감이 가지 않고요), 한국처럼 열정있는 번역자 한두명(조영일 씨 같은)의 존재에 크게 영향받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겠죠. 다만 저는 사상사를, 적어도 겨우 2,30년 안쪽의 사상사를 사사키와 같은 기준에 입각해서 그리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건데, 다음 항목에서 좀 더 얘기하겠습니다.
2. 물론 사사키가 아즈마에게도 어느 정도 주의하는 코멘트를 남겨놓긴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솔직히 말해 그냥 의례적인 수사 이상으로 진지하게 코멘트하는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당장 옆에 책이 없어 확인해보기가 어렵군요...제가 쓰는 리플은 모두 불확실한 기억에 의지해서 쓰는 것임을 감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게슴츠레 님도 잘 아시겠지만, 사사키 정도로 책을 읽은 사람이 누군가를 코멘트할 때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처럼 쓰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죠. 지인에게 사사키와 아즈마의 친밀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사람에게 배분을 고루 나눠주기는 합니다만, 그러한 '균형잡기'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급속히 퇴색한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제가 사사키의 책을 아사다로 시작해서 아즈마를 도달점으로 하는(물론 이것이 아즈마를 최종완성형으로 놓는 것은 아닙니다-굳이 비유하자면 '이미 이룰 건 다 이룬 왕'이 아니라 '미래를 짊어진 왕자님' 같은 느낌이죠) 서사로 느끼는 까닭은 처음 이 책이 선언하는 평가기준부터가 책 후반부 아즈마의 기치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점에서 보면 사사키의 '시소' 비유는 조금 악질적인 면도 있습니다. '판매량'과 같이 객관적인 기준을 걸어놓지만, 내실을 보면 처음부터 미리 생각해놓은 답이 있고 아즈마가 무난히 그 답에 가깝게 들어오는 구도니까요(70~90년대에 비해 유독 2000년대의 서술이 여러모로 튑니다).
3. '시소' 비유 자체보다는, 사상이 현실에 제대로 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가라타니("철학은 형식"이란 말을 하죠)에게든 마루야마에게든 이미 지적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만, 그런 사실 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아마도 게슴츠레 님도 본문과 리플에서 볼 때 이 지점에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저와 게슴츠레 님이 서 있는 지평은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다만 가라타니와 마루야마는 왜 사상이 현실에서 헛돌 수밖에 없는지를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했고 거기에 나름대로의 답변을 제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NAM과 『트랜스크리틱』은 성공했든 실패했든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겠죠. 저는 사사키가 '시소' 비유를 드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그 지점에서 문제의 조건을 진지하게 파고드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건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 그저 사상사를 정리만 할 뿐"이라고 도망가기엔 이미 본인의 의견이 굉장히 많이 투영된 책이고요(이것 자체는 문제삼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 책의 구도 자체가 단순히 얼마 팔렸나,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책이잖습니까? 저는 바로 그 해석이 불성실한 지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지요.
4. 3번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사실 이 책은 '시장'이라는 '객관성'을 맨 앞에 들이밀지만 사실 저자의 해석과 평가가 없으면 설 수가 없는 책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의 평가'라는 기준조차도 저자가 만든 거지요. 이 기준 자체에 대한 찬반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것이 저자에 의해 선별되고 만들어진 기준임은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사상의 생태지도'라고 하지만, 사사키가 속해있을 '포스트모던'적 문제의식을 들이밀어보면 이 지도는 객관성을 담보로한다기보다는 저자의 의도에 맞춰 사상사를 편성하고 독자들에게 그것을 제시하는 거지요. 물론 모든 지도가 다소나마 안 그런 게 어딨겠습니까만, 저는 애초에 '시장에서의 실적'이라는 기준부터 볼 때도 여기에서 사사키의 흔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는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970년 이전의 맥락을 없는 것처럼 해버리는 걸 걸고 넘어지는 거고요. 정말로 사사키가 현대일본사상의 주류가 몰역사성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걸 직접 언급했을 겁니다. 굳이 자기 자신의 텍스트로 보여줄 필요는 없지요. 사상은 시소놀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든 독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주고 싶은 사람이 그런 걸 알면서 이야기하지 않았을리가 없습니다. 그냥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겠죠(가라타니가 이토 진사이를 내세우면서 마루야마와 어떻게든 대립각을 형성하려고 노력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솔직히 말해 사사키는 별로 좋은 학자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게슴츠레 님께서 보셨듯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어 사사키의 텍스트를 하나의 '증후'로 본다면, 저는 그러한 증후가 가리키는 지점-, 즉 일본인들 자체의 몰역사성이 아니라 일본의 젊은 사상가들의 몰역사성(둘은 다릅니다)을 짚고 비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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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레이님 잘 읽었습니다. 역시나 제 부연이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군요...짧게 요약하자면 저와 비그레이님의 차이는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그레이님은 사사사키에 있어 몰역사성, 허무주의, 탈지성주의같은 이론적 무책임함 내지 자살행위가 시장, 시소, 플레이어 등의 용어들이 사상에게 제공해주는 반성의 기회가 분리불가능하며, 나아가 이런 점을 미루어 보고 또 그런 사상의 무력함에 대한 반성이 다른 '성실한' 방식으로 행해진 적이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사사키의 강점은 어설프게 씌워진 의장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반면 저는 비그레이님이 말씀하신 사사키의 앞서의 단점들이 꼭 그의 서술이 제공해 주는 사상의 객관화(보편적인 것으로서의 객관화라기보다는 사상이 가장 원하지 않지만 그 자신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에 위치하기로서의 객관화)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사사키의 강점은 강점대로 섭취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섭취에 배울 점이 이래저래 많다고 느끼고 사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껏 적은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글주변이 모자라고 또 소심한지라 비그레이님을 설득해낼만한 자신을 가진 글을 쓰긴 어렵군요... 근본적으로 글 몇 편으로 해결될 종류의 차이가 아닌 것 같구요..조금 더 말하자면 저는 사사키를 오히려 자신의 관점이 가진 강점을 고수하면서도 그 맹점에 대해 정당화하거나 그 영역을 설명하려 하지 않은데 아쉬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사사키에 곧바로 안티테제를 세우기보다는 절반정도 반대하기, 강점을 섭취하며 맹점을 고려하는 그런 작업이 중요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고민도 걸려있구나 싶은 것이고요.
여튼 괜찮으시다면 서로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한 것 같으니 이쯤에서 논의를 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조용히 제 자신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 아닌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야 겠군요...마지막으로 그야말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곳에 놀러와 주셔서 한껏 떠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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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님//리플달아주신 것을 놓고 생각해보건대, 같은 대상을 놓고 저와 게슴츠레님의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은, 물론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사사키 혹은 그의 서술에서 모호한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말씀하신 '절반의 강점'으로부터 저는 사사키의 약점을 떠올리는 것이고, 게슴츠레 님께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강점으로 읽으신 것 같군요. 사실 이런 종류의 책 한 권 갖고 이야기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사상서'를 접할 기회가 왔을 때 그 '절반'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확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게슴츠레 님의 코멘트에 비춰지는 저의 모습이 제 본의와 조금 다른 지점들이 있긴 한데, 매우 섬세하게 말해져야 할 부분인 것 같아서 당장 해명(?)하지는 않겠습니다-ㅎㅎ 기본적으로 '강점은 강점대로 배우고 약점은 약점대로 배우고'라는 태도 자체는 저도 늘 견지하고 있다는 것만 말해 둘게요.
방금 집에 왔으니 (물론 이런저런 읽을 게 너무 많지만 OTL)여력되는 대로 사사키의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고요한 연못에서 홀로 흙탕질하는 미꾸라지가 된 것 같아 게슴츠레 님께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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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장과 게슴츠레 님의 입장의 차이는 사사키의 텍스트를 보는 방법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멋대로 생각해보면, 게슴츠레 님께서는 『현대일본의 사상』을 그 자체로 어떤 진실을 투영하고 있는 텍스트로 간주하시는 게 아닌가싶고, 저는 여기에서 한 명의 사상가(별로 지적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를 보고 있는 거죠. 딱히 게슴츠레님께서 보는 관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단지 거기에 대해 적극적인 평가를 할 필요성을 좀 더 강하게 느낄 뿐입니다. 즉 게슴츠레 님께서 답변해주신 바가 사사키의 원래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라면 저는 원래의 의도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 거랄까요.저는 사사키의 말투가 일견 경박하고 도발적이라는 것 자체에는 아무 흥미가 없습니다만, 단지 그런 말투로 그런 말투에 어울리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좀 물려있습니다. 사사키가 정리해놓은 걸 보면 내용요약도 잘 해놨고 맥락에 맞춰 이해하는 것도 잘 하는데,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제대로 종합해서 소화하는지에는 상당히 의문이 갑니다(물론 이는 나중에 나온다는 그의 다른 저서를 보아야만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요). 지식은 많은데 정작 자기 자신의 통찰력은 별로 없는 '이론 오타쿠'를 보는 느낌이랄까요-그런 점에서 앞서 이야기했지만 저에게는 확실히 타산지석이 됩니다. '시장의 선택'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상의 내용을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없기 때문에 채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판매부수를 놓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재밌는 면도 있겠습니다만, 결국에는 뉴 아카 붐이 왜 이슈였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로 한번 쓰고 판매 부수가 점차 줄어드는 중이더라고 두 번 쓰고 아즈마의 제로아카 도장에서 판매부수를 담보하는 사상을 만들려고 하더라 하고 세 번 쓰고 끝입니다. 통계와 숫자는 아예 진짜로 깊게 파고들 게 아니면 사실 글에 양념이나 좀 치는 수준으로 쓰기 쉬운데, 사사키의 책은 판매부수를 대단하게 활용할 듯 하면서 사실 통계를 또 제대로 쓰지도 않습니다. 잘라말하자면 그냥 후추 조금 뿌리듯 썼으면서 굉장한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한 것마냥 말하는 거죠. 글을 쉽고 잘 읽히게 쓰기 때문에 독자가 따라가기는 쉽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말과 실제가 맞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앞서 말했듯 '악질적'이기까지 한 거죠.
90년대 우파 사상가들이 나오면서 천황제 긍정 이야기가 나오는데, 딱 여기에서 사사키의 한계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상가들이 나와서 이런 저런 주장을 하더라, 이건 괜찮습니다. 근데 나중에 총정리하면서 '그냥 있는 현실을 긍정한 것' 이런 식으로 다른 쟁점이랑 묶어서 이야기해버리는 건 평가를 안 한다기보다는 못 하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 사사키는 천황제 문제에 제대로 맞부딪힐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죠(바꿔말하면, 고진이 그렇게 경계했던 "일본 내부의 시점"에 묶여있는 셈입니다). 천황제 문제에 대한 코멘트나, 시장의 선택에 대한 입장이나, 사사키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던' 안에 있는 인물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인물들이 걸리는 한계에 마찬가지로 묶여 있는 거죠(아즈마도 포스트모던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은데, 전 아직 그를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포스트모던'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 시점에 와서까지 그것의 한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건 분명 문제입니다.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적고 보니 제 기억이 틀려 사실관계에 안 맞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만;;; 기본적으로 비판은 비판이고 값어치는 값어치고,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많은 책 읽지 마!!!" -이런 입장은 아님을 노파심에 적어 둡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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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게슴츠레 님께서 말씀하신 바도 있고 해서 아까의 리플로 이야기를 마치려고 했습니다만, 방금 『현대일본사상』을 재독하면서 몇 가지 다시 생각하게 된 바가 있어(역시 저는 한번 읽고 제대로 정리를 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ㅋ) 짧게 보충합니다.일단 사사키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게 된 부분을 이야기해보면, '단순한 정리자'에 가까웠던 이전의 인상보다 사사키의 분석이 어느 정도의 성실함과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단순히 다독의 성과이든 나름의 분투에 의한 것이든 1980년 이후의 '일본사상사'에 대한 그의 견해를 가볍게 치우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역으로 상당히 다르게 된 지점도 있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저와 게슴츠레님은 사사키가 뉴아카데미즘 이후 일본의 사상을 '시소게임'으로 비유한 것에 나름의 통찰이 담겨있다는 점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일본사상』을 재독한 뒤의 소감은, 시소 비유의 그럴싸함에 비해 정작 사사키의 사상사 분석이 그 비유가 함축하는 바와 제대로 연결되어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1980년대와 90년대를 일종의 진자운동으로 해석하는 사사키의 논리는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듯합니다. 재독하면서 볼때 일본사상사의 80년대와 90년대는 대칭관계라기보다는 차라리 '포스트모던'의 한 유형이 자기구현하는 연속적인 과정으로 읽힙니다(물론 사사키도 이 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는 있지요). 다시 말해 '지양'이 아니기 때문에 시소 게임이라고 부르자고 한다면, 애초에 지양이 나올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 아닌지를 물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에 저와 게슴츠레님이 공통적으로 나름의 의의를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스럽습니다. 게슴츠레님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경우는 제가 한국에서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한 입장에서 느꼈던 문제의식이 있었고 그 상태에서 '시소게임'의 비유를 보자 저 자신의 문제의식을 비유에 투영하여 사사키의 논리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해버렸던 게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생각하게 된 것은, 저자의 아즈마 히로키='포스트모던 상대주의 긍정'에 대한 옹호는 감정적-심리적인 이해로부터 보다 잘 읽힐 수 있지 않은가 싶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저자 및 저자가 말하는 아즈마)이 판매부수와 같은 방식의 '리얼'에 집착하게 된 것은 '포스트모던의 귀결'을 하나의 고정된 조건으로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이들에게는 어떤 '토대'가 필요했기에, 결국에는 시장=판매부수='공리주의'(제 생각에 이 책 통틀어 딱 2,3번 나오는 '공리주의'는 매우 중요한 단어인 것 같습니다)라는 물질적 기준을 그 '토대'로 받아들여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점에서 볼 때 8장에서 '보드게임의 재설정'과 같은 화려한 수사로 아즈마를 '반복적으로' 치장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불안감-왜냐하면 시장=판매량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언했으면서도 본인들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을 덮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8장은 '사상사'를 표방한 책 치고는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아즈마의 행적을 화려하게 나열하면서도 정작 그 행적에 담긴 사상적 고투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고(사사키가 80년대, 90년대의 사상가들을 꽤나 정밀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즈마의 사상에 대한 사사키의 태도는 거의 침묵과 같은 수준입니다) 갑작스럽게 '이게 현실이니까'라고 외치면서 승리선언을 해버립니다-물론 그마저도 불안감과 불확실이 가득한 승리선언이지만요. 그 점에서 8장에서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의 귀결'이라는 지점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굉장히 다른 방향의 길을 간 사람들-예컨대 가라타니와 지젝과 같은-의 사상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것은 굉장한 의문입니다. 가라타니나 지젝의 '포스트모던 이후'를 향하는 노력을 "사람들이 별로 안 읽어"라고 해버릴 수야 있겠지만, 적어도 사상사를 표방한 글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사상의 내용을 완전히 생략할 수는 없습니다. 사사키 역시 글의 서두에서는 '사상의 개별적인 내용은 다루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 역으로 이 글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분인 80-90년대의 사상사에서 개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요. 어쨌든 이 책의 7장과 8장(그리고 사실상 그것의 보론인 서론)은 『현대일본사상』에서 가장 불안하고 바로 그렇기에 디테일까지 따져가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까닭은, 사실 사사키가 이야기하는 아즈마의 입장-특히 사상의 존재축소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저도 굉장히 유사한 위치에서 비슷한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즈마와 사사키가 '사상이 팔리지 않는 불황'으로부터 '사상의 말라붙음'을 걱정한다면, 저 또한 문학도로서 '문학이 읽히지 않는 현황'으로부터 '문학연구의 말라붙음'을 매우 강하게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제가 다케우치-마루야마-가라타니로부터 '사상의 조건에 대한 성찰'을 공통적으로 읽어내는 까닭 또한 바로 저 자신이 '한국의 영문학도'로서 존재 자체에 불안감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7,8장을 아즈마와 사사키의 성공이라기보단 불안감, 조급함과 같은 것으로 읽어내게 되는 것도 상당부분 이들에게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되, 단지 그들과 다른 방향에서 답을 찾고자 할 따름인 거지요. 게슴츠레 님께서 사사키의 텍스트가 이미 저의 힐난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맞으면서도 또한 맞지 않는 것이, 답변은 제출되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의 제출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골치아프실 것 같은데, 결국에 또 긴 코멘트로 심란하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네요^^;; 그저 소통에 목마른 사람의 행적이겠거니, 하고 관대히 넘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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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 비유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부분 중 특히 "애초에 지양이 나올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지 않느냐는 질문에 동의합니다ㅎㅎ 근데 제가 사사키를 읽고 생각해 보는 점은 이런 과정이 '포스트모던 사상'라는 놈들만이 아니라 현대일본'사상' 일반에 정도와 형태는 다를지언정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애당초 옳고 그름의 준거를 자신 내에 가지고 있기에 패배를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패배를 모르는 자아'를 비판하는 '패배를 모르는 사상'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비그레이님이 포스트모던 사상에 품고 있는 불신을 좀더 확장하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그리고 사사키가 아즈마의 사상적 고투를 다루지 않고 시장에서의 판매라는 그 스스로도 불안해하는 기준으로만 재단하며 사상사이길 포기한다고 보셨는데 동의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사키에 있어서 아즈마의 시장에 대한 종속 내지 감각은 다름아닌 그 "사상적 고투"의 결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저자가 『존재론적, 우편적』같은 순수하게 '사상적'으로 보이는 저작과 오늘날의 '뉴아카'의 아즈마 사이에 사상적 연속성을 끌어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고 설득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비그레이님은 왜 이 부분을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사상을 평가하는데 있어 물질적 기준을 토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는 이 과도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사사키의 사상사의 합리적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희의 리플 교환이 크게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이 부분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걸린 것 같기도 하군요...
그 외에도 사사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뒤집어 씌우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사사키가 아즈마 사단을 보면서 '승리선언'을 올리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먼젓번 말씀했듯이 평가를 적극적이든(공공성 논의가 립서비스가 아니냐는 비판) 소극적이든(침묵하기) 유보하고 있다고 보이구요.
그리고 가라타니와 지젝이 많이 읽히지 않는다고 사사키가 말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가라타니가 아사다나 아즈마에 비해서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서 그런 거 같은데 그건 제 말이고 또 사사키가 설령 그랬다 한들 이 책 한권만으로 사사키가 그들에 대한 평가는 무가치하다고 보았다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가신 것 아닐까요.
사사키의 답변이 충분치 않은 것 같다는 마지막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런 실망에 앞서 이미 던져진 답변을 좀더 주의깊게 봐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래야만 그 실망 역시 보다 정교해져 다음 행보로 나아가시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말을 줄일자고 먼저 제안해 놓고서 이렇게 또 꼬릿말을 달아서 죄송합니다만 이런 말씀들이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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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아즈마의 포스트모던 포지션은 의도적인 것이기도 한데요. 다음의 포스트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aniooo.atbhost.net/archives/41 아즈마를 편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가라타니같은 포스트모던 비판자들을 고려하면서 아즈마가 스스로의 포지션을 변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밌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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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별도의 블로그를 사용하지 않다보니(유일하게 블로그처럼 쓰는 건 싸이의 미니홈피 정도?ㅎㅎ) 새로이 리플을 달아주신 줄 지금에야 알았습니다..."애당초 옳고 그름의 준거를 자신 내에 가지고 있기에 패배를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 이 말을 바꿔서 해보면 '사상의 외부'가 될테고, 직접적으로 말해지지 않는 것을 덧붙여보면 '현실'이 되겠죠. 사상이 도대체 어떻게 현실을 바꿀 것인가, 와 같은 문제의식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저의 입장은 앞서 말했기 때문에(가라타니나 마루야마에게서 훨씬 더 진지한 성찰을 볼 수 있다고)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두 번째 문단부터는 제 리플이 본 의도와는 좀 다르게 읽힌 부분이 있는 것 같군요. 난삽하게 쓰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요^^;;
1. 제가 사사키가 아즈마의 '사상'을 별로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특히 8장에서)는 『존재론적, 우편적』『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후, 다시 말해 "아즈마의 시장에 대한 종속 내지 감각은 다름아닌 그 "사상적 고투"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때 그 결과물로서의 사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장과 8장을 나눈 뒤 후자를 중점적으로 예를 든 것이고요. 물론 몇몇 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나 어떤 경향성('공리주의'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에 대한 코멘트는 있지만 제대로 된 사상에 대한 평가는 없지요. 쉽게 말해 아즈마가 '일본의 사상'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로부터 현재까지의 행보가 나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아즈마가 생각하고 있는 '답변'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형이라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면 됩니다만, 사사키의 글은 아즈마의 행적을 포장하면서 정작 알맹이가 되어야 하는 '사상'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저는 '물질적 기준'이 참조될 수 있다는 것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만, 오로지 그것만으로 사상이 이야기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가 뉴-아카와의 결별 이후 다시 포스트모던을 붙잡는 사상가로서의 아즈마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특히 8장의 경우는 바로 그 사상에 대한 논의가 빈약합니다. 사상가의 행적을 논하는 것과 사상을 논하는 것은 다르고, 전 전자에 비해 후자의 밸런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제가 문제삼았던 부분은 게슴츠레 님께서 답변하신 부분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2. 사사키의 아즈마에 대한 입장에 대해선, "거리를 두고 있지 않나"와 "사실상의 옹호와 다를게 뭐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일단은 입장 차가 있음을 확인해두고 넘어가지요. 원문을 일일이 따져볼 수도 없는 일이고^^;
가라타니와 지젝에 대해 말씀해주신 부분은 제가 한 적이 없는 이야기가 있아서 좀 당황스럽네요. 제 얘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80-90년대의 뉴-아카 혹은 포스트모던의 한 사이클이 끝난 뒤 그것이 남겨놓은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흐름들이 여럿있고 아즈마의 입장도(비록 포스트모던을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지만-소개해주신 포스트는 저도 예전에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현재 제 아즈마 히로키觀에 중요한 참조점이구요-) 그 하나라고 할 때, 왜 다른 유력한 입장들(제가 가라타니 및 지젝으로 부른 것을 포함한)과의 대비를 하지 않는가, 혹은 왜 그것들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는 것인가가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어떻게보면 비슷한 문제에 대한 답변의 시도라는 점에서 충분히 비교될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분량의 문제인지 아니면 무가치하다고 보았기 때문인지(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유가 어쨌든 쉽게 납득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던져진 답변"이라고 말씀하신 것들이 적어도 지금까지 리플로 적어주신 것에 한하자면 제게는(리플들을 통해서 명백히 드러났겠지만^^;) 질문/비판에 걸맞는 충분한 답변은 아닌 것 같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