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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30
    청춘불패 38회 시청후기: 예능비평, 아이돌과 네이션, 그리고 팬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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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38회 시청후기: 예능비평, 아이돌과 네이션, 그리고 팬질


현재 KBS에서 매주 금요일 밤마다 방영되고 있는 [청춘불패]는 걸그룹 아이돌들의 농촌체험을 컨셉으로 하고 있는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최근 멤버 교체 후 한층 시들해진 것 같지만 이 프로그램은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고 매주 네이트/싸이월드의 톡톡 낚시 떡밥에 언급되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버라이어티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에 대해서는 가요계의 걸그룹 열풍이나 예전과는 달리 방송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2000년도 후반 아이돌의 예능력 등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좀더 '비판적'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싶은 사람들은 시청자들의 현실적 고충을 달래주는/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만으로 보거나 사람들로부터 이윤을 끌어내기 위해 정교하게 개발된 행복-상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나름 논거를 가지고 있는 주장들이지만 정작 시청자와 팬들이 왜 이 프로그램을 보는지, 그들이 거기에서 경험하는 정서들은 무엇인지 다루지 못한다. 예능감이 좋다는 것은 사람들이 무얼 보고 싶어하는지 안다는 말이다. 현실적 고충을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건성으로 서로 나누는 위로의 말들보다 더 시청자의 가슴에 다가오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청자는 수동적으로 브라운관의 행복을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어떤 바람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그것에 울고 웃는다. 좀더 차가운 개념어들로 말해보자면 예능과 시청자는 외재적이 아닌 내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뤄지는 예능비평은 그것이 얼마나 '비판적'이든 간에 스스로가 시청자 혹은 대중이 아님을, 그/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낼 뿐이다.

(때문에 이들 비판적 평론의 결론은 우습게도 계몽적 버라이어티나 올바른 시민상(결국 건전하다고 생각되는 비평가 자신의 이상적 자아상)를 요구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꼭 청춘불패에 대한 비평이 불가능하다거나 팬이 될 필요는 없다. 내가 비판하고 싶은 것은 소위 '비판적' 비평들이 이런 내재적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닥 현실적이지 못하고 '비판적'이지 못한 규범적 주장들 혹은 잔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청춘불패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예로 우리는 프리스티의 포스트 한 편[링크]을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리스티는 청춘불패를 [패밀리가 떴다]시즌1과 비교한다. [패떴]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가를 위해 비운 집을 지킨다는 컨셉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컨셉에서 동네 주민은 인트로와 아웃트로에만 짧게 등장하며 서로 정감을 형성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전국의 농촌을 돌아다닌다는 패떴의 성격상 이런 시민과 연예인의 거리는 심화된다. 
  이와 달리 청춘불패에서 여자 아이돌들은 농촌에 가서 일을 하며 평생 방송국에 들릴 일은 없을 것 같은 중년 노년 층의 시민들과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에 나왔던 시민들이 다시 나오며 아이돌과 친숙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왕구 아저씨나 로드리가 G7 멤버들의 이름을 조카 이름 부르듯이 부르는 장면들에서 우리는 연예인들도 일반 시민들과 일상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알고 지낼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하지만 미심쩍었던 사실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농민'과 '도시인', '40대 후반 이상'과 '10대~40대 초반'이라는 차이가 청춘불패 속의 시민들과 팬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차이는 연예인과 일반인이라는 차이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때문에 우리는 청춘불패에서 연예인과 일반인이 정감을 공유하는 순간 유치리 주민들과의 지역적 세대 차이에도 불과하고 그들과의 동일시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포스트는 2월에 작성된 것이고, 최근 청춘불패는 조금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멤버 교체 이후 이런 경향은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저번주와 저저번주의 청춘불패 일본특집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줬던 방송이었다. 일차적으로는 일본의 선진적인 농업상품을 학습해 유치리, 더 정확히는 아이돌촌에 들여오자는 일종의 '연수'를 목적으로  기획된 특집이었다. 뭐 이 연수를 해서 유치리를 아이돌들이 경제적으로 발전시키자 이런 것은 아닐 것이고, 청춘불패의 방송 수명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돌촌의 컨텐츠를 풍부하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 이번 특집의 주요한 목표이자 성격일 것이다.

'연수'가 끝난 뒤, 일본특집 2편의 마지막에는 멤버들을 대접해준 일본 분들에게 답례를 하기 위한 G7의 소규모 공연이 이어졌다. 헌데 이 공연이 이래저래 흥미로운 점들이 있었다. 우선 정확히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 공연에 온 것은 해당 마을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카메라가 잡아 주었듯이 미리 그날 등장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는 피켓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관객도 없지 않았다. 즉, 방송과 공연 소식을 듣고 타지에 사는 팬들이 청춘불패를 찾아온 것이다. 최근 소녀시대와 카라를 비롯한 한국 여자 아이돌의 일본 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실제로 아이돌들의 활동이 얼마나 반응을 얻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날 청춘불패의 방송 중 이 부분은 '아이돌과 주민', '아이돌과 농업' 보다는 '아이돌의 해외진출'에 초점을 맞춰 영상을 내보내었다. 마을 주민들의 반응을 잡는 와중에 아이돌을 직접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잡았으며, 또 구하라의 단독 무대 장면에서는 구하라 본인이 스스로 무대 컨셉을 준비해 왔다는 자막을 넣어 줌으로써 해외진출에 대한 아이돌의 '노력'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무대는 초대해주신 마을에 감사한다는 이야기에 더해 일본에서의 한국 여자 아이돌의 활동에 성원 부탁드린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 날의 청춘불패가 [메트로]같은 무가지에서도 볼 수 있는 아이돌의 일본 진출 기사와 다른 무언가를 전달해 주었다면, 그것은 일본진출이 기획사의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아이돌 본인들의 열의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팬들로 하여금, 적어도 나 개인으로 하여금 어떤 불안을 증폭시킨다.
  기본적으로 아이돌의 해외진출은 아이돌이 이제 나만의 아이돌이 아닐 수 있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한국인만의 아이돌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언뜻 내비치는 아이돌 자신의 해외 진출에 대한 바람은 이런 불안을 느끼는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팬들은 한편으로는 아이돌의 개인적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한류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런 아이돌이 벌어오는 외화라든지[한류와 자본주의, 민족주의의 관계에 대해서는 고구려 역사 드라마에 대한 무연님의 포스트 참조] 아이돌의 매력이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데에서 일종의 민족적인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팬들은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활동을 열성적으로 전개하는 아이돌에게 거리감, 보다 심각하게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써니가 일본어로 하는 주부애(주먹을 부르는 애교)에서 써니가 보고 있는 게 '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물론 한국어로 주부애를 할 때에도 그것이 나만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우리는 거기에 표현되는 말의 뉘앙스나 감정의 연출들을 들여다 보며 마치 나만을 위한 것인양 착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어 주부애에서 우리는 써니가 일부러 시선을 일본인들을 향해 돌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써니의 일본어 주부애는 능숙했다. 이는 그녀가 '일본 팬'들을 위해 모종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서 팬으로서의 기쁨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본 활동이 끝나고 언젠가 한국에 '돌아와 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성공'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그리고 성공을 할 거 같다.) 나아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처럼 '아시아의 아이돌'이 되어 버려 밖으로 나가버린다면?

(팬들은 한편으로는 아이돌의 성공을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실패와 한국으로의 복귀를 바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이 뭘 바라는지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다. 해외진출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서 보이는 이런 팬들의 욕망의 모호성 때문에 승승장구 소녀시대 편의 수영이라던가 얼마 전 무릎팍 도사의 강타처럼 연예인들은 '대체 뭘 어쩌라고'라고 반문하지만, 자신의 정서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자신의 연예인에 대한 모순된 요구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그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이런 욕망의 모호성은 단순히 미성숙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닌 누군가를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문제에 있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딜레마이다. 사랑은 자신의 것인 동시에 남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항상 모순적이다. 연예인은 이런 모순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기회 혹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직업이다.)

원더걸스의 미국진출에서, 결성 순간부터 한국이 아닌 아시아 최고의 걸그룹이 된다는 의미에서 그룹명을 지었다는 Miss A에게서 우리가 느끼는 쓸쓸함은 이런 종류의 것일 것이다. 아직 우리 일상의 정서적 조건, 상상력의 범위는 네이션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소녀시대 팬이라는 이유로 가끔 케이블 영상이나 콘서트 현장에서 일본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들을 공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역으로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해 일본의 팬, 중국의 팬, 동남아시아의 팬에게 거친 이질감과 요즘같은 해외진출 분위기에서는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청춘불패 일본특집 마무리 공연에서, 더 앞으로는 써니, 유리, 현아가 일본활동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는 프로그램 청춘불패를 떠난 데에서(우리는 그녀들이 다른 한국 예능을 하기 위해 청춘불패를 떠나는 장면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은 자각적이든 아니든 그녀들의 빈자리를 볼때마다 우리에게 상기된다) 볼 수 있는 것들은 오늘날 한국의 아이돌 팬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이다. 우리는 아시아인들과 소녀시대 팬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소녀시대와 우리의 소녀시대가 같다고 말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낀다(좀 오버하면 "한국말도 모르는 너희가 소시의 진가를 알 수 있을 리 없다능! 겉만 보고 좋아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능!" 식의). 여기에는 팬질에 따라다니는 기본적인 역설(나의 아이돌이냐 팬덤의 아이돌이냐 대중의 아이돌이냐)과 오늘날 한국인으로서 동아시아와의 관계를 상상하는 데 있어 따라다니는 역설(한국 그리고 아시아인가 아시아 그리고 한국인가)이 중첩되고 있다.

아이돌들의 계속적인 해외진출, 혹은 아시아에서의 활동이 이런 역설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는 미지수이다. 소녀시대는 결국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까? 돌아오는 것이 '옳은' 것일까? 돌아오는 것을 팬으로서 반겨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지금 당장 소녀시대의 일본 활동에 팬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써니가 당분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릴 일이 없다면 그녀가 시선을 돌린 쪽으로 가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좀더 팬이 아닌 사람들도 공유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자면 아시아에서의 이렇듯이 문화적 공감의 '불안'한 위상을 규정하는 역사적 조건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현재적 함의들은 무엇일까?





PS) [2010/07/31/13시] 청춘불패 시청 후기에 고맙게도 인톡시 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자극을 주신 김에 이어서 생각을 전개시켜 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중에 하나는 아이돌 소비문화에는 민족/국가(national)적인 차원이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해 보는 것보다는 많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초민족/국가적인 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의 차원의 설명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와 맞물려 역설적인 효과들을 산출해 낸다는 것이었나 보다.

우리 자신이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든 말든, 굳이 애국심을 열렬히 의식적으로 느끼지 않더라도 우리는 '나'를 '나'로 생각하지 I/Je/Ich/我/私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돌 산업은 '나'를 쳐다보고있다는 식의 특권적 관계의 판타지를 주요한 상품으로 판매하는 상품인데, 이 관계를 상상하는 데 있어 (현재 행해지든 과거에 행해졌든) 넓은 의미에서의 민족적인 것(설날의 한복의 입는다던가 그런 것보다는 훨씬 심층적인, 이를테면 '모국어'같은)의 매개는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민족/국가가 일상적 삶의 조건을 이루는(이런 언급을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국적이나 사회보장같은 제도적인 측면의 논의를 덧붙여야 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차지해 놓기로 한다) 사회구성체에서 '자아'를 상상한다는 것은 '네이션'을 상상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게 일단 내가 택해본 이론적 전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전 2PM의 박재범 사태를 한 번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 박재범에 대한 비난과 민족주의를 연관짓는 글들은 몇 개 있었기는 한데, 내 기억으로는 죄다 민족주의의 소위 '광기'를 비판하는 규범적인 차원의 글이었다. 이런 글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이돌 소비와 네이션이 그 출발에서부터 꽤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국산 아이돌들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되고, 이제는 내수용과 수출용 아이돌의 구분마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의식되진 않았지만) 네이션의 전제 하에서 성립되던 '아이돌과 나'의 특권적 관계는 모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인톡시 님의 댓글에 따르면 이런 모호한 관계는 최근에 시작되었다기보다는 최소한 동방신기를 전례로 가지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동방신기 팬들이 국내 활동을 몇 년간 지속하지 않는 동방신기에 대한 정서적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고 있는지 좀 궁금하다. 물론 인톡시 님은 풍부한 컨텐츠를 통한 서운함의 상쇄를 말씀하셨지만, 결국 상쇄에 성공하지 못하고 팬덤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한국 활동에 대한 기대감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다른 국가의 팬들과 자료 공유뿐만 아니라 어떤 식의 정서적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등의 쟁점이 좀 추가적으로 궁금하다. 돈이 많은 팬들이야 직접 바다 밖으로 따라가면 되니 이런 문제들을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좀 보다 '일반적인' 팬의 입장(정확히는 팬덤 밖의 팬으로서의 대중부터 팬덤 내에 해외까지 따라가 팬질을 하기에는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는 팬들까지)에서 이런 쟁점들을 고려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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