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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링크 : http://blog.aladin.co.kr/balmas/6020636

 

대강 절반쯤 읽었는데 쟁여놓고 읽고 싶고, 또 지인들과 공유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링크 주소를 옮겨 놓는다. 진태원 선생님(항상 조심스러운 호칭이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알고 계셨지만, 이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글을 쓰시리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가끔 말씀하시듯 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직장 덕(?)에 유일한 유럽 철학 전공자로서의 본인의 사회적 기원과 역할에 대한 성찰을 계속 하시고 계신 걸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흔한 답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건데 이를 인정하면서도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레벨에서 "포스트주의" 문제를 조명하는 부분을 보며 두고두고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 인용만 잠깐 옮겨 놓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인 몰락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관한 논의가 이미 1970년대부터 널리 전개되고 있었지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말 그대로 급격한 변화였고 한 시대의 종언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러한 답변은 설득력이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 마르크스주의의 종언, 냉전의 종식, 근대성의 종말, 국민국가의 몰락 등과 같이 각종 종말에 대한 담론은 새 천년의 시작을 눈앞에 두고 급속히 확산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답변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 답변은 ‘외부 현실의 변화’가 왜 꼭 그렇게 급격한 ‘내부의 사상적 변화’를 수반해야 했는가라는 반문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기 어렵다. 실제로 1992년에 창간되어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론]이라는 학술지, 세계사적인 변화에 대응하려는 마르크스주의적 시도를 대변하던 그 학술지의 존재는 단순히 외부 현실의 변화만으로는 급격한 사상과 담론의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포스트주의, 혹은 포스트-포스트주의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은 블로그에 기회가 닿는 대로 남겨 놓았지만, 여기에도 기록해 놓았었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622144446&section=04).

 

이제 새해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언제까지 이것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는데 싶은 것이 에라 모르겠다 싶다 ㅎㅎㅎㅎ 에휴 될대로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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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만들고 지젝과 한국의 잉문학도들이 자주 써먹는 '신적 폭력'이라는 개념 또는 말에 대하여

 

써보겠습니다. 사실 저 말은 잉문학도들이 자신들이 생각/착각하는 의미에서의 '정치'를 표현하기 위해 쓸 때에는 님이 말한대로 법적 정의로 포괄될 수 없는 (진짜) 정의의 척도로서의 폭력을 가리키는 말일 경우가 많습니다. 마오 쩌둥의 말처럼 조반유리, 반역하는 자에게는 이유/합리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 자체로 굉장히 낭만주의적 접근이죠. 이러한 추상적 개념으로는 레닌의 혁명적 폭력이나 네오나치의 반달리즘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점이 벤야민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것인지, 그리고 이렇게 러프한 개념이 그저 맨땅에서 나온 것인지 나름의 역사적 맥락에서의 이유를 가지고 도출된 것인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진태원 선생의 관련 논문 [폭력의 쉬볼렛 : 벤야민, 데리다, 발리바르](http://blog.aladin.co.kr/balmas/3425017)에서 몇 구절들 짧게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서술은 한형의 지적과 겹치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의 이론적 대담성은 무엇보다도 법 일반을 정의의 타자로 설정한다는 점에 있다. 사람들의 상식적인 정의감에 따를 경우 법은 정의의 타자가 아니라 정의의 수호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본질적인 수단 중 하나다. 적어도 법이 공정하게, 원칙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그렇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인 법을 제정하고 좀더 공정한 절차와 좀더 엄정한 집행을 통해 법의 원칙을 있는 그대로 실현하고 집행할 것인가 여부가 정의의 근본 문제 중 하나가 된다.

 

반면 벤야민에게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본질적인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장애물이다. 그것은 법이 본질적으로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따라 실행되는 폭력이며, 그로 인해 순수한 정의, 또는 순수한 폭력의 가능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의 "상식적인 정의감"은 진태원이 가정하듯이 <법=정의> 뿐만이 아니라 <법≠정의> 또는 <법<정의>의 형태를 띠기도 하며, 특히 사이버공간에서의 양태는 후자 쪽의 경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겠죠. 벤야민의 시대에는 어땠을런지 몰라도 우리 시대에서의 정의에 대한 감각은 법실증주의보다는 아나키즘에 훨씬 가깝지 않나는 짐작을 한 번 해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벤야민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늦게서야 깨달은 인문학도의 사례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 정세적 맥락을 고려하면 긍정하지 못할 말도 아니지 않을 말입니다. 그의 시대적 배경이 바이마르 공화국입니다. 저도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안 되지만 어쨌든 벤야민은 당시의 시대상에서 '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문제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선택지는 더 좋은 법을 만들던가 좋은 법이 좋게 행해질 수 있는 제도나 정치를 꾸려가던가 하는 길이 있겠죠. 하지만 벤야민은 그런 루트를 택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사고를 꼬아갑니다. 누구들처럼 이게 "위대한 사유의 감행"이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뭔 얘기를 하는지만 썰을 풀겠습니다. 

 

벤야민은 (아마도) 당시의 상식에 반해 법이 정의가 아닌 부정의의 편에 있으며, 이는 '법'이라는 '목적'에 '폭력'이라는 수단이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요. 폭력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 재정의입니다. 폭력이 문제적인 것은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라 '법에 종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살아가기 위한 유용한 원칙이 아닌 억압과 부정의의 도구 기만으로 가정되고 있습니다. 아나키즘적이지요. 근대 국가의 최소 구성원칙을 부정합니다. 막장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벤야민은 '목적없는 수단' '법에 종속되지 않은 폭력'을 개념화하려고 했지만 이것이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다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습니다. 그 역시 사적 폭력의 자의성과 문제점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고, 나아가 이런 폭력들이 자신들을 '새로운 법'으로서 주장할 위험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종류의 폭력을 신화적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에도 맞서는 종류의 '목적없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신적 폭력'이라고 부르죠. 

 

"벤야민은 그의 글 뒷부분에서 수단-목적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곧 어떤 지정된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 폭력의 가능한 사례들로서 신화적 폭력과 신성한 폭력을 검토한다. 하지만 신화적 폭력은 수단이 아닌 ‘발현’(Manifestation)이고 따라서 “비매개적 폭력”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따라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필연적이고 내밀하게 연루되어 있는 목적을 권력의 이름 아래 법으로 제정”(FL 162)한다는 점에서 법정립적 폭력의 하나임이 드러난다. 따라서 폭력의 비판의 과제는 이러한 직접적 폭력의 신화적 발현을 파괴할 수 있는 순수하고 직접적인 폭력, 곧 신성한 폭력에 대한 질문을 낳는다. 신화적 측면과 모든 측면에서 대립하는 신성한 폭력은 법파괴적이고 면죄해주는 폭력이며 피를 흘리지 않고 목숨을 앗아가는 폭력이다."

 

벤야민이 이런저런 함정들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그 함정을 성공적으로 피하고 '신적 폭력'이라는 정의의 새로운 기준을 개념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위의 인용문만 보면 신적 폭력은 그저 신화적 폭력의 부정형으로서 좋은 말은 모아놓은 그럴싸한 개념으로 보입니다. 벤야민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폭력 일반을 긍정하지 않는 신중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념화에 실패했다는 고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순수한 폭력이 어떤 특정한 경우에 실현됐는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가능하지도 절박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면죄하게 해주는 힘이 인간에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비교 불가능한 효과 속에서가 아니라면, 신의 폭력이 아니라 오직 신화적 폭력만이 그 자체로 확실히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후속 학자들의 궁금증이 시작됩니다. 진태원 씨는 이 부분을 묻기 시작한 학자로서 데리다를 인용합니다. 데리다는 벤야민의 폭력론의 이 결론부를 아포리아라고 합니다. 나갈 곳이 없다. 답이 없는 이야기라는 거죠.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은 구분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법을 지키기위한 권력의 법보존적 폭력과 법을 처단하고 새로운 법을 수립하는 정의로서의 법정초적 폭력도 구분될 수 없습니다. 진태원 씨가 설명한 데리다의 결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대강 이렇습니다.

 

어떤 종류의 폭력은 법 내부에서 제한적으로 해결될 수 밖에 없는(혹은 사람들한테 그렇게 느껴지는) 사회부조리를 송두리째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점에서 '해방의 약속'입니다. 제도적 조치들이 이 허황된 약속보다 결코 못한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해주지는 못하는/않는 종류의 것들이죠. 하지만 동시에 이 폭력은 자신을 '역사의 완성'으로, 즉 '목적end'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종류의 '합법적 폭력'으로 전락합니다, 또는 그 출발부터 그러합니다. 더이상 '목적없는 수단'이 아닌 것이지요. 데리다의 많은 논의가 그렇듯이 모든 약은 독이기도 합니다. 데리다는 때문에 우리는 이중의 투쟁에 직면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해방적 폭력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 폭력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독성에 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폭력'이라는 문제설정에 집착해야 할까요? 왜 '법'은 새로운 정의를 논하기 위한 문제설정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벤야민, 데리다, 진태원과 달리 개인적으로 품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을 긍정하고 부정하기보다는 일종의 분업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분업의 한 파트 '폭력'에 대한 파트가 제대로 고민되고 연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쪽의 논의들은 좀더 구체적인 사례분석에도 적용되어서 나름의 정치평론으로 쓰일 수 있는 꼴을 갖출 것이라는 믿음이 있긴 합니다. 

 

음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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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 불화 출간 뉴스

  http://blog.naver.com/virilio73/80141456938

 

1. "한국이라는 레퍼런스"를 언급한 진태원의 말에 동의한다. 이론이 다른 이론과 가지는 관계뿐만이 아니라, 이론이 그것이 언표되는 장소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론적 갱신이든 뭐든 이루어져도 그게 현실 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을 대하는 태도나 전략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2. 이재원의 랑시에르 독해는 인상적이다. 문제가 언어학적 공통이 아니라 그런 공통을 부정하는 '척'하는 제스쳐에 있으며, 따라서 해결책은 공론장의 설립만이 아닌 현행화라는 문제의식. 랑시에르는 말의 '삶'에 대해 정말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본 철학자같다. 이를 언론운동이나 기타 담론상황들에 적용해 좀더 재밌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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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의 이영훈 사태 독해와 독자의 상상이라는 쟁점

  한윤형의 이영훈에 대한 포스트(http://yhhan.tistory.com/m/post/view/id/1305)를 읽고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한다. 이 포스트의 내용을 4단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영훈은 일부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에 의해 구성된 것이기에 잘못된 게 없다고 '긍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영훈은 이 문제를 더 설득력있게 비판하는데 다만 차이는 1)신뢰성 높은 사료들에 근거하고 있다는 '실증성의 측면과 2)'민족'이 아닌 '인권'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데 있다

1-1. 한 가지 부연하자면 여성권이라는 쟁점이 있다. 이는 인권이라는 문제틀 중 일부로서만 귀결되지 않는다. 이영훈과 그의 독자로서 한윤형이 '위안부' 문제가 식민과 청산이라는 '민족' 문제틀로 환원될 수 없는 성차별 내지 가부장제의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부분에서 일본인과 조선(한국)인은 지배 대 피지배자가 아닌 (대칭적이지는 않지만) 공모자로서 묶인다.

2. 이러한 인권 및 여성권의 측면에서의 반박은 빈약한 실증과 상상적 증오에 기초한 민족주의적 접근보다 오히려 제대로 된 비판이 될 수 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에 대한 몰이해와 거부는 저널과 키보드워리어를 포괄한 우리 사회의 담론공간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계몽주의적인 논평이다. 하지만 이는 꼭 엘리트주의로 해석될 수는 없는데 1)지은이가 요구하는 역사학적 감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에게나 가능한 엄청난 수준이 아니라는 것과 2)섣부른 독자들을 나무라면서도 이러한 독자들의 현 위치에 대한 책임을 '저널'이라는 구조적 측면에 다루고 있다는 것이며 3)(아마도) 자신이 이러한 사태에 대한 '아는 이'의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목격한 이'로서 상황을 개선해보겠다는 책임감을 이 포스트를 씀 자체로 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가 (쟁점을 흐트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리고 한윤형이 겪고 있는 부당한 부담들에도 불구하고) 잉문학도로서 덧붙이고 싶은 테마는 '독자의 상상'이라는 것이다. 계몽주의적 관점에서 모호한 상상은 정확한 인식으로 인도되어야만 하는 일종의 질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부 인문학자들(대표적으로는 스피노자나 프로이트)은 이 도식에 일말의 망설임을 품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이 지긋지긋한 '상상'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유한한 인간들의 삶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상상들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교정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인류는 지금 멸망과 같은 절망적 상황에 이르지 않았으며 역사를 좀더 주의깊게 관찰한다면 이러한 상상이 몰이해와 증오같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닌 긍정적인 것으로 기능했던 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스피노자의 [신학-정치 논고]에서의 유대 민족 분석).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잘못된 상상을 올바른 인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 상상을 중립적인 것으로 재인식하고,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전화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아내어, 우리에게 이로울 수 있는 방향으로 상상을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다시 한윤형의 포스트로 돌아가보자. 한윤형은 이영훈이 '친일파'로 볼릴 만한 혐의가 있지만 이런 주장들은 논쟁의 여지 없이 부차적인 것으로 반박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영훈이 오히려 효과적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틀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 그 '효과'의 기준은 무엇일까? 일반적 역사학적 '상식'? 그렇게 걸고 넘어질 구석도 있다만 '상식인'이라는 말의 이데올로기성에 그 누구보다도 예리하고 생동감있는 지적을 해왔던 한윤형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지적은 악의적일 우려가 크다. 적어도 이 사안에 있어서 그가 잠정적으로나마 근거하고 있는 가치는 분명한 거 같은데 앞서 말한 인권과 가부장제 문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상상에 근거한 것이든 어쨌든 '민족'의 편에 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런 <서구적인> 접근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물론 아무리 오리엔탈리즘이 논술교재로 쓰일 만큼 대학재학/졸업자들의 일반적 교양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독자 모두가 인권의 서구중심주의적 성격을 숙지하고 독자에게 반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는 냄새를 맡고 '뭔가 아닌데...'싶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독자는 이영훈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한윤형의 변호도 그렇게 상상적으로 읽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은 아직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그리고 정직하자면 이게 실증이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근시일 내에는 그를 시도해볼 기회도 없을 것 같다. 이는 내 잘못만은 아니라 잉문학 방법 일반이 가지고 있는 단점 또는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사태가 이러하다면, 서로 다른 편('민족'과 서구적 보편성으로서의 '인권' 내지 '페미니즘') 사이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어떻게 공통의 문제(여기서의 사례는 일본 우익의 '위안부' 문제 부인)에의 대처는 또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렇다고 한윤형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시도했다가 잘 안 되니 문제를 남에게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가는 그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1)인권이나 페미니즘의 보편성이 비록 그 기원에서나 역사 에서나 심지어는 히잡사태같은 현재의 정치적 쟁점에서나 '서구중심주의'적인 성격과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보편성이 역으로는 그에 못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해 왔으며 이는 다문화주의가 강조되는 '지금' 유럽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령, 성별, 국적의 차이에 근거한 폭력을 당했을 때 '인권'은 (비록 공하기도 하지만) 이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객관적 수준의 정당성의 토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이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사실 이런 한윤형의 '오리엔탈리즘'(?)적 지향은 그의 저술에 어느 정도 일관된 것인데 그렇다고 이것이 그의 '외설적 중핵'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성향은 그의 글이 추구하는 '현실성'에 부차적으로 따라나오는 것에 불구하다. 따라서 한윤형을 이런 관점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이는 우선 '오리엔탈리즘'적인 세계를 비판하던가 그 세계를 더 나은 가치에 기초하게 만들 비전을 들고 나와봐야 할 것이다.}
2)한 사람에 한 생각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생각 중에는 온갖 가치들이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있다. '민족'과 '인권' 둘 다 중요하다고들 생각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윤형의 이영훈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때는 그 둘 중 하나에 호소하여 다른 경향을 누르거나 반성해 볼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학적 전제에 비추어 볼 때, 계몽주의적 글쓰기는 '한A하는 사람을 B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A와 B 사이 있는 사람을 한 쪽으로 가깝게 이끌기'로 다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한윤형의 입장의 정당성을 고려하더라도 우리의 질문이 멈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즉 상상이 우리의 의사소통의 미숙함만이 아닌 기본양식이기도 한다면 우리는 그 양식의 연약함과 난폭함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활용할 것인가? 그래서 누군가들은 우리가 주장의 올바름이 아닌 세계관 환상의 영역에서 다른 이데올로기와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런 질문들이 결코 말을 올바른 근거에 위치시키려는 계몽주의적 노력을 훼손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아닐 것이다. 상상력이 인식의 근본조건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지성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상상을 실재적인 것으로 가정하는 것 자체가 게으른 지성의 직무태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올바르고 그렇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답이 요구되는 순간, 이런 접근은 자신의 무책임함을 여설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런 접근이 어떤 판단을 도울 수 있으며 나아가 판단의 선택지 자체를 흔들어 놓는 담론적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갖춰져야 한다(나는 진태원같은 이데올로기론에 관한 이론적 작업은 이런 작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초 토양다지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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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더 돌이켜보기


1
"K군, 그러니 영미권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간곡히 권하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인문학, 특히 철학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진태원,「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K군에게」, [링크]

당연하게, 그리고 그 당연함이 관성적이라고 비판적으로 자각하면서도 대학원 진학을 당연하게 목표로 삼아왔더랬다. 그런데 요즘, 그리고 특히 이 글을 보고 나니 내가 말과 글, 넓은 의미에서의 '언어'를 통해서 하고픈 일이 꼭 4~10년의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을 요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싶기도 하다.


2
방금 본 아즈마 히로키에 관한 소논문은 그가 어렸을 적 "세상의 근간이 되는 뭔가를 저는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으며 그에 맞추어 자신의 사회적 삶을 살아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링크

아카데미에의 강박감은 불확실한 미래뿐만이 아니라 그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 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대강대강 이런저런 지식을 민첩하게 탐독해야 되는 상황에도 '날림으로 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 장기적인 공부 플랜들을 짜곤 한다.

그저 '읽는 것'에서의 속도도 이러한데 '쓰는 것' 또는 '써야 하는 것'에 대한 속도는 거의 정지 상태와 마찬가지가 된다. 게다가 만약 그 사람이 진심이든 간지용이든 정치적 내지 '실천적' 언어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런 갑갑함은 거의 족쇄처럼 느껴질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부지런함으로 커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카데미에의 강박감과 그곳에서의 수련이 지적 책임감이라는 중요한 미덕을 고양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이게 지적 책임감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인지는 의심스럽다.

항상 입습관처럼 되뇌이는 말이지만 "뭔가 잘못됐다. 죄를 지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또 머리에 맴돈다. '초심'같은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고, 그냥 지금 현재 시점에서 내가 무얼 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봐야 겠다.



3
좀 진태원 씨의 조언의 논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온 셈인데 이야기가 이렇게 온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기록 차원에서 언급하자면 그저께 H와 어제 또다른 H와의 대화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말한 내용보다는 내가 정리한 내용을 말하면 이렇다. 나는 '지적 차원'에서 타인과의 변별성과 사회적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찌됐든 공부도 하면서 뭐가 덤으로 얻어걸리면 좋겠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을 우려가 크다.

이런 사고에서 출발한다고 꼭 잘못된 길로 가리라는 법은 없지만 인생을 좀더 '생산적'(이 말이 논쟁적이라는 것은 명시해 두자.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말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보기에 사용한다.)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공부주제'보다는 '일'의 관점에서 플랜을 짜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는 공부 자체를 위해서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공부를 하고 싶다'보다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를 사고하기, 혹은 후자를 우위에 놓은 뒤 전자를 사고하기.물론 공부와 삶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주의를 요하는 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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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심포지엄 간단한 후기

어제 그린비 출판사 주관으로 열린 학술 심포지엄 <알튀세르 효과 : 사망 20주년 알튀세르를 다시 생각한다>에 다녀왔다.(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린비의 심포지엄 블로그 참조[링크])

학회 홍보를 봤을 때는 알튀세르, 보다 정확히는 알튀세르의 중요성을 역설해오곤 하던 진태원(존칭 생략)에게 사회구성체나 이데올로기론같은 이론적 쟁점이나 나아가 일상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봤을 때는 반가움의 흥분은 좀 가라앉았는데 정작 '알튀세르'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발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튀세르를 현재적 사상가로서 다루는 논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바디우(서용순)든 랑시에르(박기순)든 발리바르(서관모)든 라클라우나 지젝(김정한)이든 알튀세르는 소위 90년대 이후 한국에 소개된 '현대정치철학' 사상가들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길목으로 소개되었을 뿐이다. 물론 모든 발표자들이 자신이 소개한 이런 사상가들의 입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박기순같은 경우 『알튀세르의 교훈』을 중심으로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와 결별하는 지점을 설명했지만 결론부에 가서는 알튀세르를 랑시에르와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정말) 짤막한 코멘트를 남겼다. 하지만 이런 발표자들의 '속마음'과 별개로 '알튀세르 심포지엄'에 정작 알튀세르는 좋은 후학을 남긴 큰어른 정도의 예우 내지 취급을 받았다는 점을 부인키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한국에서 알튀세르 연구자라고 할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고려하면 이는 주최측의 실수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객관적 사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해의 방향성이야 어찌 되었든 알튀세르를 꾸준히 붙잡아온 사람이나 그룹(이를테면 과천연구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학회의 면면을 고려해 봤을 때 개인이나 집단 간의 관계 상 참여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생산적인 알튀세르 연구라고 할만한 진행되고 있는지를 출판시장이나 학위논문같은 가시적인 학술담론 장에서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아닌 알튀세르의 제자(혹은 반대자)들의 작업이 잘 소개되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개론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바디우 발표의 경우 발표자가 지금까지 써오던 바디우의 국가론, 존재론에 관한 논의와 알튀세르의 연관성을 유비적으로 지적하였으며 랑시에르 발표의 경우에는 『알튀세르의 교훈』의 내용을 단순 요약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발리바르 발표는 지금까지의 발리바르의 작업과 한국에서의 발리바르 관련 텍스트들을 그야말로 총괄하고, 라클라우와 지젝 발표는 논쟁 관전기 정도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개론적인 작업이 전체적인 틀을 파악하게 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꼭 '알튀세르 심포지엄'에서까지 이런 개론이 반복되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대강 2~3년 전부터 이 정치철학자들에 대한 개론 강의며 텍스트는 한국에서 꾸준히 생산되어 왔으며 이는 이런 활동을 해온 발표자들 자신이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그 활동 자체야 중요하고 높이 살 일이지만 알튀세르 심포지엄 역시 그런 개론의 자리들 중에 하나가 되었어야만 할까? 알튀세르의 현재성을 다루지는 않더라도 알튀세르와 해당 사상가들 사이에 만남과 결별하는 지점들이 '오늘날 여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정도의 노력들은 있어야 되지 않았을까? 어떤 발표에서 굉장히 거친 형태로 이런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발표자는 그저 "아, 이 사람은 말은 그게 아니구요...."식으로 스스로의 발표문 논지의 반복하는 형태로밖에 답변하지 않았다.

마지막 차례라 사람은 가장 없었지만 이런 부분에 가장 민감한 태도를 보인 발표는 "알튀세르와 '서발턴 연구'"라는 발표였다. 물론 여기서도 라나지트 구하와 가야트리 스피박이라는 사상가가 등장했지만, 적어도 구하를 소개하는 부분 같은 경우 발표자는 알튀세르의 개념들이 실제 역사 서술이라는 이론의 활용에 있어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논하며 이론의 현재성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부여주었다. 발표 중간에 "앞 발표들을 재밌게 들으셨다면 간곡히 부탁드리건데 구하의 책을 읽고 이론이 어떻게 역사를 서술하는 데 직접 작용하는지 보라"는 코멘트는 이런 의미에서 시사적이었다. 무협지도 아닌 이상 중요한 것은 문제와 논점이지 사상가들의 이름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상가들의 이름들은 이 문제와 논점이 부각되는 한에서만 중요해질 수 있게 된다.

알튀세르가 개념틀이 후배들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지금도 유용함을 강변하는 텍스트는 "알튀세르와 푸코 :  부재하는 대화"와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 알튀세르와 변증법"이었다.
  하지만 전자의 텍스트의 경우는 글의 주제 자체는 주목할 만한 했고 실제로 "사회적인 것의 발생 이론". "장치의 유물론", "주체화의 이론"같은 유의미한 공통점들을 짚어내기도 했지만 이에 기초해 양자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부분들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발표자는 계속해서 누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앞섰네 뒤쳐젔네 넘어갔네 모자라네 등등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전개했으나 너무 근소한 차이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여기서 '근소하다'는 평가를 내릴 때에는 그 차이들이 해당 이론의 유효성을 증명하고 부정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어떤 상이한 이론의 비교는 기본적으로는 둘만을 놓고 행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거기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은 같은 주제와 대상을 다루는 여러 이론들과의 비교를 염두에 두고 행해지는 것이고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코는 더 예쁘고 누가 입술은 더 예쁘네 식의 연예정보프로그램 식의 비교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알튀세르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은 "알튀세르와 변증법" 하나 였다. 이 논문은 알튀세르에게 있어 변증법이라는 이론적 도구가 『『자본』을 읽자』에 국한되지 않으며 과잉결정 개념, 이후의 이데올로기론, 말기의 마주침의 유물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존재해 왔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논문은 아직은 미완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질문자가 제기한 독해 상의 무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알튀세르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어떤 현재성을 가지는지가 명확히 논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알튀세르 연구는 분명하나 알튀세르 연구의 현재성에 대한 주장으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 이 과제는 논자가 이 논문을 완성하며 해결을 시도할지, 아님 다른 논문이나 연구를 통해 해결할지는 조금 미지수이다. 아마도 논자가 직접 제시하지는 않았더라도 독자 입장에서 이 현재성이 어떤 종류의 것이 될 수 있을지 논해볼 수 있고, 그것이 또 읽은 자의 책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지금 이와 같은 간략한 후기가 아닌 논문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요약하고 논평하는 심도있는 독해를 통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로서는 이를 진행하기는 어렵고 또 같이 발표를 들은 어떤 맑스 연구자 분의 코멘트를 들은 후 더욱 어려워졌다.(그 코멘트에 관해서는 내가 거친 기억을 재생하는 것보다는 그 분께서 조만간이든 먼 뒷날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문제를 다뤄주시길 기대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조금은 비판적으로 후기를 작성한 것 같다만 사실 앞서 말했다시피 알튀세르에 대한 것이건, 알튀세르를 활용한 것이건 관련 연구가 그리 많지 않고 오히려 한때의 열기가 사그러들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 때에 열린 이 심포지엄은 알튀세르 연구를 결산하는 차원이 아닌 시작하자는 차원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이 점을 고려했을 때 다소 불만스럽게 말한 부분들은 어느 정도 감안될 수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문들을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연 이 심포지엄 이후에 알튀세르 연구가 일부 활발한 연구자들의 독특한 관심을 벗어나 인문사회과학의 주요한 주제로 확장될 수 있을까? 그리고 확장 여부와는 다소 무관하게 오늘날 우리에게 알튀세르 연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과연 정말 중요한 것일까? 아마 이 질문들은 얼마간의 말이나 글이 아니라 알튀세르의 신도(전혀 경멸적인 의미가 아니다)들, 어쩌면 나를 포함한 그 신도들의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 증명하는 방식으로만 대답될 수 있을 것이다. 안 되면 인생 몇 년 말아먹는 거고...

P.S)최정우 씨의 미학 발표는 나로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기 보다는 그것이 사회적 맥락과 그리고 나 자신의 맥락과 어떻게 유의미하게 연결될 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P.S2)그나저나 서울의 잉문학도(잉여+인문학도)들을 왠만해선 그 날 다 본 거 같다능. 비가 미친듯이 내리는 수요일과 같은 평일의 아침이나 대낮부터 와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그린비의 주요 고객일 것이다. 이런 측면만을 주목한 후기도 가능하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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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관한 짧은 인용문


"공산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당에 속해 있든 아니든 간에 많은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모순들을 발전시키는 한에서 소멸될 수 없음을 해명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어떤 이들은 진리의 이름으로(진리는 반드시 확실성과 합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들은 유토피아(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다면, 희망)의 이름으로 말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이들은 공산주의 이상의 전도되고 왜곡된 형태인 국가 공산주의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마침내 진정한 공산주의를 위한, 그리고 이론적 수준에서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장이 열렸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동기야 이해할 만하지만(그것은 사회적 순응주의와의 공모를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새로운 지적 순응주의에 저항하려는 동기인데) 이런 논변은 내가 보기에는 이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무력한 것 같다. 역사적 공산주의가 자신의 도착들을 교정할 수 있는 힘을 자기 내부에서 발견하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도 그 원인들을 진정으로 해명할 수 있는 이론적 수단들을 자기 내부에서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진리나 유토피아 또는 불멸의 이상에 대한 호소는 오늘날 이런 호소가 표현하는 욕망 자체의 공허함 이상의 내용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게다가 이런 입장은, 서로 각자에게서 분리될 수 없기를 바라고, 또 역사 속에서의 자신들의 실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자신들의 "세계화"로부터 분리될 수도 없기를 바라는, 어떤 이론과 어떤 운동의 경우에는 더더욱 유지될 수 없는 입장이다. 공산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숭고한 이상 내지 시간을 초월한 유토피아를 핑계로 삼아 역사적 파국으로부터 자신의 구원을 희망할 수 없는 유일한 이론이다(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자기 자신에게 빚지고 있다.) 그리고 만약 마르크스주의가 강령으로서 또 현실 인식의 도구로서 계속 존재해야 한다면, 다른 기초들 위에서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 곧 자신의 분석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역사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 -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옮김, 『우리, 유럽의 시민들?』, 후마니타스, 2010, 173~4쪽, 밑줄 강조는 인용자가, 원 논문이 발표된 것은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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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적 주체와 근대성의 경계


질질 끌던 레폿 하나가 마무리되어 업뎃한다. 1차적으로는 학점의 강제에 의해 씌여진 글이지만, 정직하게 해당 주제와 관련하여 해오던 고민을 녹여내 보려고 했다. 가세트의 분량이 많은 것은 이 레폿의 원래 커리가 그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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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데카르트와 근대성에 대한 두 가지 질문

 

  지젝은 『까다로운 주체』의 서문에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패러디하여 오늘날 현대철학계에서 데카르트적 주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혹은 처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데카르트적 주체라는 유령이. 모든 학술 권력들은 이 유령의 성스러운 사냥을 위하여 동맹하였다. (새로운 전체론적 접근법을 지향하면서 ‘데카르트 패러다임’의 권좌를 노리는) 뉴에이지 반계몽주의자와 (데카르트적 주체를 담론적 허구이자, 탈중심화된 텍스트적 기제들의 효과라고 보는) 후근대적 해체주의자. (데카르트의 독백적 주체성으로부터 담론적 간주체성으로의 이동을 역설하는) 하버마스적 의사소통 이론가와 (작금의 약탈적 허무주의에서 절정에 이르는 근대적 주체성의 지평을 ‘횡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존재의 사유에 대한 하이데거적 지지자. (자아의 고유한 무대라는 것은 결코 없으며 단지 경쟁하는 힘들의 복마전이 있을 뿐임을 경험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인지과학자와 (무자비한 자연 착취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유물론을 비난하는) 심층 생태론자. (부르주아적인 사고하는 주체의 환영적 자유는 계급 분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비판적 (후-)마르크스주의자와 (이른바 무성적 코기토라는 것이 사실 남성의 가부장적 형성물임을 강조하는) 여성주의자. 자신의 적들로부터 데카르트적 유산과의 인연을 아직 철저하게 끊지 못했다고 비방을 받지 않았을 학술적 정향이 어디 있는가? ‘반동적’ 적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보다 ‘급진적’ 비판가들에 대해서도 데카르트적 주체성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비난을 되돌리지 않았을 학술적 정향이 어디 있는가?”(지젝, 9~10)

 

  비판자들의 기나긴 목록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현대철학에서 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한 평가는 이론적인 면에서나 실천적인 면에서나 매우 좋지 못한 편이다. 이 목록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심지어 서양현대철학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필수사항으로 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도대체 데카르트적 주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많은 입장의 논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 것일까? 이것이 이 글이 대답해 보고자 하는 첫 번째 질문이다.

  열거된 사람들 각자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일반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들의 주장을 묶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적 주체인 “사유하는 나”(Cogito)는 이성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확신에서 비롯된 타자든 세계든 자신 이외의 것은 허용하지 못하는 독단적 주체이며, 이러한 철학적 전제로부터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대화의 실종, 존재에 대한 맹목, 자아라는 인지적 착각, 생태 파괴, 계급차별과 성차별)를 불러일으킨 근대성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 또는 가장 대표적인 표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2절에서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의 데카르트 독해를 통해 코기토의 맹목―가세트가 “근원적 고독”{오르테가 이 가세트, 『철학이란 무엇인가』, 167. 이하 인용은 QF로 표기하고 페이지 수만 병기한다. 모든 인용문에 대한 강조는 인용자의 몫이다.}이라 부르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데카르트가 아닌 데카르트주의를 가리켜 “자기대화(monologue)”{가라타니 고진, 『탐구1』, 13~18.}이라고 부른―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헌데 또 요즈음에 들어서는 데카르트적 주체를 복권하려는 시도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복권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데카르트적 주체에 가해진 비판은 과도하게 또는 잘못 행해져 데카르트 내에 잠재되어 있는 근대성의 문제들을 넘어설 이론적 가능성을 고사시켰다.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근대성의 기원이라 불리는 데카르트를 ‘다시 읽음’으로써 탈근대성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젝 역시 앞서 인용한 문장에 이어서 “지금이야말로 (…) 데카르트적 주체성의 유령이라는 소문에다 데카르트적 주체성 자체의 철학적 선언을 대치시킬 절호의 시기”라고 주장하며, 이 노선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만약 데카르트에게 탈근대의 가능성이 내재해 있었다면, 근대성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돌렸던 우리는 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걸까? 이것이 이 글이 대답해 보고자 하는 두 번째 질문이다. 우리는 3절에서 “모든 극복은 곧 보전”(QF, 220)이라고 말하며 데카르트의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가세트와 데카르트의 회의와 신 존재 증명에서 “결코 내면화할 수 없는 타자성”{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157쪽, 이하 인용은 T로 표기하고 페이지 수만 병기한다. }을 보는 가라타니 고진, 그리고 타자성을 『방법서설』과 『철학의 원리』의 “Cogito ergo sum"이 아닌 『성찰』의 “Ego sum, ego existo”에서 찾는 장 뤽 마리옹(Jean-Luc Marion)의 논의를 참조해 데카르트를 다시 읽어볼 것이다.{앞서의 인용을 통해 암시된 슬라보예 지젝의 데카르트적 주체성 해석은 여기에서 논의되지 않는다. 지젝은 데카르트를 읽기 위해 독일 관념론 전통과 하이데거,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논의를 활용하기에 논의를 개괄하고 검토하는 데 매우 큰 부담이 따른다. 또한 여기서 지젝의 관심은 데카르트의 텍스트에 대한 직접적인 독해보다는 학계에서 ‘데카르트적 주체’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범주를 데카르트 이외의 이론적 자원을 동원해 재조명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에 다른 논자들의 작업과 성격이 매우 달라 함께 논의되기 어려운 측면을 가진다.}

  이 세 사람의 논의가 데카르트의 탈근대성이라는 매우 중요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필수적이거나 충분한 논의임을 주장할 자신은 없으며 이 글 자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저 이들의 논의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데카르트를 해당 주제와 관련해 읽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참조점 몇 가지가 분명해 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Ⅱ. 데카르트와 근대성

 

  가세트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7장에서는 철학적 내용을 내재적으로 살펴봄으로써, 8장에서는 고대와 중세 철학과의 차이를 짚어나감으로써 근대 철학, 나아가 근대성의 시작으로서 데카르트 철학의 위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우선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감각된 사물들의 실재성을 회의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깨어 있다는 것과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구별해 줄 어떤 징표도 없다”(성찰, 36)고 말하며 현재 지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의 사물인지 꿈의 사물인지 질문을 제기했다면, 가세트는 일반적 지각과 환각의 차이가 단지 약간의 지속성과 상대적인 공통성 밖에 없다며 “삶은 정확하면서도 단조로운 꿈, 혹은 일상적이면서도 끈질긴 환각”(QF, 149)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어서 데카르트의 「제2성찰」의 초반부(성찰, 42)를 떠올리게 하는 “해저의 역류”의 비유(QF, 150)를 들면서 감각에 대한 회의의 결과를 “사물, 자연, 인간, 총체적 외부세계는 명백한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요약한다. 데카르트의 경우, 꿈의 가설에 의해 반박되지 않는 기하학적 공리와 같은 “단순하고 보편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와 이것조차 회의하게 만드는 “유능하고 교활한 악령”의 가설(성찰, 37~41)이 나오지만 이 부분의 생략이 대중강연에서 데카르트의 핵심논지를 전달하는 데 치명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의심과 내가 의심한다는 사실”뿐이다. 왜냐하면 의심한다는 사태를 의심한다면 “의심은 스스로 자신과 충돌할 것이며 결국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의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의심은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QF, 152) 하지만 의심의 근원적 실재성은 의심이라는 특정한 정신 활동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다. 가세트는 이러한 의심이 “사유, 사고의 일종”(QF, 157)이며 사실 사유야말로 “근원적 사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유를 의심하거나 부정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정한다는 것” 역시도 “사유하는 것이기에 사유는 우주 내에서 그 존재가 결코 부정될 수 없는 유일한 것”(QF, 154)이 된다. 여기서 비롯되는 것은 오직 사유만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유하는 사물은 우주 내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물에 관한 나의 사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존재한다.”(QF, 154~5) 하지만 이것이 세계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의 존재” 못지않게 “세계의 비존재” 역시 의심이 가능한 명확하지 않은 사태이기 때문이다.(QF, 151) 우리에게 명확한 것은 다만 사유 한 가지뿐이다. 하지만 사유의 실재성은 물리적 사물에 근거한 것이 아닌 오직 스스로부터 나온 것이다. 가세트는 사유의 이러한 자기준거적 성격을 “자기 자신에 존재를 부여한, 스스로 사실이 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고유한 특권”(QF, 161)이라고 표현한다. 관념론이란 “명백하게 사유와 관념이 아닌 그 모든 것은 사유된 혹은 관념된 데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해석하면서 모든 존재에 관한 설명의 한 체계를 구성하려는 시도”(QF, 162)에 다름 아니다.

  가세트는 이런 관념론이 데카르트가 개시한 것으로 이후의 근대 철학 역시 근본적으로 관념론의 계보에 속한다고 본다.(QF, 162) 이런 관념론은 한 철학 사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근대’라는 한 시대를 특정지우는 것이기도 하다. 가세트의 이러한 언급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사유 개념과 고대와 중세의 다른 유사한 개념들과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고대 철학에서 영혼(Psychē)이란 결코 육체로부터 독립된 개념이 아니었다. 영혼은 “하나의 호흡, 가벼운 미풍”과 같은 것으로서 “어떠한 내적 자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육체 내에 침잠”된 것이었다.(QF, 178) 물질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정신(Nous)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것 역시 고대인들의 유일한 우주였던 육체에 관한 우주(QF, 178)에 속한 하나의 힘으로서 간주될 뿐이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심리학을 생물학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QF, 179) 중세에서는 고대와 달리 육체와 물질의 질서에 속하는 우주 바깥의 초월적 존재가 상정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이었다.(QF, 186) 이런 기독교적 신 개념이 가진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세계 밖의 신이 세계 안의 인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는 것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영혼을 “우주적이며 현세적인” 것, “육체에 대한 실재”가 모두 부정된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영혼은 고독하게 신과 대면하며 오직 영혼과 신만이 기독교에서의 실재로 간주된다. 이렇게 볼 때 중세의 영혼 개념은 근대를 예비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나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쪽으로 발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적 영혼을 도입하면서 부정된다.

  근대의 관념론은 고대나 중세와 달리 외부세계의 실재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는 것이 아닌 오히려 “외부세계를 단순한 나의 사유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생적 신념에 대한 의식적 부정”(QF, 162)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관념론적 우주 내에서는 “다른 모든 사물들의 존재 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 방법을 지닌 어떤 한 사물”이 발견되는데 “스스로 존재하는 데, 스스로 자신을 인식하는 데 그 존재적 기반”(QF, 164)을 두는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육체를 비롯한 다른 사물들은 사유의 인식에 의해서만 실재성을 인정받으며, 이는 사유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유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개념이며 따라서 철저히 자기준거적인 성격을 가진다. 가세트가 보기에 이런 정신 개념은 근대에 들어와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데카르트에 이르러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는 그 자체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분리되었다.”(QF, 165) 이러한 성격을 지닌 사유에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의식이다. “이 용어에는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 자신을 스스로 소유하는 것, 스스로 자신을 반영하는 것, 자신의 내부를 지향하는 것, 내적 존재 등과 같은 사유의 구성적 요소”가 명시되어 있다. 가세트는 이것이 바로 “근대성을 규정하는 가장 특징적인 개념”(QF, 163)이라고 본다.

 

  이쯤에서 왜 데카르트적 주체성이 근대성의 원리 내지는 표상으로 이야기되는지 분명해질 것이다. 데카르트의 관념론은 육체와 우주에 종속된, 혹은 육체나 우주의 다른 사물들과 더불어 우주의 일부로만 거론되던 주관적 정신의 지위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이제는 세계가 사유에게 자리를 배정하는 것이 아닌 사유가 세계를 구성한다.

 

 

 Ⅲ. 데카르트와 탈근대성

 

  관념론의 주체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왜냐하면 데카르트적 주체가 “초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이기주의, 즉 ‘절대적 이기주의’의 주체이기 때문이다.{진태원, 「불가능한 타자 : 장-뤽 마리옹의 타자성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45쪽. 이하 IA로 표기하고 페이지 수만 병기.} 절대적 이기주의는 언뜻 보면 직접 어떤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는 순수이론적인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모든 형태의 이기주의의 가능성의 조건”을 이룬다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고진은 이러한 이론적 전제에서 “타자의 타자성이 사상”되며 “타자와의 대화는 자기대화가 되며 자기대화(內省)는 타자와의 동일시”되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됨을 지적한다. 여기서 ‘타자’는 대화의 상대방같은 인격적인 의미를 넘어 좀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문명의 타자인 생태계, 부르주아의 타자인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타자인 여성 등등. 코기토의 ‘타자에 대한 맹목’이 이러한 온갖 실천적인 문제의 근본 문제들에 전적인 책임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들의 기초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코기토 자신에게도 불행한 것인데 가세트에 따르면 코기토는 세계와의 연결을 상실한 채 “정신은 오직 자아와만 교섭하며 자아로부터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근원적 고독”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결국 의식이란 고유한 사적 영역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감금하는 하나의 유폐인 것이다.”(QF, 167){195페이지의 유럽의 중국 황제라는 비유도 재미있으며 이해도 좀더 용이하다. “‘나’는 영광으로 가득 찬 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그 어떤 불만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은 모두 향유했기에 ‘나’에게는 더 이상 누릴 영광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유 있는 불만을 표출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내부로 세계를 삼켜버리고 나서 근대적 ‘나’는 홀로 구성적으로 홀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예로 중국의 황제를 들 수 있다. 그는 지고한 위치에 있기에 친구를 가질 수 없다.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곧 황제가 그 친구와 동급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황제에 대한 명칭 중의 하나가 바로 ‘고독한 인간’이다. 관념론의 ‘나’는 유럽의 중국 황제이다.”}

 

  1. 대상과 공존의 운명에 놓인 주체 (오르테가 이 가세트)

 

  가세트는 이어지는 9장에서 데카르트의 관념론적 주체론의 성과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내재적인 비판을 수행함으로서 코기토가 “근원적 고독”에 빠져나올 길을 모색하며, 10장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근대성 이후의 철학의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펼친다.

  데카르트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 와중에도 가세트는 번번이 관념론에 철학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언뜻 내비친다. 그는 이 주관성의 철학이 북부 유럽인들과 달리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과 같은 지중해 국가의 사람들에게 쉽게 납득되지 않으며 나아가 이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상실”케 함을 논한다. 그러면서 관념론이 폐기되고 근대성이 부정되는 새로운 시대가 싹트고 있으며 근대 기간 동안에 소외된 스페인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위대한 부활의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임을 주장한다.(QF, 158~9) 다른 날의 강의에서는 근대성과 관념론의 극복을 시대적 과제 내지 사명으로 논하고 있다.(QF, 198~9)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근대를 “쉽게 극복하리라는 환상”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며, “근대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근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근대적”이어야 함을 논한다.(QF, 159~60) 가세트의 이 언급은 그저 멋진 은유나 각오를 보여주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데카르트 철학을 극복하는 그의 논리의 특징을 잘 암시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결코 근대성의 발견을 부인하고 고대로 회귀하는 식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념론은 우리에게 있어 지적 상승의 디딤판이었다. 지금 우리는 관념론의 아래가 아니라 그 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QF, 193)

  근대를 부정하지 않고 근대를 넘어선다는 가세트의 데카르트 비판의 논지를 축약하자면 흥미롭게도 ‘데카르트는 충분히 데카르트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보기에 데카르트는 관념론이 가진 역사성, 고대나 중세와 구별되는 이론적 진전에 충실히 추진하지 못했다. 따라서 가세트는 관념론의 내재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우선 그가 보기에 관념론의 가장 큰 철학적 성취는 ‘존재’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할 가능성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항상 존재를 본질적이며 정태적인 것으로, 우주의 다른 존재들이 의존할 견고한 무엇으로 이해했던 고대인―가세트는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 개념을 언급한다.(QF, 209)―과 달리, 관념론의 사유라는 존재는 “결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활동적으로 존재를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하는 존재이다.”(QF, 202) 가세트가 보기에 “하나의 사유가 존재하기 위해서, 즉 존재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받침대가 될 기체(hypokeimenon)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유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유는 “단지 자기 자신을 지시하는, 자신을 스스로 창조하는 것에 성립하는” “불안한” 존재이다.(QF, 202) 따라서 관념론의 핵심 원리는 “사유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이렇게 “우리에게는 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에 (…)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사유의 불안한 존재성을 견디지 못하고 고대로부터 지속되어 왔던 정적인 존재로 회귀해 버린다. 그는 사유 자체가 홀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용인하지 못하고 “사유의 존재 뒤에서 존재-사물, 정적인 개체를 추구한다.”(QF, 204) 따라서 “그에게 있어 사유는 이제 더 이상 실재가 아니다. 데카르트가 사유를 일차적 실재로 발견하는 순간 사유는 잠재적이며 정적인 다른 실재의 단순한 표명 혹은 특질로 전환된다.”(QF, 205) 그리고 이런 고대로의 뒷걸음질을 보여주는 정식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다.(QF, 203) 가세트는 앞부분의 “나는 생각한다”는 자신이 정식화한 관념론의 원리인 “사유는 존재한다”와 같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 넘어가는 데 있다. ‘그러므로’를 거쳐 존재하게 된 ‘나’는 더 이상 관념론이 보여준 역동적인 존재방식을 지닌 사유가 아닌 그저 낡은 실체론의 ‘사물’일 뿐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말했던 방식 그대로, 그가 취했던 행동 그대로 이 세계를 취소해 버리고 또한 무효화시켜 버린다.”(QF, 205. 209~212는 이 논지를 다시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세트는 주체에 이어 ‘대상’을 논함으로써 “자신이 내세운 명제를 충실히 완성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방법을 발명하지 못하는 관념론의 무능함”을 입증하려고 한다. 앞서 주체에 관한 논의에서는 관념론의 아이디어(“사유는 존재한다”)와 데카르트의 최종적 입장(“사유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 구분되어 전자가 옹호되며 후자가 비판되었던 반면, 대상에 관한 논의에서는 이러한 구분선이 명확하지 않은 채 관념론의 세계관이 총체적으로 비판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념론의 원칙에 따를 때 “사물은 우선 ‘의식의 내용’에 다름 아니다.”(QF, 212) 하지만 가세트가 보기에 이 ‘의식의 내용’이란 ‘둥근 사각형’과 같이 심각한 모순을 지니고 있는 표현이다. 관념론에 따르면 ‘극장이 존재한다’고 할 때 이 극장은 만약 나로부터 독립적인 ‘외부’가 아니라 나의 인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만약 극장이 20미터 높이의 연장을 가진다면 그것을 포괄하는 나의 사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 극장 크기만큼의 연장을 가지는 것이다. 만약 이렇다면 사유는 더 이상 관념론이 가정하듯이 독립적이고 자기준거적인 존재가 아닌 연장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사유 내부에 있는 것은 극장이 아닌 극장의 상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극장 자체가 우리 내부에 존재하지 않음을, 극장은 나의 외부에 존재함을 시인하는 셈이 된다.(QF, 214)

  그렇다면 극장이라는 대상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유의 내부에도 외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세트는 사유와 극장, 주체와 대상이 “더불어” 존재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부터 관념론을 극복하려는 가세트 자신의 입장이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가세트는 주체와 대상의 존재는 고대와 근대의 경우처럼 한 쪽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상호의존적, “공존”적인 관계에서 존재한다고 본다. 우선 관념론에서 강조된 대상의 주체에 대한 의존성이 부각된다. “세계는 나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존립하는 실재가 아니다. 이것은 나에 대해 내 앞에 존재하는, 나와 직면해 존재하는 것으로 그 외 아무것도 아니다.”(QF, 216) 그리고 대상 혹은 세계에 대한 주체의 의존성이 부각된다. “극장은 나의 내부에 존재하지도 않고 나와 혼융되어 있지도 않다. (…) 극장 혹은 그와 같은 사물들이 없다면 나의 시각 행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주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QF, 216) 가세트는 이를 “주체성과 세계가 함께 존재하는, 즉 두 존재의 공존”(QF, 218)이라고 정리한다.

  하지만 외부의 실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고대의 실체론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세트는 실체론과 관념론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논의를 그저 그럴싸하게 묶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세트는 10강에서 자신이 9강에서 주로 사용한 “공존”이라는 표현이 살 수 있는 오해에 대해 해명하며 이런 문제에 대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세계와 ‘더불어’ 존재한다는 이 근원적 사실을 공존(coexistance)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큰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단어는 “단지 한 사물이 다른 사물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각 사물은 각자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QF, 231) 헌데 가세트의 주체와 세계의 더불어 있는 상태에서 주체란 절대 고대의 정태적인 정신 개념이 아닌 명백히 자기준거적인 내성을 가진 주체이다. 그리고 세계란 바로 이 주체와의 관계 하에서만 실재성을 부여받는 것으로서 “활동적 존재”(QF, 231)의 성격을 가진다. 내성 역시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그랬듯이 홀로 고독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계와의 관계 하에서만 존재하는 “활동적 존재”이다. 이리하여 고대의 존재 개념인 “사물”과 근대인의 존재 개념인 “내성”과 “주관성”에 이어 새로운 존재 개념이 “”이 정식화된다. 가세트는 이를 “주체 및 사물과 함께하는 내성”을 의미한다고 말한다.(QF, 227) 상기의 특징들을 살펴볼 때 가세트가 고대나 근대 관념론의 존재 개념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싶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존재 개념의 갱신이 앞서 간략히 제시한 근대성의 맹목을 뚫고 탈근대성의 지평을 열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먼저 가세트가 자신의 ‘삶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세계가 정말 ‘활동적 존재’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체의 앞에 서있는 것은 주체에게 문제를 제기하지도 주체의 욕망이나 주장을 좌절시키지 못하며, 주체에 반(反)해 자신의 바람이나 권리, 존재를 주장하는 또다른 ‘주체’가 아닌 매우 얌전한 사물인 ‘극장’이다. 자신의 바람과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는 사물을 사례로 드는 것은 의심스럽다. 따라서 가세트에게 있어 ‘타자에의 개방’이란 주체의 고된 자기반성을 통해 성취되어야 할 윤리가 아닌 자명한 사실에 불과하다. 가세트는 “폐쇄된 존재와 달리 정신은 경이로울 정도로 열린 존재”로서 “이 ‘극장을 본다’는 것은 내가 아닌 것을 향해 ‘나를 연다’는 것이다.”(QF, 219)라고 말하며 ‘타자에의 개방’이 특별한 노력이 아닌 단순한 인식만으로 손쉽게 확보될 수 있다고 본다. 과연 여기서 가세트는 자신이 비판하는 관념론자들과 얼마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관념론자들도 거들떠보지 않을 매우 극단적인 형태의 관념론을 상대하고서는 관념론을 극복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나와 세계’와 ‘우리와 세계’라는 구도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데 이는 좀더 강한 의미에서의 타자가 고려될 수밖에 없는 ‘나와 우리’, ‘나와 너’라는 구도를 떠오를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그는 나, 너, 우리를 모두 주체 혹은 주관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뭉뚱그린다. 주체와 세계가 더불어 공존하는 세계에서 자기준거적인 존재는 여전히 정체가 모호한 주체 혼자이다. 타자는 등장하지도 않으며 세계와 사물은 자기준거적/자기입법적 주체로부터 활동적일 수 있을 권리를 하사받았을 뿐이다. 가세트는 내성의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역시 또다른 내성의 세계(자신 앞에 놓인 사물들에게 좀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뿐인)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윤리학이나 실천철학의 층위에서만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만은 아니다. 한걸음 물러서자면 철저히 형식적인 관점에서 사람이 아닌 사물의 예 역시 어쨌든 ‘타자’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등장하는 사물은 언제나 주체의 관심에 의해 매개된 것으로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물 자체의 모습’ 혹은 ‘사물의 다른 모습’은 단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은 보편적으로 맛있는 것이고, 나에게 즐거운 음악은 보편적으로 즐거운 음악일까? 그에게 포착되는 사물은 주체와의 관계 아래에서 (주체에 의해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활동적”이기에 역설적이게도 (주체를 배신하는)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없는 ‘고정적’인 성격을 띤다. 그는 ‘사물 자체의 모습’이 고대의 실체론으로의 복귀라고 생각해 경계했지만, 이 경계는 주체에 의해 기대된 사물만을 보는 자기중심적인 인식론으로 귀결된다. 가세트는 “삶을 철학의 제일 원리로 설정함에 따라 우리는 처음으로 철학 연구를 추상이 아닌 지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QF, 223)며 인식론적 질문들이 모두 끝난 것처럼 말하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그는 관념론의 인식론을 좀더 교묘한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거울을 보듯이 사물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는 관념론자였으며 사물들 역시 고대나 근대와는 다른 획기적인 존재 방식을 부여받은 것 같지는 않다. 정리하지면 사유를 실체화하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판하며 다른 인식론적, 존재론적 가능성을 여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는 하나의 고정적 존재(주체) 대신에 두 개의 고정적 존재(주체와 세계)―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주체 하나이다―를 상정하는 식으로 문제를 봉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가세트의 텍스트에서 데카르트적 주체를 비판하는 부분과 관념론적 대상 개념을 비판하는 부분 사이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전자에서 주체의 ‘불안’한 존재 방식이 결론으로 도출된다면 후자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상호의존성이 결론으로 도출된다. 주체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에서 앞 결론이 뒷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만 이런 연결이 꼭 필연적인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앞의 결론은 뒷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고 보다 풍부한 결과들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고진이 주목하는 데카르트적 주체의 단독자적 성격은 이러한 가능성의 한 예로 보인다. 우리는 Ⅲ-2절에서 이를 함께 살펴볼 것이다. }

 

  2. 의심하는 주체와 신의 모습을 한 타자 (가라타니 고진)

 

  가세트와 같이 관념론을 또다른 관념론으로 대체하지 않고서 어떻게 근대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일본의 저명한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고진은 탈근대성의 지평이 오히려 데카르트에게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그의 독창적인 혹은 도발적인 데카르트 독해는 일본에서 1986년 출간된 『탐구1』에서부터 그의 대표적인 주저 중 하나인 『트랜스크리틱』(2001)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론적 기획의 핵심부를 구성해 왔다.

  그는 우선 데카르트의 이론적 동기에 주목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는 흥미롭게도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기존에 가졌던 사고들이 무너졌음을 고백한다. 야만인들로 안 사람들 역시 이성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확실한 인식이라기보다는 관습이나 선례였었다는 것,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라는 것 등등. 고진은 데카르트의 여행은 그저 나와 다른 것을 즐기기 위한, 그렇게 “차이를 소비(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조국과 자신을 떠나 “차이 또는 결코 내면화할 수 없는 타자”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세상이라는 책을 연구하고 얼마간의 경험을 쌓으려고 애써 몇 년의 세월을 보낸 후, 어느 날 나는 나 자신도 연구하자,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데 정신의 전력을 기울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내 조국을 떠나고 내 책을 떠난 덕분에, 그것들을 떠나지 않고 있었을 때보다 훨씬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T, 144에서 재인용)

  고진은 데카르트의 핵심은 널리 알려진 테제인 “cogito ergo sum”이나, 가세트가 “나는 사유한다”에서 찾는 자기준거성이 아닌 데카르트의 철학 체계를 추동시킨 회의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본다. 회의의 결과로서 제시된 ‘사유하는 나’가 아닌 회의 그 자체인 ‘의심하는 나’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심하는 주체의 지위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여행을 하면서 느꼈듯이 기존의 자신, 경험적이고 심리적인 자기의 자명함을 의심하면서 지각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의심하는 주체의 ‘나를 의심하는 나’라는 역설적 지위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나’(초월론적 자기)라는 토대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다. 의심하는 나는 경험적인 자기도 아니고 초월론적 자기도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회의하겠다는, “나는 비판한다”라는 일종의 “결의”로서의 “단독적(singular)인 실존”이다.(T, 149) 고진은 이 의심하는 나의 역설적 지위를 스피노자의 『데카르트의 철학 원리』에서 말한 “나는 사유하면서 존재한다.”(ego sum cogitanus)는 테제를 인용하여 규정한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cogito ergo sum”을 정식화하며 의심하는 나를 사유하는 나로 ‘도약’시키고 있다.

 

“실생활에서 극히 불확실하다고 알고 있는 의견에도 때로는 그 의견이 의심할 수 없는 것인 양 따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단지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완전히 반대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던져버리고, 그런 다음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신념 안에 남아 있는지 어떤지를 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나는 그때까지 내 정신에 들어온 모든 것은 내 꿈의 환상과 마찬가지로 참되지 않은 것이라 가상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곧바로,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하려 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필연적으로 무언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이 진리는 회의론자의 어떤 터무니없는 상정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고 확실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이 진리를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서 이제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데카르트, 『방법서설』, T, 148에서 재인용)

 

  고진은 이렇게 도약이 일어난 후, 『방법서설』에서 초반부에서 볼 수 있었던 ‘나를 의심하는 나’의 존재론적 위상은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게 된다고 본다.(T, 150) 이를테면 『성찰』 중 사유하는 주체(res cogitans)가 등장하는 제2성찰에서는 ‘의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의심하는 주체와 사고 주체 사이의 관계는 명료하지 않으며 별다른 언급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같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진은 아직 『성찰』의 데카르트에게는 의심하는 주체라는 질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보는데 그는 그 흔적을 당황스럽게도 제3성찰의 의 존재증명에서 찾는다. 제2성찰에서 확보된 사유하는 나의 실재성은 제3성찰에서 신 존재증명 과정에서 ‘불완전한 것’으로서 다시 인식된다. 사유하는 나는 자기준거적인 존재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만일 내 자신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나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것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 어떤 것도 나에게 결여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성찰, 74) 여기서 ‘의심’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도록 하자. 이러한 의심의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나보다 완전한 무언가의 존재자’인 바로 신이다. 고진은 ‘신’이란 주체로 하여금 다시 “‘의심하는’ 것을 강요하는 차이이고, 결코 내면화할 수 없는 타자성”(T, 157)이라고 말한다. 타자는 주체의 ‘사유하는 나’로서의 폐쇄적인 자기준거성을 무너뜨리지만 ‘의심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자극해 줌으로써 주체로 하여금 의심하면서 존재하는 “외부적 실존”이라는 또다른 준거성을 확보하게 해준다.

  또한 고진이 보기에 이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고진은 『방법서설』의 여행에 관한 부분과 제3성찰의 신 존재증명을 더불어 읽음으로써 데카르트에게 신이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다른 것”, 즉 “시간적 ․ 공간적 담론의 차이성”(T, 157)이라고 본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자신이 속한 지평을 의심하며 다른 지평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인류학적 코기토”(T, 143)이며, “시스템 사이의 ‘차이’에 대한 의식”으로서 “숨은 시스템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T, 166)

  가세트의 주체-대상 공존론과 달리 고진에게서는 후항에 주체의 인식에 포획되지 않는 타자가 들어선다. 이런 주체-타자의 구도에서 타자는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자명성에 끊임없이 의심케 하고 그러한 한에서 타자이며, 또 주체는 그렇게 의심하는 한에서 주체로서 성립한다. 흔히 데카르트의 코기토론은 신이 아닌 이성의 확신에서 비롯된 자명성을 특징으로 하고, 신 존재증명은 세계의 실재성을 보증하기 위해 요청되었지만 결국 코기토와 모순을 빚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실패를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고진은 그것이 지칭하는 경험적인 사태는 명확하지 않지만 데카르트의 코기토론이 자명성에 확신이 아닌 의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신 존재증명은 이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해 주고 있기에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데카르트의 철학적 실패는 사유하는 주체와 신 사이의 모순이 아닌 의심하는 주체에서 사유하는 주체로의 도약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3. 초월적 타자 또는 대화적 타자로서의 신 (장-뤽 마리옹)

 

  고진은 참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적어도 ‘타자로서의 신’에 관해서는 유사한 주장을 저명한 데카르트 연구자인 마리옹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마리옹은 1986년의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프리즘에 관하여(Sur le prisme mètaphysique de Dacartes)」(김동규(2008), 96~103쪽 참조)과 1991년의 「에고는 타인을 변질시키는가? 코기토의 고독과 다른 에고의 부재(L'ego altère-t-il autrui? La solitude du cogito et l'absence d'alter ego)」라는 논문(IA, 44~51 참조)에서 꾸준히 데카르트 철학 체계 내에서 신의 타자성에 관한 논의를 전개시켜 왔다. 우리는 마리옹을 따라감으로써 데카르트에 대한 그의 해석뿐만이 아니라 고진의 데카르트론에 대한 평가 역시 함께 살펴볼 것이다.

  마리옹은 철학사의 견해를 충실히 따라 데카르트 철학 내에서 신이란 코기토보다 완전하기는 하나 그 완전하다는 속성은 이미 이성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본다. “즉, 이러한 규정들이 신을 우리의 합리성에 종속시킨 다음, 충족이유율을 따라서 신에게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김동규(2008), 97) 하지만 그는 고진처럼 추론의 영역에서 벗어난 신의 개념이 데카르트에게 존재함을 논한다. 즉, “탁월한 타자성”으로서의 “유한한 실체인 에고의 세력권에서 독해 있는 무한한 신의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IA, 49) 그러나 「코기토의 고독」에서의 마리옹은 이 논의를 좀더 전개시켜 이런 신적인 타자성이 곧바로 “에고에 의한 타자 그 자체의 인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타자성의 근본적인 분할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한하고 초월론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전적인) 타자”인 신과 “유한하고 경험적으로 획득될 수 있는 타자”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은 등치될 수 없으며, 신적인 타자는 경험적이고 일상적인 타자를 사유하기 위한 그 어떤 근거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신적인 타자성은 자족적인 에고를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으로서 에고의 타자에 대한 맹목에 근원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IA, 49~51)

  이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는 고진의 데카르트론을 거부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점에서는 그렇고 다른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선 고진은 별다른 설명 없이 『성찰』의 신 존재증명을 『방법서설』의 여행 이야기와 같은 수준에 위치시키고 있다. 이는 타자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은폐할 위험을 가진다. 하지만 고진이 이 타자는 ‘초월적’인 타자가 아니라는 점을 반복해서 말하는 점을 볼 때, 그는 타자성의 분할에 대해 맹목적이기는커녕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주변적 언급이 아니라 고진의 주체-타자론에서 꾸준히 이론적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그 근거를 무리하게 『성찰』의 신 존재증명에서 찾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텍스트적 정확성에서 고진은 분명히 실수를 저지르고 있지만 데카르트에서 찾아내려는 탈근대성의 실마리를 “초월적이지 않은 상대적인 ‘타자’”(T, 157)로 본다는 점에서 마리옹과 공통점을 가진다.{그렇다고 고진의 주장이 가진 고유성이 마리옹의 논의와의 공통점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진의 존재론은 정확히 말하면 (가세트와 같은) 그냥 주체와 타자의 구도가 아닌 ‘의심케 하는 타자’와 ‘의심하는 주체’의 구도이다. 여기서 핵심을 이루는 개념인 ‘의심’, 경험적 주체와 초월론적 주체의 차이가 가진 탈근대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과 사물』에서의 푸코의 데카르트 분석의 검토 등을 포괄하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 「코기토의 고독」에서의 마리옹의 논의로 돌아와 보자면, 확실한 것은 신적인 타자가 아닌 타자성을 데카르트 자신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데카르트에서 탈근대성의 단초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 노력은 1993년 「에고의 근원적 타자성(L'altérité originaire de l'ego)」에서 『성찰』의 재독해로 나아간다. 마리옹은 데카르트에 대한 고전적 해석들이 'cogito ergo sum'이나 'ego cogito, ego sum'과 같이 <사유= 존재> 도식에 적합한 정식에 집중할 뿐, 제2성찰에 등장하는 “나는 존재한다, 나는 현존한다.(ego sum, ego existo)”(성찰, 43)라는 정식을 무시한다며 비판한다. 마리옹은 제2성찰에서만 등장하는 이 테제는 단순히 부정확한 문학적 변형물이 아니라, 이전의 테제들을 넘어서는 이론적 진전, 에고의 근원적 타자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여기서 신이 에고와는 다른 질서에 위치하는 격리된 존재가 아니라 “에고의 대화자”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이 대화적 타자의 관계를 전제하고 해당 정식을 읽을 때 에고의 근원적 타자성이 논증될 수 있다고 본다.{아쉽게도 필자의 능력의 한계와 해당 작업에 요구되는 지적 노력의 방대함으로 인해 논지를 더 깊게 전개할 수는 없을 듯싶다. 마리옹은 이후 자신의 탈근대적 사유기획을 후설과 하이데거 등 데카르트 이외의 자원을 활용해 전개한다. 마리옹의 데카르트론은 이를 고려해 총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코기토의 고독」과 「에고의 근원적 타자성」에서의 마리옹의 논의에 대한 상세한 요약과 비판적인 검토는 진태원(2008)을, ‘존재 없음'(sans l'être)과 ’줌‘(donation)이라는 마리옹 자신의 사유기획에 대해서는 김동규(2009)를 참조.}

 

 

 Ⅳ. 결론과 추가적인 질문들

 

  지금까지 우리는 오르테가의 강의를 따라 (1)데카르트가 어떻게 근대성을 특징짓는 이름인지를 살펴보고 (2)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세 사람의 논의를 통해 데카르트에 내장된 탈근대적 가능성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는 식으로 서론에서 제시된 두 질문에 대해 대답을 시도해 보았다. 비록 세 사람의 국적이 다르며, 가세트와 나머지 둘의 경우에는 살았던 시대나 지적 배경 자체가 다르다만, 셋 모두가 데카르트가 펼친 근대성의 자장 안에 있으며 또한 시공간적인 차이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성에 주목하는 작업 방식이 철학의 고유한 독단 내지 특권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논의가 꼭 무리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데카르트에 대한 집중적 학습의 경험이 없기에 불가능한 해당 논자들의 작업에 대한 직접적 평가 대신 이 글을 작성하면서 들었던 몇 가지 의문점들을 열거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대신해 보자. (1)우선 꼭 데카르트에서 탈근대성을 찾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논변의 도발적 효과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는 근소한 사실들에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는 무리하고 비생산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또한 근대성이라는 거대한 사태가 꼭 철학적으로 규정되고 철학적으로 극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성에 대한 비철학적 규정은 불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철학적 규정과 비철학적 규정들 중 본질적인 것은 무엇이며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근대성이 비철학이나 비학문적인 활동이 아니라 철학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거나 극복되어야만 한다면 그 근거나 당위는 무엇일까? 또 철학적으로 극복된다면 그 극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한 질문으로 종합될 수 있다. 어쩌면 데카르트와 근대성의 연루를 지적하면서 제기된 문제들은 데카르트의 타자에게서, 철학의 타자에게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탈근대성의 외양을 한 근대성의 지평 안에 유폐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질문을 곁에 두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가라타니 고진(1998), 송태욱 옮김, 『탐구1』, 새물결.

가라타니 고진(2005), 송태욱 옮김,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김동규(2008), 「데카르트의 존재신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철학논집』15집,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김동규(2009), 「장-뤽 마리옹에게서 현상학의 최종원리와 줌의 현상학: 후설과 하이데거를 넘어서」, 『철학연구』86집, 철학연구회.

르네 데카르트(1997), 『성찰』, 문예출판사.

슬라보예 지젝(2005), 이성민 옮김,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b.

오르테가 이 가세트(2006), 정동희 옮김, 『철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진태원(2008), 「불가능한 타자 : 장-뤽 마리옹의 타자성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철학사상』29집,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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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에 있어 대중의 존재론적 우위"


최근 새움에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근대의 초극" 담론을 중심으로 1930~45년 일본파시즘기 이데올로기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세미나를 진행하면 할수록 이데올로기와 대중의 관계를 외재적이 아닌 내재적으로 살펴 본다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외적으로 부과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의 내적 관계 속에서만 기능이 가능하다.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에서 말했듯이 '영향'이란 영향을 받을 만한 조건 하에서만 전달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되어 참고할 만한 메모를 무질서하게 모아놓아 본다. 진태원 선생님의 논문 볼드 강조를 제외한 모든 강조는 나의 몫.

1. 다케우치 요시미,「근대의 초극」, 『일본과 아시아』, 소명출판, 2004.

“그러나 나는 「근대의 초극」 자체가 지식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니었다고 니나의 세대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불행해진다. 「근대의 초극」에는 그런 힘이 없었다.”(70) “‘근대의 초극’은 전쟁과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그것을 언급할 때는 ‘악명 높은’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다니는 것이 거의 관례화될 정도로 전쟁 후 악옥(惡玉)으로 취급되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면 그것이 어떻게 그토록 위세를 휘두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거기엔 사상적으로 아무 내용이 없다. 왜 ‘근대의 초극’이 악명을 떨쳤는가. 그것은 심포지움 자체로부터 설명되지 않는다.”(66)

“각각의 사상은 주도사상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되었으며,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무관한 장소에서 사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주도사상의 이면에는 도피의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도피를 긍정하지 않는 사상 주체라면, 주도사상이야 어떻든 간에 현실 속으로 작용해 들어가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총력전의 본성에 기인한다. 육체가 소집영장이나 징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정신도 그 내면 깊은 곳까지 전쟁의 사상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상이 창조적 사상이 되기 위해서는 불 속에 들어가 쌀알을 주워오는 모험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國家)의 총력(總力)을 기울여" 싸운 것은 일부 군국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량한 국민이었다. (…) 민중들의 돌에 맞아 죽을 선지자가 아니라면, 어떤 상황하에서 저항과 굴복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이다.”(110)

"전쟁의 저변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못한다면 어떤 방향으로도 민중을 조직해 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사상을 형성할 수 없다는 말로서, 이것이야말로 사상의 최소한의 필요 조건인 것이다. 전쟁음을 전쟁가사라는 이유로 부정한다면 그것은 민중의 생활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전쟁가사를 승인하되, 그 전쟁가사가 과거의 낡은 전쟁 관념에 묶여 현재 진행중인 전쟁의 본질(제국주의전쟁이라는 관념은 아니다)을 외면하고 도피하려는 태도를 비판하여, 전쟁가사를 총력전에 어울리는 전쟁가사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그것을 통해 전쟁의 성질 그 자체를 바꾸어 가려고 결의하는 지점에서 저항의 계기가 성립하는 것이다. 화장실 벽에 '침략 전쟁 반대'를 써 갈기거나 '히데키[東條英機]를 타도하자'라는 식의 허무맹랑한 말을 유포하는 것은 저항이 아니라 차라리 저항을 해체하는 것이며, 사상을 풍속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행위이다."(111)

“세 번째로 오다기리는 ‘공동사회성’이 자연히 ‘천황주의국가’로 이어진다고 보고 거기에서 ‘낭만파의 위험’을 발견한다. 나로서는 이 점도 수긍할 수 없다. ‘공동사회성’이 어떻게 ‘천황주의국가’로만 귀결되는가. 원시공산제일 수도 있고 인민공사(人民公司)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그것을 역사의 교훈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역사해석은 틀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오다기리는 사상을 ‘반체제적 요소’만으로 평가하는 이데올로기적 일원론으로부터 역사를 거꾸로 놓고 ‘낭만파의 위험’이라는 피해망상을 도출하고 있는 듯하다.”(125)


2. 백승욱, 『문화대혁명』, 살림, 2007.

"둘째, 이 접근법[문화대혁명을 마오를 비롯한 최고지도부 간의 권력투쟁으로만 설명하는 접근]은 대중을 수동적이고 쉽게 동원되는 동질적인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는 특히 사회주의를 전체주의로 보는 접근법의 한계였다. 이런 접근법에서는 극단적으로 문혁시기의 대중과 독일의 나치 치하의 대중 사이에서 유사점을 찾으려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대중은 단일 세력이 아니었고, 내적으로 매우 이질적이고 분열되어 있었고, 시기적·지역적으로 매우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전국에 걸쳐 엄청난 규모로 운동에 참여하였는데, 단지 마오의 호소만으로 그렇게 큰 대중적 파급력이 나타났다고 설명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 접근법은 문화대혁명의 진행과정 중에 마오쩌둥이 통제력을 상실한 측면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967년에 전개된 일련의 상황에 대해 마오쩌둥은 통제력을 갖지 못하였으며, 사태가 미리 예상했던 과정을 거쳐 전개된 것도 아니었고, 마오쩌둥이 이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다. 내부적으로 분열된 대중에 대해 마오쩌둥이 통제력을 회복해 간 것은 대중에 대한 직접적 영향력을 회복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군의 개입을 통해서였고, 이는 다시 대중 내의 상당한 분열을 초래하였다는 측면 또한 강조할 필요가 있다."(8-9)


3. 진태원, 「국민이라는 노예? 전체주의적 국민국가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민족문화연구』51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1) 이데올로기에서 대중의 존재론적 우위 

"첫째, 이데올로기에서 대중의 존재론적 우월성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자들은 민족주의 및 국민국가를 넓은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지배와 예속화 메커니즘으로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지배와 예속화를 강제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든, 아니면 임지현이 특히 강조하는 것처럼 일종의 자발적 예속으로 이해하든 간에(임지현 2005a, 19면), 이러한 관점은 항상 이데올로기를 지배자에 의한 피지배자의 지배와 예속화의 수단 내지 도구로 이해한다.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관점은 피지배 계급 내지 대중은 존재론적ㆍ인간학적 또는 정치적으로 항상 열등하고 수동적이라는 생각이다.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대중들은 사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우매하게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적 기만이나 술책에 말려들어간다는 식의 가치 판단을 이미 함축하고 있다. 이 경우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피지배 대중들이 자주 반역을 하고 또 어떤 경우들에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 및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룩한다는 점이다. 인권선언을 통해 인권과 시민권을 근대 국가의 이념적 기초로 확립한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19세기의 노동운동과 20세기의 여성운동이 그랬으며, 20세기 후반 미국 및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인권운동이 그랬다. 지배 세력에 의한 기만과 조작의 시도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이전에 대중들의 능동적인 저항과 반역의 시도들(적어도 그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티엔 발리바르와 자크 데리다는 각자 최근 저작에서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관한 글에서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 속에서 특권적인 능동적 역할을 피억압자들 또는 피착취자들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 부여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 1993, 183-84면―강조는 발리바르.] 이것은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그러한 상상계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유령성, 곧 이데올로기를 모든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동시에 모든 이데올로기, 모든 종교 안에는 대중들의 해방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7, 322-24면 참조.]이라고 부른 것은 이처럼 계시 종교나 이데올로기 일반 안에 존재하는, 그리고 그러한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근원적인 해방의 열망, 해방의 경험의 형식을 가리킨다. 이 두 사람이 주장하듯이 이데올로기에서 피지배자 또는 대중의 존재론적 우월성이라는 관점을 택할 경우에만 우리는 국민국가 및 민족주의의 강고한 지배 구조를 해명한다는 구실 아래 국민국가 전체를 전체주의로 획일화하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자크 랑시에르, 『불화』, 2장 "잘못/왜곡: 정치와 치안" 중

"치안은 그 본질에서 볼 때, 부분들의 몫 내지 몫의 부재를 정의하는─일반적으로는 암묵적으로 남아 있는─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몫이나 목의 부재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분들이 각자 기입되어 있는 감각적인 것의 형세를 정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치안은 무엇보다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을 정의하는 신체들의 질서이며, 이 질서는 신체들이 그것들의 이름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과제를 부여받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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