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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1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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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와 나


그저께 2010년 3월 10일 수요일에 고려대학교 정대후문에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이름의 대자보가 붙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가 작성한 것으로 전문은 지갱프 게시글(http://cafe.naver.com/think2wice/1426)을 오늘 3월 11일자 경향신문 헤드라인에 실린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3110140015&code=940401)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에서 이 대자보의 개인적 혹은 사회적 의미에 대한 글로서 완성된 반응은 홍명교 씨의 "온몸으로 '저항'을 '선언'하는 삶"이라는 포스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나는 대자보를 붙인 이의 취지에도 이를 하루만에 기사화하고 헤드라인으로 올린 기사와 편집자에게도 명교 씨의 논지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감동에 동의하고 부분적으로 공감한다. 대자보 자체도 매우 잘 쓰여졌다. 결코 자신의 저항을 대학사회를 한번에 뒤엎는 일대 사건으로 과장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이 체제와 무관한 순결하고 도덕적인 주체임을 자임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는 하나의 시작을 알리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 시작의 가치란 이런저런 품평으로 훼손될 수 없는 일종의 절대성을 지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정말로 자퇴', 아니 그녀의 의도를 살려 정확히 말하면 '자발적으로 퇴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문을 쓴다 할지라도 요새 대학가에서 정치색을 조금이라도 띤 대자보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 이 대자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가장 크게는 정말로 자퇴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며, 또 부분적으로는 그녀가 특정 운동 단체에 속한 회원(그녀가 실질적으로 어디에 속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이 아니라 다른 2만명의 학생들과 같은 고려대 학생으로서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운동권이 아닌 고려대생으로서 자퇴를 발화했다는 것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당연히 그녀가 비판하는 것들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혹은 문제의식을 느끼나 쉽게 순응해 버리는 대학생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대자보의 함의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자보의 화살은 나아가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순응하지 않는 학생'들, 그러니까 운동권이라든가 '썩은 사회'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하길 즐기는 나같은 어설픈 '비판적 학생'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나는 여기서 은근슬쩍 운동권과 나 사이의 갭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예슬 씨의 대자보가 '자발적 퇴교'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고려대는 '퇴교'라는 말과 인연(혹은 악연)이 있는 학교다. 2006년 운동권 학생들에게 떨어진 퇴교 처분과 그에 반발하며 3년간 지속된 본관 앞 천막 투쟁이 있다. 당시 징계 처분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주 논지는 징계 처분 과정이 이사회를 비롯한 일부 힘있는 교수들의 감정이 섞인 보복 행위로서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헌데 이 주장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이 투쟁에 반대 혹은 냉소하는 학생들 중 일부는 "봐라, 너네가 학교하는 일에 아무리 반대를 하지만 스스로가 고려대생으로서 누리는 특권 자체를 포기하지는 못하지 않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이 말에 대해서 과연 학교가 일부 교수만의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침해할 수 없는 학생들의 '권리'가 있지 않는지 여러가지 변론을 구사할 수 있고 이런 시도들은 물론 정당하다. 하지만 이런 변론들이 앞서의 논리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효과를 효과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 변론이 가진 정치적 정당성과는 별개로 오히려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 공산이 크다. 아마 천막투쟁에 학생들의 호응이 저조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때문에서가 아니었을까.

이런 맥락을 고려해 볼 때 고려대에서 '자발적 퇴교'라는 행동은  마지노선을 건너는 제스쳐이다. 이는 김예슬 씨의 행동은 운동권과는 뭔가 '다르다'는, 조금 나아가 '그 이상이다'라는 인상을 준다. 그녀가 운동권 중 1인이 아니라 고려대생 그리고 대학생 중 1인으로서 발언한 것은 이런 점과 겹쳐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있건 말건 간에 우리 대학생 모두에게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너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잖아. 우리가 맘먹으면 이걸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시작해 볼 수 있어. 물론 이게 마법같이 모든 걸 바꾸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우리 손으로 무언가를 시작해 볼 수 있다고!"

그래서,
내 자신이 이렇게 표방하는 정치적 입장과 달리 이 대자보 자체는 참으로 복잡한 감정들을 들게끔 한다. '나는 뭘 어째야 할까' 노골적으로 말하면 '나도 자퇴해야 하나?' 뭐 그런 것이다. 물론 김예슬 씨가 고대생들의 자퇴를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결심한 새 삶의 시작을 남들에게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동지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걸로 명성을 얻겠다거나 센세이션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사실 관계와는 무관하게 사후적이고 악의적인 꼬뚜리 잡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하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시작하긴 한 것일까? 공부는 과연 이런 싸움에 속한 것일까? 혹은 아닐까? 홍명교 씨가 우석훈을 예로 들어 말씀해 주셨듯이 혁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혁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인 말을 하는 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진보적이라는 보증을 서주지는 않는다(오히려 그 역이 많다). 내가 김예슬 씨의 자발적 퇴교에 대해 지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내가 그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성 역시 혁명이나 혁명적 실천의 불가피한 계기이나 지성 자체가 그것들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아니 지성이 정말 불가피한 계기인 것은 맞는 것일까?

이런저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김예슬 씨의 대자보에 감탄하는 동시에 홍명교 씨와 달리 용기를 느끼기 보다는 짜증을 느낀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 있다면 김예슬 씨나 홍명교 씨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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