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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2010/07/1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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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6~20


1. 요즘 텍스트를 별로 읽지 않고 있다. 언어 공부도 영 신통치 않다. 공부라는 것이 어떤 감정도 끼어들 수 없는 순수한 지적 수련의 과정만은 아니어서, 이렇게 게을러 지다 보면 '뒤처진다'는 자괴감을 피하기가 어렵다. 앞서서 무엇하며 뒤처진들 어떠리, 공부는 경쟁이 아니라능...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게 또 성숙한 태도일 수 있겠지만 자존감-다시 말해 남에게 잘난척하는 것-으로 (일단 나는 돈은 안 버니 정신적으로) 먹고사는 이 바닥에서 경쟁의식을 떨쳐내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나 주변에 열심인 사람들이 눈에 보이면 더 피곤하다. 좀 스스로가 부지런해지던가 정신적으로 좀더 건강한 사람으로 개조되거나 아님 둘다 병행해야 할 것 같은데 둘다 쉽지 않는 일이다.


2. 뒤쳐진다고 느끼는 게 어디 공부 영역뿐이랴. 요즘은 특히 정치가 그러하다. 언제부터인가 약간은 일부러 정신줄을 놓고 시사 이슈에 대한 관심을 끊었는데 이게 조금 지나니 주변에 일들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겠다. 조병훈-양승훈-홍명교 논쟁(?)이라든지, 상지대 사태라든지, 진보신당 개명 떡밥은 뭥미... 근데 사실 이런 자평에는 구라가 좀 섞여 있다. '뒤쳐졌다'는 말에는 내가 항상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에 그닥 관심이 많지는 않았다는 점이 은폐된다. 내 기억 속의 정치는 그것이 음악을 통했든, 텍스트를 통했든 누구 당의 누가 뭘 어쨌다는 등의 이야기는 젼혀 들어있지 않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또 그러기에 (일단 주관적으로는) 급진적일 수 있었던 그러한 것이었다. 기자 생활이라도 몇 년 시도해 봐야 되려나...

저널리즘의 방식과는 다른 측면에서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게 소위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철학의 목표이긴 한데 대강 저널리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 다르게 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그리고 그 '다르게'라는 말도 좀더 섬세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적어도 정치철학과 정치평론이 서로 완전히 '별도'의 대상을 다룬다는 것,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누구는 진짜 대상을 누구는 가짜 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널리즘의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듣는 요즘에서야 그 다른 접근이 뭔지, 정치를 보기 위해 '사회'를 다룬다는 말(발리바르의 말을 빌리면 '정치의 타율성')이 뭔지 감이 조금 잡히는 것 같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현실정치를 좀더 큰 틀에서 조건지우는 물질적 조건의 관점에서 탐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굉장히 간단한 말인데, 이 말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남의 역할을 구태여 부인하고 않고 실감하며 이해를 하게 된 것은 굉장히 최근이다...어쩌면 이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위에서 말한 뒤쳐짐의 느낌, 일종의 패배감을 경험했기 때문일런지도.


3. 최근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몇 권 나왔다. 먼저 난장출판의 <두뇌를 팝니다 : 미제국을 만든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책소개].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이라는 말은 적어도 2가지 함의를 가지는데 하나는 이데올로기는 경제같은 심급에 비해 부차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그대로 이데올로기는 물질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은 내가 생각했을 때는 조금은 과도하게 강조되어 있는 반면, 후자는 젊은 역사학 연구자들(시기상으로는 일제 식민지기)을 제외하면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뭐 내가 과문한 탓에 예단을 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냥 출판시장의 추이만을 지켜보면 그런 인상이 든다. 아무래도 동시대란 그런 얘기를 하기에 너무 가까운 시기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튼 이데올로기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좀 심플해질, 그러나 가볍지는 않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푸코가 권력을 인격적인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권력을 신비적 개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대정치철학을 주로 다루는 난장출판이라는 출판사에서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반가웠다.

두번째는 꿩탱 메이야수의 <유한성 이후>[책소개]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끌로드 메이야수라고 프랑스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인류학자이다. 끌로드의 아들이 바디우의 제자이고 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존재론 연구자라는 말은 듣고 아 그렇구나 했지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책 내용이야 아직 읽지 못했고, 설사 읽는다고 하더라도 뭔가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출간을 보고서는 도서출판b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시는 분은 알다시피 b는 그동안 한국에 지젝과 고진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던 출판사이다. 대강 1,000명 정도되는 이택광 씨의 네이밍을 빌면 소위 '인문좌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출판사였다. 개인적으로 이 출판사가 좀더 정치적인 방향으로 갈지, 아니면 사변적인 방향으로 갈지 궁금했는데-이 이분법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스킵하기로 한다- 이번 책의 출간은 뭔가 예상됬으면서도 좀 의외였다. 나름 뭔가 내부에서는 출판사가 갈 길에 대해서나, 나아가 여기서 출간되는 책들이 무얼 해야 될지에 대해 가닥을 잡고 있는 것 같은데(아님 어쩌다가 걍 나온 거일 수도...) 그 '가닥'의 실체가 뭔지 좀 궁금하기는 하다.

마지막 세번째는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책소개]다. 링크에도 약간의 추천의 변을 쓰긴 했지만 미리 원고를 읽어본 사람으로서는 맑스주의를 텍스트의 측면에서나, 운동이나 국가의 역사적인 측면에서나 접근하는 데 있어 기본을 충실히 지킨 보기드문 책이라고 생각한다. 좀더 양념을 치면 여기서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지루함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 내지 코스요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보아야 한다. 설사 서술에 잘못되거나 과도한 점이 있을지라도 항상 머릿속에 준거점으로 남아 독자 자신의 생각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발판 역할을 해주는 책이 나한테는 몇 권 있는데 이 책도 그러한 책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주로) 한국 진보 지식인들에 대한 저자의 걸걸한 코멘트는 보너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코멘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그 코멘트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사람들이 이 블로그에도 좀 들리시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 한 방 더 쎄운다. 이거 홍보가 너무 노골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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