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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5
    배설 - 1.잉문학(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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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 1.잉문학

이번 주 머리 속을 맴돌아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쳤던 키워드 3가지를 정리해서 배설해 보자. 트위터나 오며가며 끄적이는 리플이 1차 배설을 하게 해주지만 별도의 노트 관리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 블로그에 옮겨 놓지 않으면 잊어먹을까봐 두렵다. 사실 별 중요한 것들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뭐가 그리 두려운 걸까? 이건 좀 나중에 생각해 보자. 원래 하나로 묶어서 쓰려 했는데 분량이 좀 되서 나눠서 올려본다.


1. 잉문학도

이 블로그가 만들어질 때 내 주된 문제의식 중의 하나는 나 자신이 어느 정도 웹 상에서의 허명을 얻고,여러 논객이나 운동권과 취업준비나 고시준비성같은 정치적/일상적 주체들로부터 스스로를 구분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보케 해준 것, 현대정치철학 내지는 인문학의 무쓸모이라는 비판의식 또는 불안이었다. 이 블로그에 처음 쓰인 이데올로기론들에 대한 불만들(http://plebs.tistory.com/1)이 그러했고, 제3인터내셔널 드립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이종영 선생의 코멘트에 붙인 첨언 "경험주의와 형이상학 사이"(http://plebs.tistory.com/11)같은 포스트들이 그러했다. 이외에도 이 블로그에 쓰인 거의 모든 포스트에 이러한 경향이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나 깔려 있으며 그때마다 내가 어떤 식으로(새로운 인문학에의 희망, 인문학의 거부, 아니면 응답의 연기 내지 회피) 이에 정신적으로나마 대응하려 해왔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이 고민의 '선배'를 기대하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사회과학'을 하고 있다고 자처하고 계신 뽀삼 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리고 뽀삼 님께서 얼마 전 "잉문학도란?"(http://blog.jinbo.net/simppo/100)이라는 포스트를 올려주셨더랬다.

서술은 전반적으로 동의하며, 특히 잉문학도가 <잉여+인문>이 아닌 <인문+과잉>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짤막한 코멘트에 대해서는 그렇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리플들에서도 말했듯이 이것만으로는 조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건 뽀삼 님이 불성실했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이런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잉문학 그룹(명시적이진 않았지만 이렇게 묶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에 속해 있었다고 자각하는 일종의 '내부자'로서 그런 부분이 지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잉문학도들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맹목적인 지적 권위에의 추종으로 인문학에 빠져들지 않았다(혹시나 있을 오해를 방지하자면 뽀삼 님이 그렇게 쓰거나 생각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 붐은 나름 절박한 문제의식, 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 내가 서 있고 싶은 곳은 아무 곳도 없다'라는 그런 의식에서 출발했다. 주로 인서울 대학 출신이 많은 우리는 은밀하게는 '수능 아닌 것에 과한 지식'에 대한 열망을 정신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힘겹게 입시교육에서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두기 위한 '냉소주의적' 태도를 보여왔다(논술 붐도 여기에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상으로 약간의 자유를 얻으며 입학한 대학, 그러니까 이제는 짧든 길든 내가 원하는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던 대학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은밀히 습득해온 '진보적' 지식에 대해서 선배들, 특히 그럴 관심이 있을 법하기도 한 운동권들은 큰 관심은 없었고, 게다가 운동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전체주의적, 남성적, 폭력적 등등)도 공유하고 있었고, 이런 오해를 인내를 가지고 불식시켜줄 선배들은 판을 떠나던가 형성된 그룹의 활동 내부의 문제에만 집중하던가 새내기를 조직해내려 해도 이들과 접속할 만한 대학 내 기층조직(과반이나 동아리 공동체)과의 접촉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우연히 그런 조직이 남아있는 조직에서의 간헐적 수혈을 통해 집단을 굴리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여기서는 차지하고...여튼 그런 조직에 있지 않았던 나 내지 우리로서는 '운동권'은 우리가 있고자 하는, 있을 수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취업이나 고시 역시 입학의 승리감 내지는 안도의식에 취한 새내기에게는 아직까지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거기로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 또는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직은 시간이 남았어'는 식의 사고가 다른 길을 모색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어떤 친구들은 아카데미의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교육 제도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이는 만족스러운 선택이 아니었고, 이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뽀삼 님 표현에 따르면 "제1세계에서 직접 도래한 지적 권위"자들의 번역서가 나오기 시작했던 출판 시장과, 사회운동과 접촉에 실패했고 오히려 이 실패를 1989~91년을 핑계삼아 자신의 용기있는 지적 결단으로 역전시켜 쥐알만한 한국 담론 시장에서의 위치를 쟁취해냈지만 아카데미에의 취직은 실패해 물적/상징적 자본을 보충할 학생들을 찾아헤매던 지적 한량 내지 양아치들이었다. 우리는 그리고 이 떡밥을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좀더 세심해 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이 떡밥을 물었다는 것이 그들과 같은 색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이들 역시 말만 현란하지 '우리가 원하는 자리'(물론 우리가 그 자리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으면 방황도 안 했겠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앞서 약술한 식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기에 우리는 이 바닥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너무 없었고 세상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사회경험'이 없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론적'으로 수행되었는데 그때 표적으로 등장하게 된 게 '노마디즘'식으로 수용되고 있던 들뢰즈와 가타리였다. 그들의 사상이 가진 내재적 성격에 대한 젊은이들의 비판은 이론적으로 맞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그 동기 면에서는 한 때 '선배'로 보였던 사람들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했다.

가라타니의 유아론 비판과 지젝의 들뢰즈/가타리(더 얹자면 레비나스) 비판이 잉문학도들의 지적/실존적 준거로 활용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져 있다. 이렇게 '무엇을 공부하는가'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선배들에 대한 비판, 이들을 어느 정도는 따랐던 우리가 헛짓을 한 게 아니냐는 불안이나 후회, 그리고 더 저변에는 '이제 나 또는 우리로부터 새 세계를 시작하겠다'는 야심이 있다. 이 야심이 자아 과잉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누가 이렇게 주체로 서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또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이런 경향 역시도 어떤 (그리 건강하지는 못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선배들과의 만남 내지는 종속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점을 주의깊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바다 건너 저 멀리로는 지젝이 있겠고, 보다 가까운 곳에는 유사-들뢰지앵들과는 달리 조금 딴 짓을 하다가 아주 늦게나마 이 바닥에 뛰어든 또다른 386들이 있다. 그 뒤늦게 도착한 386들의 의도 자체는 지금으로서는 그 전의 386들보다는 순수해 보이고 다른 지평을 열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들이 결국 사회와 후배들에게 행하게 될 실천적 결과는 앞선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 같다는 게 내 짐작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한번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우리가 이들의 말(지젝이든 뒤늦은 386이든)에서 매우 많은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되지 않나 싶다. 이들이 말 하나를 던지면 우리는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주변 모든 것에 적용한다. 사회문제분석, 한국정치분석, 친교관계, 애정관계, 조직논리  등드르등등등. 이런 과잉은 누군가들에게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무맥락적 접근으로서 자아과잉, 그저 '자뻑'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겠다만, '학생'으로서 용서될 수 있는, 아직은 덜 익었고 덜 익었기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그런 '건강한 의지'로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지젝이나 뒤늦게 도착한 386들과 어긋나는 지점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하고 앞으로 가질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아마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한윤형이 이 포스트(http://yhhan.tistory.com/1167)에서 자신에게 했던 지적을 우리의 위치에서 다시 상기해 보는 게 유용할 거 같다. 솔까말 주변의 학습력을 보면 내가 여기저기서 반 장난 섞어 '선생님' 소리를 벌써부터 듣고 있는 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다른 게 있다면 '지식'의 양이나 질보다는 '욕망'의 문제일 것이다. 이런 기껏해야 천명도 될까말까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정, 그 인정이 정말 쓰잘데기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고서도 결국 달랐던 것은 지적 능력이 아닌 관심과 욕망이었다는 것을 알아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런 욕망의 다름이 지적 능력의 우월보다는 딱 돋보이지는 않지만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그 의미를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 노력을 여기에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용기란 단어는 나랑은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정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다른 이들 못지 않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 필요한 덕목으로서 쓰여야 한다.

이게 일단 내가 잉문학도로서 자기긍정의 시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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