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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머리 속을 맴돌아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쳤던 키워드 3가지를 정리해서 배설해 보자. 트위터나 오며가며 끄적이는 리플이 1차 배설을 하게 해주지만 별도의 노트 관리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 블로그에 옮겨 놓지 않으면 잊어먹을까봐 두렵다. 사실 별 중요한 것들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뭐가 그리 두려운 걸까? 이건 좀 나중에 생각해 보자. 원래 하나로 묶어서 쓰려 했는데 분량이 좀 되서 나눠서 올려본다.
1. 잉문학도
이 블로그가 만들어질 때 내 주된 문제의식 중의 하나는 나 자신이 어느 정도 웹 상에서의 허명을 얻고,여러 논객이나 운동권과 취업준비나 고시준비성같은 정치적/일상적 주체들로부터 스스로를 구분하여 자기정체성을 확보케 해준 것, 현대정치철학 내지는 인문학의 무쓸모이라는 비판의식 또는 불안이었다. 이 블로그에 처음 쓰인 이데올로기론들에 대한 불만들(http://plebs.tistory.com/1)이 그러했고, 제3인터내셔널 드립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이종영 선생의 코멘트에 붙인 첨언 "경험주의와 형이상학 사이"(http://plebs.tistory.com/11)같은 포스트들이 그러했다. 이외에도 이 블로그에 쓰인 거의 모든 포스트에 이러한 경향이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나 깔려 있으며 그때마다 내가 어떤 식으로(새로운 인문학에의 희망, 인문학의 거부, 아니면 응답의 연기 내지 회피) 이에 정신적으로나마 대응하려 해왔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이 고민의 '선배'를 기대하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사회과학'을 하고 있다고 자처하고 계신 뽀삼 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리고 뽀삼 님께서 얼마 전 "잉문학도란?"(http://blog.jinbo.net/simppo/100)이라는 포스트를 올려주셨더랬다.
서술은 전반적으로 동의하며, 특히 잉문학도가 <잉여+인문>이 아닌 <인문+과잉>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짤막한 코멘트에 대해서는 그렇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리플들에서도 말했듯이 이것만으로는 조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건 뽀삼 님이 불성실했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이런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잉문학 그룹(명시적이진 않았지만 이렇게 묶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에 속해 있었다고 자각하는 일종의 '내부자'로서 그런 부분이 지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잉문학도들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맹목적인 지적 권위에의 추종으로 인문학에 빠져들지 않았다(혹시나 있을 오해를 방지하자면 뽀삼 님이 그렇게 쓰거나 생각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 붐은 나름 절박한 문제의식, 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 내가 서 있고 싶은 곳은 아무 곳도 없다'라는 그런 의식에서 출발했다. 주로 인서울 대학 출신이 많은 우리는 은밀하게는 '수능 아닌 것에 과한 지식'에 대한 열망을 정신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힘겹게 입시교육에서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두기 위한 '냉소주의적' 태도를 보여왔다(논술 붐도 여기에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상으로 약간의 자유를 얻으며 입학한 대학, 그러니까 이제는 짧든 길든 내가 원하는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던 대학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은밀히 습득해온 '진보적' 지식에 대해서 선배들, 특히 그럴 관심이 있을 법하기도 한 운동권들은 큰 관심은 없었고, 게다가 운동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전체주의적, 남성적, 폭력적 등등)도 공유하고 있었고, 이런 오해를 인내를 가지고 불식시켜줄 선배들은 판을 떠나던가 형성된 그룹의 활동 내부의 문제에만 집중하던가 새내기를 조직해내려 해도 이들과 접속할 만한 대학 내 기층조직(과반이나 동아리 공동체)과의 접촉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우연히 그런 조직이 남아있는 조직에서의 간헐적 수혈을 통해 집단을 굴리고는 있지만 그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여기서는 차지하고...여튼 그런 조직에 있지 않았던 나 내지 우리로서는 '운동권'은 우리가 있고자 하는, 있을 수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취업이나 고시 역시 입학의 승리감 내지는 안도의식에 취한 새내기에게는 아직까지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거기로는 절대 가고 싶지 않아' 또는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직은 시간이 남았어'는 식의 사고가 다른 길을 모색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어떤 친구들은 아카데미의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교육 제도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이는 만족스러운 선택이 아니었고, 이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뽀삼 님 표현에 따르면 "제1세계에서 직접 도래한 지적 권위"자들의 번역서가 나오기 시작했던 출판 시장과, 사회운동과 접촉에 실패했고 오히려 이 실패를 1989~91년을 핑계삼아 자신의 용기있는 지적 결단으로 역전시켜 쥐알만한 한국 담론 시장에서의 위치를 쟁취해냈지만 아카데미에의 취직은 실패해 물적/상징적 자본을 보충할 학생들을 찾아헤매던 지적 한량 내지 양아치들이었다. 우리는 그리고 이 떡밥을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좀더 세심해 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이 떡밥을 물었다는 것이 그들과 같은 색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이들 역시 말만 현란하지 '우리가 원하는 자리'(물론 우리가 그 자리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으면 방황도 안 했겠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앞서 약술한 식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기에 우리는 이 바닥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너무 없었고 세상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사회경험'이 없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론적'으로 수행되었는데 그때 표적으로 등장하게 된 게 '노마디즘'식으로 수용되고 있던 들뢰즈와 가타리였다. 그들의 사상이 가진 내재적 성격에 대한 젊은이들의 비판은 이론적으로 맞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그 동기 면에서는 한 때 '선배'로 보였던 사람들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했다.
가라타니의 유아론 비판과 지젝의 들뢰즈/가타리(더 얹자면 레비나스) 비판이 잉문학도들의 지적/실존적 준거로 활용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져 있다. 이렇게 '무엇을 공부하는가'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선배들에 대한 비판, 이들을 어느 정도는 따랐던 우리가 헛짓을 한 게 아니냐는 불안이나 후회, 그리고 더 저변에는 '이제 나 또는 우리로부터 새 세계를 시작하겠다'는 야심이 있다. 이 야심이 자아 과잉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누가 이렇게 주체로 서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또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이런 경향 역시도 어떤 (그리 건강하지는 못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선배들과의 만남 내지는 종속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점을 주의깊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바다 건너 저 멀리로는 지젝이 있겠고, 보다 가까운 곳에는 유사-들뢰지앵들과는 달리 조금 딴 짓을 하다가 아주 늦게나마 이 바닥에 뛰어든 또다른 386들이 있다. 그 뒤늦게 도착한 386들의 의도 자체는 지금으로서는 그 전의 386들보다는 순수해 보이고 다른 지평을 열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들이 결국 사회와 후배들에게 행하게 될 실천적 결과는 앞선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 같다는 게 내 짐작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한번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우리가 이들의 말(지젝이든 뒤늦은 386이든)에서 매우 많은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되지 않나 싶다. 이들이 말 하나를 던지면 우리는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주변 모든 것에 적용한다. 사회문제분석, 한국정치분석, 친교관계, 애정관계, 조직논리 등드르등등등. 이런 과잉은 누군가들에게는 모든 대상들에 대한 무맥락적 접근으로서 자아과잉, 그저 '자뻑'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겠다만, '학생'으로서 용서될 수 있는, 아직은 덜 익었고 덜 익었기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그런 '건강한 의지'로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지젝이나 뒤늦게 도착한 386들과 어긋나는 지점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하고 앞으로 가질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아마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한윤형이 이 포스트(http://yhhan.tistory.com/1167)에서 자신에게 했던 지적을 우리의 위치에서 다시 상기해 보는 게 유용할 거 같다. 솔까말 주변의 학습력을 보면 내가 여기저기서 반 장난 섞어 '선생님' 소리를 벌써부터 듣고 있는 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다른 게 있다면 '지식'의 양이나 질보다는 '욕망'의 문제일 것이다. 이런 기껏해야 천명도 될까말까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정, 그 인정이 정말 쓰잘데기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고서도 결국 달랐던 것은 지적 능력이 아닌 관심과 욕망이었다는 것을 알아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런 욕망의 다름이 지적 능력의 우월보다는 딱 돋보이지는 않지만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그 의미를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 노력을 여기에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용기란 단어는 나랑은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정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다른 이들 못지 않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 필요한 덕목으로서 쓰여야 한다.
이게 일단 내가 잉문학도로서 자기긍정의 시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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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뽀삼님 블로그에서 게슴츠레님이 (스스로도 조금은 게면쩍어 하셨던 것처럼) '잉문학도'를 졸업하신 것처럼 쓰셨던 댓글을 보고 받은 느낌은 혐오감이었습니다. 뭐랄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글에서 스스로를 '잉문학도'로 칭하기를 꺼리지 않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뽀삼님 블로그 글에 달렸던 댓글에서는 이미 '잉문학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끝내신 것처럼 제3자의 위치에서 '잉문학도'를 대상화해서 말씀하시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보였다랄까요. 하지만 이 글을 보고 나니 제가 게슴츠레님에 대해 깊게 오해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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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여전히 그 '잉문학도'가 누구를 가르키는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게슴츠레님께서 '배설'을 통해 묘사하신 대학 입학 후의 여정이 '잉문학도'의 전형인가요? 사실 '잉문학도'는 자조와 자만이 묘하게 뒤섞여있는 욕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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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자조 자만 욕설 다 맞는 말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내용이 꼭 없지 않지 않을까요.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말은 전략이신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라면 좀 쇼크군요. 나름 묘사를 시도했는데 모자랐나 봅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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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풀님의 리플을 받고 포스트를 다시 읽고 주변인들과도 이야기을 해보았습니다. 혼자 고민이나 여럿이서 대화를 적게 한 주제도 아니었고, 또 지금 시점에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하기에 정말 풀님말대로 자족과 자만이 묘하게 섞인 불평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지금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는 이 텍스트가 자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성격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불편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이 포스트가 그런 자전적인 기술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러한 자전적 성격 역시도 일반적인 내용을 아예 담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별로 신통치 않으실 수 있겠지만 이 포스트 역시 그런 경우 같구요. 생각이 다르시다면 어쩔 수 없구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첫번째 리플로 미루어봤을 때 풀님이 하시려늠 말씀이 정말 뭔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뭔말인지는 대강 알겠는데 동의할 수가 없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대강 짐작해서 쓰는 건 무례한 일인거 같고 풀님이 본인의 생각을 좀더 명확히 밝혀주셔야 뭐라고 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말 뒤에 숨겨진 욕망에 대란 징후적 독해가 아닌 저의 말들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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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군요. 나중에 휴가 나오시면 직접 뵙고 이야기하거나 하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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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저도 그쪽이 적절할 거 같습니다. "자족과 자만이 묘하게 섞인 불평"이라는 혹평을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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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데 "자족과 자만이 묘하게 섞인 불평"이라고 한 적은 없고요, 다만 '잉문학도'라는 말 자체가 "자조와 자만이 묘하게 섞인 욕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몇 마디 더 덧붙여두자면, 저는 게슴츠레님의 '잉문학도'라는 개념을 매개로 한 고민이나 성찰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게슴츠레님께서 뽀삼님의 글에 기대 스스로를 '잉문학도'로 (재)규정화 하는 방식이 신기했을 뿐입니다. 이때의 '잉문학도'는 제가 위에서 받아들인 '잉문학도'의 의미와 다를 수 있겠고요. 아무튼 저는 제 주변에서 '잉문학도'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는 사람을 게슴츠레님 외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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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뭐랄까요, 이건 아무래도 제가 잘 알지 못하는 게슴츠레님과 뽀삼님의 만남에서 비롯된 다른 맥락이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 뽀삼님의 글만으로는 그 '잉문학도'로 호명된 자들이 누구인지 상당히 애매한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 게슴츠레님께서는 처음에는 '잉문학도'들을 '그들'로 대상화 하다가도 어느새 이 글에서는 '우리'로 지칭할 만큼 '잉문학도'의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게슴츠레님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뽀삼님의 글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잉문학도'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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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이나 자조나 불평이나 욕설이나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표현이 좀더 강렬해진 것 빼고요. 그리고 고민을 폄하하든 말든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폄하도 독해의 한 방식일 수 있겠고요. 다만 제가 참 곤란하다 싶은 건 풀 님이 내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자신의 인상을 달아주셨다는 겁니다.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이유는 알고 들어야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흥미로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그냥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되지 왜 욕설 운운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잉문학도가 누구들인지 모르겠다 내지는 설명이 부족랬다 싶으면 그냥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되지 왜 욕설 운운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뭐가 풀님이 말씀하려고 하시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네요. 이 포스트에 내용이 없다는 건가요 잘 이해가 안 간 다는 건가요 이해는 가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건가요 동의는 안 가는데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는 건가요. 불필요한 오해를 하기에 앞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이해가 저에게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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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격렬하신 것 같은데 저로써는 좀 황당하네요. 왜 '잉문학도'라는 말을 '욕설'로 여긴다는 제 말을 게슴츠레님께는 게슴츠레님이나 게슴츠레님의 글을 '혹평'하거나 '욕을 먹'이는 것으로 받아들이시나요? 예로들어 '잉통령'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제가 그 '잉통령'이라는 단어를 욕설이라고 생각한다 칩시다. 그런데 스스로를 '잉통령'이라고 부르거나, 스스로를 '잉통령'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으면 "어랏, 어째서 저 사람은 스스로를 '잉통령'이라고 하는 것이지?"라고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어딜 봐서 그 사람을 욕 먹이는 건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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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기능 외에도 스스로와 적어도 자신과 몇몇 주변 사람들, 뭔가 세상을 위해 좋을 일을 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 싶어서 썼던 포스트에 욕설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리플을 보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도 이 포스트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변명이든 반박이든 뭐든 말을 달아야 뎄다 싶었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풀님의 의견을 정확히 듣고 이에 대해 제 답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따로 만났을 때 얘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풀님 말씀에 동의를 한 것은, 아무래도 쿨타임을 가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였습니다. 앞으로 다른 변이 달리지 않는 당분간 이 포스트는 크게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욕설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의심과 함께 읽히겠지요. 다만 그런 아쉬움으 감수하고서라도 만나서 얘기하는 쪽을 택하는 게 좋겠다 싶었던 이유는 이것보다 풀님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세부사항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것보다는 다음에 뵐 때 풀님의 전체적인 총평과 감상을 들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웹상도 상관없고 솔직히 저는 그쪽이 좋긴 하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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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이나 궁금하게 생각한 것을 나름 표현 한 것 같고, 그러한 저의 코멘트가 논의를 이어나가기에 합당하지 않다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로써는 어찌할 수 없겠습니다. 정 뭣하시다면 저의 코멘트를 포함하여 싹 다 지우셔도 좋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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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잉문학도란 말은 제가 오며가며 쓰기 시작했고 뽀삼 님이 잘 정리해주셨지만 저는 그 규정이 좀 포괄적이고 외재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쓴 포스트입니다. 이는 뽀삼 님이 하신 말의 부정이라기보다는 해당 포스트 리플 교환과정에서 뽀삼님이 잉문학도 입장에서 자기 역사들을 써보는 게 어떠겠냐고 하셔서 한 번 기술해 본 거고요. 따라서 뽀삼 님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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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부분은 굳이 뽀삼님과 사적으로 나눈 대화의 맥락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이 포스트 자체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사적 대화를 참조해야만 읽을 수 있는 그런 포스트를 남들보라고 올린 거면 그거야말로 욕설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전파낭비겠죠. 이 포스트가 그렇게 읽히셨다면 이것 역시 이전의 혹평 못지 않게 어떻게 말씀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부분이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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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확인해보니 위 포스트의 소제목이 '잉문학도' 였군요! 그래서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제가 '잉문학도'를 욕설이라고 했을 때는 해당 텍스트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잉문학도'라는 단어 자체를 가르킨 것이었습니다. 왜 이 대화가 엇나가는지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네요ㅡ,.ㅡ ㄷㄷ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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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게슴츠레님 글을 가지고 욕설이라고 한게 아닙니다! 이건 뭐 게슴츠레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해하셨을 법도 하네요ㅎㅎ 그런게 아니에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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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 차지하고 지금 상황에서 이것 하나만 묻겠습니다. 풀님이 처음에 하신 게 지금 말하시듯이 '어라 왜 이런 욕을 하지? 궁금하다'는 호기심입니까 '애매하기 짝이 없는 욕이나 하구 있구만'이라는 비난입니까. 만약 전자라면 처음부터 풀님이 이를 명확히 밝히셨습니까? 그건 그렇다고 쳐도 포스트를 욕설로 판단한 근거를 밝혀 주셨습니까? 그냥 제감정을 드러내보면 말 그냥 픽 던져놓고 가셨으면서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요란이냐'는 식으로 대처하시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황당합니다. 욕을 하려면 욕하시고 나중에라도 욕한 이유를 들려주시면 될 일이지 아 그건 욕이 아니었는데 라고 하시는 건 뭡니까. 물론 제가 과독한 것일 수 있죠. 하지만 풀님 리플이 그럴 여지를 준 것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애초에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황당하다고 하시면 저도 황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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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문학이라는 말의 사용동기가 단어 자체든 포스트 자체이든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단어를 받아들이려고 쓴 포스트니까요. 지금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풀님의 진의를 저에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그 리플이 어떻게 읽힐 수있는지 (저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어떻게 주로 읽힐지에 대해 좀 생각해주시고 그 다음에 풀님의 말씀을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좀 쿨타임을 가졌으면 합니다. 감정 드러낸 부분들에 혹시나 거슬렸다면 죄송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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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격양되신 것 같으신데 잠시 좀 릴랙스 하시고요, 저의 두번째 리플 때 부터 대화가 영 어긋나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말씀하신대로 저의 두번째 리플을 살펴보면 제가 그냥 말만 픽 던져놓고 간 감이 없지 않고, 이로 인해 오해의 빌미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 관심은 게슴츠레님의 '잉문학도' 텍스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잉문학도'라는 말을 받아들이시는 게슴츠레님의 태도에 있었고요, 게슴츠레님의 첫번째 답변 리플때부터 뭔가 대화가 어긋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있어 직접 대면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3번째 리플을 그렇게 달았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게슴츠레님의 댓글, "알겠습니다. 저도 그쪽이 적절할 거 같습니다. "자족과 자만이 묘하게 섞인 불평"이라는 혹평을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를 보고나서, '어랏 나는 게슴츠레님의 글을 '자족과 자만이 묘하게 섞인 불평'이라고 하거나 혹평하려던 것이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셨나보다 싶어서 제 진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게 된 것이지요. 그 뒤로 이어진 게슴츠레님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왜 이 분이 이렇게 반응하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뿐이다가, 다시 한번 텍스트를 확인해 보고는 게슴츠레님이 제가 두번째 리플에 쓴 '잉문학도'를, 게슴츠레님의 글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제가 파악한 전모인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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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잉문학도'라는 말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저나, 이를 나름 적극적으로 수용하시려는 게슴츠레님 사이에 어떤 극명한 의견/태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다음을 기약하고 싶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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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문학'이라는 말의 사용동기가 단어 자체든, 포스트 자체이든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거듭 리플들을 읽어보아도, 제게 줄기차게 요구하시던 일정한 해명에 대한 요구는 그러한 오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것 아닌가요? 게슴츠레님께서 계속 댓글을 다시게 되었던 이유는 제가 부당하게,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게슴츠레님의 글을 '욕설'로 폄하했다고 여기셨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셔서가 아닙니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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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그런데 태도를 욕설로 보는 것이 내용을 욕설로 보는 것에 비해 더 위로가 되는 일 같진 않군요. 내용이 아니라 제 태도만 보셨다면 아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글의 내용을 문제시하지 않고 글쓴이의 태도를 문제시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는 풀님은 그 단어에 모종의 반감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그거 쓰는 걸 보고 그 단어를 문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제가 그 단어를 어떤 의미에서 받아들이고 의미있는지 말하고자 한 포스트 리플에서말이죠. 그냥 저의 말에 답한 게 아니라 본인 말씀을 하시고 간 거군요. 거기에 본인의 의미에서의 개념 규정에 비추어 제 태도도 의심하신 거구요. 그렇기 때문에 단어의 주관적을 넘어 객관적 의미를 밝히려는 글에 자조 자만이라는 주관적 맥락에서 단어를 사용해 욕설이라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니냐는 대답에 다시 질문으로 답하는 리플이 달린 거구요. 이제 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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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잉문학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쓰는 사람이 그에 대한 포스트를 썼는데 그 단어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글과 긍쓴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축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납득이 어렵습니다.그리고 의견 차이에 대한 대화라면 저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이 포스트의 내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요. 이제 풀님 턴이시니 오프든 온에서든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사실 대화가 이렇게 이어져나갔어야 맞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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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하면 저는 저의 태도에 대하누비판이 포스트의 내용없음을 가저아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풀님은 그게 가능하셨다 생각하신 것 같으니 문제제기 방법론 자체에 대한 대화를 나눠야 될지도 모르겠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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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듯이 쓴 감이 있는데 미안합니다. 표현을 가다듬기에는 댓글작성환경이 별로 좋지 않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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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이쯤 되면 저로써는 더이상 별로 할 말이 없군요. 발을 헛디뎌 무슨 개미지옥에라도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흡사 술자리를 가지면 가끔 게슴츠레님과 저의 대화가 끝없는 평행선을 그어나갔듯이 말이죠. 이게 무슨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거랑 비슷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게 들어야 할 말이 있으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온에서든 오프에서든 다 털어놓아 드리지요. 그런데 역시나,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좀 있어서 온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고요, 나중에 오프에서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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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사태가 명료해 보입니다. 대화도 나름 난항이 있었지만 어떤 주분이 문제인지 명확해진 것 같구요. 상황을 추상화시키지 마시고 차근히 다시 복기해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만약 지금 남은 리플들에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시겠다면 다시 만나서 다른 얘기를 해도 서로 별 의미가 없을 거 같군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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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이 포스트를 읽는군요. 저는, '자서전적 발제'에도 그랬듯, 일단은 딱히 이론적인 입장이나 '분석'을 넘어서 비슷한 시대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살았던 (현재진행형인)삶의 기록으로 읽힙니다. 문학도의 시선이라면 문학도의 시선이라고 해도 좋고, 따스한 시선이라면 따스한 시선이라는 말도 좋겠지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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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서실 그 의미가 가장 적절항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