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88만원세대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2/14
    학생운동의 종언, 혹은 부활의 기회(2009)
    닉네임

학생운동의 종언, 혹은 부활의 기회(2009)


*<고대문화> 2009년 10월 97호에 축약편집본으로 기고

 얼마 전, 2009년 9월 6일에 방송된 <개그콘서트> 10주년 특집에서는 현재 활동 중인 캐릭터들과 한때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들을 섞어 인기 코너 [봉숭아 학당]을 꾸몄다. 개그맨 박성호의 ‘운동권’ 캐릭터도 그 추억의 캐릭터들 중 하나였다. 흰 와이셔츠에 빨간 띠를 이마에 묶고 "선생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대관절~[회마다 달라지는 주제의 내용]굽쇼? 그렇다면 [앞서의 내용을 억압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내용]한단 말씀이십니까! 정부는 [앞서의 내용을 수정하라는 요구]하라! 하라!"식의 유행어를 만들었던 캐릭터. 나는 이 캐릭터를 보며 추억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웃을 수 있었지만, 좋든 싫든 근 몇 년간 대학에 살면서 학생운동의 흔적들을 보고, 또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입장에서 처음 그 캐릭터를 본 중학생 시절과는 달리 갑자기 떠오르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런 감회와 고뇌가 반반 섞인 감상을 기회로 나는 지금껏 ‘학생운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해왔던 고민과 대화들을 종합해 ‘학생운동의 종언’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테제로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종언’테제의 정식화의 1차적 목적은 오늘날의 학생운동, 보다 넓게는 ‘학생사회’가 처한 상황과 그렇게 된 원인들을 간략하게나마 다뤄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1차적 목적보다 더 우선적인) 2차적 목적은 그렇게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도 학생사회 내 다양한 집단들이 자폐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는 소위 웹에서 떠도는 “20대 개새끼론”이 가리키는 탈정치적 다수 이외에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게도 해당한다)을 막고, 정치적․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무언가가 행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를 한 번 모색해보는 것이다.
 나는 나 홀로 이런 중차대한 문제들에 완전한 정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이런 시도가 학생운동과 학생사회의 보다 많은 가능성들을 논의하고 실험하는 데 있어 유효한 출발점이 되리라는 것은 믿는다. 또한 나는 운동권뿐만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들의 이름과 얼굴이 박탈되고 그저 욕구만을 가진 몸뚱아리라는 추상적 개인으로 환원되는 시대적 경향 속에서 모호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 일반'이라는 범주를 독자로 상정했다 이런 문제의 중차대함과 독자의 폭넓음은 글쓰기를 어렵게 함에도 불구하고 글로써 무언가 공익에 기여하고 싶은 이에게 있어 피해갈 수 없는 과제인데, 중요하지 않은 문제면 굳이 쓰고 읽을 필요가 없으며, 제한된 이들만을 포함한다면 그 글의 목적은 이미 ‘公익’과는 다른 무엇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와 더불어 특정 개인들은 현실에 주어진 과제에 맞서 이를 보다 명료하게 문제화하는 도전자는 될 수 있지만, 정답을 적어내는 해결사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답의 제출은 ‘나’가 아닌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답을 제출한다기보다는 함께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할 ‘우리’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나’로서 그렇게 글을 시작해 본다.

‘학생운동의 종언’과 그 징후들

 우선 종언이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학생운동의 종언’이란 단순히 (넓은 의미에서의) 운동권 학생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 활동하고 있는 운동권은 물러 터져서 ‘진정한 운동권’이 아니라는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또한 빡빡한 취업현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시간을 희생해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전개하려는 노력들이 죄다 ‘잘난 체’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간단히 말해 ‘종언’이란 한 시대(80년대에 절정에 달한)의 한국 사회의 대중운동을 주도했으며 또 대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실존적 질문으로 다가왔던 어떤 상징적 권위의 조락 혹은 공감의 폐쇄를 의미한다.
 개콘의 ‘운동권’ 캐릭터는 박성호 개인의 악의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이런 종언의 징후에 불과하다. 이 캐릭터는 현재 대학과 그를 포함한 한국 사회에서 학생운동의 행위자로서의 ‘운동권’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운동권’은 선생님이 들고 나오는 건 말이 되든 안 되는(억지일 경우가 더 많다) 무조건 ‘까고 보는’ 캐릭터이다. 운동권은 여기서 이념이나 정책적 지향같은 실질적인 정치적 주장은 비워진 채로 과장된 어투와 몸동작, 그리고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맨날 요구만 한다(혹은 ‘떼만 쓴다’)’ 식의 일련의 특징들로서 정의된다. 현재 대학가에 있는 운동권들이 실제로 이런지 아닌지 ‘실증적 사실’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캐릭터가 모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수만도 아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상징적 사실’이다. 무대의 일은 허구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무대 역시 현실의 부분인 이상 단순한 ‘구라’로 넘겨 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때로는 무대가 현실의 진실을 보다 투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종언은 굳이 누군가가 입아프게 말해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다. 오늘날 대학가를 종종 들리는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종언의 징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언은 학생운동이 학생들 모두에게 경멸당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몇몇 단과대, 예컨대 주로 인문캠퍼스의 경우, 학생운동은 학생들에게 경멸당하기는커녕 충분히 존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존중’은 종언의 반증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이다.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은 더 이상 마땅히 요구되는 사회적 의무라든지, 거부하더라도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윤리적 문제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이제 학생운동은 다른 동아리활동(스포츠, 음악, 봉사활동 등)과 딱히 구분되지 않는 개인적인 취미활동 중 하나로서 ‘취향’의 문제로 간주된다. 누구는 축구를 좋아하고, 누구는 피아노를 잘 치고, 그러면 시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학생운동은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상징적 힘보다는 그저 ‘관용’의 대상으로서 받아들여진다. 물론 운동권의 대자보 앞에 멈추고 팜플렛을 선뜻 받아드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지만 그건 그저 ‘들여다보는’ 것이지 ‘읽는’ 것은 아니다. 활자들은 눈을 통해 대뇌에 지각되지만, 어떤 구체적 행동이나 정치적 논쟁, 독자의 결단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얘는 이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뭐’ 혹은 잘하면 ‘흠 (나는 아니지만) 이런 얘들도 사회에 있긴 있어야지’하는 ‘존중’만을 이끌어 낼 뿐이다. 운동권의 활동이란 결코 나 또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로서, 건널 수 없고 건너서도 안 되는 ‘거리’가 상정되어 있다.
 그러면 지금과 달리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은 모두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운동권과 심리적 거리를 가진 이들이 없었단 말인가?{그런 낭만적인 신비화는 우리가 피해가야 할 함정인데 이는 결국 종언을 그저 학생들 탓으로 돌림으로써 ‘무관심 책임론’, 나아가 속칭 ‘20대 개새끼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20대 개새끼론이 맞다면 스스로가 20대라 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80년대에도 운동권과 거리를 둔 이들은 있었을 것이고 또 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운동의 전성기와 종언, 각자의 시기에서 ‘거리’는 같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주로 80년 광주에의 부채감을 구심점으로 형성된 학생운동이라는 권위 앞에서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개인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이유’가 필요했다. 이는 ‘학생운동’이라는 이름이 대학생들 개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피해갈 수 없는 관문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여 ‘운동권-임’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면, 어떤 사람은 ‘운동권-아님’으로 스스로를 정의해야 했다.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 ‘운동권’이라는 말을 우회하는 것은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이다. 반면 오늘날 대학생들의 정체성 형성, 주체화가 과연 학생운동의 권위를 경유해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보다 오늘날 대학가에서의 자아는 학교 내의 학점, 교환학생 또는 학교 밖의 학원, 시험, 자격증 등을 통한 스펙의 무한축적으로서의 ‘자기계발’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참여든 거부든 어떤 대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해야 했던 선배들과 달리, 우리는 스펙을 조금씩 모으고 갱신하며 이상적 자아에 조금씩 다가간다(고 믿는다). ‘대학생의 수험생화’라고 할 수 있을 주체화 양식의 변화 속에서 운동권과의 거리는 그저 ‘거리’일 뿐이지 정체성 형성에 하등 영향을 주지 않는다.
 2008년과 달리 2009년의 고려대에서는 ‘종언에도 불구하고 왜 비권이 아닌 운동권이 총학생회에 당선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종언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학생들의 주체화 양식을 설명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다시 강조하자면, ‘학생운동의 종언’은 운동권에 대한 극단적 혐오와 반작용으로서 비권에 대한 전적인 선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운동권과 비권, 학내 정치 세력들을 대하는 학생들의 표준적 태도는 매우 양가적이다. ‘운동권’을 만나면 ‘타인에 대한 존중 없이 자기 입장만 강요한다’고 말하고, ‘비권’을 만나면 ‘좀 생각없어 보인다’라고 말한다. 이런 양가적 입장은 말의 내용에서 볼 때에는 일관성이 없는 모순적 태도이지만, 그 말이 발화되는 위치에서 볼 때에는 ‘운동권이든 비권이든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고 싶던 간에 어쨌든 나랑은 크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항상 ‘거리’를 두고 있다는 데에서 일관성을 가진다. 학생들은 운동권이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뜨거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운동권이 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는 차가운 태도를 견지한다. 더군다나 오늘날 대학에서의 지배적 주체화 양식인 ‘자기계발’에 요구되는 시간이라는 게 안전선이 고정되지 않았기에 무한에 가깝다(다다익선이라는 끔찍한 요구)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런 데 필요 이상의 관심을 쏟는 것은 개인적인 ‘낭비’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년에 있었던 운동권의 당선은 학생들이 다시 운동에 관심을 보였다는 데에서 비롯된 ‘필연적’ 사태라기보다는, ‘생각없어 보인다’라는 우려가 좀더 커진 데에서 비롯된 ‘우연적’인 사태에 속한다. 학생운동의 종언이란 운동권에의 ‘혐오’보다는 ‘무관심’에 가깝다. 이는 학생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에게는 보다 끔찍한 것인데, 혐오의 경우 사라지는 것이 단지 ‘긍정적 관계’라면 무관심의 경우는 ‘관계’ 그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종언의 (책임이 아닌) 원인들, 그리고 학생운동의 역사성

 그렇다면 종언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갈리는 것 같은데 ‘운동권 자멸론’과 ‘무관심 책임론’이 바로 그것이다. 거칠게 요약해 운동권 자멸론이란 ‘운동권들이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이념을 고수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제 무덤을 팠다’는 것이고, 무관심 책임론이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이기적이고 탈정치적인 대학생들이 학생운동이 몰락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들의 문제점은 마치 ‘학교’가 사회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독립적이고 초월적인 공간인 양 간주하고 개인이 자유의지의 소유자이기 이전에 그가 속한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정에서 죄과를 따질 때 개인들의 인격적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건의 인과관계가 제대로 분석되고 나서야 공정한 재판이라는 게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사태의 인격적 책임을 묻는 것은 적어도 이 글의 관심사는 아니다. 이 글의 관심은 근시안적인 문제제기를 벗어나 어떻게 종언이라는 사태가 초래되었는지 분석해 보는 것이다.
 종언의 원인으로서는 우선 한국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조건의 변화가 일으킨 대학생들의 주체화 양식의 변화가 있다. 먼저 경제적 변화로는 80년 후반부터 잠재적으로 진행되어 오다가 97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이 있다. 80년대 후반 가족임금까지 보장되던 정규직이 줄어들고 고용조건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노동구조가 변화하면서 청년층의 취업경쟁이 과열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이후 그리 낯설지 않다. 허나 신자유주의는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식의 고용불안정 이상을 의미한다. 푸코가 후기 강의록들의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말했듯이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좁은 의미의 ‘경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주체화 양식의 변화를 포함한다. 신자유주의 통치성 아래에서 개인은 학교나 사회의 ‘규율’에 의해서 훈육되지 않는다. 사회나 자본은 더 이상 양질의 노동력을 훈육할 비용을 치르지 않으며, 그 비용은 개인들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자기계발’이 자본의 주요 노동 재생산 전략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서동진의 다음과 같은 말을 참고하라. “그러나 푸코의 미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굳이 상세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개발독재 기간 동안 한국 경제를 주도했던 국가의 경제적 개입 방식이 종결되고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경제기획원 같은 부처를 대신하여 지식경제부 같은 부처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을 때, 학교사회에 속박된 획일적인 학생이 아니라 자기 학습권을 행사하며 자기주도적인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정책이 들어설 때, 실업(자) 대신에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이란 담론이 대신할 때, 근로자나 종업원이란 말 대신에 역량을 갖춘 인재란 용어가 그 자리를 메울 때, 소득의 분배를 통해 자기의 경제적 생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테크’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할 때, 이력서가 아니라 스펙을 완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이 모두는 미국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지식, 제도, 정책, 법률, 행위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서동진,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 미셸 푸코의 통치성과 반정치적 정치의 회로」, 문화/과학 2009년 봄호 (통권57호), 331쪽.) 보다 자세한 논의는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박사 논문, 2005, 출판사 ‘돌베개’에서 단행본으로 근간 예정)를 참고하라.} 앞서 말한 ‘대학생의 수험생화’는 ‘이기주의’같은 모호한 심리 분석보다는 이런 (넓은 의미에서의) 경제적 맥락에서 볼 때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졸업장 하나로 평생직장을 얻는다는 건 옛말이 된지 오래다. 학교 수업에서 배우는 지식과는 별도로 학원을 다니고 수험서를 풀며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관리하고 계발해야 한다. 오히려 학교 수업은 대충 듣는 쪽이 시간을 아끼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에게 이런 변화는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왔으며, 결과적으로 이런 부담은 대의나 정치를 통한 주체화를 봉쇄하기에 이른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면서가 아니라 고시원에서 인강을 들으며 자신을 찾아야 할 형편에 놓인 것이다. 또한 90년대 이후 자율적이기보다 거대 자본이 제공하는 상품의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중문화의 확장 역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다양한 문화상품의 소비를 통해서 비록 많은 돈이 든다는 단점은 있지만 ‘자신만의’ (혹은 ‘자신만의 것으로 생각되는’) 취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학생운동을 경유하지 않고도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주체화는 정치가 아닌 경제나 문화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 두 주체화는 겉보기와는 달리 대립되기는커녕 오히려 상보적인 관계를 가진다. 평일의 공부의 스트레스를 주말의 쇼핑으로 해소하고, 고단한 시험공부를 MP3P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음악으로 위로하는 모습들에서 우리는 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정치 요구들이 억압되고 있는 사회에서 <학생운동의 융성(학생운동=대중운동)>과, 그 억압되었던 정치 요구들이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 보다 안정된 경로를 찾은 이후 <학생운동의 쇠퇴(학생운동≠대중운동)>는 단지 한국의 상황만이 아니라 세계적 상황이기도 하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대중들의 입이 봉해졌을 때 학생들은 대신 그 입이 되었지만, 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말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학생들이 굳이 정치적 대리인 역할을 맡을 사회적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학생운동=대중운동, 이 등식에서 등호는 두 항이 완전한 등가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상호의존·상호불가분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대중운동은 학생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재현해야 했으며, 학생운동은 다른 계층과 구별되는 학생 층 자신의 독특한 요구를 표명한 ‘학생’운동이었다기보다는 이런 대중들의 보편적인 요구를 재현하는 이름으로서 기능했다는 데에서 ‘학생운동’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 글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가 분명해 지는데 그것은 학생운동은 그 자신의 영웅적 의지나 내적 동력으로서만이 아니라 대중과의 사회적이자 역사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상징적 힘, ‘학생운동=대중운동’의 등식은 그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고 젊음이라는 인생의 한 시기에서 신비롭게 솟아오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종언이란 학생운동의 역사성에 대한 재확인 이상의 무엇이 아니다. 종언은 묵시론적 종말론이나 악의적 폄하와는 전혀 무관하다. 학생운동이 종언되었다는 것은 그저 주체화 양식이 변화했다는 것,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필요가 사라졌다는 것, 역사적으로 부여받고 있었던 과잉된 의미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아마도 등식의 한 항인 대중운동의 차원은 적어도 근대 민주주의 안에서는 영속적인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속적인 대중의 역량이 꼭 학생운동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보장도, 표현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세계사까지도 아니라 한국사 안에서만, 그저 햇수만 세어봐도 학생운동=대중운동이 ‘정상’적이기보다는 ‘예외’적 사태에 가까웠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생’ 자체가 독자적인 층을 형성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가능하게 된 등식의 성립이 역사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상황은 이상할 게 없다. 이렇게 학생운동이 예외적 시기와 같은 기능(대중운동)을 수행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등식에의 집착은 학생운동을 위해서나 대중운동을 위해서나 좋을 것이 없다.

종언의 너머 - 학생‘운동’에서 ‘학생’운동으로

 그렇다면 이제 우리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쓸데없는 운동일랑 접어두고 열심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험생활(“평생교육”이라는 악몽같은 말을 떠올려보라)에 전념하는 것일까? 하지만 ‘현실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실은 이렇게 존재해야만 한다’는 이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언을 마냥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일단 바닥을 찍어 보아야 한다. 종언을 피해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여기에서 좌절하지도 않으려는 이에게 놓인 선택은 아마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먼저 학생운동을 떠나고 오늘날 과거의 학생운동과 같이 보편적 해방이 재현될 수 있는 이른바 ‘오늘날의 학생운동’을 찾아 대중운동을 이어나가는 방법이 있다. 학생운동이 모든 인민의 평등과 자유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신했다면, 그것이 아예 막혀 있지는 않더라도 매우 힘들게 된 상황에서 는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도피이기는커녕 오히려 당시 학생운동이 가지고 있던 이상에 충실하려는 용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정쩡하게 학생운동의 형식을 떠나지도 못하면서 동시에 다시금 대중운동의 주도층이 되고자하는 욕심은 학생운동을 절대적인 것으로, 그리고 그것이 근거하고 있(다고 상상되)는 ‘젊음’이라는 시기를 특권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운동을 학창시절 추억거리로 삼기 위해 잠깐 하다 말 것이 아닌 이상 학생운동의 형식을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일찌감치 일생을 걸 ‘현장’을 찾아내는 것이 개인에게 있어서나 그를 필요로 하는 운동들에게 있어서나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뭔가 아직은 학생인 우리로 하여금 조금은 우울한 마음이 들게 한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생, 특히 고려대같은 소위 명문대 학생들은 결국 자본의 먹잇감, 미래의 기득권에 불과한 것일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아니오’라고 대답하기에는 종언의 징후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라고 대답하기에도 꺼림직한 것이 학생운동이 과거와 같은 메커니즘은 아니지만 대학생들이 소속감을 얻고 대중운동에 함께할 길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이 바로 두 번째 선택, 학생운동의 종언을 완전히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이를 부활의 기회로 삼아 학생운동 자체로 새롭게 발명해 내는 것이다. 부활은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부인과도 죽음에 체념하고 떠나보내는 애도와도 구분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전적으로 인정하나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껴안아 새 삶을 출발하는 행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학생운동의 부활을 위해 제언하고 싶은 것은 대학 내 제도적 멤버쉽, 일종의 ‘학생회 시민권’을 정식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언 이전 운동권이 ‘대세’였던 학생사회는 별다른 제도적 장치가 없이도 분파적 차이는 있지만 “압제에 대한 저항” 수준의 공통적인 ‘대의’를 중심으로 느슨하면서도 탄탄한 연대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지만 군부에서 민간으로 정권이 이양된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앞서 간략히 분석한 원인들에 의해 학생운동의 권위는 하강세에 접어들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공적 공간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자원 중 최소한의 공적 공간의 구심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학생회이다.
 비록 참여율과 소속감, 학교 당국에의 발언권 등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만 어쨌든 학생회는 전 학생들의 표결에 의해 그 대표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또 그에 해당하는 예산을 분배받는 대학 내의 제도적 기구이다. 이 기구를 기반으로 우리는 학우들의 소속감을 더 이상 기능하기 힘들게 된 ‘대외적 운동’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제도적 멤버쉽’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학생회를 스스로를 '(학교 밖) 권리의 요구자'로 주장하는 데는 익숙하나, '(학교 내) 권리의 책임자'로 생각하는 데 매우 서툴다. 하지만 학생회가 학외 대중운동에서 활용하는 발언력의 근거가 사실 학내 유권자들의 표와 그들이 지불하는 학생회 기금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학교 밖) 권리의 요구자'의 역할이 '(학교 내) 권리의 책임자'의 역할과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런 분리불가능성의 인식에서 두 역할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위계의 설립으로 비약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후자만이 강조될 경우 학생회는 단순히 학생들의 ‘조합’이나 심할 경우 세금 돌려주는 ‘동사무소’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만, 전자만이 강조될 경우 학생회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 자체를 침식하는 모순적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학생운동의 종언을 딛고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학생회에게 있어 ‘권리’라는 개념의 양면적 성격과 양자 사이의 어느 쪽으로도 환원불가능한 긴장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학생회의 두 역할 사이의 긴장이 지켜져야 함을 인정하더라도, 나는 ‘운동의 대의’가 작동하지 않게 된 현재의 정세에서 실천적으로는 권리의 한 면인 ‘제도적 장치’의 보충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상황이 암울하기는 하지만 아직 학생회가 최소한의 대표성과 예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언에 대처하기에 아주 늦지는 않았다. 학생회를 대외적 저항의 전초기지뿐만이 아니라 회원들의 권리가 실현되는 공적 제도로서 정초할 필요가 있다. 사회만큼은 아니지만 학교에도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생활공간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생존과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요구들이 상존한다. 자치활동을 할 공간을 얻지 못한 동아리나 소모임, 보다 전문적인 전공 수업이나 세미나를 진행하고 싶은 학부생, 알바에 바빠 공부할 시간이 없는 대학원생,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거나 지금과는 다른 생활양식을 실천해 보고 싶지만 딱히 이를 뒷받침할만한 조직이나 여유를 갖지 못한 이들 등등. 이렇게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필요들을 중심으로 학생회 시민권의 개념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국가의 관점에서는 고려되기 힘들지만, 개인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은 권리와 요구들의 실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식으로 학생회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회에 대한 수요는 중간고사 즈음 참살이길에서 스폰서를 도는 수많은 동아리들이나 고파스에 올라오는 벼라별 글들만 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학생회를 기반으로 도래할 새로운 학생사회를 학생‘운동’에서 ‘학생’운동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정식화해보고 싶다. 학생‘운동’이 학생 자신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의 대중운동의 특권적 표현이었다면, ‘학생’운동은 학생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따르는 필요와 곤궁의 독특함을 인정하고 학생들이 집단적 결정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과연 종언이라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람시의 용어를 빌어 말하면 지금은 기동전의 때가 아니니 진지전을 하자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방어적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런 매우 정당한 질문들을 기회로 삼아 ‘학생’운동이 ‘표밭 관리’가 아니라 ‘자율적 제도’로서 자리를 잡고, 학생회 시민권이 ‘지원금 쿠폰’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명확한 기본 원칙들이 세워져야 함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원칙들을 분명히 하는 데에는 보다 많은 토론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분명한 것 하나는 시민권의 방점이 개인과 조직들의 자족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대학 내 공적인 활동과 지적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술자리와 도서실을 벗어나는 ‘다른 삶’의 실험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회가 주관하는 주요 회의에의 형식적인 참여와 발언 정도가 아니라 각 개인과 조직들의 일상적 활동 자체가 ‘학생 사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차베스의 “자율적인 운동을 조직하라. 그러면 돈을 주겠다”라는 원칙은 이런 맥락에서 주요한 참고가 된다. 하지만 주로 영미권 언론에 의해 석유를 판 돈으로 인민의 환심을 사는 포퓰리스트로 매도되고 있는 차베스의 분배 정책은 올해 초 현 정권에서 논의된 생필품 쿠폰 식의 빈민구제책과는 같지 않다. 후자가 오로지 개인들의 생물학적 생존만을 지원하며 결국 정부와의 부채 관계를 형성하여 대중들을 탈정치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어진다면, 차베스의 분배는 자주미디어,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기술연구단체, 빈민들의 토지분배요구위원회, 노동자들의 기업의 자주관리운영, 여성·원주민·아프리카계 주민 등의 소수자들의 권리요구 단체 등에 지원된다. 기존에 축적된 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부를 생산할 능력 자체를 인민들에게 분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히로세 쥰, 「기본소득의 상하좌우 -운동 없는 기본소득은 소용없다」, 자율평론 29호, 2009, http://www.jayul.net/view_article.php?a_no=1398&p_no=1.}
 물론 베네수엘라와 같이 국가 레벨에서 진행되는 사업을 학교사회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으며, 차베스의 (레보위츠의 표현에 따르면)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가 완결된 것도 아니고 그에 많은 지적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아무리 바람직한 결과에 이르더라도 ‘학생’운동이 또 다른 위험을 안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보다 정직해지자면 이런 제안이 거의 완벽히 실현되어 대학 내 문화적·정치적 자치활동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지라도 이런 역량들의 증진이 학교 밖의 대중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전적인 확신을 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현재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학생사회에의 소속감과 학우들과의 연대감이라는 것이 어떤 공동체 의식이라기보다는 똑같이 3~400만원의 등록금을 납부한다는 소비자 의식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헌법,정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식의 평등의 이상이 여기에서는 “고액의 등록금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로 구현된다. ‘등록금의 평등주의’라 할 수 있는 이런 대학가의 암묵적이자 외설적인 공감대는 학내의 활동을 증진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특히 명문대의 경우, 학벌주의가 이에 맞물려) 이 활동들이 ‘여기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면 된 거지’식의 자폐적 성격으로 귀착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치명적 위험은 애써 ‘학생’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것보다 차라리 학생운동을 떠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하지만 극복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회 시민권을 등록금을 납부하는 학생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강사, 시설관리 노동자 등 학교를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삼고 있는 학생사회의 구성원으로 확장시켜 학생회에의 참정권과 사회권을 제공하는 것이 한 가지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단순히 외연의 확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학생회 시민권와 학생 사회의 질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에 고용되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와 그렇게 제공되는 서비스 상품들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소비자의 관계를 벗어나, ‘학생 사회’에서 함께 살아나가는 시민이라는 개념을 구호가 아닌 보다 안정적인 제도의 수준에서 정초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생산자(학교 당국[강사, 시설노동자]) - 소비자(학생)>의 경제적 교환관계를 <학교 당국 - 학생, 강사, 시설노동자>의 정치적 관계로 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몇 해 전 보건대 투표권에 대한 반대 담론들에서 드러난 학벌주의의 상징적 위력(등록금의 평등주의도 능가한)을 생각해보면 이런 급진적 제안이 순전히 이상적인 것으로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학벌주의의 해결은 그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의식개선 정도가 아니라 입시를 통해 신분이 나뉘는 한국의 교육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납부고지서와 입학증명서를 중심으로 학생회 자체가 자폐적인 경향에 골몰하게 될 위험이 크지만, 이런 위험은 일반 학생들과의 끈이 희미해지고 있는 종언 이후의 모든 학생운동들이 똑같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학생’운동이라는 제안은 ‘학생을 넘어선 학생회 시민권’이라는 비록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런 사태에 개입할 방법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는 이론적 공간을 열어준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주도(종언 이전)’나 ‘지원(종언 이후)’과는 다른 ‘학생’운동의 대중운동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
하지만 이런 불투명성은 제안의 적실성을 의심하게 하지만, 또 동시에 제안의 가능성 자체가 아직 완전히 소진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연대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주로 고려대에서 ‘운동의 멤버쉽’이 아닌 ‘제도의 멤버쉽’은 ‘고대공감대’와 같은 비권에 의해 접근되어 왔다. 그러면서 운동권 내에서 이런 ‘제도의 멤버쉽’은 유권자이자 납세자인 학생들이 누려야 할 사회권이나 학생사회의 소생을 위한 개입의 기회는커녕 단순히 학생들의 물질적 필요만을 채워주는 ‘복지’식으로 프레임화된 측면이 있다.{실질적으로 고대공감대의 정책이 그러한 것이었는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공감대의 행보에 대한 그런 인식들이 존재했었고 또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권과의 경쟁심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 복지? 중요는 하지...근데 그게 학생회가 꼭 해야 되는 건가?” 정도의 태도가 운동권들이 ‘제도적 멤버쉽’을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 되어 있다. 이는 운동권으로 하여금 결국 구조적 조건에 의해 초래된 ‘운동의 멤버쉽’의 약화를 더 많은 ‘운동의 멤버쉽’의 강변을 통해 메꾸려는 악순환적 전략을 채택하게 하였다. 다소 격하게 비유하자면 독에는 구멍에 뚫린지 오랜데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빨리 물을 집어넣어보자는 식으로 물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구멍은 점점 커지고 물이 빠지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학생운동의 책임은 아니지만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교 자체를 그저 ‘지나가는 곳’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꼭 ‘학생’운동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할 시급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학벌주의 역시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될 수 있는 집단적 소속감이라기보다는 나한테 도움이 되면 취하고 안 되면 버리는 식으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스펙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학생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데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지금 당장 ‘학생’의 입장에서 주어지는 온갖 과제와 불안들을 ‘홀로’ 해결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나 물론이거니와 비싼 돈을 내는 학교 당국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학생회에는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문턱에 서 있다할 시기에서 이런 홀로서기만을 경험한 개인에게 집단적 결정을 통한 문제의 해결, 연대라는 관념은 정말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제안들이 기만적인 것, 새빨간 거짓말로나 느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비록 문제의 최종적 해결은 되지못할망정 한 사람의 인생관을 규정할 수도 있는 이런 시기에 개입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아니 안타깝지 않은가? 게다가 이 기회에서 우리는 기존 운동 세력의 지분을 나눠받는 것만이 아니라 최종책임자로서 ‘운동’에 임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학생운동에 있어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제도적 멤버쉽의 정초는 단순히 전략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요청이 된다. 또한 꼭 학생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이 세상은 홀로 사는 것만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 집단적 결정을 통해 개인의 문제가 보다 더 잘 해결될 수 있다는 믿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