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부터 정확히는 오늘 아침까지 캐즘, 무한한연습, 구멍, 네오풀, 프리스티, 박가분, 나까지 포함해 7명이서 술자리를 가졌다. 이래저래 생각할 것들이 많은 술자리였는데 내용을 그냥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워서 기억이 나는대로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한 화두들을 정리해보겠다. 술자리는 그 자체도 즐겁고 많은 고민을 안겨 주지만, '술자리'의 백미는 이렇게 다음날 나눴던 내용을 곱씹는 데 있는 게 아닐까...생각하며 시작해 보겠다.
1.
최근 '이데올로기론'을 표방하는 일련의 글들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은 크게 두 가지 종류이다.
첫 번째는 이론 자체가 대상, 다시 말해 현실에 구애받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에 토대를 두고 이론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아닌, 미리 잘 정리된 체계를 상정하고서는 그 체계의 자리들에 알맞게 현실의 현상들을 사후적으로 분배(어떨 때는 '배당'의 느낌이 들기도)한다. '문제'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이런 입장에 대한 나의 위화감은 이 입장이 오만하다는 것보다는 그 진리성을 도저히 검증불가능하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 이론은 절대 패배하거나 좌절할 수가 없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공상에 그칠 위험을 감수하고 현실의 대상과 거리를 두고 나름의 체계를 구축하려는 작업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이 날 술자리에 참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이를 '철학의 특권'이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특권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아직 나에게 분명치 않다만 수긍이 되기도 했다). 현실이라는 개념 자체도 어떤 인식론적 입장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논쟁이 추가로 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한 추가 논변들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론이라는 문제설정을 조건짓는 현실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인 독백에 그칠 위험이 크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데올로기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동진 씨의 <자유의 위지 자기계발의 의지>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주로 1장 참고). 하지만 나는 이 작업 역시 이데올로기론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두 번째 불만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담론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80년대 후반 부터의 담론의 변화를 포함하면서 나름의 역사적 맥락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국 '자기계발'이라는 지배 양식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그친다.
나는 담론은 기껏해야 말장난이고, '현실'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거기에 속지 말고 진실의 영역인 물적 토대'만'을 분석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담론 분석이 현실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있고 이는 토대 분석이 제공해 줄 수 없는 인식을 획득하게 해주며, 더 정확히는 토대 분석에서 발견되는 인식을 더 명확하게 한다. 다만 내가 서동진 씨의 저술을 사례로 문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다고 담론 자체만 분석하면 마치 담론이 무매개적으로 곧바로 현실에 부과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정말 사태가 그러한가? 아직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지 못해 검증되지 않았지만 내 가설은 어떤 강한 내재적 논리를 가진 담론이든 그것이 현실에 놓일 때는 변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담론은 자신의 처녀성을 고집할 수 없다. 지배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담론을 거부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또 그것을 받아들일 경우에도 역시 담론 생산자들의 기획 의도에 맞게 사고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의 이해 속에서 수용한다. 지배자의 의도와 대중들의 사고는 결과적인 실천에서는 함께 갈 수 있지만 내적인 면에서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 담론은 그래서 항상 '오독'되고 그러한 한에서 구체적 실천으로서 기능한다.
이데올로기론의 지평 속에서 담론 분석이 다뤄야 할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 담론 자체만이 아닌 담론과 현실 간의 관계를 고려하기,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논리가 수용자들에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파악하기, 그리고 그런 과정이 어떤 실천들로 귀결되는지 살피기.
이런 두 가지 불만에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도출된다. 첫 번째 불만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땅을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과 두 번째 불만에서는 이데올로기를 숙고하는 데 있어 지배뿐만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자 사이의 관계를 포함해야겠다는 생각이 따라 나온다. 구체적으로 연구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진행해 나가고 싶다.
2.
이런 거친 생각에 캐즘 님께서 고맙게도 소중한 조언을 해주셨다. 크게 두 가지 경향, 1)대중독재 2)서발턴 연구와의 거리 또는 관계를 분명히 해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임지현 씨가 시작한 대중독재론은 이데올로기와 대중의 관계를 내재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윗 단상과 공통점을 가진다. 대중독재는 지배를 위에서 일방적으로 부과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하며 피지배자의 능동성을 긍정한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진태원 선생님의 임지현 비판은 좀더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중독재 시리즈를 직접 읽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가설 정도만 세우자면 대중독재의 문제는 지배의 기획과 피지배자의 열망이 '행복하게 만난 경우'만 조명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또 결과적 실천에서의 연루를 강조한 나머지 그 실천이 행해질 때 정말 대중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느냐 싶기도 하고. 즉 담론과 현실,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려를 하긴 했으되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뭐 나중에 확인해 볼 일이다.
서발턴 연구 역시 피지배자의 사고와 주체성을 주목한다는 데에서 윗 단상과 유사성을 가진다. 이 분야 역시 내가 판단할 계제가 안 되기는 하다만 파편적으로 접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이런 문제의식이 들기는 한다. 서발턴이라는 범주는 너무 대중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대중을 현실로부터 추상 혹은 증류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유명한 스피박의 Sati(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순장하는 인도의 관습) 분석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스피박은 이 사례에서 Sati의 숭고함을 찬양하는 민족주의 토착엘리트와 야만성을 비판하는 영국 식민주의자 사이에서 사라지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한다. 헌데 나는 여기서 스피박이 '민족주의'를 '엘리트'와 쉽게 등치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마치 민족주의같은 저열한 이데올로기가 서발턴이라는 순수한 주체와는 관련을 지니고 있을리가 없다는양. 인도사에 대해서 공부해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민족주의적 대중'이란 것은 있지도 않았던 건인지?
거칠게 정리하자면 지배와 대중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 대중독재는 '일치'만을 보고 서발턴 연구는 '불일치'만을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대중독재가 지배와 대중의 관계를 내재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서발턴 연구에 비해 장점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여튼 여기서의 논평은 좀 지레짐작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도 이 정도 얼개를 그려 놓고 차후에 공부할 날을 기약해 보고 싶다.
3.
그리고 또 고맙게도 무연 님이 '대중'이라는 범주를 몰역사적으로 상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셨는데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맹목은 내가 공부하려는 시기를 어찌 됐건 1930년대 이후 멀리 가야 1910년대 정도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되었던 것 같다. 또 고대나 근대나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몫없는 자는 항상 있다는 랑시에르를 읽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무연 님은 스피노자를 언급하며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대중이 등장한 건 멀리 잡아도 16세기가 아니냐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사실 스피노자도 『신학 정치 논고』에서 모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대중 범주를 몰역사적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주제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가설적으로라도 붙일 말이 없다. 대중 범주를 몰역사적으로 상정한다는 것이 이데올로기론의 이론적 기초를 정초한다는 데에서 제한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거나,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대중의 역사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 이야기되었던 것 같은데, 아우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건 정말 큰 주제같고 나에게는 너무 이른 고민인듯 싶다. 죽기 전에 한번 도전해 볼 기회가 있으면 행복하겠다마는...
이게 대강 캐즘 님이 자리를 뜨시기 전 11시 반까지의 상황이었고 또 다음 6시간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오갔다. 정말 고민스럽고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 이야기들이었는데 특히 구멍 님의 소녀시대와 성상품화나 국민국가의 위상과 생산양식 전화의 문제, 이행에 이어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화두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 부분들에 대해 나름의 생각이 있어 정리해두고 싶은데 일단 닥친 일들이 있어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기 2부로 미뤄둬야 겠다.
P.S) 어제 술자리의 소득아닌 소득 중 하나는 구멍 님의 음악추천이었다. 특히 다음 트랙이 취중이라서 그런지 정말 끝내줬는데 한번 옮겨 놓아본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