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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큰따옴표로 처리된 최저임금을 올리면 그 임금은 누가 주냐는 식의 트윗 인용을 봤다. 거칠게 요약하면 자본가도 살기 빠듯한 세상에 결국 그 몫은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걸 제 살 파먹기라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실제적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 다시 열을 낼 모순적인 대중에 대한 비웃음, 자신의 입장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행정, 자본, 정치 등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대중에 대한 비웃음이 담겨 있는 트윗이었다.
이런 류의 시각은 항상 불의와 억압에 대한 저항 담론 반대편에 크건 작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항 담론이 때때로 우습거나 무책임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책임지지도 건들지도 못할 문제에 대한 호언장담들, 피해와 상처에 대한 무조건적인 변호, 아는 것은 없고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쉽게 담론적 우위를 점하려는 공짜 정신. 이런 시각들에 비해 지배계급, 통치자 혹은 관리자의 입장을 나름의 이유를 가진 것으로 보려는 이런 시각은 좀더 세상을 넓게 보게 해준다. 세상은 무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값싼 분노보다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을 대면하려는 시각은 중요한다.
하지만 그에 기반해 남에게 던지는 조소는 가볍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런 "세상의 이치"가 있다는 걸 알고서도 주장해야만 해야 되는 일들과 입장도 있다. 차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이 조소는 합당하지 않다. 만약 '관리자의 입장'을 세상의 일부로 인정받고 싶다면 그 역을 굳이 부정하면서 그럴 이유는 딱히 없다. 그리고 설사 '모르고서'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게 조소를 살 일은 아니다. 무지 역시 세상의 일부다. 정말 자신이 똑똑하고 그 똑똑함을 더 좋은 일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올바른 길은 그 무지를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이라며 비웃는 게 아니라 그 무지까지 포괄하며 세상을 파악한 후 그 사회적 사실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다.
가슴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이미 냉정한 사람들은 자신이 부정하는 입장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재단하려는 이들이 우스워 보일 것이다. 문제는 냉정의 기준으로 냉정을 볼 때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의 이름을 쉽게 분노하는 이들의 용어로 '가슴'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해도 그건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각자가 자기 어휘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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