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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와 뜨끔함

1.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년간 공부를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해 보아야 겠다 싶어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좌 하나를 듣고 있다. 어제는 강좌 뒷풀이가 있었는데 자기소개를 하다 보니 나보다 2년 나이가 적으신 분이 있었다. 예감은 했지만 결국 이런 때가 왔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강좌든 세미나든 그냥 술자리든 어디든 간에 내 의지로 자율적으로 찾아간 인문학/사회과학 관련 모임에서 더이상 "최연소"가 아니게 되는 날 말이다.

 

2.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자리가 최연소가 아닌 채로 맞이하게 되는 최초의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저번주에 다녀온 EM 님의 대잔치 자리에서도 이미 난 최연소가 아니었다. 말이 나온 김에 EM님의 포스트 하나를 더 언급하고 싶다. 몇 년 전 진보평론에 실었던 세미나 발제문에 대한 EM님의 촌평이다.

 

3.

EM님은 여기서 매우 과도한 표현들을 써주고 계신다. "잘 씌였다"거나 "길다"든가, 무려 "뜨끔함"이라던가. 지금 읽으면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이가 얼마나 먹었다고 회고하는 것도 웃기지만 저 시기의 나는 정말 야심찼던 것 같다. 부족한 외국어 실력은 이제부터 천천히 보충하면 되고 책은 계속 읽고 정리 안하는 습관도 고치고 등등.....고등학교 때 품었던 펑크락커가 되겠다는 꿈만큼이나 황당한 꿈도 있었는데 지젝처럼 영어로 책을 써 돈과 명예를 얻겠다는 것이다. 저 시기에 그렇지는 않았고 저 시기로부터 한 2년 전 쯤에 그런 야심을 품었던 것 같다.

 

4.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때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실망스럽고, 또 지금의 나로서는 그래저래 이 정도여서 다행이야 하는 그런 수준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야심은 둘째치고 어학능력은 전혀 진척이 없으며 건강이나 금전 등 자기관리 측면에 있어서도 평균적인 이 나이 젊은이 수준의 한참 이하이다. 생활인으로서나 어줍잖은 지식인 흉내쟁이로서나 수준 이하인 셈이다.

 

EM님이 저 포스트에서 품어주셨던 "뜨끔함"은 요즘 내가 모든 최연소들과, 그리 나와 달리 공부를 끊지 않고 이어온 지인들에 대해 훨씬 증폭된 형태로 훨씬 빈번한 빈도로 가지는 감정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는데 요즘의 나는 주변의 거의 모든 인물과 사물에서 솥뚜껑들을 보곤 한다. 몇 년 사이에 위치가 바뀌었고 (내가 짐작하기에) EM님과 달리 뜨끔함으로부터 자신을 지킬만한 줏대도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만 그리 넉넉하게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5.

EM님처럼 고마운 시선, 그러니까 좋은 시선이기에 고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시선 자체가 고마웠다는 의미에서의 고마운 시선을 주셨던 분들의 이름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니 사실 거의 매일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 일부에게는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것 같고, 아직 주지 않았더라도 지금 내 모습을 보이면 배신감을 드릴 거 같다. 한편으로는 그러기에 깨소금맛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들도 생각이 난다. 내가 죄를 지은 사람들, 혹은 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죄를 지었다고 내가 자기정당화하고 있다고 우기는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과 함께 매일매일 생각난다.

 

6.

이제는 조금 늦은 나이에 외국어를 익히고 책을 읽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또 스스로에게 어떤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최연소였을 시절, 공부는 언제나 항상 최선이었지만, 최연소를 추억하는 지금, 공부는 항상 차악으로 생각되곤 한다(물론 최악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최연소의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위대하거나 그런 사람은 못 될 거 같다. 최연소가 아닌 지금은 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쪼그라든, 어쨌든 내 과도했던 기대보다는 쪼그라든 나 자신을 긍정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더 높이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낮게 가지 않기 위한 시도들을 고민하고 있다.

 

솔직히 즐겁진 않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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