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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서 온-돌아서 가야 할

구본주, 역사 앞에서, 1996

방정아, 둘러서 온 길, 2005

"우리는 다시 본다.

어떻게 절망이 희망 속으로 행군해가는가,

어떻게 슬픔의 이데올로기는

기쁨의 이데올로기와 쾌속으로 만나는가를"

(최승자, 시집 '기억의 집'에서)

 

"지나간 과거의 것을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도대체 어떠했던가>를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것과 같은 어떤 기억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에서)

 

 

 

#1

방정아 그림 '둘러서 온 길'에는 한 사내가 구부정하게 몸을 숙이고, 지친 다리에 손을 얹고, 낯이 익은 듯한 바닷가  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 사내는 아주 오래 동안, 멀리서 떠돌다가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 긴 여정 동안 그가 기억하는 바다는 더 메꾸어지고 마을에는 새로운 집들과 사람들이 여러 들어섰을 지도 모른다.  그가 세상 이곳 저곳을 둘러서 오는 동안 세상은 얼마나 재빨리 또는 천천히 변동을 겪었을 것인가?  그의 기억들은 어떻게 집적, 재구성되었을까? 그러므로 한 사내가 '둘러서 온 길'은 단지 길을 떠났던 본디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만을 보여주지 않으며 우리 '인생유전' 안에 쌓이고 섞이며 변주하는 기억들, 역사적 기억들에 대해서도 함께 보여주는 것 같다.

아니 저 사내는 그리 오래 길을 둘러온 게 아니라 바닷가 마을 한 바퀴 둘러서 돌아오는지도 모른다. 그가 둘러본 바다와 마을은 늘 보아왔던 그대로이고 또 그제, 어제 마주치던 사람들을 그대로 마주치고 이제는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그가 머문 자리에서 생성-변주는 조금은 완만한 속도로 흐를지 모르지만, 더 긴 시간 단위 안에서는, 앞서 말한 오래 멀리 둘러서 왔을 때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

구본주 '역사 앞에서' 를 보면(사진을 보니) 역사의 기둥 하나가 뿌리 뽑힌 채 매달려 있다. 그가 저 조형물을 만들어내고 , 그마저 세상을 뜨고, 조형물은 "분실'되는  10여년이 어쩌면 이와 같았는지 모를 일이다. 

 나-우리가 지닌 슬픔 또는 기쁨의 이데올로기, 쾌속으로 시간을 질주해오던 믿음이, 역사는 나선형으로,  우여곡절을 겪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그 기둥이 무너지고 그  희망으로 켜켜이 쌓여온 기억 또한 분실된 것마냥 보인다.

이 조형물은  10여년 전의 시점에서 당대까지 역사적 기억을 형상화하여 역사의 기둥이 내지는 희망이 뿌리채  뽑혀 매달려 있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지 않다. 그것은 미래를, 그러니까 적어도 앞으로 10년을  형상화한 것 좀 더 극적으로 말해서 예언적인 작품이다. 그러한 예지력을 지녀서인지 몰라도 작품은 "분실"되었다.  그렇지만 기억은 완벽하게 "분실"하거나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3

 기억- 역사적인, 정치적인. 기억-지극히 사사로운 것. 나는 위에서 본 그림과 조형물에서처럼, 그 두 가지 기억이 내 안에서도 서로 겹치고 새로운 기억을 생성, 변주하리라 보았다. 

육체가 성장-퇴화하고, 시간이 흐르고 세포가 생성-사멸하는 동안 그 기억들은,  서로 '길항'하면서 또 넘나들면서 새로운 기억을 생성, 변주하리라고.

나는 아직  돌아가야 할 때도 아니며 육체와 시간의 향연을 더 누리고, 더 많은 세포들이 태어나 죽고 노화를 급속히 촉진하여 완전히 지칠 때까지 더 둘러보아야하리라고.  그렇게 둘러서 구부정한 사내로 돌아갈 때 또는 돌아올 때 그 때에도  여전히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기억들이 길항하며 팽팽히 맞서고 또는 서로 껴안고 화해할 일이라고. 

 

기억의 지층들을 단면으로 자르고 잘라서 보면 그것이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기억들로 꿈틀댈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디론가 돌아가 지친 기억들을 쉬게 하고 싶다.

기억들도 제 육체가 없다면, 기나긴 시간 흐름과 운동 속에 있지 않다면 이미 기억이 아닐 것이나 나는 정지된 듯 아프다.  기억의 육체-슬프고 따뜻한 몸은 눈물을 기억하고 눈물은 시대를 기억한다. 시대는 눈물을 기억한다. 눈물이 타고 흘러내린 길들은 사랑을 기억한다. 사랑은 다시 길을 기억한다. 그 생성과 변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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