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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Name  
   류은숙  (2004-12-11 12:46:39, Hit : 242, Vote : 32)
Subject  
   이주노동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2004년 2월 6일

어머니,
오늘은 우리 선조를 기념하는 날이네요. 고향에 있었다면, 자랑스럽게 오늘을 Mon National Day라고 했을텐데요. 하지만, 태국에서는 종교의식조차 조직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해요. 어머니도 아시듯이, 우리는 오늘날 고향을 잃은 사람들로서 여기서는 불법 노동자랍니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수백년전 오늘 세웠던 Hongsawdi 제국의 Mon국을 자랑스러워 할 수 없어요. 우리는 버마의 동등한 '시민'으로조차 여겨지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Mon족의 피와 영혼과 존엄성이 제 속에 있음을 느껴요. 오늘, 저는 소녀들이 순백의 윗도리에 Mon족의 허리천을 감고,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를 떠올려요. 이날은 1년 중 유일하게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선언할 수 있는 날이고, Mon족의 음식을 먹고, Mon족의 노래를 부르고, 두려움 없이 Mon족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는 날이랍니다.

어머니, 이곳에 수천명의 Mon족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아시지요? 이들 대부분이 우리 고향이 Rey에서 왔어요. 휴전된 후 8년간 많은 마을이 거의 텅비어버렸지요. 어머니가 너무 걱정돼요. 논에 나가려면 그들에게 허가를 받으셔야 하나요? 버마군이 막아서 추수할 것을 거의 다 잃으셨나요?

어머니, 제가 보내드린 돈이 어머니가 그들의 짐꾼이 되는 일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했기를 바래요. 운좋게도 여동생과 조카가 여기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그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몰랐을 거예요. 군인들이 마을에 머무를 때 소녀들을 데려가 동침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그래서 소녀들이 비참하고 수치스러워서 태국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들었어요. 날마다 우리 고향과 Dai Peng에서 오는 사람들이 여기 도착해요. 휴전지역에서 더 이상 처형은 없다지만, 먹고 살수가 없다고 해요. 조그만 산촌에 수만명이 넘는 귀환 난민에다 버마군통치지역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드니 농사지을 땅이 없다고 해요.

어머니, 저에게 돌아와서는 절대 안된다고 여러차례 소식을 보내주셨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저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하셨어요. Mon 지역에서 4년, 태국에서 6년, 그 날들을 헤아려왔어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 10년이예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여기 와서 고생하시는 것을 볼 수는 없어요. 여성들이 생선관련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이 훨씬 쉽기는 해요. 하지만 무례하게 말하는 고용주들 아래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야 하고, 경찰이 무서워서 거리를 걸을 때마다 두려워해야 해요. 어머니가 그곳(Rey)에서도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항상 제게 깨우쳐 주셨듯이, 그곳은 우리의 선조들이 태어나 농사를 짓던 땅이예요. 저는 어머니가 여기와서 고생하면서 사장앞을 지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원치 않아요. 단지 당신이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적국인', "불법체류자', '범죄자', '개새끼들' 등 듣기 고통스러운 이름으로 불러요. 제 친구가 태국신문을 제게 읽어주었어요. 몽족의 여성들이 여기 체류하기 위해서 태국인 남편을 필사적으로 얻으려 하고, 이주 여성들은 아주 좋은 '번식자'들이어서 태국에 너무 많은 이주아동을 낳아놓고 있다는 기사였어요. 저는 이런 얘길 듣는 걸 견딜 수가 없어요. 어머니.

한 여성을 병원에 데려다 준적이 있어요. 그녀는 낙태로 인해 출혈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그녀가 이틀 결근했다고 해서 바로 해고되었고, 4,000바트(약 12만원)짜리 노동허가증이 종결돼버렸어요. 이주여성은 공장에서 너무 힘들게 일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도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일부 여성은 저녁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해야 해요. 일을 마치고 나면 버마에서 그랬듯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집으로 걸어가야 해요. 어떤 사람들은 태국법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가 경찰서로 가면, 그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우리를 체포하고 추방하는 거예요.

Rey에서 새로 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 요즘은 힘들어요. 일거리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태국 정부가 새로오는 사람들에게는 노동허가를 주지 않아요. 때때로 저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기운을 잃어요. 하지만 오늘 힘이 다시 생겼어요. 어머니, 조부모님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춤추는 것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Mon족의 음식과 간식거리, 전통 허리천을 팔고 있어요. 어머니가 만일 이 자리에 계시다면, 저는 어머니를 부엌으로 모시고가 다른 분들과 함께 Mon족의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졸랐을 거예요. 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어요.

어머니, 정치란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특히 휴전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집단은 학교와 성인들을 위한 글자교육, 직업훈련 같은 것에 열심입니다. 우리들 또한 여기서 곤란한 지경의 Mon족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쓰고 있어요. 병원에 데려가고, 고용주와 협상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서로를 보호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 제 마음 속에 모든 것이 건재하며 어떤 것도 전혀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어머니, Mon National Day인 오늘, 이 생애에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니는 제게 Mon족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는 제 속의 정체성입니다.

어머니의 아들, Soe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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