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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끝에서

Name  
   류은숙  (2005-02-20 00:05:11, Hit : 249, Vote : 26)
Subject  
   주변부의 끝에서
주변부의 끝에서
고향, 가족, 그리고 기억...속삭임
글쓴이: Saytan Sal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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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일을 시작한 그곳에 마지막으로 가본지 꽤 오래됐다. 그곳은 내가 처음 현장 경험을 한 곳이다. 7.8년전에 그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보이는 곳이었다. 마음에 편견을 갖고서 사람들은 그곳을 걸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곳의 삶을 '느껴'보려 하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내가 일을 시작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그곳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타이에 거대한 이윤을 가져다주는 수출경제지구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시선이 방콕에 가까운 이 작은 지방을 향하고 있지만,  나는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다. 나는 단지 어느날 그곳에서 내 오랜 친구들과 예전처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엄마에게 가족을 곧 방문할 것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이주자 친구들도 비슷한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고향에 대한 꿈을 꾸지만, 고향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오늘, 내가 처음 현장 경험을 할 때 찍었던 사진을 보니 기억들이 몰려온다. 상반된 기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내게 떠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사무실(이주 아동을 위한 작은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있던 젊은 버마 교사와 어린 Mon족 소년이다.
그애의 이름은 'Oun' (뚱보라는 뜻) 이었다. 그 애는 그게 진짜 이름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애의 Mon족 이름을 물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뚱보'였다. Oun의 부모님은 생선을 다루는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들 가족은 버마의 Mon주를 떠나 6.7년전에 타이로 왔다. 다른 Mon족 가족들도 비슷했다. Oun의 아버지가 먼저 친구들과 함께 나왔고, 나중에 가족들을 데리러 되돌아갔다.

Oun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했다. "과수원하고 구멍가게가 있었는데도 가족들을 먹여살리기에 충분치 않았어요. Mon족과 버마군대가 교전 상황일 때 힘들었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Mon족 군인들이 우리를 보호해줬기 때문에 생계를 꾸릴 수가 있었어요. 나는 전투가 끝나면 상황이 좋아지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나빠졌어요. Mon족 군대가 없어지니까, 버마군대가 와서 원하는 건 뭐든지 가져갔거든요. 쌀, 고무, 도로, 다리 등등 모든 것에 세금을 거뒀어요. 최악의 일은 내 당을 몰수해버린 거죠." 내가 가족을 데려온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은 "걱정됐으니까요.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가요? 차라리 같이 있는게 나으니가요."

나는 타이 정부나 고용주의 관점에서 물어봤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지 '노동력'일 뿐이다. 그러니까 타이는 이주자에게 안전하지 않다. 임시노동허가를 받을 자격이 없는 아내와 아이들은 체포, 구금, 추방당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Oun의 엄마가 말했다. "한 여성이 자기가 밖에 나가 일하는 동안 아들을 친구에게 돌봐달라고 맡겼어요. 그런데 경찰이 갑자기 사람들을 체포하려 나타나서 아이도 데려갔어요. 그녀는 경찰서에 아들을 찾으로 갔고 결국 둘다 추방당했어요. 남편은 아내와 아들을 국경에서 찾아야 했어요. 요즘 저는 Oun을 집에 두고 나갈 자신이 없어서 애를 데리고 일하러 가요. 경찰이 온다면, 우린 같이 체포될 거예요.  

우리가 이주아동을 위한 학교를 시작했을 때,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따로 잡힐까봐 두려워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이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온다면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나는 아이들은 괜찮을 것이라 약속했다.

이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요즘 임신한 이주 노동자를 추방하는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건 아직도 우리가 사람들을 단지 '노동력'으로 볼 뿐이고, 사랑하고 가족을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갑자기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때문에 기억에서 깨어났다. 이번 나의 여행은 쓰나미로 인해 자연의 경고를 받은 땅의 슬픔에 빠져드는 일이다. 폐허가 된 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을 잃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나는 파도에 남편을 잃은 타보이족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임신상태였다.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같이 살자고 그녀를 데려왔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을때 그 어머니에게는 옷한벌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그녀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함과  기댈수 있는 어깨를 내주고 있다.

연민의 파도가 쓰나미를 거의 말려버렸다. 나는 일상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아름다운 광경을 봤다. 나는 어머니-자연에게 기도했다. 우리 인간들이 이 연민을 인류라는 대가족을 건설하는 일로 바꿔낼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이 인간가족은 오직 '우리'만으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평화가 올 것이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고인들의 명복을 빌 뿐이라며 고향땅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마음과 몸의 잠시동안의 휴식을 원했고 상실 후의 새 삶을 시작하길 원했다.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어머니는 항상 내게 말한다. "네가 아주 지치거든, 집에 오너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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