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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어린이글 1


Name  
   류은숙  (2004-11-09 20:07:56, Hit : 741, Vote : 72)
Subject  
   난민 어린이 글 1
*다음 글은 '국경 없는 친구들'이 발간하는 잡지에 실린 난민 어린이의 글입니다.

Saw Tu Lu, 14살, 3학년

나는 Ker Lee HLu Kee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부였다. 내겐 누나 한명과 형 세명이 있다. 나는 막내다.

내가 어렸을 때, 버마 군부가 강제로 마을사람들을 짐꾼으로 데려갔다. 내 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무거운 것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매를 맞으셨다. 아버지와 다른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고향과 땅을 떠날 수 없으셨다. 그때 우리는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버마 군인들은 우리에게 고향을 떠나도록 떠밀었다.

우리는 Swe Koh 마을로 도망쳤다. 그 마을에는 학교와 병원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학교에 다녔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는 병이 드셨고 결국 우리를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 가끔씩 버마 군인들과 DKBA(Democratic Karen Buddhist Army)가 와서 우리 마을을 또다시 부쉈다. 우리는 Moei 강을 건너서 타이로 도망쳤다. 거기에는 타이 군인들이 있었고, 그 군인들은 우리를 Bae Gloh 난민 캠프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무서워서 그들의 자동차를 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는 난민 캠프에서 사는 것을 무서워하셨다. 많은 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강을 다시 되돌아 건너가기로 했고, 해방구에 있는 Ler Per Her 마을에 모였다.

Ler Per Her 마을에서는 학교와 병원을 다시 갖게돼서 행복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너무 짧았다. 군인들이 쫓아왔고 우릴 공격했다. 또 한번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타이로 도망쳤다. 군인들이 가버리고 나서 우리는 돌아갔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우리 집과 학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모두 불태워버렸다.

우리는 남쪽으로 좀더 내려갔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집과 학교와 병원을 다시 세울 때까지 나무 아래서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그곳을 New Ler Per Her 라고 불렀다. 형들과 누나는 결혼해서 나갔다. 그래서 집에는 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어머니는 아주 나이가 많으셔서 나는 어머니가 음식 구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새와 쥐를 잡으러 갔다. 어둑해질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친구들이 앞장섰고 나는 뒤따랐는데 나는 지뢰를 밟았다. 친구들이 마을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마을 사람들은 타이에 있는 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내가 회복되자 학교에 다시 보냈다. 하지만 내 다리는 더 이상 똑같지 않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 난 더 이상 부끄럽거나 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 않는다. 매일 밤, 숙제를 하고 나서 잠자기 전에, 나는 기도한다. 우리를 모든 해악에서 보호해달라고,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나처럼 피난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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