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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A-Yeh

Name  
   류은숙  (2005-07-14 11:11:10, Hit : 360, Vote : 27)
Subject  
   Doh-A-Yeh
Doh-A-Yeh (이말은 버마 학생들이 투쟁할 때 쓰는 구호인데, “우리의 목표” 또는 “우리가 원하는 바”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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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쓴 사람 이름은 Mayachon이네요. Yain이라는 버마 운동가와의 인터뷰입니다.

“제가 10․14 항쟁 비디오를 봤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은 젊은 사람들의 순수한 힘과 용기에 대한 동질감이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 다르고 시간과 장소가 다르다는 것이죠. 10․14 타이 학생 봉기는 독재는 부당하므로 인민의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부 세계와 오랫동안 봉쇄돼온 버마 학생들의 각성은 우리 삶에 밀접한 일들-우리의 친구들을 향한 불의와 잔인성-로 인해 촉발됐습니다. 우리는 봉기하고 나서야 불의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인권침해의 구조와 싸울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

20년 전에, Yain은 랑군 대학의 경제학부에 입학하게돼서 기뻐한 여느 소녀들과 같았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으로는 학비의 1/5밖에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Yain은 한가지 목표는 성공적으로 학위를 끝내고 빨리 Kachin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데는 기준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학생이 의학, 공학, 임학을 공부하고 싶으면 남학생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랑군 대학의 경제학의 경우에는 똑같았지요. 그래서 저는 거기를 선택했지요. 입학 전에는 랑군에 가본적이 없어요. 가족 중 누구도 가본적이 없지요. 저는 수도에 가보고 싶었지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내가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언젠가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듯이 선생님이 되거나 회계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1988년은 나의 마지막 학년이었어요. 처음에 저는 단지 기분이 매우 안좋았고 뭘 해야할지 몰랐어요. 군부가 대학문을 닫고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 했거든요. 그때 저는 옛 친구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우리들은 ‘뭔가 해야만 한다’, ‘이건 정의에 관한 일이다. 많은 친구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말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부모님을 생각해야지’라고요. 우리는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때까지 논쟁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도시의 학생 그룹을 조직했고, 다른 도시의 그룹들과 연결했지요. 우리는 큰 도시의 데모와 고향의 운동에 물품들을 보냈어요.”

1988년 8월 8일 8시 8분, 학생, 승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총력 시위에 모여들었다. 군부는 폭력적으로 대응했다. 엄청난 탄압과 더불어 군부내에 “자기-혁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당 체제를 끝내겠다고 공포하고 1990년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약속하게 됐다.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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