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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A-Yeh(2)

Name  
   류은숙  (2005-07-19 13:45:23, Hit : 329, Vote : 39)
Subject  
   Doh-A-Yeh(2)
Doh-A-Yeh (이말은 버마 학생들이 투쟁할 때 쓰는 구호인데, “우리의 목표” 또는 “우리가 원하는 바”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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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쓴 사람 이름은 Mayachon이네요. Yain이라는 버마 운동가와의 인터뷰입니다.


“우리는 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을 위해 선거운동을 했어요. 우리 학생조직은 선거에 누구도 내보내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투표가 분산되고 군부가 이길 것이란 걸 알아서죠. 또한 우리는 NLD에 가입하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여전히 지하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일부는 이미 정글로 갔고 우리는 그들을 비밀리에 지원했어요. NLD가 투표의 82%를 확보하면서 승리했을 때, 나는 ”아, 자유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군부는 굴복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그들은 더욱 폭력적이 됐죠. 나는 Kachin주와 중국간 국경지대로 도망쳤어요. 처음에는 거기에 5-6달 있으면 될줄로 알았는데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곧 들게됐죠. 나는 Kachin 독립군이 하는 군사 훈련에 6개월간 참가했어요. 하지만 93년 경 Kachin 독립군은 군부와 휴전협약을 맺었죠. 그 이후 그들은 정권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고, 우리 모두는 국경을 건너 중국 쪽으로 가야했어요. 그후 얼마돼지 않아, 여학생들은 버마여성연합(Burmese Women's Union)을 결성했고, 우리의 첫 번째 회의가 타이-버마 국경에서 열렸어요. 나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고, 그래서 지금까지 여기 머물고 있어요.”

“군대이기 때문에, 버마 학생군은 일종의 권위주의적 규칙하에 있어요. 여성들은 오직 의료, 교육, 공급, 오락 서비스에만 참여할 수 있어요. 나는 무엇이건 많이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내가 버마여성연합에 가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목적에 대해 배우고 더욱 선명히 알게됐죠. 처음에는 군부정권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우리는 영웅이 되고, 모든 분쟁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알았어요. 사람들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고 존엄하게 살 수 있으려면 해야 할 일이 그보다 더욱 많다는 것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각 소수민족들의 동등한 권리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시민사회가 있어야 해요.”

“3-4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자신을 학생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졸업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졸업은 영원히 연기된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날 나 자신을 바라보니 거의 40살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고, 함께 일하고 책임져야 할 젊은 동료들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생각했죠. 대학 때의 수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성숙해야 한다고.”

“망명한 청년 집단은 매우 영리하고, 강하고, 용기있고, 의지가 굳어요. 그들은 우리보다 더많은 교육 기회를 가졌고, 그들은 사물을 분석할 줄 알고 창조성으로 가득차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강점이 또한 그들의 약점이기도 해요. 그들이 가진 기회로 인해 그들 중 일부는 끝없이 공부만 하려 해요.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계속할 새로운 피가 부족하고 영원히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요. 나는 사람들은 공부만이 아니라 일에서도 배울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답을 구하려고 공부할 것을 기대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답을 발견할 수 없을 거예요. 젊은이들은 지금 국제정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요. 나는 그들에게 자기 자신의 나라에 대해 더 많이 배울 것을 장려하고 싶어요. 제말은, 타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당신의 지식이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나는 제 3국에 망명처를 구할 계획이 없어요. 여기에 할 일이 많아요. 버마의 정의는 깊은 뿌리를 가져야만 해요. 어느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해도, 나는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이 일을 계속할 거예요. 나는 10년 이상 부모님과 어떤 연락도 갖지 못했어요. 부모님은 내가 이기적이어서 가족을 떠난 것이라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모국을 위해 싸우는 자유의 투사인 딸을 자랑스러워 하실거라 희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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