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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 살기 위하여 - 어부로 살고 싶다 > 기획의도

 

“우리가 갈 곳이 없다. 우리는 한마디로 짓밟힌 것이다.”


새만금은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바다와 갯벌,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과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바다와 갯벌에 대해서는 평생 바다와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어민들이,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굳이 달력을 보지 않아도, 시계를 보지 않아도, 이미 그들 몸이 자연의 시계에 맞춰져 있었고, 전문 최첨단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느 곳에 가면 어떤 물고기와 조개들이 있는지 훤히 알고 있다. 단지 그럴듯한 학위와 화려한 언변이 없었을 뿐이다.

 

새만금방조제 끝물막이 공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새만금연안주민대책위’내에서도, 흔들림 없이 ‘바다와 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쪽에 있던 이들이 바로 큰 배로 바다에 고기 잡던 어부들과 갯벌에서 맨손어업으로 조개캐던 어민들이었다. 고기잡이 보다 면세유에 눈이 벌건 선외기(작은 배) 선주들과 어촌계장이니 이장이니 하는 감투 쓴 사람들은 ‘환경단체도 떠나라’,‘신부도 떠나라’며 그 동안 혼심의 힘을 다해 싸웠던 이들을 밀어내고, 그동안 지역에서, 중심에서 새만금공사를 중단시키고 마을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애쓴 동료 주민마저 외면한다. 처음 맹세를 저버리고 대충 반대하는 척 하다가 바로 정부와 협상에 들어가 보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방조제끝물막이공사가 끝나자 정부는 주민대책위가 요구한 그 어떤 보상도 주민들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이 단순히 보상을 요구한 주민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새만금갯벌의 마지막 숨통이 조여지는 그 순간, 새만금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마다 ‘새만금을 중단하라’ 외쳤던 명망가들과 환경단체들은 대체 무엇을 하였던가? 단순히 주민들이 ‘떠나라’하니 주민들 의사를 존중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저 안타까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대법원 판결 이후, 그들에게 ‘끝까지 새만금갯벌을 살려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가? 단지 사회적 비난을 비켜 갈 궁리만을 하지는 않았는가? 현장에 와서 소리 한번 외치고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 몇 마디 한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전부였었는가? 처음 약속을 저버린 것은 비단 주민대책위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바로 나 자신과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다. 이들의 평화로웠던 공동체가 서서히 파괴되어지는 것,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며, 누구일까? 아무도 갯벌에 관심조차 없을 때, 그곳에서 묵묵히 살았던 어민들의 공동체가 누구를 위한 개발에 파괴당하는 것일까! 이것은 비단 새만금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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