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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정론의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실린 기사

누가 새만금의 갯벌과 어부의 꿈을 뺏어갔는가?
 
[삶이 보이는 영화] 새만금 어민의 눈물 기록, <어부로 살고 싶다> 호평
 
임동현
 
갯벌, 그 곳에는 꿈이 있었다. 어민들에게 갯벌은 삶의 터전이자 꿈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저 자연을 벗삼아 열심히 일하고 그 곳에서 나는 음식을 먹으며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발전'이라는 허울좋은 구호 앞에 이들의 꿈의 터전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들고 일어섰다. 몸으로 개발을 막았다. 하지만 생태계의 파괴와 어민들의 생계 곤란이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개발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     © 인디포럼

 환경운동가들이 현장을 찾긴 했지만 그들은 주민들의 모습을 외면한 채 '갯지렁이를 살리자'라는 한가한(?) 구호만 외치고 카메라에 몇 번 얼굴을 비추다가 사라졌다. 꿈으로 가득찼던 갯벌은 죽은 조개들로 꽉 찬 '킬링필드'가 되었다. 순박했던 어머니들은 어느 순간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고 농림부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농림부 장관을 욕하는 '투사'로 변했다.
 
생존을 외치는 어민들에게 정부가 준 것은 물대포였다. 어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조제는 결국 완공되고 관계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통곡을 하는 어부들의 슬픔을 말이다.
 
무엇이 새만금의 '진짜 문제'였나
 
인디포럼과 환경영화제, 그리고 인권영화제. 최근 열린 세 영화제에서 동시에 개봉되고 동시에 주목받은 영화가 있었다. 바로 이강길 감독의 <어부로 살고 싶다>다. 직접 새만금에서 어민들과 함께 생활한 이강길 감독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인해 죽어버린 새만금 갯벌과 그 갯벌을 지키려는 어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가감없이 카메라에 담아낸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는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인해 변해버린 갯벌과 어민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단순하게 '환경파괴의 문제'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새만금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개발론자들의 대책없는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는 결국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주범이라는 것을.
  
▲     © 인디포럼
 
새만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난 이후 어민들은 개발을 막기 위해 선상 시위를 계획한다. 하지만 대책위 사람들은 시위 시기 등을 놓고 탁상공론만 하고 시위는 하루하루 늦춰진다. 천막 안에는 때아닌 지방선거 출마자가 시위대에 찬성한다고 나서다가 욕만 먹고 나가고 언론은 대통령에게 원색적인 말을 퍼부은 도올에게만 집중할 뿐, 새만금 사람들의 현실을 외면한다.
 
환경운동가라는 사람들은 어민들과 함께 하기는 커녕 어떻게 하면 자신과 자신의 단체를 알리느냐에만 집중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많은 것 같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려하지 않았다. 대책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중요한 부분만 쏙 빼놓고 이야기하면서도 발뺌만 하고 '언론플레이'에만 신경쓰기 시작했다. 어민들은 그렇게 외로운 싸움을 했던 것이다. 자기 딸에게 "너는 절대로 판사가 되지 마라"라고 말하는 어민의 에피소드는 정부와 대법원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책위는 정부측과 합의를 했다고 큰소리쳤지만 어민들이 꿈꿨던 '해수방류'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어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좋아하는 지역 유지들의 모습을 보며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방조제로 인한 환경파괴는 결국 한 어민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
 
우리를 가로막았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강길 감독은 어민들과의 합의도 없이 개발에만 눈이 먼 관료들은 물론이고 언론플레이만 일삼으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대책위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 채우기에만 급급할 뿐 새만금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선 나몰라라하는 활동가들, 그리고 '도올 기사' 등으로 흥미거리로만 삼는 언론에 대해 공격의 화살을 겨눈다.
 
언론도 활동가들도 이야기하지 않은 문제들을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새만금에서 어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친구처럼 지낸 이 감독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배경에 깔리는 구슬픈 느낌의 대금 연주와 조금은 어색하게 들리긴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레이션(민중가수 연영석)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슬픈 상황 속에서도 영화는 결코 비관적으로 끝내지 않는다. 예전보다 활력은 없어졌지만 오늘도 어민들은 그물을 손질하고 배를 띄운다. 어떻게든 이들은 살아야한다. 그들은 외친다. '어부로 살고 싶다'고 말이다.
 
<어부로 살고 싶다>를 보게 되면 묘한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그러나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새만금과 우리들 사이를 가로막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었는가? 이 다큐를 보며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대단한 일을 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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