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불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산 중 좋은 터에 자리잡고 있는 절, 그 입구에 서있는 무서운 형상의 조형물, 각종 불상들과 산신령을 모셔놓은 법당부터 시작하여 죽으면 지은 복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사상, 가족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할머니들의 신심깊은 오체투지까지 기복신앙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게다가 욕심을 버리라는 교리는 마치 경쟁을 회피하고 허무주의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600여 년전, 인도의 한 수행자-붓다에 의해 설해진 가르침이 불교라는 이름으로 정립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동아시아 지역으로 퍼져가면서 때로는 국교로 인정받아 위세를 떨치고 때로는 박해를 받아 명맥만을 유지한 채 갖은 모습으로 변형되어 지금의 모습에 이른 것이 불교의 변천사라 한다면 과연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무엇이고 그 가르침이 탄생한 배경이 어떠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불교가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대안이라는 시각이 늘어가는 요즘, 기복신앙이 아니라 원리이자 과학으로서의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작을 확인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다. 정신이 살아있다면 형식이 바뀜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의 불교의 모습은 정신을 잃고 형식을 강조하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그 정신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년에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불교대학을 들으면서 얻게 된 불교에 대한 이해는 불교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을 바꾸게 만들었는데, 한 마디로 금으로 치장된 부처님상에 쏠려 있던 시선을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법,法)'으로 옮겨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음의 작용하는 원리를 알고,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라는 법륜스님의 말씀은 자연스레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는데, 부처님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인간 붓다 - 그 위대한 삶과 사상'이다. 산뜻한 느낌의 노란 표지와 만만찮은 두께는 묘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붓다의 가르침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적용가능한 살아있는 것이란 느낌과 함께 하지만 그 내공만큼은 책의 두께처럼 깊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책의 내용은 책 모양처럼 쉽고 명쾌하며 현실과 밀착되어 있었다.

 

<인간붓다를 읽고 있는 흠겸>

 

감명깊게 읽었던 한 구절이 있다. 왕자로 태어난 붓다가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출가를 결심하는 과정이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우리가 보통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일 때, 바뀐 가치관에 따른 삶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첫째, 기존 가치관에 회의를 갖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새로운 가치관은 '심정적 동조 혹은 논리적 정리에 의한 가치관'으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합니다. 

 

둘째, 새 가치관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당위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아직까지 과거에 형성된 욕망 중심의 가치관으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상태입니다. 만약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당위적 삶으로서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욕망 중심적인 삶의 가치관을 극복해 갈등이 완전히 제거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자신에게 직접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남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부터 비로소 나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같은 삶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가치관이야 말로 '삶이라는 현실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주는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가치관의 변혁은 바로 이러한 상태가 완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불교를 접하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옮고 그름'에 대한 잣대로 바라보던 세상을 '욕망과 그에 따른 결과'로 바라보게 된 인식의 전환이었다. 책에서도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직전 마왕의 공격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왕이 상징하는 것은 욕망의 세계이며, 자신이 쌓아온 욕망을 완전히 극복함으로서 자유로움을 얻게 되는 것이 깨달음의 결과인 것이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흔히 하는 오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허무주의에 빠진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이 책은 단순히 붓다의 삶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 아니라 붓다가 출가한 이후 겪었던 갈등과 모순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이고, 붓다가 그것을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은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우리에게 괴로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일종의 고도의 자기계발서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면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도 탁월한 효과를 준다는 지인의 말씀은 공감가는 말이다.

 

마치 기술자가 기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잘 알게 되면 고장을 수리하는 것을 넘어서 응용이 가능하듯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도 마음의 작용원리를 잘 알아 감정이나 욕구에 휘둘리지 않게 되면 자신을 더 크게 쓸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아주 현실적이고 삶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깨달음이란 것이 자신을 위함이 남을 위함임을 알게 되어 자연스레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니 긴장감이 높아지는 현 정세에 꼭 필요한 배움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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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3:13 2010/03/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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