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잠깐 네이버 블로그를 했을 때 썼던 글. 시간이 있을 때 같이 옮겨둔다.
그 때 썼던 글이 꼴랑 2개. 그러니까 이제 이사는 다 마친거다.-.-;
<우리들은 정의파다(We Are Not Defeated, 이혜란-여성영상집단 움, 2006)>
1.
푸코가 지적하듯이, 지배 담론이 만들어내는 역사 즉 역사에 대한 지배적 내러티브는 언제나 불연속에 대한 연속성의 기묘한 승리에 기반해 있다. 지배적인(혹은 지배계급의) 역사는 그 자체로 불연속과 단절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불연속과 단절의 지점들 따라서 이름붙일 수 없는 순간들은 언제나 일정한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연속적 계기(moment)로서 위치지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다다르고자 하는 목적은 바로 '현재'이다. 이러한 단절과 연속의 교묘한 결합과 후자의 전자에 대한 최종적 승리는, 현재의 지배계급의 위치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놓는 효과를 가진다.
2.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대사를 분석하는데 있어, 지배적인 내러티브는 바로 ‘민주화’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첫째, 현재 한국 사회는 과거의 독재 정권과는 차별화된 ‘민주화된 사회’이다.(단절) 둘째, 과거의 일련의 사건들 70년 전태일 분신-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80년 광주민중항쟁-87년 6월항쟁-87년 노동자대투쟁 등은 바로 이러한 민주화를 위한 일련의 과정들의 일부를 이룬다.(연속성)
기존의 반체제운동 세력들의 대항 내러티브를 구성했던 일련의 연속적 사건들은, 이제 지배 담론의 내러티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내러티브는 일련의 이름붙이기 곤란한 사건들, 예컨대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나 혹은 공산주의자들이 실제로(!)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했던 사건, 그리고 80년 뜨거운 광주 등등의 사건(event)을 ‘민주화’라는 정박점을 향했던 일련의 계기들로 바꾸어놓는다.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역사 만들기’는 90년대 이후 정부와 NGO들에 협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이들은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소급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는 공증서를 부여하고, 6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사건들을 ‘민주화’라는 공식적 내러티브 속에서 특정한 위치를 부여받는다.(이러한 공동 작업 속에서는 전통적인 우파와 좌파의 구별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전통적인 좌파 세력들·지식인들은 이러한 작업에 더욱 열심인 듯 보이며, 우파적 사고방식은 때때로 이러한 작업이 가진 본질을 간파하는 데 힘을 발휘한다. 예컨대 ‘일개 공순이들이 혹은 빨갱이 놈들이 무슨 민주화투사냐?’라는 극우파 국회의원의 외침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3.
개인적으로 이러한 ‘민주화’담론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한국의 사회적 제도가 ‘실제로’ 민주화되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알튀세르 그리고 지젝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이데올로기는 현실(reality)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왜 한국 사회의 변화가 유독 ‘민주화’라는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설명되는지와 관련된 문제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화’는 90년대 이후 개개인들이 한국 사회의 현실(reality)을 파악하는 공통의 판타지(fantasy)로 작용하고 있으며, (알튀세르와 지젝의 의미에서) 일련의 사건과 주체의 행위들에 상상적 의미를 부여해주는 하나의 (지배)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화’ 이데올로기가 가져오는 효과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과거와 현재와의 연속적 내러티브의 구성 속에서 과거 사건들에 대한 공식적 의미부여,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 탄생했다고 상상되는 현재 지배세력에 대한 정당성 부여. 지젝에 따르면, 완결된 이데올로기는 개인적 경험을 부정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의 형태로 작동한다. 예컨대, ‘내가 만나본 유대인들은 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는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본 형태이다. 우리는 ‘민주화’와 관련된 담론들 속에서 이와 유사한 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민주화되었다 혹은 이러한 문제들이 표현되는 것 자체가 민주화의 결과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다양한 모순들은, ‘민주화’라는 환상 자체를 파괴하지는 못한다.
4.
내게 <우리들의 정의파다>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가 앞서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용법을 살짝 뒤집는 내러티브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이 제목은 민주화 이데올로기의 전형적 형태를 보여준다)류의 역사 회고담과 구별되는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인 여성노동자들이 70년대에 해고된 이후 2006년 현재에도 복직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가 구사하는 내러티브는 공식적 내러티브의 앞·뒤를 뒤바꾼 형태이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혹은 노동계급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이 대사는 다큐멘터리 속 성우의 대사 속에서 정확히 재현된다.(‘그렇지만’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이렇게 뒤집혀진 수사가 가져오는 효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사실 지젝의 엄밀한 이데올로기론을 적용해보자면 이러한 뒤집음은 궁극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완성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내러티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이후의 내용은, 앞서의 ‘민주화’를 확인시켜주기 위한 일종의 보충물(supplement)로 작용할 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경험은 이데올로기에 패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서술되는 경험들은 사실상 앞서 서술된 ‘민주화’라는 판타지에 대한 인정을 통해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우리들은 정의파다>가 가지고 있는 힘은 이러한 해석이 문제에 대한 단순한 접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드러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증언들은 “한국 사회는 민주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내러티브가 단순히 ‘민주화’라는 판타지에 대한 지배적인 승인과 부차적인 보충으로 해석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소한’ 이러한 뒤집혀진 담론 전략은, ‘민주화’ 판타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유보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단락(circuit)을 완성시키지 않고 열어두기 위한 일종의 담론 전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들이 말하는 “한국 사회는 민주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가 이루고자하는 바는 앞선 명제의 보충이 아니라 그 명제의 실질적인 ‘전복’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복이 가능한 힘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다. 단, 여기서 개인적 경험은 산 경험(lived experience)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원초적 경험과 연결되어 다시 등장하는 현재의 경험들이다. 예컨대, KTX 여승무원들이 잡혀가는 모습과 겹쳐지는 자신들의 옛 기억, 개구리 우는 소리와 자신의 과거 기억의 겹침, 현재의 형사들을 볼 때마다 꾸게되는 가위 눌리는 꿈 등등...
이러한 과거의 원초적 경험과 겹쳐지는 경험들의 회귀 속에서, 지배 담론의 매끄러운 연속적 봉합은 최소한 판단 유보, 최대한 전복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이런 점에서 ‘경험이 이데올로기 비판의 기반이 될 수 없다’는 지젝의 발언은 절반만 진실이다. 경험은 그 자체로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의 현재적 경험은 판타지에 의해 억압되는 실재적인(the real) 경험의 회귀와 겹쳐질 때 이데올로기의 한계(limit)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실재적인 것’의 회귀는 흔히 이해되듯이 신비로운 체험이나 드문 경험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상적인 그러나 갑작스런 ‘사건’이다.)
6.
결국 <우리들은 정의파다>의 내러티브가 보여주는 것은, 피지배담론에서 드러나는 ‘연속성에 대한 불연속성의 기묘한 승리’이다. 지배 담론과는 반대로, 이들에게 연속성은 그것을 뒤집기 위해서만 등장한다. 일련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담론(예컨대 이들의 고통이 계속된다는 식의 혹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식의)은, 지배적 환타지의 연속성이 허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지배 담론과는 대칭적으로, 이들의 ‘연속성’은 사회의 불연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계기로 작동하며, 이는 매우 효과적이다.
<우리들은 정의파다>가 각종 회고담과 가지는 차별성은 바로 이러한 ‘연속성’의 사용에서 온다. 과거와 현재의 불연속성을 전제로 과거의 억압된 기억들을 들춰내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류의 프로그램 속에서 과거는 과거로서 재현되며, 결국 이러한 접근은 ‘말할 수 있는’ 현재에 대한 간접적인 정당화로 귀결된다. 여기서 과거의 억압된 기억은, 하나의 한(恨)풀이 무대 속에서 재상영될 뿐이며 결과적으로 과거 경험의 현재에 대한 정치적 효과를 중립화시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이러한 입장을 비껴간다. 여기서 억압된 과거의 기억은 현재와 하나의 단락을 이루며, 이는 일련의 연속적인 역사로 구성된 지배 담론을 파괴하는 힘을 가진다.(이 때의 지배담론이란, 민주화담론과 함께 70년대 중소기업여성노동운동의 80년대 대기업남성노동운동으로의 지양, 90년대 후반 여성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재복귀라는 ‘공식적인’ 운동진영의 담론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영화 막바지에 자신의 전복적인 힘을 끝까지 몰고 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의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은 정의파다>가 감동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덧 1.
지배담론에 대한 인정에 연결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접속사는 피지배계급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할 때 주되게 사용하는 담론 전략이다. 예컨대, 79년 신민당 당사를 점거하면서 YH노조가 내걸었던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산업전사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언문에서 70년대 여공들의 지배이데올로기로의 포섭을 읽어내는 독해는 지나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배 담론들과 완전히 단절된 자신들의 독자적인 내러티브나 판타지를 완결된 형태로 구성할 수 없는 피지배계급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는, 지배 담론들을 이용하고 뒤집고 분열시켜 그 틈새 속에서 자신의 발언을 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들은 지배 담론을 자신들 나름대로 ‘활용’한다. 물론 이러한 ‘활용’이 가진 한계 상, 이들의 담론은 자신들이 의도하는 바를 모두 담아낼 수 없고 일종의 잉여를 남겨두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이다.
덧 2.
개인적으로 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 이데올로기가 지배집단에 의해 어떻게 조장되었고(대중 매체나 교육을 통한 민주화담론의 확산), 어떻게 상징화되었고(예컨대, 518묘역 재정비),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민주화 유공자들에 대한 보상제도 등)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연구 중의 하나이다.(개인적으로 김대중 정권의 ‘제 2의 건국’ 운동은 단순히 경제적 재건을 의미하는 슬로건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회 전반에 걸쳐 이 운동은 한국 사회의 억압된 과거를 재상영하는 거대한 한풀이 무대였는데, 이 무대를 통해서 발명된 ‘새로운 전통’은 바로 ‘민주화 운동’이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이러한 민주화 담론의 확산에 있어서 2002년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이다. 돈 좀 벌어볼려고 했던 <386 세대 연구 프로젝트>에서 건질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유용한 결론 중 하나는, ‘02년의 노풍·월드컵 거리 응원·촛불시위 등은 87년의 재현’이라는 대중매체의 주장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02년을 기점으로 대중매체·386세대, 그리고 보수·진보 지식인들이 쏟아놓은 한국 사회 분석 글들을 보면, 이들 사이에 한국 현대사의 서사화를 뒷받침하는 판타지가 완전히 수렴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어두운 시절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룩한 위대한 대한민국!’) 이러한 판타지 속에서는, 87년의 결과가 결국 ‘수동적 혁명’일 뿐이라는 정확한 분석도, 97년의 경제위기가 가져온 절망적 효과들도 02년에 재상영된 희극 속에서 무화되어 버린다.(혹은 02년을 일궈낸 하나의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혁명적인 관점의 등장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90년대를 거쳐 2002년에 완성된 이 ‘민주화 이데올로기’가 아닐까란 생각마저도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