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의 새 책( Ravel Cities: From the Right to the City to the Urban Revolution http://www.versobooks.com/books/1116-rebel-cities ) 출간에 맞춰 살롱닷컴에서 인터뷰를 공개하였기에 노동절을 기념하여 학습노동을 좀 중지하고 번역해 보았다. (..?) 워낙 의역과 오역이 심한 번역이라 원문을 보시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지만. 원문 주소는

여기http://www.salon.com/2012/04/28/urban_revolution_is_coming/singleton/

 

도시혁명이 다가온다 Urban revolution is Coming

 

오큐파이 운동은 도시기반 저항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기획했을지도 모른다. 왜, 어떻게인지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파리의 1871년에서 프라하의 1968년, 카이로의 2011년과 마침내 뉴욕시의 거리까지, 도시는 옛부터 급진적 운동의 온상이었다. 지난 십수년간 실업과 식량 부족에서부터 민영화와 부패까지, 모든 것이 도시의 시위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도시 자체의 지리가 저항을 야기하기도 하였던가? 오큐파이 운동 측이 전미의 여러 도시에서 일련의 큰 노동절 시위를 준비하고 있기에, 이 질문은 이번주에 특히 큰 울림을 던진다.

 

 지리학자이며 사회학 이론가이자 City university New York 인류학과 대학원의 뛰어난 교수이며, 그리고 언제나 가장 많이 인용되는 20인의 인문학자 중 하나인 데이비드 하비는 어떻게 도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하며, 언제 그렇게 하고, 그 성과가 무엇인지 탐구해 왔다. 그의 신간 "도시의 저항자들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도시혁명까지 Ravel Cities: From the Right to the City to the Urban Revolution" 는 자유시장 경제정책이 도시의 삶에 미치는 영향, 중간~하층 미국 가계의 심각한 빛과 난개발(runaway developement) 이 어떻게 모든 도시 거주자의 공공의 공간을 파괴했는지를 세밀하게 조사한다.

 

 우리는 어떻게 전체 도시를 구성하는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하비는 현재의 신용 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도시개발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어떻게 이 개발이 미국 도시에서의 정치적 조직화를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는지 살핀다. 하비는 시민들이 그들 도시의 개발과 구성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운동의 최전선에 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파리 전체가 귀족정을 전복해 버렸던 1871년의 파리 코뮌에서 영감을 얻어, 하비는 도시가 구성된 곳, 또는 구성될 수 있는, 혹은 좀 더 정상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곳을 스케치한다

 

 살롱( www.salon.com ) 은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 운동에 대해서, 블룸버그의 뉴욕시 개발의 파괴성에 대해서, 그리고 도시를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구성하는 것에 대해 데이비드 하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하 인터뷰, 굵은 글씨는 인터뷰어인 Max Rivlin-Nadler]

 

  "도시에 관한 권리" 는 텅 빈 슬로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모든 사람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도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있지요. 그러나  도시의 서로 다른 계층은 권리를 행사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도시를 좀더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구성할 권리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우리가 지난 20-30년간 뉴욕 시에서 목격한 것은, 이 권리가 가진 자들이 바라는 욕구라는 겁니다. 70년대로 돌아가면 록펠러 형제들 같은 실세들이고, 지금 우리에겐 블룸버그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들은 도시를 자신과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편리한 방식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이 도시개발 과정에 거의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요. 여기 뉴욕에는 일 년에 만 달러로 버텨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백만 명 가까이 됩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건설되고 있는 그런 종류의 도시에 대해서 무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하죠.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한 제 관심은 어딘가에  어떤 윤리적인 올바른 길이 있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게 분투해야 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어떤 도시를 만들기 위한, 누구의 권리입니까? 제 관심사는 일 년에 만 달러로 연명하는 백만 명이 적어도 상위 1%와 같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누가 "내 권리가 중요하지, 당신의 권리는 중요하지 않다" 고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느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저는 이를 텅빈 기표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는 항상 갈등이 일어나지요.                                                        

 

  

 

 

 

  1980년대 이후로, 전에 공공부문이었던 섹터들(교육, 철도, 수도) 에 대한 전세계적 민영화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이것이 도시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의 동요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ㅣㅏㅓ어  어떤 면에서는 그것은 제가  책에서 던지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왜 우리는 민영화에 대해서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우리의 68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인가? 미국의 도시지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왜 사람들은 더 동요하지 않을까? 거기에 대한 반응이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몇 가지 큰 징조가 보입니다. 칠레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을 점거하고 있고, 우리는 과거 1960년대 당시 존재했던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징조를 보았습니다.

 

 

    왜 더 큰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경찰 기구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끔찍한 돈의 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미국] 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9/11 후 안보 조치에 따라 어떤 형태의 동요라도 테러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위스콘신과 함께 타흐릴 스퀘어 같은 곳이나 다른 도시 폭동에서 우리가 본 것은, 저항의 징조가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 1930년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와 평행을 그리지요. 1929년 주식시장의 폭락이 일어났을 때 정말 큰 시위는 1933년까지 시작되지 않았고, 그 후에야 정말 대규모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그 지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불황, 경기 침체,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아직도 대량의 실업자가 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자기 집을 잃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속적인 조건입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우리가 대규모의 동요 발생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우리가 붕괴를 겪은 다음 몇년 내로 회복했던 1987년과는 다릅니다. 그런 일은 이 나라에 일어나고 있지 않아요.

 

  정치적 목적이 없는 즉자적인 분노의 분출과 우리가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에서 보는 것처럼 더 계획된 반응은 같지 않습니다. 오큐파이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아젠다로 놓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것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적어도 민주당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말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일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런 것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언급도 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것을 말하고 있고, 당신은 그 메시지가 일종의 레토릭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오바마의 선거 캠페인에 침투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왜 오늘날의 운동에 1871년의 파리 코뮌이 중요한 것입니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역사 속의 위대한 반란 중 하나입니다. 그 자체로 연구되고 논의될 만 하지요. 다른 이유는, 그것이 좌파적 사유의 기념비적 이데올로기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맑스, 엥겔스, 레닌과 트로츠키 모두가 파리 코뮌을 참조하고 어느 정도 따라야 할 선례로 생각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1905년의 페트로그라드와 러시아 혁명에서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요. 파리 코뮌에 대해 질문하고 거기에서 배워야 합니다.

 

 

 자유시장이 주도하는 도시화는 어떻게 사회적, 정치적, 삶의 공동체로서의 도시를 파괴했습니까?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도시가 무엇이었는지를 낭만화하지 않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기구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적 파워- 의 통치를 받는 비교적 촘촘하게 밀집한 도시 인구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외화로 인해 인구가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분산된 도시가 되었지요. "게토" 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곳으로 점점 더 분산되고, 따라서 더 이상저소득층의이 커뮤니티가 스스로 조직될정도로 고도로 밀집된 곳이 아니게 된 겁니다. LA 의 로드니 킹 사건 때처럼, 그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도시 인구의 분산, 교외지역과 게이트 커뮤니티의 생성은 일관적이고 통합된 정치적 삶의 가능성을 조각조각냅니다. [미국에는 백인 부촌 중 거주민만 들어갈 수 있도록 주택단지 입구를 철문으로 지키는 곳이 많습니다. 리모콘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고 경비실이 있는 아파트 주차장의 훨씬 엄격한 형태? 이것을 gated community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 이는 많은 NIMBY (Not In My Back Yard) 의 정치를 발생시킵니다. 사람들은 다르게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 근처에 살기 싫어하고, 이주민들이 주위를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는 거지요 - 따라서 사회성이 변화합니다. 저는 언제나 교외와 게이트 커뮤니티에 의해 형성된 정치적 주관성을 생각하는데, 이는 물론 그 누구도 도시의 전체성과 이 걱정스러운 도시의 [개발] 과정의 총체를 생각할 수 없는 방식의 파편화된 주관성입니다. 거주민들은 단지 자신의 파편만 걱정하지요. 이 자본화 과정의 폐허에서 정치의 본분을 재구축하는 것이 정치적 프로젝트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점거 운동에 관한 스토리에 계속 등장하는 용어가 '프레카리아트'(프리랜서나 노조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인데요. 왜 프레카리아트들이 급진 운동에 중요할까요?

 

 저는 "프레카리아트" 란 용어를 그다지 많이 좋아하진 않습니다. 도시의 삶을 생산/재생산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건을 불안정하다고 보고, 그중 많은 이가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항상 있어 왔던 일로, 그들은 공장 노동자와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변혁의 시기에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하여 좌파는 언제나 운수노조와 공장 노동자들을 향해 왔습니다. 좌파는 점차 늘어나는 도시의 삶을 생산/재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해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지점이 제가 파리 코뮌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곳인데, 왜냐하면 누가 파리 코뮌을 만들었는지 실제로 살펴보면, 그 주체들은공장 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장인 (artisan) 들이었고, 그 당시 파리의 많은 노동은 불안정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공장들이 사라짐에 따라 지금 우리가 대면한 상황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존재했던 노동계급과 동일한 규모와 중요성을 가진 산업 노동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좌파의 정치적 기반은 무엇인가? 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들은 자주 이주하고, 쉽게 조직되지 않으며, 노조를 결성하기가 어려운 유동인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엄청난 정치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항상 사용하는 예시인 2006년의 이주민 권리 운동. 수많은 이주노동 인구들이 하루 동안 일터로 가기를 거부하자, LA와 시카고가 문을 닫아야 했다는 점이 그들의 굉장한 파워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조직 노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공부문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민간부문의 조직노동자는 이제 인구의 9퍼센트로 하락했습니다. 불안정 노동은 엄청나지요.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들을 조직할 방법을 찾는다면, 어떻게 뉴욕, 시카고나 LA 등등의 도시에서 도시적 삶이 지속되고 구조화되는가에 대한 거대한 영향력으로서 이들을 동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의 혁명은 도시에서 일어나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좌파들은 왜 그렇게 그 의견에 비판적일까요?

 

  파리 코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논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도시의 사회운동이었고, 따라서 계급운동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는 혁명적 운동의 주체는 공장 노동자 뿐이라는 맑시스트/좌파적 견해에 기원합니다. 글쎄요, 만일 공장 노동자가 없다면, 혁명을 할 수 없다는 게 되지요. 말도 안됩니다.

 

 저는 도시를 계급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에는, 오늘날 도시를 생성하는 건 금융자본이에요, 자본이 오피스와 콘도미니엄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요. 우리가 그 방식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힘에 대항해 계급 투쟁을 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어떻게 도시를 조직한다는 겁니까?' 와 같은 질문이 걱정됩니다. 좌파의 미래는 도시에 있습니다. ( The city is where our political future lies on the left)

 

 

 공공의 공간은 어떻게 좀 더 접근가능한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뉴욕시에는 많은 공공 장소가 있지요, 그러나 당신이 공동행동에 참가할만한 공공장소는 아주 적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에는 아고라가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아고라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이것이 점거운동이 정하려 하던 것, 쥬코티 파크에 있던 사람들이 하려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정치적 대화(dialogue)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실상 공공(public) 이 허락되지 않는 공공장소를 점거하고, 진짜 결정이 내려지는, 우리가 또 다른 건축 계획이, 콘도미니엄을 한 단지 더 짓는 게 좋은 생각인지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정치적 공유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요전 날 유니온 스퀘어 공원을 지나왔습니다. 지난날 많은 일이 일어나던 곳이지만 자주 꽃 무덤으로 변하죠. 그래서 지금은 튤립들이 공유지를 누리고 있고 우리에겐 공유지가 없지요. 그것이 더 이상 공유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공공 장소는 정치적 힘에 의해 더 이상 공유지가 아닌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겁니다.

 

 

블룸버그의 정책은 "제인 제이콥을 염두에 둔 모시스 같은 빌딩" 으로 묘사되는데요 (로버트 모시스(Moses) 는 자주 교외로의 신속한 수송을 위해 이웃사회를 파괴하며 지난세기 중반의 뉴욕시를 무자비하게 개발했다. 그의 가장 격렬한 반대자중 하나였던 작가 제인 제이콥은 고속도로가 그리니치 빌리지를 통과하는 것을 막는 데 힘을 보탬), 블룸버그는 이 둘을 어떻게 중재할 생각인 걸까요?

 

 그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근대적인 스타일의 건축을 할 때, 그걸 아주 무자비하게 한다는 겁니다. 블룸버그 집행부는 1960년대의 모세보다 더 많은 초거대 프로젝트를 론치했지만, 그는 이것을 제인 제이콥처럼 미학적 커뮤니티가 되는 것으로 위장합니다. 이게 큰 프로젝트의 성질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환경주의적 느낌도 있죠. 블룸버그는, 어느 정도까지는 진짜 환경주의자입니다. 그린 빌딩을 만들 수 있으면 매우 좋아하죠. 우리는 그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친화적인" 것으로 거리를 혁신하는 것을 보죠 - 물론, 자전거 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 블룸버그는 불행해 지겠죠.

 

 

 

 

당신은 이 자유시장 주도형 도시정책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충격적인 사실은, 만일 당신이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항의하는시위들을 전 세계의 지도로 본다면 엄청난 규모의 시위를 보게 될 거란 겁니다. 그 중 많은 부분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이 난점이지요, 일례로, 오늘은 학생 대출과 그에 관한 시위들을 얘기하지만, 내일은 사람들이 주택저당 반환권 상실에 저항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또 다른 사람들은 병원 폐쇠나 공교육 때문에 시위하고 있을 지도 모르구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어려움은 이 모든 것을 연결하기는 것이 난해하단 겁니다. "도시에 대한 권리 연합 The Right to the City Alliance" 과 "배제당한 노동자들의 회합" 처럼 연대체를 조직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건 아직 초기단계입니다. 만일 모두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건 그 누구의 진정한 요구나 욕망도 충족하지 못하는 이 시스템을 뿌리도 가지도 바꾸는 데 관심이 있는 거대한 대중이 될 겁니다.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는 당신이 말한 몇 가지 이슈가 연합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응집력 있는 메시지가 결여되어 있지요. 왜 좌파는 항상 리더쉽이나 위계에 이렇게 저항적인 걸까요?

 

 제 생각에 좌파는 항상 한 종류의 조직만이 특정한 프로젝트에 적합하다는, 조직에 대한 페티쉬랄까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전혀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민주 집중제 모델을 따르는 공산주의 프로젝트에는 맞는 말이었습니다만. 민주집중제에는 장점이 몇 있지만 확고한 단점도 있지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어떤 종류의 위계에도 반대하는 좌파의 요소입니디ㅏ. 그들은 모든 것이 수평적이어야 하고 열린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집행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지요.

 

 실제로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는 전위 운동[하나의 정치적 정당이 최전선에 서는] 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들은 부인하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99퍼센트를 위해 말하지만 그들 자신은 99퍼센트가 아닙니다. 그들은 99퍼센트를 향해서 말을 한 거지요. 서로 다른 조직 구조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좌파에게는 많은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볼리비아의 El Alto 모델에 매우 감명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수평적 구조와 위계적 구조가 매우 강력한 정치조직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존하고 있었어요. 제 생각에는 우리가 토론의 일정한 법칙에서 빨리 벗어날수록 좋습니다.

 

 지금 현재 [오큐파이에서] 유행하는 토론의 법칙은 작은 집단에 매우 좋은데, 집회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뉴욕 시 전체를 포괄하는 집회를 기획한다고 생각해 보면,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당신은 지역별 집회를 할 것인지, 대규모 집회를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는 조정 위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 리더쉽을 가지고 조직하는 데 있어서 매우 긴장하고 있어요.

 

 성공적인 운동에는 언제나 수평적/위계적 질서가 혼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마주친 것 중 가장 흥미로운 운동은 칠레 학생 운동인데, 리더 중 한명은 중앙위원회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가능한 한 수평적이려고 노력하는 젊은 공산주의자 여성(Camila Vallejo) 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게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좀더 유연한 좌파 조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오큐파이에는 민주당이 오큐파이의 요구를 지지하도록 사인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려는, 그리고 그게 안 되면 독자적으로 후보를 출마시키려고 하는 그룹이 있어요. 그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리더십을 행사하는?] 무리이지만, 전혀 주류는 아니죠.

 

 

 책의 끝부분에서 많은 답을 주진 않으셨더군요. 하지만 어떻게 이 증가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다중의 위기에서 탈출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를 열고 싶어하셨죠. 점거운동에서 이런 돌파구를 보십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만일 노조 운동이 더 지리적인 형태의 조직을 향해 간다면, 그리고 단지 일터에만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시 사회 운동과 노조는 아주, 아주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으로 이런 합작의 성공적인 선례가 꽤 있다는 것이죠. 내 생각에, 씨앗을 심을 수만 있다면 거대한 변혁도 가능합니다.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가 노조 운동과 좀 더 협업하는 길을 지향한다면, 대단한 정치적 액션도 가능합니다. 내 책은 이런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는 기반이고, 우리가 어떤 것이 성공적인 조직이 될 지 아직 모르는 만큼 그 어떤 것도 기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정치 운동을 위한 거대한 공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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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은 차차 합니다.

인용은 출처를 밝히고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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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0:21 2012/05/01 10:21

동성 결혼 이슈

from ... 2012/03/18 07:21
*메모 - 현재 영국의 이슈는 동성간의 시민 파트너쉽이다. 이는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후속조치이며 '남편' '아내'와 같은 단어 대신 '파트너' 등의 성 중립적 단어를 사용해서 동성 커플이 파트너쉽을 신청할 수 있게 해준다. 국가 혹은 주단위에서 동성의 결합을 인정하는 것은 분명 진일보한 조치임에 틀림없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공문서에 등장하는 '마드모아젤' 과 '마담' 의 논란에서 보이듯이 시민권은 성별을 분할하고 관리한다. 시민권을 얻으려면 남자 또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출생신고나 신분증만이 아니라 제도로서의 결혼에서 강력하게 드러나고 승인된다. 결혼 또한 시민사회에 포함되는 하나의 절차인 셈인데, 결혼이민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현재 미국은 연방단위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기에 동성결혼을 통한 이민은 제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사실 동성간 결혼의 제도적 인정은 국민국가의 성원 관리,유지에 상당히 도전적인 것이다. 또한, 서구(영미권)에서 결혼은 국가뿐만 아니라 교회가 얽힌 문제이다.(많은 경우 교회에서 식을 올리면 별도의 신고 없이 결혼으로 인정되며 이 문제에 관한 교단의 입장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에서 앵글리칸(성공회)의 경우, 동성 결혼 뿐 아니라 파트너쉽도 교회에서 식을 올리고 신고하는 것으로 일단락 된 듯 하다. 로마카톨릭 측은 동성결혼 혹은 파트너쉽에 꽤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 '진보적인' 개신교 목사들은 동성결혼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글쎄, 뉴욕 주에서는 교구 주교가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으니 신고 없이 동거하는 동성 커플은 되도록 빨리 혼인하라' 고 권고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결혼 아닌 동거는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좀더 생각하고 입장을 정리하고 싶지만 일단은 간단히 메모를 해 두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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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8 07:21 2012/03/18 07:21

페미니즘의 나아갈 길?

from 걷기 2012/03/18 07:20
올해의 여성의 날로부터 6일 후에, 나오미 울프가 가디언지에 이런 칼럼을 실었다.

 

* How we can connect with feminism's global future (패기 있는 제목일세...)

 

 

번역을 해볼까 했지만 시간이 도저히 나질 않는다. 어쨌든, 페미니즘의 미래라...

 

나는 최근에 예술을 공부하는 젊은 여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화가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제니 샤빌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본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의견은 제니 샤빌이 싫다는 것. 현대회화에서 (기존 사회의 기준으로)아름다운 몸을 그리는 것이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보면 쉽게 비판받는다는 걸 알지만, 샤빌의 그림이 직시하길 요구하는 그 끔찍하리만치 비대한, 방금 성형 수술을 한, 인터섹스의, 안드로진의 몸들보다 "남성들이 우리(여성)을 위해 만들어준 예쁜 이미지가 훨씬 좋다" 는 것이었다. 샤빌이 페미니즘 화가인가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이런 의견이 현대의 (서구) 페미니즘이 봉착한 곤란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위기' 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페미니즘에 대한 울프의 파악과 진단이 이 위기를 돌파해 줄 실마리를 던져주는가?

요약하자면 울프의 주장은

 

1.오늘날의 페미니즘은 크게 두 가지의 전통에 기원하는데

1) 조세핀 버틀러와 같은 빅토리안 페미니즘

2) 보부아르-프리단으로 대표되는 2세대 페미니즘 이다.

 

2. 현재 페미니즘은 위기에 처해 있다.

 

3. 이 위기는 상당 부분 정당성 혹은 존재의의(현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왜 필요한가?)의 위기이다.

 

4.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1) 울스턴크래프트의 전통을 잇는 계몽주의 페미니즘(Enlightenment feminism 인데 편의상 이렇게 번역하겠다.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처럼, 오로지 여성만이 아닌 모든 인간의 차별 없는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근대적 평등이라고 볼 수 있을 듯.) 으로의 전환

2) 개도국의 여성운동과 적극 연대(무슬림 페미니즘 혹은 분쟁, 위험지역의 여성운동 등등 - 그들의 절실하고 긴박한 필요와 요구에 주목하며 연대)

가 페미니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대략 이 정도로 볼 수 있을 것같다.

 

 

 

일단, 댓글 반응은?

 

 

... 어떠냐 하면, 사람들이 점잖고 교양 있는 말로 반페미니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몇개 예를 들자면, "더 이상 아무도 페미니즘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페미니스트들의 목표는 이미 오래 전에 달성되었고 현대의 페미니즘은 다른 집단을 억누르고 주류의 도덕과 정의에 반하는 것에서만 존재 의의를 찾는다" "우리가 '여성' 으로서 싸운다면 어떻게 평등을 쟁취할 수 있다는 건가? 정의란 모든 사람에게, 남자든 여자든 트랜스젠더에게든 합당한 것일 텐데 말이다." ... 등등...

 

 

나는 기본적으로 울프가 이런 반응을 자초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성평등주의' 로 왜곡하면, 당연히 현대 (서구)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존재 의의를 찾기 힘들 수밖에 없다. 광범위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관점에 따라서는 법적/제도적으로 '성평등' 이 완전히 달성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물론 이미 존재하는 반페미니즘 정서의 책임을 울프 한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다) 단순히 '평등' 을 목적으로 두고, 이 평등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째서 이 기준이 합당한지, 혹은 기준은 어떻게 구성되고 이를 정하는 이들은 어떤 입장에 선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면 굳이 페미니즘 - 혹은 넓은 의미로 성에 관한, 혹은 '정체성'의 제 이론 - 을 고집할 필요 없이 리버테리안적 평등 안에 안주해도 충분하다. (혹은 엠마 골드만이나 린지 저먼과 같이 페미니즘을 사회주의의 하위항목으로 두어야 할 당위성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안티페미니스트가 되거나 바뎅테르같은 묘한 입장이 될지도.)

(실은, 좀 경솔하게 말하자면 웬디 브라운, 벨 훅스 등이 주장했던 바, 섹스-젠더의 개념을 다른 정체성과 경합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 가 필연적으로 다다르는 지점이 여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서 '계몽주의 페미니즘' 이란, 확실히 페미니즘의 위기 뿐 아니라 후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듯하다. 그리고 이 위기의 징후는 시작부터 항상 상수로 존재해왔던 폭넓은 반페미니즘 정서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특히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반감을 사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아닐까? 여성들 스스로가 페미니즘을 어렵고 따분하며 귀찮고, 심지어 남성을 적대하는 여성우월적 인종주의라는 마초적 비판을 그대로 담습하는 상황 말이다.

 

앞서 진술했듯이, 울프는 페미니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전통과 거부해야 할 전통을 구분하는 것에서 상황 타파의 출발점을 찾는 듯하다. 빅토리안 페미니스트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의 원류, 참정권(투표권 운동)을 주도했던 울스턴크래프트를 계승하자는 것이다.

 

페미니즘 역사에 대한 이런 식의 서술은 주목해야 할 페미니스트를 백인으로 한정시키고 그 과정에서 비백인 페미니스트를 배제한다.(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것은 단지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비판해야 할 지점이 아니다.) 사실 이 구도에서 사라지는 것은 '제3 세계' 의 여성주의가 아니라 서구 내의 비백인 페미니즘이다. 울스턴크래프트 이전부터 이미 목소리를 내던 흑인 페미니즘, 혹은 우머니즘의 전통은 페미니즘의 원류로서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현재의 제3세대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을 생략하다시피 한다.(물론 지면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재의 페미니즘을 페미니스트 아젠다나 정치적 신념이 없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카 발렌티는 여기에 대해서 트위터로 반응했는데 대략 '뭐?....ㅋ...." 정도의 반응을;;) 여기서 제외되는 것은 퀴어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와 연대했던 퀴어들이다.

 

사태가 이럴진데 갑자기 서구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길로서 제3세계와의 연대를 들고 나오는 그 결론이 상당히 미심쩍을밖에. 물론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개도국 여성들의 열악한 현실은 여성주의 운동에 강력한 당위성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손쉽게 페미니즘 자체의 존재의의를 지탱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서구 페미니즘 '안에' 존재하는 타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말하는 제3세계와의 연대가 과연 준비된 것인가? 비서구 페미니즘을 단순히 타자화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연대가 가능한 조건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것인가? 이 모든 것, 보편적 평등주의나 근대적 계몽주의, 제3세계와의 연대 등이 폭넓은 공감을 쉽게 얻기 위한 전략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전략은 얼마나 유효적절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처방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에 많은 부분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결국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칼럼이긴 한데, 읽고 나서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간단히 글을 남긴다. =========================================================== 그런데, 결국 해법은 전혀 모르겠다는게 제일 씁쓸...-_-;그냥 투덜투덜이가 되는 기분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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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8 07:20 2012/03/18 07:20
마담, 마드모아젤 : 이는 프랑스에서 존칭이 아니라 성별에 관한 것. - Marie Darrieussecq 2012. 2. 24 가디언 기사

 

 

 

 

* 가디언지에 실린 칼럼을 번역한 것이다. 원본은 아래 링크. Madame, Mademoiselle: in France these are about sex, not respect

 

 

 

 

  프랑스에서는 남성은 언제나 무슈로, 여성은 언제나 마담 혹은 마드모아젤로 지칭된다. 무슈는 언제나 무슈인데 반해, 마담은 결혼한 여자이고 마드모아젤은 비혼 여자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공식 문서는, 프랑스인들이 시빌리테 [시민권, 공민권과 비슷] (civilitė, 결혼, 시민 여부를 포함하는 단어) 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해서, 이 세 개의 [체크]박스와 함께 인쇄되었다.

 

 

 이번 주에 총리로부터의 공문은 "이런 종류의 구분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마담' 이 결혼 여부를 표시하지 않는 남성의 '무슈' 와 동등하게 '마드모아젤' 을 대체한다" 라고 공공기관에 지시했다. 그러나 나는 또다른 공문도 이 끈질긴 실천을 바꿔내지 못할까봐 두렵다. 1967년에, 그리고 1974년에 한번 더 내무부로부터의 공문이 "마담" 이 "무슈" 의 상당어가 되어야 한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상황은 인터넷과 함께 더욱 악화되어왔을 뿐이다. 결혼여부를 묻는 박스에 체크하지 않으면, 그것이 '필수 입력 사항' 이기 때문에 당신은 양식을 제출할 수가 없다. 프랑스의 문서에서, 세금, 사회보장과 각종 예약, 특히 유로스타와 관련해서 나는 그런 일들을 항상 겪게 된다. 영어의 양식에서 나는 MS에 체크할 수 있고 아무도 내 사적인 삶과 관련해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물론 "마담"은 매춘굴의 뚜쟁이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마드모아젤" 은 우선적으로 섹슈얼리티의 상태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처녀라는 것. 내 시빌리테[의 체크 박스] 에 표시할 때 나는 사실상 내 섹스라이프에 대한 정보를 요구받는 것이다 - 싱글인지 기혼인지, 교제가 가능한지(available) 아닌지. 이 지점이 정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는 두 개의 페미니스트 그룹이 항의해오던 측면이다.

 

 

    같은 침해가 당신의 이름에도 적용된다. 프랑스 여자가 결혼할 때, 그녀 남편의 이름[성] 을 취할 법적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state)기관은 자동적으로 그녀의 성을 바꿔버린다. 짜증나는 "처녀 적 이름" 칸이 광범위한 주요 행정서류, 봉급명세서, 청구서, 의료기록과 온라인 쇼핑 서비스에까지 등장한다. 나는 내 국가 보험 카드에서 내 진짜 이름을 지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세금의 경우에는, 지난 2년 동안만 내 이름이 (더이상 어떤 법적 의미도 없는 개념이지만 여전히 사용되는) "가장" 으로 남아 있는 내 남편의 이름 옆에 나타났다.

 

 

 1986년의 프랑스 법은 개인이 그들이 알려진 대로 자신의 이름을 선택할 온전한 자유가 있음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들은 끊임없이 그녀들의 남편의 이름으로, 심지어는 그녀 남편의 성으로 환원되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로버트 듀퐁 부인(Madame)" 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 죽음에서조차 여성은 완전히 지워진다.

 

 

  프랑스에서 여성에 대한 친절한 매너(gallantry) 는 여자가 그녀 자신의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으로써 "마드모아젤" 로 되도록 오래 불리기를, 그래서 유혹당할 수 있도록, 또는 성관계가 가능하도록 요구한다. 여자를 "마담" 으로 부른 후에 마치 큰 실수를 했다는 듯이 "마드모아젤" 로 고쳐부르는 것은 고전적인 유혹의 대사다.

 

 

  프랑스 여성의 자유는 상당 부분 단어의 문제이며, 나는 이것이 언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라틴계 언어와 마찬가지로, 남성형은 [프랑스어에서] 형용사의 문법적 일치 등등과 관련해 모든 점에서 우세하다. 우리는 Un Français et trente millions de Françaises song contents; -3천만의 프랑스 여성이 그(남성) 가 없었다면 그랬을 것처럼 [공민권에] 포함되는 대신 그들의 남성 동반자에게 지배당하는 것으로 남성형에 귀속되어야만 한다- 라고 말한다.

 

 

   많은 남자들이 우리가 엉뚱한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우리는 동등한 임금이나 유리천장에 맞서 싸워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어는 중요하다(word matter). 비혼 남성이 마드모아젤의 중세 형태인 Ma Demoiselle 처럼 Mon Damoiseau 라는 체크박스에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소년들은 곧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성(처녀성)을 암시해서 새라고 부르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43세인 나는, 아직도 문자 그대로 하면 "나의 작은 암컷 새" 라는 뜻인 "마드모아젤" 이라고 불린다. 멋지지 않은가? ==============================================================

 

 

 

 

할 일이 태산인데 어제 좀 기분나쁜 일이 있었기에 기분전환삼아 재밌는 걸 번역하자 하고 시작했더니, 구글독스 모바일에서 작업을 하면서 한문단 작업할 때마다 오류가 나서 그냥 다른 프로그램을 켜고 작업하는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구글독스로 끝내고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ㅜㅜ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하여간 의역과 오역 왕창.. 특히 중간에 프랑스에서 여성의 자유는 언어의 문제다 뫄뫄뫄라고 하는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데 번역이 애매하다. 틀린 것 같다; 그게 프랑스어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가...ㅜㅜ

 

 

또 brothel은.. 집결지나 성노동업소 뭐 이렇게도 할 수 있겠지만 단어 자체가 약간 폄하의 뜻이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매춘굴' 로 번역했다. 사실 용어를 몰라서 번역을 잘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왠지 필자가 쓴 대로 최대한 가깝게 해야할 것 같아서 그럴 때가 좀 있는데...예를 들면 인종을 지칭해야 한다면 비백인이라는 말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coloured 라면 유색인으로 번역해야 할 것 같은 그런..하지만 unmarried 는 미혼 말고 비혼으로.. 아니 못한 번역에 뭐 이리 사족이 길담;;

 

 

이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피곤하므로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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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6 09:56 2012/02/26 09:56

연극

from ... 2012/02/18 06:09
허름한 극장을 쓰는 소규모 극단의 연극은 비교적 적은 값을 치르고 볼 수 있어서 좋다.

 

 

공연장이라기보다는 방이라고 불러야 더 알맞을,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거의 없는 곳에서 연극을 본다. 무대 위를 다른 세상처럼 느끼게 해줄 만한 장치나 조명도 없고 순간 연극을 보러 극장에 들어와 앉아 있는 자신 - 을 잊게 해줄 만한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없다. 소품이나 의상도 시대 배경에 걸맞지 않는 것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대를(혹은 화면을) 마음껏 응시하고 있지만 배우들은 극 속에서, 또는 무대 안에서 완결되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니 나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식의 환상을 즐기며 편히 있을 수가 없다. 배우를 객체화하고 극중 인물과 동일시하는 관객의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일종의 능동적인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극의 특성상 배우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대사를 하고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그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줄곧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연극을 보는 경험이 좋지만, 즐겁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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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8 06:09 2012/02/18 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