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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7
    회화수업의 구렁
    나그네
  2. 2011/07/15
    여름
    나그네

회화수업의 구렁

요즘 독어 회화 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미 다닌 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회화 수업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 적응에 엄청난 애를 먹고 있다. 일단 나이가 나이인지라 젊은 녀석들의 발랄한 재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일반 독해 수업이나 듣기 수업 같은 경우 그냥 앉아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혼자 공부하고 적고 쓰고 하면 되지만 회화 수업의 경우 함께 대화하고 듣고 질문하고 발표하는 것이 주가 되는 만큼 수업의 분위기가 정말로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외국어로 자기 소개를 하고,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고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 등등을 발표하는 식의 수업이 이어지는데 선생님은 이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여 자연스러운 외국어 대화 실력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다 좋긴 한데, 나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생각 외로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예를 들어 언젠가 독어로 여러가지 색깔들의 이름을 배운 이후, 선생님이 서로 좋아하는 색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였다. 그 순간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나는 당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의 아저씨가 19살 먹은 소녀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색은 무슨 색', '그 이유는 이러저러 하니깐 ㅋㅋㅋ' 라는 메뉴얼을 머리 속에 두고 다닐리가 없지 않은가? 대충 맘에 들면 되는 게 색깔이라고 생각해온 30년이었기에 대화할 때 매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식의 곤란한 경우는 매우 많이 부딪치게 된다. 지난 주 토요일에 무엇을 하였는지 물어본다. 당연히 집에서 뒹굴대며 인터넷하고 찌질하게 집에 처박혀 있었다. 근데 다른 젊은 것들은 영화를 보았다, 친구를 만났다, 여행을 갔다왔다, 연극을 보았네, 어쩌네 이벤트도 참 많았다. 그렇게 얘기하는 가운데 내가 그냥 집에 있었다라고 말한다면 이 숙연한 수업 분위기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그동안 해외여행을 간 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 당연히 나는 빌어먹을 남조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근데 다른 젊은 것들은 일본 교토에 갔네, 토쿄에 가봤네, 베이징, 파리, 뉴욕, 워싱턴, LA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렇게 얘기하는 가운데 내가 나는 한번도 해외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 암울한 수업 분위기 어쩔 것인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딱히 마음 속에 생각해 둔 적이 없었다. 라면이 땡기면 라면을 먹고, 밥이 땡기면 밥 먹고, 피자가 땡기면 피자를 먹으며 30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불쑥 너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니? 라고 물으면 심각하게 지금까지의 식도락 인생을 돌아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회화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대화와 질문은 내가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에 속한다. 나 자신에 대해 꼭 이렇게까지 메뉴얼을 생각해놔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색, 음식, 나의 취미, 가고 싶은 여행지, 주말에 하고 싶은 일, 내가 했던 특별한 체험들, 등등에 대해 일정한 목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의 대화는 왠지 여성들이 잘 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이런 말도 잘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꼭 이런 식으로 회화를 배워야 할까? 사실 상 다른 모든 외국어 회화 수업도 일단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가족부터 해서 취미, 음식, 일상적인 체험 등등을 말하고 연습하는 것으로 채워지곤 한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식의 대화가 진행되는 일이 거의 없다. 나의 나이, 결혼 여부, 가족, 취미, 좋아하는 음식과 색깔 등등은 정말로 개인적인 영역에 해당되는 프라이버시로서 잘 물어보지 않는 영역에 해당하지 않은가?

 

나이를 밝히기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아예 존재해본적이 없는 결손가정 출신일 수도 있고, 해외여행을 가본적이 없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식이 없을 수도 있고, 취미가 없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색이 딱히 없을 수도 있고, 결혼했다 이혼했을 수도 있는데 왜 이런 것들을 굳이 물어보면서 회화 수업이 진행되는 것일까?

 

외국어는 젊을 때 배우라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근데 어쩌랴. 10년이 넘게 영어를 배웠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생인 것을..다른 외국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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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느새 조선에 또 다시 여름이 왔다. 장마가 기승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장마가 2주 정도로 남부와 중부지방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나갔던 것 같은데, 올해 여름 장마는 좀 긴 것 같다. 마치 열대지방의 우기, 스콜같은 기후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는 이어지고 있지만, 역시나 급박한 작업을 요구하고 있으며 해결되고 밝혀져야 할 의미도 꽤나 많다고 느껴진다. 정신이나 개념, 이념을 인간 주체나 인간 사회를 뛰어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고있는 헤겔 선생은 자연의 영역에 이 개념의 변증법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철학의 영역에서 헤겔 선생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은 도통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의 인민들은 공간과 시간이 그 자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개념이나 이념의 산물로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 선생은 한사코 이를 개념과 이념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으니 고전물리학적 관점에 익숙한 자로서는 영 불편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쓸데없는 번뇌를 없애고자 요즘 붓다에 대한 책을 한 권 읽고 있다. 싯타르타의 일대기를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중요한 그의 생각을 짚어주는 책인데, 불교에서 가르치는 주장과 사상을 알 수 있어서 마음 수양에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불교 경전을 직접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 붓다가 너무 신격화되어 서술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이어져오면서 덧붙여진 붓다에 대한 전설과 기적, 신통력 등을 사상시킨다면 그는 오래 전 인도에서 활동하였던 아주 리버럴한 지식인, 철학자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예전에 도올 김용옥이 말했듯이 원시불교 서적에서는 싯타르타가 매우 리버럴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 한자로 번역되어 오랫동안 전수되어 온 불교경전에서는 '세존', '여래' , '부처님' 등의 수사어가 많이 붙어 있지만 사실 당시 붓다는 그저 '싯타르타 선생'이었다고 한다.

 

불교 경전에서는 싯타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뒤 만난 다른 수행자가 싯타르타를 '수행자'를 뜻하는 '사문'이라고 부르자 싯타르타는 '나는 이제 사문이 아니라능. 부처라능. 그니까 여래라고 부르라능' 하고 근엄하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각색이 분명해 보인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그따위로 잘난 척을 할리가 없으니 말이다.  싯타르타가 태어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동서남북을 한 걸음씩 걸은 이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도 뻥 중에 상 뻥이 분명하다.

 

이른바 서양에서는 종교든 철학이든 역사학이든 가리지 않고 한때 종교적으로 각색되지 않은 예수의 참 모습을 파헤치고 연구하는 노력이 있었다. 민중신학도 그 한 갈래일 것이다. 헤겔도 한때 기적의 요소를 배제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연구한 논문을 써 놓기도 했었다. 예수에 대한 각양각색의 해석 속에서 예수는 종교 개혁가로, 급진적 지식인으로, 인품이 고결한 성인으로, 고대의 사회주의자로 묘사되고 설명되기도 하였다.

 

부처에 대해서도 이러한 해석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부처님을 만난다면 나는 그 분을 '부처님', '위대하신 세존이시여~' 혹은 '여래님' 이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냥 '싯타르타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야 그의 자상한 인품을 알고 또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 싶을 것 같다.

 

요즘은 불교용품점에 들러서 작고 아담한 불상을 하나 사고 싶다. 책상에 두고 보면서 번뇌에 빠지지 않고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서 집착을 벗어나 살고 싶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를 외적인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수양이 부족하여 그의 가르침을 떠올릴 만한 물건이 필요한 것 같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어쩌겠는가.

 

비가 계속 오고 있다. 조선은 비의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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