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을 정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적어 봅니다.

[코뮨주의] 공유학습에서도 거론된 이야기이니 찾아보고 고민해 보면 좋을 듯 싶네요..ㅎㅎ

이것 또한 우리들이 논의하고 생각해 보아야할 중요한 문제인듯 싶어서...ㅎㅎ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각의 깊이가 얕아서 부끄럽네요...ㅎㅎ

 

[질문] 공동체에서 일체성--동질성의 추구와 구성원간의 [차이]를 어떻게 볼것인가 ?

 

[정리]

우리가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어떤 일체성 혹은 공동체라 명명하기 위한

동질성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고, 실제 공동체를 구성하는 행위 자체가 동질성 혹은 동질화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기존의 어떠한 공동체들도 그 성격과 내용, 형식들이 다를 순 있어도

이러한 동질화의 과정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 동질화의 과정이 지나치거나 완전한 일체성을 강요하는 순간 공동체 스스로

붕괴되거나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에게 억압의 기제로 나타나거나

파시즘처럼 공동체가 인간적 가치들을 없애버리고 만다는 것도 사실인듯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이러한 동질화의 과정 못지않게 구성원들의 [차이]에 대하여

어떻게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고 또한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구성원들의 개인으로서 가지는 차이를 어떻게 공동체가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듯 합니다.

 

즉, 역사상의 공동체들이 언제나 스스로 자신들의 지향들을 실현하지 못하고 쇄락해 간것은

언제나 이 [차이들]을 억압함으로서 공동체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걸었던 것 같고

현재의 무수한 공동체들은 그 반대의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즉, 지나치게 이 [차이들]을 인정함으로써 공동체가 가벼운 외투가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즉, 언제나 아침에 걸쳤다가 저녁에 벗을 수 있다는 가벼운 개인적 선택으로 공동체가

전락해 버린 느낌도 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며

위의 두 경향들을 극복하고 우리들이 진정한 공동체의 가치들을 실현하는데는

어떤 자세들이 필요할까요 ?

 

그것은 아마도 어떤 차이점이 '핵심적'인지, 어떤 '차이점'이 일체의 유사성보다 더욱 중요하여

모든 공통점들을 작고 무의미하게 만드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이 질문은 대체로 파생적이고 언제나 공동체에서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논쟁붙곤 하지만

우리들은 이 질문을 사전에 유의미한 작업으로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버나드 크릭이라는 사람이 논평했듯이

문명화된 사회는 내재적 복수성을 지녔고, 그런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자연히 다를 수 밖에 없는

관심사들을 조정하고 화합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관심사들을 영원히 억압하고 강제하기 보다는

이를 조화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현대문명 사회의 복수성은 이를 혐오하거나 싫어하는데도 없어지지 않는 어떤 잔인한 사실이 아니라 희소식이요, 다행스러운 경우인데, 이는 그것이 곤란함이나 불편함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며, 인류를 위해 지평을 넓히고, 다른 삶의 방식들이 전해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면에서의 삶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장래성있는 일체성은 이런저런 가치관과 선호도, 다양하게 선택되는 삶의 방식들, 그리고 상이하지만 항상 스스로 결정할 힘이 있는 구성원들이 벌이는 자기정체성 찾기에 관한 반대와 토론, 조정과 타협을 통해 매일 새롭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즉, 본질적으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일체성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삶을 공유한 결과로서의 일체성, 차이를 거부하고 억압하고 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정과 화해를 통하여 이루어낸 일체성일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결국 공동체에서의 일체성 혹은 동질화 과정은 이런 개인들의 차이와 삶의 조건들을 공유하면서 조정하고 화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막상 진행하다 보면 이런 이상적인 결과들 보다는 실제로는 [차이들]이 주는 부정적인 사태들이 벌어지고는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위의 차이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구성원들의 주체성의 문제가 아닐까 합 니다.

즉, 이 차이들이 공유되고 조정/화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차이들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스스로의 주체성들을 가지고 주체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주체화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의 [차이]들의 강조는 자칫 일체성들이 전혀 생성되지 않거나

그저 구성원들의 자기방어 논리로 작용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아 갈 거라는 겁니다.

 

더 생각해 보면

차이들이 주체화되지 않았을때

그 차이들은 단순히 구분 혹은 구별로 나타나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전락하면서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하면서

공동체 혹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과거의 유산에 발목잡히도록 하면서

공유가 아닌 소비적 감정들을 양산하는 듯도 보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차이]들이 유의미한 역할들, 일체성을 생성하기위한 적극적인 조건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차이들의 주체화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현실에서는..?

실제로 차이들을 주체화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소위 전문가 혹은 전문적 역량들이 출중한 사람들 이외에 우리처럼 아니 나처럼 유약하고 끊임없이 불안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주체화한 삶이란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런 긍정적인 차이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없는 것일까 ?

 

이 문제에 있어서의 해결점은 아주 자명해 보입니다.

즉, 이런 개인들의 주체화 혹은 구성원들의 주체화 문제 또한 가벼운 외투에서 처럼 무 책임하게

각 구성원들의 선택 혹은 삶의 책임문제로 인식하지말고 집단적으로 차이들을 주체화하는 작업들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차이]의 주체화 문제를 공동의 집단적 해결방식들로써 풀어가는 것이

올바른 공동체의 해결방식이라는 생각입니다.

 

두서없이

얕은 지식으로 흉내내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깊은 고민들로 정리해 내지 못한 것은 순전이 게으른 탓도 있지만

여전히 공동의 작업들로 만들어 내지 못한 탓이 크리라는 생각입니다.ㅎ

 

곧, 공동의 작업들로 [차이]의 주체화 문제를 다루어 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논의 혹은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

-- 집단적으로 주체화를 이루어 내는 방식은 무엇일까 ?

-- 우리 각자가 놓치지 못하는 [차이]들이란 무엇인가 ?

-- 우리들이 가진 [차이]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주체화되고 있는가 ?

-- 우리들은 [차이]들을 어떻게 공유하고 있는가 ?

-- 우리들의 삶의 조건, 차이들을 어떻게 새롭게 동질화 혹은 일체화하고 있는가 ?

-- 결국 우리들이 추구하는 공동체의 일체성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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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1:40 2009/06/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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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  | 2009/06/24 06:48
공동의 작업들로 [차이]의 주체화 문제를 다룰 때,
(9월 이전의)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이 질문들을 짚어보는 게 어떨까 싶네요.
'지금' 서로가 놓치지 못하는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 [차이]의 문제에서 서로가 혹은 우리가 주체화가 되고 있는지/그 [차이]들이 공유되고 있는지/동질화 또는 일체화 되고 있는지 => 그것이 안 되고 있다면 그것이 안 되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의 [다른] 삶의 조건 또는 상황은 무엇인지. 그 [다름]이 일시적인 혹은 '지금'이라는 시기만의 문제여서 그런건지 아닌지... 등등
우리/차이/공유/동일화/일체화라는 질문의 키워드에 '지금'이라는 키워드를 하나 더 추가해서 풀어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 ㅎㅎ 물론, '지금'이라는 키워드를 얘기하는 건 우리의 공부/작업이 '지금'에 머무르지 않을 질문들, 고민들이라는 걸 전제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