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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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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살자’ 스물 한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성민입니다.
오늘은 3년차 초보농사꾼의 농사짓기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사진 한 장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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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브로콜리입니다.
지난 여름에 씨를 놓기 시작해서
9월에 모종을 심고
병충해와 밀고당기기를 몇 번 했더니
이제는 제법 왕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잘 자랐으면 수확까지 큰 걱정은 없습니다.
12월초에 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에 살균제를 한 번 정도 해주면
특별히 신경쓸 것은 없습니다.
8월부터 마음 졸이며 키워온 채소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감귤이 걱정입니다.
제가 재배하는 감귤은 5월초에 수확하는 품종이라서
아직도 자라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열매가 좀처럼 크질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보였더니
여름에 물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3월까지는 계속 자라는 것이어서 물 공급을 잘 하라고는 했는데
제대로 자라지 못한 감귤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않좋습니다.


농사라는 게
이렇게 마음을 졸이면서
식물의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뭔가에 몸과 마음을 다해서
정성을 기울이는 게
한편으로는 좋기도 합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닐봉투에 담긴 것은 시금치입니다.
밭에 시금치를 조금 심었는데 요즘 수확을 하고 있습니다.


칼로 뿌리를 잘라내고는
주변에 어지러운 잔잎을 정리하고
비닐봉투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작업은 간단하지만
세 명이서 비닐봉투 다섯 개를 채우는데 2시간이 걸립니다.
다른 작물에 비해서는 작업이 쉬운 편이기는 합니다.


10월초까지 겨울작물을 심느라 바쁘게 보냈다가
한 달 동안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생활도 많이 즐기고 책도 많이 읽고 그랬는데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머리 속에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그러다보면 종종 불편한 생각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라서 고민스러웠는데
때마침 시금치 수확을 하게되서 잠시나마 머리를 비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확의 즐거움은 잡념을 몰아내는 것까지 덤으로 얹어줍니다.


비닐봉투 하나에 시금치를 5kg씩 담아서 공판장으로 보냈더니
하나당 7천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수수료와 운송료 등을 빼고나면 5천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옵니다.
부모님이란 셋이서 2만5천원 정도 벌었습니다. 하하하


농사를 지으면서 배우는 것 중의 하나는
수확의 즐거움은 그 자체로 즐겨야한다는 것입니다.
입금되는 돈에 연연하면 그 즐거움이 고통이 되거든요.

 

3


부모님이 하시는 감귤 하우스 8백평과
매제에게 빌린 노지 1천평으로 밭농사를 함께 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밭주인인 매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밭을 처분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이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그러라고 했습니다.


귀농하고 3년 동안 이런저런 작물을 재배하며 농사를 배우기 시작해서
이제는 농사가 뭔지 조금 알기 시작했는데
밭농사는 여기서 끝나게 됐습니다.
그 밭은 아마도 부동산업자에게 넘어갈테지요.


살짝 마음이 심란하기는 했지만
열심히 해봐야 연수익 300만원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라
가볍게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300만원이 저한테는 큰 돈이지만
없이 사는 것에 워낙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해버립니다.


감귤농사도 하고 구석구석 텃밭도 일구다보면
이래저래 할 일도 많고
솔솔치않은 재미도 듬뿍있습니다.
어디 알아보면 조그마한 밭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당장은 브로콜리랑 양파랑 마늘이 잘 자라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것들을 잘 자라게해서 수확하는 재미랑 나눠먹는 재미를 만끽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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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Joo Lee님 : 사랑이와 사랑이 친구가 성민씨 마음을 언졔쯤 알게 될지....

 


지난 방송에도 어김없이 Kil-Joo Lee님이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사랑이 친구는 제 마음을 조금 아는지
요즘에는 10m 정도 가까이까지 다가옵니다.
제가 공격하거나 쫓아내지는 않는다는 걸 아나봅니다.
좀 더 시간을 갖다보면 한 발씩 더 가꺼워지겠지요.


사랑이가 제 마음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랑이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저를 좋아하고 따르기는 하지만 묶여있는 게 너무 싫은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나타나면 친구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거겠지요.
그렇게 사랑이 마음을 이해하면 너무 너무 미안해집니다.
미안한 마음에 한 번이라도 더 산책을 시켜주려고 노력하지요.

 


오늘 방송을 마치며 들려드릴 노래는
‘아우따알빠 유방끼’라는 아르헨티나 가수의 ‘달구지에 흔들리며’라는 노래입니다.
원어로는 ‘Los ejes de mi carreta’인데요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골라봤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가사를 보며 노래를 들어보시지요.
저는 다음 주 월요일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달구지 바퀴의 축에 기름을 안 치니까
게으르다고 사람들이 핀잔일세
나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좋은데
왜 기름을 치라는 것일까
너무 지루해서 바퀴 자국을 따라가네
길을 따라 앞으로
그래도 즐거움은 있는 법
나는 조용한 것을 원하지 않아
생각할 일조차 없으니까
있긴 있었지만 먼 옛날의 추억일 뿐
나의 달구지의 축이여
결코 기름을 치지 않으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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