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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남성지식인들의 액션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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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망설여진다.
그런 영화들은 교묘하게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당한 투쟁의 주체를 불쌍한 피해자로 만들어버리고
범죄의 주범은 뒤로 숨은 채 잔챙이들만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고
역사의 흐름은 증발한 채 영웅들의 활약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7’을 볼까말까 망설였는데
워낙 이슈가 되는 영화인데다가
완성도도 높다고 해서
속는 샘치고 보러갔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2시간이 훌쩍 가버릴 정도로 박진감도 있었다.
역사적 펙트에 충실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역사적 무게에 짖눌리지 않는 뚝심도 보였다.
중간중간 오버하는 면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봐줄만했다.
영화로만 놓고보면 잘 만든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가졌던 나의 우려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영화는 박종철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투쟁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래서 검사와 기자와 교도관과 재야인사들이 극악한 공안경찰과 맞서는 싸움에 집중했다.
선과 악은 너무나 분명했다.
어려서 북에서 쫓겨내려온 골수반공주의자인 공안경찰 간부는 철저한 악마였다.
그에 맞서는 검사와 기자와 재야인사들은 사명감에 불타는 시대의 양심이었고
죄수들을 관리하는 교도관마저 양심에 갈등하는 공무원이었다.
민중을 때려잡는 경찰 뒤에서 권력의 달콤함을 즐겼던 공안검사들
정권이 시키는대로 받아쓰기만하며 민중의 비참함에 눈감았던 어용기자들
공안수를 무지막지하게 짖밟고 가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비리교도관들
대중투쟁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보수야당과 거래했던 재야운동의 지도자들
역사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런 모습을 영화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휴~ 흥분하지 말자, 역사에 대한 왜곡은 이게 시작일뿐이니까.


전두환 대통령의 발언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 영화는 역사적 펙트임을 강조했다.
30년 전 사건을 알지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적 조명을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내 앞자리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는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이었다고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숨가쁘게 영화는 달렸지만 6월항쟁이 왜 일어났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서울대생 박종철과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일뿐이었다.
대학생들이 왜 목숨을 걸면서 투쟁을 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1970년 전태일부터 무수한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싸워왔고 죽어갔던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농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철거민들이 망루로 올라가고, 노점상들이 가스통을 붙들고 울부짓는 모습은 지나가는 엑스트라로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 민중은 없었고 철저하게 지식인들만이 영웅처럼 활개쳤다.
“아, 6월항쟁은 용기와 양심을 가진 지식인들이 떨쳐일어나서 세상을 바꾼 투쟁이었구나.”


영화에는 온통 남자들만이 설쳐댔다.
공안경찰도, 검찰도, 기자도, 대학생도, 재야인사도, 교도관도 온통 남자들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아주 선이 굵고 화끈하기는 했다.
이런 식의 남성 액션 느와르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시비거는게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룬 것이기에 용기를 내서 시비를 걸어보자.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남성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 인정하자.
당시 시위 주동자나 재야 지도부도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 그것도, 할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인정하자.
투쟁하는 민중들 속에 상당수의 여성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 영화의 초점이 상층에 맞춰져 있으니, 까짓거 쿨하게 인정해주자.
그럴거면 철저하게 남자들만 설치게 만들어야지
교도관의 조카라는 어색한 위치에 이쁘장한 여배우 한 명을 갖다놓은 이유는 뭘까?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투쟁하는 와중에
줏대없이 상황에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그 여자는 왜 필요했지?
남자들만 있으면 너무 상막하니까 이쁜 꽃이라도 하나 필요했었나?
하긴 이쁘기는 하더라.


작년 겨울 박근혜를 탄핵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촛불집회에 나가면서 매번 놀랐던 것은 대중의 그 엄청난 에너지와 간절한 열망이었다.
그렇게 그들 속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한 명으로 같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 뜨거웠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힘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낼 수 있다는 너무도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함께 투쟁을 벌였던 집회 참가자들의 다수는 10~20대의 젊은 청년들과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은 30~40대들이 많았고, 남성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정치인들과 사회단체 간부들의 목소리가 주로 들렸다.
그 추운 겨울 촛불을 들면서 우리는 똑똑히 지켜봤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추악하지
정치인들이 얼마나 얍삽한지
언론들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사회단체들이 얼마나 허약한지...
하지만 30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들의 투쟁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손석희와 문재인의 영웅담만 넘치고 우리들의 모습은 엑스트라로도 아닌 엔딩을 장식으로 스틸사진으로만 보여지겠지.

 

지구를 지킬 것 같았던 장준환은
10년만에 나타나서 이상한 아이를 내놓더니
이제 역사를 남성 지식인들의 판타지로 만들어버렸다.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는 말끔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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