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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너무나 따뜻하고 자유로운 판타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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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안면장애가 있어서 밖을 나갈 때는 우주인들이 쓰는 커다란 헬맷을 쓰고다니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를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뻔한 헐리우드 영화일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블러버스터들이 난리를 치는 이 겨울에
작고 따뜻한 영화를 보고 싶어서 ‘원더’를 택했다.


헬맷을 쓴 아이가 가족들의 손을 잡고 학교 앞에 이르렀고
가족들의 따뜻한 격려 속에 헬멧을 벗고
잔득 긴장된 표정으로
학교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는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는 이야기를 신파로 흐르게 놔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벌어지는 상황을 덤덤하게 관찰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아이를 둘러싼 상황을 최대한 절제해서 드러내면서도
나레이션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감독의 밀당기술이 꽤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이 그렇게 적정온도를 유지해주셔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감정이입을 하며 보기에 아주 좋았다.


아이가 처한 상황에 한숨지을 필요없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자연스럽게 기울이게 된다.
그들의 중심에는 우주인 헬맷을 쓰고 다녀야 하는 ‘어기’가 있지만
어기의 엄마도
어기의 아빠도
어기의 누나도
어기의 친구도
어기의 누나친구도
심지어 어기의 개도
모두들 자기만의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독립된 행성들이었다.
그 독립된 행성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어기를 복돋워서 빛나게 하고
그 빛이 서로의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있었다.
“아~ 서로를 살며시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빛날 수 있구나.”


어기를 둘러싼 행성들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어기의 가족은 백인 중산층이었지만
그들 둘러싼 행성들은 유색인종이거나 가난한 환경과 불안한 삶에 찌들려 있었다.
그런 그들이 조금씩 편견을 극복하면서 어기와 그 가족들에게 가까워지면
어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성들은 우주 속을 자연스럽게 유영했다.
그곳에는 인종적 편견도 계층적 차별도 구질구질한 삶의 신파도 없이
오직 자유로움과 편안함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 세상의 힘은 낮은 곳에서 흘러나오고 그 향기는 다채로움으로 널리 퍼지는거야.”


영화의 이야기는 별다를 것 없었다.
특별한 악당도 특출한 영웅도 없었다.
당연히 화려한 볼거리고 없었고
미장센이니 음악이니 하는 게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냥 뻔한 헐리우드 가족영화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영화에서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헐리우드 영화에서 식상할 정도로 뻔한 엔딩장면을 바라보는데
가슴은 벅차오르고
눈물은 흘러내렸다.
“이 겨울에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이 영화 속의 상황보다는 수십배는 더 냉혹하다.
그리고 우리의 온정은 이 영화 속 손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얇다.
그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분명 판타지다.
영화가 고단한 삶을 위로받기 위한 판타지라면
이렇게 따뜻하고 자유로운 판타지라는 게 너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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