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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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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초부터 시작된 무더위가 8월에도 계속 되고 있지만
8월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들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잠자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귤나무에 물을 주는 간격이 5일에서 6일로 늘었습니다.
여름 과일과 채소의 수확량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일을 하며 흘리는 땀의 양이 줄었습니다.
길가에 말리기 위해 세워놓은 참깨묶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박밭에 넝쿨을 정리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폭염과 열대야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 않은 요즘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름이 끝나가고 있는 징조는 곳곳에서 보입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합니다.
마음이 계절을 앞서 달려가게되면 남은 여름이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니가 아무리 쎈척 해봐야 이미 꼬리는 내려가고 있어”라며 입고리 한번 살짝 올려주고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가 귤나무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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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확장을 위해 비자림의 삼나무들이 무참하게 잘려나가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도로확장 공사가 제2공항 건설과 연관된 것이라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지구온난화의 심각함을 몸으로 흠뻑 느끼고 있는 때에
한쪽에서는 울창한 산림을 밀어버리고 더 많은 차와 비행기를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자본주의의 탐욕은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공기는 오염되서 숨을 제대로 쉴수도 없고
강물은 고여서 썩어들어가고
바다는 플라스틱으로 뒤덮히고
태풍은 점점 사나워지고
기온은 폭염과 혹한을 반복하는데도
자본주의는 아직도 배가 고픈가봅니다.


제가 국민학교 2학년 때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저를 많이 귀여워해주셨던 할머니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이신데
돌아가실 때 나이가 아흔아홉이셨습니다.
할머니는 1870년대에 태어나셨다는 얘긴데
조선이 망하고, 일본이 들어오고, 해방이 되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셨던 거지요.
물론 제가 할머니의 살아온 얘기를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2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이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게 증조할머니의 역사와 맞다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절대적인 것 같은 이 자본주의라는 게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가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얇은 역사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새파랗게 어린 놈이 하는 짓거리를 보세요.
200년만에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아버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래놓고도 멈추지를 않는다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달리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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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네 가족들이랑 해수욕장을 다녀왔습니다.
여름에 바닷가 가는 걸 즐기지 않아서 처음에는 갈까말까 망설였습니다.
막상 바다에 도착해서도 바닷물에 들어갈까말까를 또 망설였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모두 같이 바닷물에 들어가게 됐는데
바닷물이 시원하고 수영하기에도 좋아서 금방 즐거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오래간만에 파도를 느끼며 수영을 하는 기분이 꽤 좋았고
수영을 즐기고 나와 먹는 치킨과 맥주의 맛도 정말 좋았고
따뜻한 모래 속에서 찜질을 하는 재미도 의외로 좋았습니다.
간간히 구름이 끼며 햇살을 줄여주는 날씨까지 금상첨와였지요.


그렇게 서너 시간 즐겁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더니 혼자 집을 지키던 사랑이가 반겨주더군요.
그런 사랑이를 보니 혼자만 놀러갔다온 것이 미안해졌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되새기며 방송원고를 쓰고 있으려니 이 즐거움을 같이 누리지 못한 이들에게도 미안해집니다.
혹여나 나의 즐거움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런 미안함과 걱정을 담아서 마지막 노래를 들려드리렵니다.
누군가의 행복의 언저리를 겉돌며 이 여름을 버티고 있을 분들과 함께
박효신의 ‘숨’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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