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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56회


1


감귤이 익어서 서서히 수확을 시작하는 요즘입니다.
근처에 있는 감귤선과장도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산책길에 노랗게 익은 감귤들을 보면 상쾌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제가 재배하는 감귤은 4월에 수확하는 것이어서 지금은 한참 자라고 있는 중이지만
저도 6개월 후에는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감귤이 잘 자라길 바라며 열심히 잡초를 뽑고 있던 어느날
아버지 친구분이 감귤을 보러오셨습니다.
감귤을 둘러보신 그분이 열매에 병이 들었다면서 한숨을 쉬시더군요.
그분의 말을 듣고 감귤을 자세히 살펴봤더니 곳곳에 이상징후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열매들이 그렇게 된 걸 그제야 발견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 품종을 전수해주신 분을 찾아 서귀포까지 갔습니다.
그분이 감귤을 보시고는 이런저런 진단을 해주시는데
결론은 “이렇게 되버린 것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말에 또 더 가슴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봤지만
사람마다 진단은 다 달랐고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짓지만 가슴은 계속 무너져내립니다.
수백만원의 수입이 날라가버렸다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낙담이 더 컸습니다.


심란한 마음의 파도가 계속 밀려드는데
그때마다 파도를 피해 뒤로 물러서곤합니다.
자꾸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농사를 배워가면서 한두번씩은 다 경험하는 수업료라고 생각하자”
“올해는 달린 게 적어서 고민했었는데 양이 많지 않은 게 다행이네, 헤헤헤”
“아직 수확까지는 6개월이나 남았으니 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미리미리 하면 수확할 때는 무덤덤해지겠지”
“앞으로 열매가 조금 더 크고 익어가기 시작하면 건질 수 있는 게 많아질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기다려보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한해 농사를 망치더라도 그것에 너무 연연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자연재해나 부주의로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대범해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파도는 내가 물러서면 또 그곳으로 밀려들곤 합니다.
그러면 또 물러서는 수 밖에 없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 물러서고
또 밀려오면 또 물러서고


음...
하우스에 뽑아야할 잡초들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사랑이랑 같이 하우스에 들어가서 잡초를 뽑아야겠습니다.

 

2


※ 울산 대안문화공간 품&페다고지에서 울산의 이웃들의 정성을 모아 1차로 보내는 연대입니다.


날씨가 자꾸만 차가워지네요.
조금 더 모아서 보내려 했는데
날씨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우선 모인 것을 보내드립니다.
살펴보시고 보내기 적절치 않은 것은
처분해 주세요.
20~30대 남성 외투 중심으로 모았습니다.
무언가 연결되고 싶었던 소식이었는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소식들 나누어 갔으면 해요.
손수건 하나 드립니다.
10년전에 공간 하나를 만들었는데
아직 남아있어요.
몇일전 10년 잔치를 하며
이웃들에게 감사의 징표로 나누었어요.
성민씨에게도 감사 전하며... ㅎㅎ
(이 손수건 그림은 우리 공간을 떠올리며 그린 거랍니다.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던 젊은이들중 1명이...)


- 울산에서 유미희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주에 있는 예맨분들에게 겨울옷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적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니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옷이 왔습니다.
그 속에 따뜻한 편지와 선물도 있었습니다.
사진은 선물받은 손수건에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여러분에게 자랑하려고 소개합니다.


이 택배를 받은 것이 금요일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감귤문제 때문에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이 선물을 받았더니 마음 한구석에 여유가 생기더군요.


무거운 마음이 나를 짖누를 때는
물러서고 도망가는 게 최고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 마음에게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연대가 가장 좋은 치료약입니다.
내 자신만을 붙들지말고 주위를 돌아보면 이렇게 여유가 생깁니다.
아~ 기분좋은 금요일이었습니다.

 

3


무척이나 볕이 좋은 요즘입니다.
이렇게 볕이 좋은 가을에는
사랑이와 산책하기도 좋고
밭일 하기도 좋고
명상하기에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전에 밭일을 마치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겁니다.


가장 행복해지는 시간이지만
이 행복도 금방 사라질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 최대한 행복하려고 노력해봅니다.

 


(David Darling & The Adagio Ensemble의 ‘Clea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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