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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93회

 

1


거칠게 분류하면 스타는 두 종류다. 애초부터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획돼 세상에 나오는 스타가 있고, 자기 방식으로 나를 표현했을 뿐인데 대중의 폭발적인 환호와 관심을 받아 스타가 되는 이도 있다.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원래 그런 것뿐인데 독특하다고 주목받으며 인기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건 나에겐 숨쉬듯 자연스럽고 특별한 것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대중이 그 점을 특별한 것으로 느끼고 좋아하기 시작하면 숨쉬는 걸 한 번도 의식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호흡이 신경쓰이듯 그때부터 ‘나’는 ‘나’를 의식하게 된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보면 그것이 원래의 나였는지,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상(像)인 건지 스스로도 혼돈스러워진다. 애초에 대중의 욕구와 취향에 맞춰 기획된 스타는 물론이고 출발선이 달랐던 스타들까지도 그런 의식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나를 의심하고 추궁한다. 나는 진짜 나인 것인가?
스타란 너(대중)의 취향에 나를 온전히 맞추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생태계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나를 너에게 맞추는 촉이 고도로 발달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다르게 표현하면 스타가 누리는 지위와 힘은 빼어난 재능과 고도의 촉을 바탕으로 자기 소멸의 경지에 다다른 이가 누리는 화려한 보상이다. 그게 스타의 본질이다. 일시적으로 그런 삶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스타라면 그런 삶에서 지속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스타는 화려하게 시든 꽃 같다.

 


정혜신씨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옮겨온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스타라는 게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적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멋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동경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크면 저렇게 살아야지 생각을 했지요.
대표적으로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청춘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대학에 가면 저렇게 살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갔더니 현실은 드라마랑 너무 달랐고, 내 위치도 주인공이랑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알아가다보니 내 위치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더군요.
어른이 돼서도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보지만 주연보다는 조연에 감정이입이 되고, 나중에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드라마나 영화 속 세상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멀어져가니까 스타들에 관심이 없어지더군요.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그들을 그냥 캐릭터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화려하게 시든 꽃’이라고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더군요.
화려하게 장식된 조화를 볼 때 느끼는 삭막함이나 이질감이 확 밀려오더니
‘화려하게 시든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찾는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다가오더군요.

 

2


저는 수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스타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거의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시골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지요.
그렇게 살다보면 남을 의식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의식할 남이 없으니까요.


의식할 남이 없으면 오로지를 나를 의식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거울을 볼 때를 제외하면 내가 나를 바라볼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내 마음이 요동치는데로 따라갈 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는 소리에 자꾸 귀를 기울이려고 해봅니다.
제일 많이 하는 얘기는 해야될 일들에 대한 계획과 걱정들이고
한가할 때면 멀찍이 세상을 바라보며 무정함에 대해 한탄하기 바쁘고
가끔 가족들이 찾아오면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드문드문 과거의 내가 살짝 고개를 내밀어보지만 별 댓구가 없으면 금새 고개를 집어넣어버립니다.


제 마음 속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들려오지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일들을 빼면 세상을 향한 애증이 건더기처럼 걸러집니다.
결국 저는 남들의 시선을 그리워하는 거였습니다.

 

3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고 다 쓰고 죽기 어려울 만큼 재산이 있다.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 달려와 줄 지인들이 즐비하고 어느 모임에 가든 모임의 중심이 된다.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사람들이 집중한다. 그런데도 늘 외롭다고 느낀다. 그 외로움을 가까운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더 외롭다.
어느 정치인이 떠오를 수도 있고 성공한 기업가나 벼락부자가 된 자산가, 정상에 오른 연예인이 생각날 수도 있다. 누구를 대입해도 다 맞다. 그런 사람 천지다. 다 가진 자들의 이런 서민스러운(?) 불안과 외로움이 이해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별개다. 역설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영역에서 인간은 공평하게 허기지다.

 


정혜신씨의 책에 나오는 또다른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어봤습니다.
잘나가는 사람이나 나같은 놈이나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니까요.

 

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이는 어릴 때부터 밖에서 자라다보니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먹을 것을 주면서 억지로 들어오게 해도 완강하게 거부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갔다오면 제 눈치를 살살 살핍니다.
그런 사랑이를 보며 ‘들어와’라고 얘기하면 냉큼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별로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누워있다가 제가 움직이면 저를 바라보는 게 일이지요.


그러다가 제가 소파에 앉으면
살며시 일어나서 살금살금 제 옆으로 다가와서는
머리를 살며시 들이밉니다.
그러면 제가 사랑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지요.
오직 저만 보고 살아가는 사랑이는 이렇게 외로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김원중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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