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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11회


1

겨울이 시작됐습니다.

 

겨울은
날씨가 추워지는데다가
할 일도 많지 않아서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따뜻함이 간절해지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명상이나 운동을 하기 힘들고
만나는 사람도 없어서 마음까지 덩달아 차가워집니다.
움추러든 몸과 마음을 안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머리 속에서는 이 생각과 저 생각들이 날뛰며 싸움이 벌어지지만
대부분 긍정의 에너지보다는 부정의 에너지가 힘을 발휘하곤 합니다.

 

더군다나 올 겨울에는
함암치료를 하는 아버지와 곁에서 돌봐야 하는 가족들을 멀리서 지켜봐야하고
세상에 대한 배신감으로 다시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까지 돌봐야하니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부정의 에너지를 이겨내려면
긍정의 에너지를 키워서 면역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고,
맞서 싸울수 없으면 도망가기라도 해야하는데
도망가고 도망가서 다다른 곳이 지금 여기기에 더 도망갈 곳도 없고,
싸울수도 없고 도망갈수도 없으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서 스스로 가라앉길 기다려야하는데
그 정도 내공이 되질 않으니...

 

특별한 방법이 보이질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것들을 감내해야합니다.
괴롭히면 괴로워해야하고
조롱하면 조롱당해야하고
쪼아오면 아파야합니다.

 

스님들은 겨울이 되면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동안거를 한다고 하지요.
저도 이번 겨울을 동안거 기간으로 삼아봐야 하겠습니다.

 


2

 

사랑이와 산책을 하는데 누가 다가오더니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누군가 : 안녕하세요, 산책하시나봐요?
성민이 : 예.
누군가 : 개가 참 사랑스럽게 생겼네요.
성민이 : 예, 고맙습니다.
누군가 : 무슨 걱정있으세요? 얼굴이 좀 그렇네...
성민이 : 예? 제 얼굴이 뭐가요?
누군가 : 글쎄, 조금 어두워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성민이 : 음... 그런가?
누군가 : 세상이 참 만만치않죠?
성민이 : 아... 뭐, 세상이 그렇죠.
누군가 :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누군가는 강해져야 한다고 하는데, 강해진다는 건 세상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라는 소리잖아요.
성민이 : 그렇죠.
누군가 : 그렇지 않고 세상에서 물러서있으려는 사람도 많은데 물러서면 물러설수록 세상은 더 거세게 밀고 들어오고요.
성민이 : 예.
누군가 : 그런 세상을 피하지말고 맞서 싸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작 그들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치고받기는 마찬가지고.
성민이 :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기나하면 다행이죠.
누군가 :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봐요.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어서 말이죠.
성민이 : 자살도 쉽지가 않죠. 남아있는 사람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면...
누군가 : 그래서 어쩌시려고요?
성민이 : 예?
누군가 : 주기적으로 상처를 안겨주는 이 세상을 욕하면서 계속 뒤로 물러서고만 있잖아요. 그렇게 살아가시려고요?
성민이 : 뭐, 아직은 잘...
누군가 : 다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어땠을까요?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그 불씨를 키워나가라고 얘기해오지 않으셨나요?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번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상은 노래 좋아하시잖아요. ‘이젠 나에게 없는걸 아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성민이 : 음...
누군가 : 댁이 도와달라고 했을 때,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10년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 걱정을 해주기도 하고, 가까운 친척분은 아버지를 직접 같아가서 위로를 하기도 하셨다면서요. 이런 사람들이 소중하지 않으세요? 이런 분들이 얼마나 많아야 성에 차실까?
성민이 : 그렇죠. 소중한 걸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때 제 마음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녀석 : 푸하하하하. 부처님 납시셨네. 크흐흐. 성민아, 그런 얘기가 부질없는 얘기라는 걸 누구보다 니가 잘 알잖아. 세상이 그렇게 말랑말랑하든? 선한 사람 100명이 악한 사람 1명을 못당하는 거야. 그런데 주위를 봐, 니 주위에 선한 사람은 몇 명이고, 악한 사람은 몇 명인지. 흙탕물 속에서 연꽃처럼 도도한척 해봐야 연꽃 꺾어서 장사하는 사람만 이익인거야. 그렇게 연꽃 꺾어서 장사하는 놈들이 부처님 같은 소리만 지껄이는 놈들이고. 에고에고, 언제쯤이면 정신차릴래? 세상을 좀 제대로 보세요, 제발.

 

아, 제 마음 속은 전쟁터입니다.

 

3

 

겨울이라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사랑이와 보내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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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있으면 사랑이가 다가옵니다.
누워있는 저를 지긋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같이 놀고싶다고 제 손이나 발을 핥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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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tv를 보다가 주전부리라도 먹게 되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알아듣고 사랑이가 침대 곁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말하지 않고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만 들리밀지요.
그러면 저는 과자를 사랑이와 나눠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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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사랑이가 제 발치에서 잠을 잡니다.
제 곁이 편안하고 좋다는 거겠죠.
온전히 저를 믿는다는 사랑이의 이 모습을 볼 때면
제 마음도 편안하고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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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낌새가 있으면 사랑이는 바로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제가 일어서서 움직이면 냉큼 따라 일어나서 같이 움직이고
제가 가만히 있으면 다시 고개를 내려놓고 잠을 자지요.
성민이바라기 사랑이가 가장 귀여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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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스킨쉽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랑이는 틈만나면 제게 다가와 고개를 들이밉니다.
쓰다듬어달라고 애정표현을 하는 사랑이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면
서로의 마음의 통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차가운 이 겨울에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사랑이가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전진희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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