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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젊다 우리는 강하다, 불안을 파고드는 극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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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독일의 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대규모로 밀려드는 난민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를 규탄하다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로 번져 일어난 폭동이었다.
이 영화는 그 폭동의 한복판에 서있는 독일인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비교적 규모가 있는 공업지대이지만 쇠락해가는 도시에는 실업자와 난민들이 넘쳐났다.
당연히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높아져갔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정치적 계산 속에서 적당히 상황을 방치하고 있었다.
그속을 빠른 속도로 파고들어가고 있는 세력들이 신나치주의자들이었다.
‘독일민족이 죽어가고 있으니 일어나서 배반자를 처단하자’는 그들의 주장은 불안한 현실에서 더 불안하게 떠다니고 있던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국가권력과 기성세대를 가차없이 조롱하면서 난민과 외국인들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동유럽출신 난민과 극우 독일인 사이에 끼어있던 이들은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던 베트남출신 이주노동자들이었다.
노동현장에서는 값싼 임금에도 열심히 일하는 그들에 우호적이었지만 그들과 경쟁해야하는 독일노동자와 실업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그들이 달갑지 않았다.
결국 동유럽계 난민문제에서 시작된 시위는 중간지대에 있던 베트남출신 이민자들에게로 번졌고 정부의 무능과 방치 속에 대규모 폭동과 방화로까지 커져버렸다.


그 현장을 누비고 다니던 10대들은 세상이 흔들리는만큼 끊임없어 흔들리고 불안해했다.
그 불안 속에 친구가 자살을 했지만 친구의 자살을 슬퍼하기보다는 세상을 저주하기에 바빴다.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더 흔들리고 불안해졌지만 그 불안을 잡아주는 것은 ‘조국의 위기 앞에서 강해져야 한다’는 극우선동과 ‘여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남자의 힘’이라는 마초적 욕구였다.
끊임없는 불안은 끝임없이 강한 힘에 대해 집착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들이 찾아낸 희생양은 국가의 방치 속에 폭력의 제단에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이었다.
불안을 영혼을 잠식했고, 영혼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힘없는 자를 재물로 삼았던 것이다.


영화는 불안한 영혼과 폭력의 제단이라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표현주의적인 방식으로 우회하지 않고 정면에서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10대 배우들의 연기는 원래 그런 애들이 출연한 것처럼 너무도 리얼했다.
당시 사회분위기만이 아니라 10대들의 불안한 정서까지 아주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다.
역사적 배경과 주변 상황에 대한 묘사가 적어서 전후상황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고
폭력적 상황 속의 대치상태가 조금은 순화되어서 긴장감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극우의 선동이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는지에 대해서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됐다.
작년 예맨난민문제에서 드러났던 한국사회의 민낯은 독일 못지 않았다.
거기에 미투운동 이후 나타나는 청년남성세대들의 불만표출 역시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만성적인 청년실업과 불안정한 삶 속에 취업을 위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그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극우의 토양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극우세력은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장년층만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
정치적 계산 속에 현실을 미봉하려는 민주당과 어떻게해서든 틈새를 넓혀 자기자리를 좀더 많이 확보하려는데 혈안이된 정의당같은 세력들이 적당히 현실을 봉합하는한 극우의 기반은 슬금슬금 넓어질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간밤의 폭동 속에 겨우 살아남은 베트남출신 이주노동자가
지난 밤의 악몽을 떨쳐버리려고 밖으로나와서
놀이를 하고있던 귀여운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그 이주노동자와 눈이 마주친 독일 어린이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얼른 돌을 주워들어 이주노동자를 향해 집어던진다.


간밤의 악몽이 지나갔다고 착각하지 말라네!
마침 뉴스에서는 12.12쿠데타의 주역들이 고급만찬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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