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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감정들이 조심스럽고 우아하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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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을 맞이한 중년의 여성 아네에게 화사한 꽃다발이 배달된다.
남편이 보낸줄알고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남편이 보낸게 아니란다.
그럼 누가보낸걸까?
그후 연락처도 메모도 없는 꽃다발은 매주 배달됐다.
정체모를 꽃다발에 대해 남편은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꽃다발을 받는 아네는 싫지가 않다.

 

아네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베냐트는 건설현장 크레인기사다.
베냐트는 재혼한 부인인 라우더스와 살고 있고, 아내는 시어머니인 테레와 사이가 좋지 않다.
라우더스와 테레가 신경전을 심하게 벌이고 난후 어머니인 테레를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던 베냐트가 교통사고로 죽게된다.
베냐트의 죽음 이후 테레는 라우더스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해보지만 테레는 시댁과의 관계를 단절해버린다.
어머니인 테레는 아들의 사고현장에 꽃다발을 갖다놓으면서 아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곳에 또다른 꽃다발이 놓여있는 걸 알게된다.
아들의 친구나 친척들도 아닌데 어떤 메모도 없이 매주 새로운 꽃다발이 놓여있는 것이다.

 

영화는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세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풀려간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에는 꽃다발이 놓여있다.
처음에는 스릴러 분위기를 살짝 보여주기도 했지만 곧 잔잔한 드라마로 이어졌다.
꽃다발을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관계와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한 남자와 세 여자의 관계가 잘 이어지지 않아서 “뭐지?”하는 생각에 살짝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분위기가 차분하고 잔잔해서 그맛에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영화가 1/3쯤 됐을 때야 이야기의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후로는 세 명의 여자들이 꽃다발을 매개로 벌어지는 감정의 교감과 애증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죽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꽃다발을 매개로해서 벌어지는 세 여성의 감정의 변화들은 참 묘했다.
연민과 애증과 질투와 사랑이 뒤섞여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데 그 대립이 날카롭지 않다.
두 개의 감정이 싸울 것 같으면 하나의 감정이 뒤로 물러서고
하나의 감정이 고개를 내밀면 또 다른 감정이 살며시 옆에서 손을 내밀고
두 개의 감정이 춤을 출 것 같으면 또 다른 감정이 훼방을 놓고
그렇게 서로 다른 감정들이 조심스럽게 밀고당기고를 하면서 보는 이를 살살 잡아끈다.
그렇게 묘한 밀당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베냐트의 유골함을 누가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로 마지막 밀당을 하는데
마지막 밀당마저도 새로운 스테이지에서 추는 마지막 춤처럼 조심스럽고 우아했다.

 

인물들에게서 살짝 거리를 두는 듯 하면서도 따듯하게 감싸안는 연출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넘치지 않는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에 감정을 집어넣기도하고 빼기도 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적재적소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우아하게 이끌어주는 다양한 꽃다발까지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는 멋있는 영화였다.
깊은 감정의 울림을 주거나 심오한 철학적 성찰이 담겨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감정들이 우아하게 춤을 추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즐거움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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