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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15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열다섯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진행을 맡은 저는 성민이입니다.

이 방송의 진행자이신 들풀님이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셔서 오늘 방송은 제가 진행하게 됐습니다.

오래간만에 직접 진행하는 자리에 앉게 되니 조금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그러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가 일할 때 신는 운동화입니다.

너무 낡아서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은 1년 밖에 되지 않은 신발입니다.

작년 이맘 때 오일장에서 3만원 주고 산 신발입니다.

3만원짜리 신발을 1년 신었으면 신을 만큼 신은 샘입니다.

하나로마트에서 2만원 주고 산 신발은 석달만에 밑창이 떨어져서 버렸던 기억이 있거든요.

밭일을 하다보니 신발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있어서 1년에 한 켤레씩 새로 장만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신발이 낡아서 일할 때는 신지 않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신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변에 가볍게 돌아다닐 때 신기에는 그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신발 속에 자잘한 돌부스러기가 자주 들어가서 신경이 쓰였는데

신발을 살펴봤더니 밑창이 떨어지기 시작했더군요.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 듯 버리기가 아까웠습니다.

아직 겉모습은 신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고

어차피 주변에 돌아다닐 때만 신는 가벼운 신발이기도 하고

신발 사러 시내로 나가는 것도 귀찮기도 해서

최대한 버텨보는데까지 버텨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볍게 하는데 내 안의 성민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습니다.

 

 

“너무 궁상떠는 거 아니냐?”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얼마 더 신는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

“이 상황에서 그런 행동은 검소한 게 아니라 집착으로 보이거든.”

“아니, 이걸로 버티겠다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늙고 병들었다고 오랜 관계를 너무 쉽게 정리해버리는 그런 느낌...”

“그게 집착인거야. 수명을 다했으면 정리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게 무슨 비인간적이고 몰지각한 행동이라도 되냐?”

“어... 그렇긴 하지...”

 

 

그래서 신발을 새로 사기로 결심을 했지만

시내 신발가게는 비싸기 때문에 오일장에 맞춰서 사러가기로 했는데

다가온 오일장 날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못한 채

다음 오일장을 기다리며 낡은 신발을 계속 신고 다닙니다.

 

 

 

2

 

 

 

 

 

노래마을의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예전에 학생운동을 할 때 참 많이 불렀던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그때는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이념적 혼란이 심했었고

학교를 뛰쳐나갔던 선배들도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더라도 운동에 대한 신념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자주 부르곤 했었습니다.

특히 가사 중에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라는 부분을 더 힘주어 부르곤 했었습니다.

 

 

나이 서른이 됐을 때

저는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젊은 날의 높은 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오다 보니

이런저런 삶의 풍파를 겪게 됐고

이제는 외진 이곳에서 홀로 지내며

노년을 준비해야하는 나이가 돼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냐?”

“아니, 전혀!”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기억하냐?”

“음... 조금.”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가 들리냐?”

“.......”

 

 

젊은 날의 저는 어떤 눈길로 지금의 저를 바라볼까요?

 

 

 

3

 

 

비스듬히

-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요즘에는 시를 읽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딱히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사랑이와 저와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들풀님과 저와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읽는 라디오와 저와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읽는 라디오와 여러분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자기 자신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홀로 서 있는 나무도 공기를 기대고 서 있는 것이니

오늘 방송은 무수한 이들에게 기대어 쉬어가는 시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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