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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97회 – 이 추운 겨울에 춤을 춥시다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아흔 일곱 번째 불을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방학을 맞은 고등학생 조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방학이라고 해도 학원이나 과외 때문에 시간 잡기가 어렵더군요.

요즘 핫 하다는 영화 ‘아바타’도 보여주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그냥 점심만 먹기로 했습니다.

학업스트레스가 많은 조카랑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이런저런 고민도 하면서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늦잠을 자고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난 조카는

“뭘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릴 적 조카가 좋아했던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습니다.

조카의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아서

조금 눈치를 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가볍게 던져보는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조카는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더군요.

어색하게 침묵 속에 앉아있기도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은 얘기를 건네 봤지만

마지못해 대꾸한다는 티가 충분이 느껴질 정도로 건성으로 반응했고

어떤 질문에는 5초 정도 침묵을 지키다가 아주 짧게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나 중간에 엄마랑 통화할 때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얘기를 나누고 있어서

저와의 자리가 싫다는 뜻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30분 정도 식사를 마치고 조카랑 헤어져 돌아오는데

뭔가 모욕당한 기분이 들어서 엄청 불쾌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주 살갑게 지내온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조카를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던 저로서는

조카의 그런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에 학업스트레스가 많은 시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는 그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조카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지 이해하려고 해보다가

그럴수록 마음만 더 불편해져서 포기해버렸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어땠는지를 돌이켜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스스로 서나가는 것을 배워가고 있는 조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자기 힘으로 삶을 헤쳐가다 보면 지금 벌어진 조카와 저의 틈은 더 벌어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너무도 아쉽지만 조카랑 저와의 관계는 당분간 점점 멀어져 갈 것임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 거리를 인정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겠죠.

선우정아의 노래처럼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가는’ 그런 나이임을 새삼 실감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주위를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제 주변에는 분명히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들에게 만약 제 손길이 필요하다면 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겠죠.

떠날 사람은 떠나보내고...

 

 

2

 

‘생일을 모르는 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끔찍한 학대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끔 언론에서 아동학대사건이 보도되면 몸서리치며 가해자들을 향해 욕을 퍼붓고는 했었는데

그 아이들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아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학대로 인해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상증상을 보일 뿐 아니라 트라우마로 인한 장애를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사랑으로 그 아이들을 돌보려던 위탁부모나 상담사들은 제어하기 힘든 이상행동이나 격렬한 반항 등에 어찌해야할지 몰라 쩔쩔 맵니다.

그래도 인내심과 애정을 갖고 아이들과 함께 하며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희망을 가져보지만

일부 아이는 자신을 학대했던 부모에게 돌아가려고 몸부림쳤고 그렇게 해서 다시 망가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이런저런 시설을 전전하면서 트라우마는 더 깊어지고 점점 문제아로 낙인 찍혀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학대의 대물림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 힘겨운 얘기를 읽어내려 가는데

이상하게 자꾸 제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학대나 왕따 같은 끔찍한 경험을 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쌓였던 제 마음의 상처들이 그 아이들을 통해서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관심과 애정 속에 자라면서 따뜻한 경험들을 많이 쌓아야 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했던 것이죠.

제 마음 속에 방치되어 있던 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아이들의 현실이 차갑게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하는 위탁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저라면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를

친자식들과 같이 한집에서 기르면서

끌어안고 쓰다듬고 견디고 눈물 흘리며

그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기를 바라는 그 모습에

제 마음 속 아이가 살며시 눈물 흘리는 것을 봤습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평일 낮, 약속이 있어서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탈 때 기사님이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주셔서

“예, 안녕하세요”라고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있으려니

정류장에 버스가 멈췄고 뒷문이 열리자 기사님이 큰 소리로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뒷문으로 내린 손님은 아무 대꾸도 없어서 기사님의 인사만 설렁하게 맴돌았습니다.

‘기사님이 인사성은 좋으신데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정류장에 멈춰선 버스는 다시 뒷문을 열었고 가사님은 또 큰 소리로 “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던 할아버지가 “예, 고마워요”라고 대답을 하시는데

순간 버스 안에 경쾌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에서는 타는 사람만 있어서 기사님이 조금 낮은 톤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다음 정류장에서는 기사님의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와 버스를 내리던 아주머니의 “고맙습니다”라는 인사가 또 다시 경쾌한 리듬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기사님의 목소리와 승객들의 대꾸가 어우러져 경쾌한 연주를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제가 내리려던 직전 정거장에서 역시

기사님이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했지만

내리던 학생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아서

잠시 썰렁했던 분위기였던지라

저는 내리면서 밝게 인사를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차 벨을 누르고

정류장을 앞둔 신호등 앞에서 버스가 기다릴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향하다가

살짝 스텝이 꼬여서 잠시 기우뚱거렸고

그때 기사님의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크고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균형을 잡느라 적절하게 대꾸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저는

한 박자 늦게 큰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는 버스를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걸어가는데

제 목소리가 너무 커서 버스 안의 분위기가 살짝 우스웠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니

푸~ 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기분은 아주 상쾌하고 좋았습니다.

 

 

 

(이효리의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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