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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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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실습생이 콜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자살했다.

한때 요란하게 떠들어댔던 이야기다.

그러면서 콜센터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도 세상에 알려졌다.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어린 여성 실습생이 말도 안 되는 조건에서 신음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뻔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아동폭력의 문제를 다뤘던 감독의 전작은 고발해야한다는 목적의식이 너무 강해서 주제의식에 짓눌려 버린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래서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했으니 속는 샘치고 한 번 보기로 했다.

 

춤추는 걸 좋아하고 욱하는 성질도 있는 고등학생 소희가 콜센터에 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잘 나가는 회사에 사무직 여직원이 됐다고 좋아했지만 곧 그곳의 열악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진상 고객들에게 끝없이 굽신거리고, 닭장 같은 작업환경에서 실적에 쪼달리고, 동료들과의 경쟁과 은근한 알력에 피를 말리고, 실습생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는 등 그곳의 현실이 그대로 보여졌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학교의 압력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 채 참고 견뎌야 했다.

 

그 현실을 견딘다는 것은 힘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현실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그 속에서 소희는 눈물만 흘리면서 꾹꾹 참기만 하는 불쌍한 희생양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적응하거나 빠져나올 방법을 궁리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지시는 소극적으로라도 거부하려고 노력하고, 참다 참다 못 참겠으면 욱 하고 성질을 부려보기도 했다.

‘고통스럽게 착취당하기만 하는 어린 희생양 소희’가 아니라 ‘불합리한 현실에서 어떻게든 몸부림치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보려는 당찬 소희’여서 오히려 더 사실적이었다.

하지만 소희가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촘촘히 옥죄어 오는 현실을 보여주는데, 정말 한숨 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것이 가장 사실적이었다.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적으로 극단화시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소희가 겪었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소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 노력이 보였기 때문에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소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여성 형사 유진이 등장한다.

단순한 자살사건으로 간단하게 종결할 수 있는 사건을 들여다본 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회사와 학교와 가족과 친구들을 찾아다닌다.

성격이 모난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려는 회사,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조용히 덮고 싶은 학교, 딸의 억울함을 밝히고 싶지만 정작 딸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가족, 그 힘겨움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들도 버티기에 힘들어서 도움이 되지 못했던 친구, 너무 들쑤셔서 쓸데없는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싫은 경찰, 이래저래 눈치 보면서 책임회피 할 명분만 찾고 있는 감독기관 등

소희의 발걸음을 쫓으며 유진이 확인한 것은 이 사회의 민낯이었고

그 시스템이 또 다른 소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잡아들일 범인도 없었고

밝혀야 할 진실도 뿌옇기만 했고

소희의 억울함도 풀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나고 말았지만

너무나 생생한 현실의 시스템을 마주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다음 소희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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