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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불쑥 성욕이 일어났습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민망했습니다.
내 자신을 타일러도 보고 애써 딴 곳으로 마음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음이 가라앉자 ‘내 안의 성민이’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성민이 : 얘기 좀 할래?
내 안의 성민이 : 뭐? 또 부처님 공자님 같은 말씀하시려고?
성민이 : 너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좀...
내 안의 성민이 : 아이 씨~ 내가 뭔 짓을 했어?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만 좀 했던 거 아냐? 생각! 본능! 상상의 자유!
성민이 : 그 상황과 대상을 고려했을 때...
내 안의 성민이 : (실실 쪼개면서) 야, 너는 자위할 때 오만가지 생각들을 아주 자유롭게 하잖아. 아주 디테일하게 상황을 만들고, 대상도 아주 다채롭고, 욕망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최대한 끝까지 밀어붙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금 나한테 훈계를 하냐?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무의미하기도 해서
대화는 더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한 번 ‘내 안의 성민이’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녀석이 대화를 거부하더군요.
그래서 대화를 포기하고 내 마음의 자리를 살펴봤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마음들이 이리저리 놓여있기는 했지만 그리 어지럽거나 혼란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소소한 걱정들이 곳곳에 놓여있고, 쓸데없는 고민들이 살짝살짝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화사한 마음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자리가 아주 좁더군요.
손님을 위한 작은 공간 하나 없이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좁은 오막집에는
허름하지만 정갈하고 편안한 기운이 흘렀지만
기둥은 부실하고 바닥은 그저 맨땅이었습니다.
밖에서 거센 바람이 불거나 땅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곧 무너질 듯이 불안정했습니다.
제 마음자리가 이러한데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주구장창 외쳐본들 한순간 불어오는 욕망의 바람 앞에서 모래성을 쌓는 일일 뿐이더군요.
2
‘섹스’의 느낌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포옹’ 할 때의 체온은 너무나 따뜻했고, ‘육체’의 접촉은 정말이지 친밀했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야 성 자원봉사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첫 경험을 누렸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 성 자원봉사자가 나를 도와 옷을 벗기는 것에서 시작해 포옹->안마->민감한 부분 애무->성적 대화->육체적 접촉->내가 ‘사정’하는 순간까지의 손길에 나는 정말이지 시원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정한 후 침대에서 서로 꽉 껴안고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육체와 육체를 맞대고 두 발을 단단히 걸었다. 이런 과정들에서 나는 정말로 즐겼고 또한 엄청나게 감동했다. 섹스가 끝나고 현장을 정리할 때 성 자원봉사자는 한 번 더 나를 안고 키스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끝이 나는 게 아쉽고 또 아쉬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젠가 한 번 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시간이 여기에서 멈췄으면 싶었다.
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우리 신체장애인의 성은 박탈되기 일쑤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는 게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이러한 성 서비스 자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자원이 인정과 지지를 얻고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성 또한 수치스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리혀 건강하지 못한 건 사회의 이데올로기이다. 공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손천사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서비스는 반드시 계속 이어나가 널리 보급되어야 한다. 성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해서 가다리는 장애인이 적지 않다고 확신한다. 나는 진심으로 손천사의 갖가지 준비와 노력에 감사한다. 또한 정말 진지한 태도로 성심성의껏 서비스해준 성 자원봉사자에게도 감사드린다. 설령 결국 가질 수 없다 해도 그것은 영원의 찰나였다.
...... 적어도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소위 말하는 ‘한때’는 바로 아름다움 그 자체니까. 죽기 전까지 누군가와 섹스 한 번 해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우울과 원망으로 점철된 인생이라 관에 들어가지 않으려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천자오루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그는 대만에서 지체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서비스를 제공받은 한 장애인의 후기 중 한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가 삶에서 채워 넣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저도 역시 ‘섹스’를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포르노는 지겹도록 보았고, 자위도 쉼 없이 해왔고, 성추행도 수시로 저질렀지만
옷을 벗기고, 포옹하고, 애무하고, 성적 대화를 나누고, 육체적 접촉을 하고, 사정하고, 사정 후 꼭 껴안은 채 눈을 맞추고 하는 행위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느낌이 얼마나 시원하고 포근하며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죽기 전에 ‘섹스’는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런 경험이 주는 그 시원함과 포근함과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은 겁니다.
민중과 사랑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불사를 때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기는 합니다.
뜨겁고 통쾌하고 슬프면서도 찬란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그 격렬함은 사라지고 그 여운마저 지워져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는 합니다.
그래서 사라져버린 그 빈자리가 더 쓸쓸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커다란 빈자리에 ‘시원하고 포근하면서 아름다운 느낌’을 채워 넣는 것일텐데
그것이 꼭 ‘섹스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사람과 사랑의 온기를 채워 넣는 그 일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3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들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몸 이곳저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할 때
이 구절을 암송하면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몸의 불편함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그 불편함들이 내 몸의 일부가 돼서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 자리에 탐욕이 자라나고 있네요.
그 탐욕을 없애기 위해 고행자들처럼 일부러 병을 만들 수도 없고
활개 치는 욕망덩어리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스스로 수그러들게 만들 내공도 없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몇날며칠을 집중해서 붙들고 있을만한 것도 딱히 없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일부인 그 녀석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 녀석도 괴물은 아니거든요.
가끔씩 나타나서 무기력해있는 저를 토닥여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기도 하고
가끔 심심할 때는 편안한 말벗이 돼주기도 하는 녀석입니다.
녀석의 성질머리가 거칠어서 가끔 저를 힘들게 하기는 하지만
그 점만 요령 있게 대응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친구입니다.
다만 내 마음의 빈자리는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나의 고통이 수그러든 자리에 편안함만 남으니
탐욕이 그 자리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 채워 넣어야 할 것은
고통 속에 힘겨워하는 이들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생각으로만 머무르고 있으니
그 녀석이 저를 비웃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런 녀석을 받아들이는 만큼 매일 쓸고 닦으면서 자잘한 노력을 이어가는 수밖에요.
(허클베리핀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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