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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4회 – 나이 듦의 서글픔과 외로움과 두려움

 

 

 

1

 

나이 더 들면 서글플 거야

서산에 노을처럼 서글플 거야

 

나이 더 들면 외로울 거야

길 잃은 강아지처럼 외로울 거야

 

사랑 하는 당신이 곁에 있어도 서럽고 외로울까

손 꼭 잡고 놓치지 않아도 길을 잃고 헤매일까

 

나이 더 들면 무서울 거야

돌아가고 싶어도 길이 없으니

 

사랑하는 당신이 곁에 있어도 서럽고 외로울까

손 꼭 잡고 놓치지 않아도 길을 잃고 헤매일까

 

나이 더 들면 별수 없겠지

하나 둘 버리고 사는 수밖에

하나 둘 버리고 사는 수밖에

 

 

최백호가 만들고 강부자가 부른 ‘나이 더 들면’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서글프고 두려운 것인지를 덤덤하게 얘기하는데

아직 그런 나이가 아닌데도 마음이 처연해지는 노래였습니다.

 

제 나이 사십에 접어들 때 세상에서 버림받아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 치며 10년의 세월을 보냈더니

서산에 노을처럼 서글픈 게 뭔지

길 잃은 강아지처럼 외로운 게 뭔지

돌아가고 싶어도 길이 없는 무서움이 뭔지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렇게 사라져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기에

나이 들고 버려지면 별 수 없이 하나 둘 버리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른 나이에 알게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가 젊어서 그런지

세상에서 버려져 서글프고 외롭고 무서웠던 감정들은 살며시 흘러가버리고

그 끝에 남은 지금의 이 삶이 참으로 편안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아직 그 서글픔과 외로움과 무서움이 뭔지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까요?

앞으로 20년쯤 더 살아남아서

그때 또 다른 서글픔과 외로움과 무서움이 밀려올 때

지금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네요.

 

 

2

 

70~80년대 한국영화를 보면 여성들의 한(恨)에 대한 얘기가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시부모와 시댁 식구들의 학대를 견뎌야 하고

버럭 하는 남편의 성질을 맞춰 가면서도 툭 하면 휘두르는 매질도 견뎌야 했고

집안일과 자식들 양육은 기본이고 돈벌이를 위해 허드렛일들도 수시로 해야 합니다.

술과 놀음으로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묵묵히 참으며 지내다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사실을 알고 목소리라도 높이면 무지막지한 매질이 이어집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입 꾹 다물고 있다가

여자가 대드는 일이 잦아지면 ‘성질 더러운 년’으로 낙인 찍어버립니다.

 

남자인 제가 보더라도 숨 막히는 현실인데

이런 모습들이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당시의 실제 삶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제 어머니가 그렇게 살아오는 것을 봐왔고

나이 들어서는 우리 집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참고 견디기만 하는 삶을 살아왔던 이들은 나이가 들어 ‘화병’이 생기고 맙니다.

저희 어머니도 수시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자주 있었습니다.

병원을 찾아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는데 나중에 우울증이 아니라 화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화병으로 몇 년을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화병 증상이 나아졌지만, 이제는 각종 노인성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던 분들이 주변에 많은데

젊은 제가 ‘나이 들어 찾아오는 서글픔과 외로움과 무서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 경솔한 짓인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

 

 

3

 

매서운 추위가 며칠째 쉼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진데다가 바람까지 강하게 불고 있어서 집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요즘입니다.

이런 날씨 속에 저는 보일러 틀어놓은 방에서 영화나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사랑이는 하는 일 없이 가만히 누워만 있고

감귤 선과장의 예쁜이는 줄에 묶인 채 밖에서 추위를 오롯이 견뎌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와 예쁜이가 자꾸 눈에 밟혀서 웬만하면 산책을 시켜주려고 합니다.

 

잠바를 두 개씩 껴입고 장갑을 끼고 나서 밖으로 나서면 두 녀석은 신이 납니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주변 냄새를 충분히 맡고 싶어 하는 녀석들을 배려해주고 싶다가도

날씨가 너무 추워서 제가 힘들어지면 빨리 가자고 자꾸 보채게 됩니다.

거기다가 두 마리가 따로 따로 산책을 해야 하기에 늦게 산책을 나서는 사랑이는 산책 시간이 더 짧아집니다.

 

그렇게 매일 30분씩 실랑이를 벌이는 산책시간이 이어지지만

그 시간만큼 사랑이와 예쁜이는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고

그런 녀석들과 함께 저도 몸을 움직이며 마음 속 찌꺼기들을 흘려보내고

집안도 잠시나마 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찾는 이 없는 제 곁에 이런 녀석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맙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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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자의 ‘나이 더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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