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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우스에 사랑이를 풀어놓고 잠시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이
바람에 하우스 문이 열려 사랑이가 탈출을 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자유의 몸이 된 사랑이는
여유롭게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깜짝 놀란 제가 다가가자 유유히 달아나버렸습니다.
사랑이를 쫓아가면 더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그저 사랑이가 돌아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랑이는 10~20분 정도 자유로운 산책을 즐기고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이런 상황에서 유기견이랑 싸워서 크게 다쳤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주변 밭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고, 산책을 나서는 사람들도 있고, 지나다니는 차들도 있기에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사랑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마음속 걱정들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데
옆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향해 짖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가 다가가면 또 달아날 것을 알기에
사랑이가 제풀에 지쳐서 스스로 돌아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사랑이는 공격성이 없는 개이고
옆 밭 사람도 사랑이를 알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20~30분 정도 산책을 즐기고 나면 다시 어슬렁거리며 제 곁으로 다가오곤 했었는데
이날은 좀처럼 제 곁으로 다가오질 않더군요.
더 이상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있는 하우스 안으로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간식을 주면서 유인해봤지만 얼른 간식만 챙겨먹고는 제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서버리는 겁니다.
사랑이에게 무관심한 척 하며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저를 유심히 지켜볼 뿐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를 않았습니다.
제 주변에서 어슬렁거리지만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로는 다가오지 않는 상황이 2시간 넘게 이어지자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카를 통해 접근해보려고 모카네 집을 찾아가봤는데 집에 없더군요.
사랑이와 오래전부터 알고지내며 많이 아껴주는 분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역시 집에 없었습니다.
화창했던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텃밭의 잡초들도 다 뽑았는데, 사랑이는 저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걱정만 쌓여가고 있었는데 사랑이가 슬금슬금 제 곁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제가 성급하게 행동하면 또 달아날 수 있기 때문에
무신한 척 하면서 조심스럽게 사랑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사랑이는 그런 저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대로 있더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랑이 머리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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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이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간식을 주며 마음을 달랜 후 얘기를 나눴습니다.
성민이 : 사랑아, 니가 그렇게 밖으로 나가버리면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사랑이 : 아이, 또 그런다. 집 주변에서 멀리 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나가서 오래 있다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시 바람 쐬러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는데, 그걸 갖고 그러냐?
성민이 : 그건 아는데, 주변에 차들도 다니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가 혹시 너를 보면 경계하는 천둥이나 똘이라도 만나면 싸움이 날 수도 있는 거고... 작년에 유기견이랑 싸워서 병원에 갔던 거 기억하지?
사랑이 : 그건 그 새끼가 먼저 덤벼들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 그동안 나 혼자 밖에 나간 것이 몇 번 되는데 사건이 생긴 건 그때뿐이잖아. 나도 아무하고나 무작정 싸우는 개는 아니라고.
성민이 : 니가 순한 성격인건 잘 알지. 그래도 걱정되는 걸 어떻하냐?
사랑이 : 내 입장을 한 번 생각해봤어?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다가 니가 산책시켜줄 때만 아주 잠시 밖에 나가잖아. 그것도 줄에 매달려서 너랑 실랑이하면서 다녀야 하고.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나가서 주변 냄새 맡다가 돌아오는 것이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잖아. 10분 정도 혼자 나갔다 오는 것이 그렇게 불만이야?
성민이 : 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나도 니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여기는 사람들도 같이 살아가는 곳이잖아. 사람과 개가 같이 살아가려면 서로가 정해놓은 규칙은 지켜야 하는 거고...
사랑이 : 그건 사람이 정한 규칙이잖아. 개가 원한 건 아니잖아. 나도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건 좋아.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예뻐해 주면 기분도 좋고.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말 잘 들을 때만 예뻐하고, 우리가 자유롭게 놀고 싶을 때는 안 된다고만 하잖아. 많이도 아니고 10분 정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이야?
성민이 : 이 근처에 살아서 너를 아는 사람들은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너를 보면 무서워할 수도 있고...
사랑이 : 모르는 사람을 보면 내가 더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 알지? 짖는 것도 집에서만 그러지 집에서 멀어지면 짖지도 않는다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서운 개가 혼자서 여기저기 막 돌아다닌다”고 없는 말을 만들어내잖아. 나는 그냥 잠시 바람 쐬러 나왔을 뿐이라고. 그게 그렇게 위험한 일이야?
사랑이와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졌지만 서로의 입장만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3
사랑이는 밭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이 개장수에게서 사왔던 어린 강아지였는데
제가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저랑 지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집 밖에 개집을 놓고 그곳에 쇠줄로 묶어놓고 키웠습니다.
개를 처음 길러보는 것이어서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훈련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는 않더군요.
처음에는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외진 곳에서 홀로 농사라는 것을 배워가는 동안 이런저런 실수와 실패들이 있었지만 사랑이가 곁에 있어서 많이 의지가 됐습니다.
어린 사랑이도 세상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항상 곁에 있어서 좋았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큰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폭염이 계속 이어지는 한여름에 사랑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에어컨이 틀어진 집안에서 시원하게 지내는데 사랑이는 목줄에 묶인 채 조그만 그늘 아래서 축 늘어져 지내고 있었거든요.
나만 시원한 곳에 있는 것이 미안해서 사랑이를 집안으로 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지내는 것이 낯설어서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지냈지만, 집안 생활에 금방 익숙해지자 자기 자리를 만들어서 편안하게 지내게 됐습니다.
한 방에서 같이 지내다보니 사랑이의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됐고, 그러면서 사랑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랑이도 밖에서 지낼 때처럼 외부의 소리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오로지 제게만 집중해서 한결 편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둘은 서로를 더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더 서로에게 의지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보내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고집을 부리면서 속을 썩이면
“그동안 쌓인 신뢰가 겨우 이 정도였나?”하는 생각에 허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이의 입장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더군요.
저의 통제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탁 트인 밭들 사이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더 미안해집니다.
‘사람을 위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친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밤섬해적단의 ‘나는야 씨발 존나 젊다 + 하면 된다 + 백범살인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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