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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팔뚝을 잘라 버리면 시원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품질관리부 소속 근골격계 요양투쟁 환자입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직업훈련소를 거치고 198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품질관리
부에 배치되었습니다.
품질관리부하면 검사지와 볼펜을 들고 차의 품질을 체크하고, 다른 부서보다
권위도 있고 생산라인보다 하는 일도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당
시 제가 일하는 곳은 수밀검사, 의장초기검사, 확인검사파트로 사람들을 나누
어서 일을 하였고 저는 수밀검사를 맡았습니다.
수밀검사 기준을 놓고 차 한 대 한 대 생산될 때마다 생산라인 사람들과 실랑
이를 벌였습니다. 직행도장을 찍어주니 안찍어주니 하면서 생산라인 사람들과
다툴 때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여갑니다. 조그만 검사가 지체되어도 콤베어
는 휑하니 차를 싣고 내려갑니다.
그 후 초기검사(생산차의 도아검사, 실내검사) 파트로 옮겨서 검사를 시작하였
습니다. 그 당시 검사를 하면서 가장 무리가 가는 동작은 수동 도아그라스 작
동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 차량이 수동 도아그라스였습니다. 포니, 프레스
토, 엑셀은 작동이 그래도 좀 나았는데, 스텔라 도아그라스 작동은 경운기 수
동발동기 만큼이나 무거웠습니다. 도아 한 짝에 수동 도아그라스 작동을 수 차
례씩 돌려보아야 정상작동을 분간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어깨와 팔꿈
치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다 불량, 사양이종을 놓치면 밑에 확인검사를 하는 고참들이 우리가 검사
하는 라인으로 올라와서 질타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모든 차량의 모든 부품
이 현재의 차량보다 품질이 많이 좋지 않았고 작동 검사도 무겁고 힘들었습니
다.
팔과 어깨 허리에 항상 파스를 붙이고 지냈습니다. 열심히 하면 근력이 붙어
서 더욱 힘이 세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나도 무식하고 한심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하였지만 팔꿈치와 어깨의 통증은 계속 남았습니다. 치료를 받
기 위해 사내의무실에 갔었습니다. 간호원이 하얀 액체가 들어 있는 제법 큰
주사기로 팔꿈치 안쪽 혈관에 주입하고 약을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많이 아플
때마다 여러 차례 갔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심각성을 못 느
끼고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확인 검사파트에서는 생산리페 사람들과 직행도장승인 기준을 놓고 말씨름을
늘 해야 했습니다. 쇠망치로 찍어 죽이니 살리니, 오함마로 죽이니 살리니 하
면서 싸우는 것을 심한 공포감으로 옆에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지금 정상 몸
무게 64kg이 그 당시는 심한 스트레스로 몸무게 57kg으로 나갈 때도 있었습니
다.
차량 시트에 들락거리면서 허리에 통증을 계속 느끼고 차량 시트 슬라이드 작
동이 무거워 앞뒤로 움직여서 질을 내기 위해 잡고 움직일 때도 허리 통증을
느꼈습니다. 화장실에서 일어서기가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검사를 하고 여유를 갖고 의자에 휴식을 좀 취하려 하여도 현장 관리자들은 죄
인 취급하듯이 쳐다보는 눈초리에 안절부절 제대로 여유조차 가지질 못했습니
다. 입사하여 십 수년 동안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되었습니다.

요양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그동안 여러 차례 의무실 의사선생한테 통
증부위를 얘기도 해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을 입
증할 수 없다”는 식으로 예기할 뿐이 었습니다. 자기의 재량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산재휴양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땐 한숨이 저절로 나왔
습니다.
날씨가 궃은 날에는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졌습니다. 통증완화를 위하여 겨울
과 춘추절기에는 남들보다 옷을 더 두텁게 입고 다닙니다. 집에서 마누라와 아
이들한테 통증부위를 주물러 달라하기도 이젠 미안합니다. 퇴근하여 사우나탕
이나 집의 욕실에서 따뜻한 물과 찬물 욕법을 할 때는 통증부위가 좀 풀렸지
만 그 당시 뿐 이었습니다. 움직이는데는 아무튼 지장이 없었지만 조금만 무리
한 동작을 하여도 통증이 사직되어 오른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아파왔습니다.
헬스를 하여 빈약한 근육을 남들처럼 키워보려고 오래 전부터 여러 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통증 때문에 단 하루만에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늘
휴식시간에 따뜻한 바닥에 대고 누워서 통증을 가라앉히고 시작종이 울리면 일
어나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차라리 오른 팔뚝을 잘라버리면 아픈 부위가 없
으니 시원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팔과 허리를 못 쓸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입사부터 지금까지 주야교대근무 하루 열시간 근무합니다. 활동에는 지장이 없
으므로 근무는 남들과 똑같이 했습니다. 휴일 특근은 한 달에 2일 정도 합니
다.
통증을 느낄 때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품질관리부는 공구를 들고 일을 하지 않
는다는 선입관으로 선뜻 이해를 해주려는 사람이 몇 명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얘기가 현장에서 나오면서 그에 대해 관심
을 갖게 되었고, 현장조직에서 검진을 한다기에 검진을 받았습니다. 병원까지
가서 최종 검진을 받고 나서 이게 근골격계 직업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산재신청을 해서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렇게 근로복지공단에 집단으로 요양신청을 하고 산재승인
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고통스럽게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치
료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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