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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첫사랑에 대한 짧은 기록

'투쟁을 생각하면 즐겁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던 것이 올해 초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을까, 교육과 선전을 어떻게 배치하고 조직은 어떻게 할까 등에 대해서 정말 즐겁게 고민했습니다. 박제화된 투쟁에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시달려오다가 모처럼 주체가 되어 투쟁을 구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손덕헌 동지랑 이런저런 점검을 하면서 힘차게 투쟁을 결의하는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너무 설레고 즐거운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근로복지공단을 접수하였습니다.(결국, 꿈은 몇 달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자 대중은 상상외로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억눌리고 애써 감춰왔던 비밀이 가볍게 드러나자 현장은 급속히 술렁거렸습니다. 이런 대중의 엄청난 요구를 받아 안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설렘과 불안함을 함께 동반했고, 이제 투쟁은 긴장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한 대중의 요구가 높아졌지만 거대한 성벽과 같은 조합주의·관료주의의 관성은 너무 완고했습니다.
노동조합은 무너지는 성벽을 신속하게 보수해나갔고, 활동가들은 대중들의 뒤에서 나팔만을 요란하게 불어댔고, 자본은 성벽 보수를 위해 재원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조합주의적 질서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 스스로도 깃발을 드높이는 것 이상으로 움직임을 조직하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돈키호테가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심정으로 버티면서 투쟁은 오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대중의 맥박이 뛰고 있음을 확인한 이상 쉽게 쓰러질 수는 없었습니다. 불안한 표정으로 들어와서 검진을 받고 밝은 얼굴로 돌아서는 사람들, 한숨 속에 쏟아내는 무수한 고통들, 불안하면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눈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한다"고 윽박질렀습니다.
한라공조의 황운하 동지는 "딱 세 번 울면 집단요양을 쟁취한다"고 했는데, 황운하 동지가 얘기한 세 번에서 한번을 더 눈물을 흘린 끝에 집단요양을 쟁취했습니다.

후폭풍과 구속, 1심 실형선고와 보석 기각, 두 번의 항소심 선고유예 속에 넉 달이 지났습니다. 철저하게 자본에 의해 농락당하는 재판, 동생의 유산 소식, 동지들의 애절한 눈동자 속에서 가슴속 깊이 지금의 고통과 분노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투쟁의 즐거움과 긴장과 힘겨움과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달려온 9월의 초입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대의원대회에서 일요 철야·특근까지 허용하면서 자본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숨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분노도 가슴속에 간직할 것입니다.

1심에서 실형을 받고, 면회실에서 마주앉은 늙은 노동자가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일 때, 그 짧은 만남과 투쟁 속에서 쌓인 동지애를 뜨겁게 느꼈습니다.
유산한 동생에게 어렵게 편지를 쓰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가슴 애절하게 적어 넣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분노를 가슴에 간직하면서 올 가을에는 사랑에 빠져봐야겠습니다.

2003. 9.8
울산 구치소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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