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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오리알들의 파업 - KTX승무지부 조합원들과의 인터뷰

 


철도노조 파업에서 가장 핵심적 쟁점의 하나로 등장한 KTX 승무지부 조합원들을 파업현장에서 만났다.

대부분이 20대 중반인 조합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철도의 스튜어디어스’라는 언론의 호들갑 속에 장밋빛 환상을 안고 철도에 입사를 하게 됐다.

“저는 2004년 1월 27일 오리엔테이션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나오신 분이 저희에서 사원아파트도 제공하고, 공무원 수준의 정년도 보장하고, 7급 공무원 대우도 받을 수 있다면서 온갖 좋은 말을 했어요. 그래서 정말 가슴이 떨렸거든요.”

그러나 당시 철도청이 아닌 홍익회 소속 계약직으로 입사한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 뒤에 가려진 냉혹한 노동착취의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KTX가 처음 개통할 때 꿈의 교통수단이라고 떠들어대던 언론들은 개통과 함께 시작된 잦은 고장사고에 대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문제점들을 연일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잦은 고장사고들 속에 피멍이 드는 여승무원들의 얘기는 어느 언론에서도 볼 수 없었다.

“열차가 운행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저희들이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해요. 사다리를 타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희들이 전기를 만지고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거였어요.”

정비창이 있는 곳에서는 정비업무를 맡는 노동자들이 각종 점검과 보수를 하지만, 운행 중에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들은 우선적으로 승무원들이 전부 처리해야 하는 것이 KTX의 현실이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기본적인 교육은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됐다고 조합원들은 흥분을 하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교육이라고 참가하면 책 하나 던져주면서 보라고 그래요. 그게 교육이예요. 그래도 수시로 사고들이 발생하니까 나중에는 저희들이 직접 교육을 해야 했어요.”

교육 얘기가 나오니 옆에 있던 조합원이 맞받아서 시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험이라는 것을 보거든요. 그런데 시험문제가 너무 어이가 없는 게 나와요. ‘승무원 규정에 적합한 구두 굽의 높이는 얼마인가?’ ‘학이 비상하는 모양으로 생긴 역의 이름은 무엇인가?’ 뭐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문제를 내고 시험을 보는 거예요. 그런 내용을 시험을 보고는 시험 결과에 따라서 인센티브를 준다고 그러는 거예요.”

처음부터 너무도 어의 없는 얘기들이 나와서 질문하는 나까지 말문이 막혔지만, 당사자들의 기막힌 얘기들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한 대에 기관사 1명, 승무원 2~3명, 공사소속의 팀장 1명이 타거든요. 규정상 승무원은 3명이 타게 되어 있어요. 3명이서 특실 1명, 일반실 1명, 자유석 1명 이렇게 맡아요. 그런데 호남선의 경우는 2명만 있어요. 그렇게 하면서 2명으로도 충분하다면서 2인승무로 전환하려고 하거든요. 경부선은 3인승무제를 한다고 하지만 비번이 생기면 2인 승무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엄청 바쁘게 일하는데도 비번 때도 제대로 쉬지도 못해요.”

각 구간마다 검표와 각종 승객 서비스 업무를 해야 하는 승무원들은 예상 외의 극심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특실의 경우 한 구간 당 10여 분이 소요되는데 그 사이에 127명에 이르는 승객에게 검표와 서비스 업무를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일반실에 있는 경우는 방송업무까지 맞아서 해야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 가까이를 달리고 나면 2~3시간 후에 다시 하행선을 타고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출발 시간보다 최소 1시간 전에 출근해야 하는 승무원들의 경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1시간 30분이라고 한다.

승무원들의 근무형태는 소위 ‘다이아 근무’라고 해서 열차 시간대별로 매일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는 형태다. 그러다보니 어떤 날은 새벽같이 출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밤늦게 출근하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 이렇게 불규칙하다보니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식사를 제 시간에 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불규칙한 노동시간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런 노동조건에서 일해 온 결과 입사한 지 2~3년 밖에 되지 않은 20대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 각종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이런 역약한 노동조건보다는 임금착취였다.

“처음에 입사할 때 초입이 평균임금으로 170만원이었거든요. 그때는 대학 졸업해서 이 정도 초임이면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음 해에 재계약을 할 때 되니까 중간 쉬는 시간에 불러서 계약서에 그냥 싸인 하라는 거예요. 그때는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싸인 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탄력근무제로 바뀌어 진 계약서였어요. 그래서 2년차에는 평균임금이 140만원 정도로 낮아졌어요. 그때 입사한 2기 입사자들은 초임이 110만원 정도 낮아졌더라고요. 3년차가 되니까 임금이 또 120만원 정도로 낮아지는 거예요.”

해가 가면 갈수록 임금이 점점 낮아지는 기막힌 현실 속에 다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나중에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자료를 확인해 본 결과 도급계약서 상에는 승무원들이 1인당 평균임금이 248만원으로 나와 있더라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심지어는 2기 입사자들은 근무복도 전해 퇴사자들이 입던 것을 지급하면서 착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퇴직금도 근속년수가 늘어 가면 높아져야 하지만, 항상 1년차 기준으로 지급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임금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알기 전까지 연차수당 등도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KTX 여승무원들은 다양한 형태의 임금착취와 체불 속에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시달려야 하는 고통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밤 열차를 탈 때는 항상 취객들 때문에 엄청 힘들어요. 이유야 어떻든 열차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승무원들이 1차적으로 해결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취객들을 진정시키고 말리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가 맞아서 병원에 가는 사람들도 자주 있어요.”

의외로 취객, 노숙자, 정신질환자 등에 의한 폭행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때 마다 여승무원들이 해결해야 하고, 폭행을 당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종착역까지 업무를 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얘기에서는 정말 끔찍했다.

그런 노동조건에서 성추행은 다반사였다.

“엉덩이 만지고, 팔 쓰다듬고, 얼굴과 귀를 만지는 것은 수시로 있어요. 한 번은 한 승객이 휴대폰 카메라로 치마 속을 촬영하다가 발각이 됐어요. 그런데 그 사람 신분이 공무원이라서 조용히 하고 넘어간 적도 있어요.”

이 대목에서는 남자로서 사과를 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승무원들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산재사고는 승객들의 폭행에 의한 사고이다. 그 다음이 주정차시 발생하는 각종 추락사고이고, 불규칙한 노동조건에 따른 위장병 등이 크고 작게 발생한다. 전자파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조건에 따른 문제와 소음성난청도 무시하기 어려운 산재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들에게 산재를 낸 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초기에 한 사람이 감전사고가 있었어요. 온몸에 전기가 흘러서 발 뒤꿈치가 터져서 피가 줄줄 흐를 정도였어요. 그 상태로 일을 하고 종착역에 도착해서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홍익회에서는 철도청으로 떠넘기고, 철도청에서는 홍익회로 떠넘기는 거였어요. 완전 낙동강 오리알이었죠.”

2005년 1월부터 서울지역 승무원들을 중심으로 홍익회노조에 가입을 했지만 홍익회노조 간부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다가 2005년 12월에 홍익회노조를 탈퇴하고 철도노조로 가입하면서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철도노조로 가입하기 전부터 철도공사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이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홍익회 소속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철도유통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그러다가 철도노조로 가입하면서 문제가 시끄러워지니까 KTX관광레져라는 자회사로 넘긴다는 거예요. KTX관광레져라는 곳이 부실기업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과 계약을 하면서 열차 내 판매업무까지 승무원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얘기가 한참 무르익어갈 즈음 파업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해서 파업투쟁과 관련한 얘기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급하게 마무리하면서 파업을 하면서 느낀 점을 얘기해달라고 했다.

“솔직히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힘들어요.”

“우리들이 철도공사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물러설 수 없는 기본적인 요구예요.”

“지금보다 더 조건이 안좋은 KTX관광레져로 가라면서 시험을 봐서 선별채용하겠다고 하거든요. 솔직히 저는 노조활동 때문에 짤릴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요.”

여성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는 KTX승무지부 조합원과 새마을호 승무지부조합원들이 함께 있었다. 새마을호 승무지부 조합원들은 KTX승무지부 조합원들보다 근속년수도 오래됐고, 1년 전 투쟁을 통해 부분적으로 정규직화 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미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여성조합원들이 있는 공간 밖에는 남성조합원들이 모여 있었다. 철도청에서부터 계속 정규직으로 일해 왔던 이 남성조합원들과도 또 다른 긴장감이 있을 것이다.

한 정규직 활동가는 “KTX 여성조합원들의 문제가 이번 투쟁에서 가장 뜨거운 문제이다. 하나의 노조에 있는 조합원이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어떻게 하나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노동조합의 핵심요구사항에도 비정규직문제를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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