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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주의에 질식되어 가는 울산, 새로운 운동의 단초는 있다

조합주의에 질식되어 가는 울산, 새로운 운동의 단초는 있다


1.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상태

1) 노동조합운동

전통적으로 제조업 대공장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활성화됐던 울산은 대공장 운동이 심각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전반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은 구심을 상실하고 침체상태에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현장조직력이 무너진 후 노사협조주의세력에 의해 장악된 후 금속연맹에서 제명돼 민주노조대열에서 이탈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단사 실리주의 경향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현장조직의 운동성 상실과 비리문제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민주노조의 명맥을 유지하던 현대미포조선 노동조합은 최근 임원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 속에 민주파가 패배하면서 또 다른 위기에 빠져들었다.
대공장노조들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금속노조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던 중소사업장들은 구조조정의 위기감 속에서도 대응의 한계를 보이면서 정체되어 있다.

화섬사업장들은 효성과 태광의 해고자 복직 및 노조민주화운동이 정체에 있고, 여타 사업장들은 단사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못한 SK노조는 새로운 가능성만큼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병원사업장들은 울산대병원이 보건의료노조에서 탈퇴하면서 지역구심력이 없어진 가운데, 울산병원과 동강병원은 힘겹게 노동조합을 유지하고 있다.
공공사업장들은 자치단체비정규노조와 보유노조 등 신생노조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초기 노조안착화 시도를 힘겹게 벌이고 있고, 여타 노조들은 소산별 중심의 운동 등으로 지역구심력이 전혀 없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등 거대 산별노조는 중앙지침과 자체 현안에 따라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일상현장활동이나 투쟁사업들을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주요한 투쟁대오로 떠오른 비정규노조들은 투쟁 이후 노동조합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해고자 중심으로 조합이 운영되고 있으나 현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고,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지회는 현장에서 쫓겨난 후 장기투쟁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화물연대는 조직력이 상당히 무너진 후 최근 들어 다시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위력적인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고, 덤프연대 역시 조직력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는 올 초 위력적인 파업투쟁 이후 내부 조직력을 복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역시 연이은 투쟁 속에서 무너진 조직력을 복구하고 있다.

각 단사노조들이 단사 중심의 활동 속에 힘겹게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상급단체들도 구심력을 갖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나름대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단사와 연맹 지역본부에 대한 관장력이 떨어진 속에 최근 임원들이 사퇴하면서 비대위 체계로 유지되고 있다. 금속연맹 울산본부 역시 현자노조와 금속노조 사이에서 자기역할을 잡지 못하고 있고, 화섬연맹도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각종 회의조차 제대로 열리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2) 현장조직운동

대공장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현장조직운동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심각하게 운동성을 상실하면서 유의미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전노회를 중심으로 한 분과동지회연합은 노동조합이 무너진 이후 초보적인 조직활동을 하고 있으나, 조합원들을 상대로 한 현장활동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조합원과 괴리가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 임원선거를 계기로 다시 활동력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선거 이후 일상활동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은 홍보물을 내는 것 외에 현장조직으로서의 유의미한 활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운동성을 잃고 있다. 또 분파적 난립과 이합집산이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런 가운데 분파주의적 활동의 폐해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등 운동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현장조직운동은 최근 들어 단사중심의 조합주의적 활동에 치중하면서 계급성과 지역연대성을 상실하여 새로운 운동의 활력을 소진했다.

3) 정치조직운동

정치조직과 노동단체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노조운동 외곽에서 노조운동에 대한 개입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에 대한 실질적인 개입력은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각종 선거를 앞두고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을 벌여왔다. 그 결과 내년 지방선거방침 결정과정과 북구 국회의원 후보선출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갈등을 벌이면서 스스로 노동조합으로부터 분립하고자 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구 국회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이러한 흐름에도 제동이 걸리면서 또 다른 형태의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당이나 노동자의힘 등 여타 정치조직들은 최근 몇 년 간 지역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보이지 못한 채 지역활동에서 더욱 외곽화되고 있다.

노동단체로는 울산산추련, 울산노동자회, 울산노동자신문, 울산노동자정보통신지원단, 울산노동뉴스, 북구비정규지원센터, 노동자교육문화센터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이나 현장과 결합한 적극적 대중사업을 벌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점차 노동조합 영역 이외의 외곽 활동이나 소규모 전문적 활동으로 흐르고 있다.

2. 강고한 조합주의 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울산지역 노동운동이 심각하게 정체상태에 빠져들게 된 것은 조합주의적 체계가 강고하게 구축된 것이 핵심 원인이다.

민주노총이 출범하고, 이후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전폭적 지원 속에 확대되어 가면서 모든 운동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노동조합운동은 연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여타 운동영역을 외곽화 시켜 버렸고, 내부적으로 형식적 산별노조건설운동이 민주노총 중심성을 약화시키면서 계급적 연대성과 지역적 구심력까지 상실하게 만들어버렸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통해 배타적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여타 정치세력들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의회주의적 편향으로 인해 노동조합을 대상화시키면서 오히려 노동조합과 괴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조합주의적 체계가 고착화된 결과 어떤 정치세력도 노동조합을 유의미하게 지원하는 것은 고사하고, 노동조합 자체에 대한 개입력이 약화되면서 노동조합 중심의 조합주의 운동이 강화되어 갔다. 그리고 노동조합운동도 정치세력이나 단체운동을 극도로 실용적으로 활용하면서 외곽화 시켜버린 결과 계급성과 연대성을 상실하면서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런 결과 단체운동은 점차 축소되면서 소수 전문역량중심의 운동으로 변하고 있고, 현장조직운동도 활동력이 축소되면서 노동조합 내부의 분파운동으로 변질돼버렸다.

조합주의 체계가 강고해지면서 노동조합 간부들이 관료화도 급속히 진전되었다.
그에 따라 현장조합원과 노조간부들의 괴리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틈을 자본이 치고 들어오면서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그에 편승해 노조간부들도 더욱 실리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사측의 노무관리전략이 함께 하면서 연이은 비리사건들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에 대해 수세적이고 관료적으로 대응하다보니 조합주의적 활동과 분파주의적 운동이 더욱 강화되었고, 그렇게 되면 될수록 현장장악력과 사회적 영향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공장 임원선거에서 나타나고 있는 후보의 난립과 선관위의 규제강화, 부정선거 논란 등은 이런 악순환의 파멸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그래도 암울하지만은 않은 이유

1) 새로운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3~4년간 울산지역의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들이다. 화물연대와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현자비정규직노조처럼 대규모 조직화로 이어지면서 비정규직이 새로운 주체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또 발전노조, 공무원노조 등 공공부문이 최근 투쟁을 통해 전면에 나타났는가하면, 규모는 작지만 울산광역시자치단체비정규노조, 보육노조 등 다양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설립되면서 금속 대공장 중심의 운동양상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화섬3사투쟁을 통해 대규모 해고자들이 발생하여 힘겹게 투쟁하는 가운데 지역 곳곳에서 새로운 활동가로 성장하고 있는 것 역시 중요한 주체의 성장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비정규직노조들과 공무원노조 등에서 대규모 해고자들이 발생하면서 해고자운동이 새로운 형태로 활성화되고 있다.

이들 새로운 주체들은 위력적인 투쟁 이후 다시 조직력을 복원하는 과제 속에서 주춤하거나, 노동조합운동을 뛰어넘는 새로운 운동의 주체로 발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중적 활력을 끝임 없이 뿜어내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중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2) 위기가 객관화되고 있다

노동운동 내에서 위기논쟁은 수없이 있어왔지만 지금까지의 위기논쟁은 학자나 활동가 수준에서 진행된 논쟁이었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고 있는 위기논쟁은 부르조아 언론에서도 공공연히 거론할 정도로 대중적 논쟁이 되었다. 이는 자본과 정권에 의해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부풀려진 측면도 있지만, 노동운동 내부문제가 객관화되면서 대중적 과제가 되었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02년 현대중공업 노조간부의 비리사건 당시에는 개인비리 수준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노동운동의 발본적 혁신과제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2005년 현대자동차 비리사건은 노동운동의 위기와 혁신에 대한 문제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면서 다양한 토론회나 유인물 등을 통해 대중적 입장들이 제출되었다.

또 비정규직 투쟁들이 활성화되면서 지역연대투쟁의 필요성과 정규직노조의 조합주의적 활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 역시, 위기가 객관화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혼란, 민주노동당 운동의 한계 등 전체운동 수준의 문제들까지 대중적으로 드러나는 등 단사, 지역, 전국 수준에서 총체적인 위기가 명확해졌다.

이런 위기의 객관화는 지금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고, 이에 대해 제대로 된 관점 속에 활동가들이 새롭게 결집한다면 대중적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3) 새로운 시도들이 모색되고 있다

지금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 새로운 형태로 운동을 재조직하려는 움직임들이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현장조직력이 무너지고 노사협조주의 세력에 의해 노동조합마저 장악되어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현대중공업 민주파 활동가들이 최근 임원선거를 계기로 새롭게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점보다 ‘새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현장에서의 활동기반이 극도로 축소된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은 8월 동구노동문화제를 시작으로 한일노동자토론회, 각종 강연회, 지역차원의 유인물 배포 등 지역과 현장을 연결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또 임원선거 과정에서도 선거제도와 당락에 연연하지 않은 말 그대로의 ‘선거투쟁’을 벌이면서 선거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은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이후 현장의 벽을 뛰어넘어 지역과 현장을  넘나드는 활동의 전망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비리사건을 계기로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를 통해 혁신위원회가 정식으로 구성되고, 그를 바탕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혁신 실천단’이 다수의 활동가가 모여 공식 창단했다. 아직 혁신단의 활동이 대중적 활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공개적이고 대중적 활동으로 출발하고 있는 혁신단의 활동을 새로운 가능성을 안고 있다. 앞으로 혁신단의 활동이 기존 관료적인 조합주의활동과 분파적 현장조직운동을 뛰어넘어 대중운동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외곽화되고 소규모 전문적 활동에 치우치던 단체운동들도 새로운 형태로 직접적으로 대중적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5월 초 창간한 울산노동뉴스는 기존의 활동가중심의 제한된 매체와 달리 인터넷매체라는 특성을 살려 직접적으로 대중적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6개월여의 활동으로 광범위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노동조합이나 지역에서 주요하게 활용하는 매체로 자리 잡는 데는 성공했다. 이는 노동조합 자료나 정보를 가공하는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어 직접적으로 대중과 접촉하면서 자료와 정보를 알려내고, 역으로 노동조합이 이들 자료와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이다.
또 울산산추련이 최근 동구지부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동구지역 조선업종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울산지역 노동보건운동의 진전된 모습이다. 이는 그동안 다양한 형태로 노동자 건강권 투쟁을 벌여왔던 성과이기도 하고, 단체운동이 좀 더 현장과 밀접하게 결합해서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고 직접 대중적 활동을 벌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최근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가 기존의 관성화 된 활동으로 침체된 해고자운동을 극복하고, 새롭게 지역차원의 운동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역시 현장과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으며, 조합주의적 운동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지난 부산국제민중포럼 행사 중의 하나로 진행된 ‘대안세계화와 지역사회운동 워크샵’의 영향으로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4. 위기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갖고 드러난다

관념적이고 추상적 위기가 아닌 현실의 구체적 위기라면 위기는 객관적으로 드러나면서 해결의 열쇠를 동시에 갖고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총체적 위기는 기존의 관료적이고 조합주의적 방식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는 점, 오히려 관료적이고 조합주의적 활동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점, 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과거와 현재의 활발한 활동 속에 이미 녹아들어 있다는 점 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기존의 관성을 뛰어넘기 위한 과감한 자기혁신과 발상의 전환, 그를 통한 새로운 주체의 결집과 대중적 흐름의 창출이다. 그를 위한 고민들은 이미 충분하게 되고 있고, 이제는 과감하고 적극적 시도들이 필요하다.
2005년이 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해라면, 2006년에는 그 위기를 대중의 힘으로 극복하는 새로운 단계의 운동을 창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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