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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의 대상에서 행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

토론회나 강연회는 왜 재미가 없을까?

울산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행사 중의 하나가 토론회니 강연회니 하는 행사이다. 특히 노동현장 활동가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나 강연회는 주최 단체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만의 얘기를 나누거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간혹 조직 동원력이 높은 단체에서 사회 인지도가 높은 인사를 초청해서 강연회를 열게 되면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강연자의 얘기를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고는 강연회가 끝나 버린다.

그런 토론회나 강연회를 마치고 나면 항상 뭔가 허전한 것들이 남는 게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전 홍보와 동원이 부족해서 그렇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특정 정파가 중심이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비공식 모임이나 만남들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자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일은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또 간혹 급조된 토론회나 강연회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토론회나 강연회는 최소한 한 달 전부터 조직되고 알려진다. 또 특정 정파 성향의 단체가 주도한다고 하더라도 관심 있는 주제에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참석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다양한 토론과 생산적인 논쟁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는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중 동원 중심의 행사가 갖는 한계

대부분의 토론회나 강연회는 특정 단체를 중심으로 내부 논의를 거쳐 준비된다. 그리고 몇몇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실무 준비들이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추어지면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단체의 소속원들을 중심으로 참여를 조직하게 된다.

실무자들은 섭외와 홍보 등 토론회를 진행하기 위한 여러 실무 업무를 전담하게 되고, 단체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여러 단위에서 토론회의 취지와 일정을 알리면서 참여를 조직하고, 참가자들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사전에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동원되어 자리를 채우게 되고, 장황한 강연 또는 발제가 진행된 후에 몇몇 발언자들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고는 마무리된 후, 뒷풀이 자리에 가서야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온다.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이런 행사는 항상 행사를 주최하고 준비한 사람들과 행사에 참여한 대중들이 분리되고, 행사의 성과가 주최 단체로 돌아가게 된다. 대중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참석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몇 가지 단편적 생각을 갖게 된 것 말고는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렇게 대중이 동원의 대상으로만 되는 한 어떤 토론회나 강연회도 그 성과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없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의 각종 집회나 행사에서 나타나는 이런 관성적인 모습이 운동의 질곡으로 작용한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간부들의 관료화 문제로 발전해서 운동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대중의 주체성’을 얘기하자

최근 ‘부안민중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투쟁에서 배운다’는 주제로 고길섶 초청강연회가 준비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소박한 시도이다.

먼저, 이번 강연회에서 주요하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대중의 주체성’이다.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던 부안민중들이 노무현 정권에 맞서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해 갔는가 하는 점은 부안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다. 조직화된 노동조합이나 민중단체에 소속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한 투쟁들이 간부들과 대중을 극단적으로 분리시키면서 투쟁의 발전을 가로막는 경우가 왕왕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대중의 주체성’은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비판적 평가들을 하고 있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한 모범적 사례를 중심으로 얘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부안투쟁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바로 이런 모범적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그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관성적 활동을 넘어설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부안투쟁에 결합하지는 못했지만, 강연회라는 간접적 형태로 대중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배우고 우리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이번 강연회는 성공이라고 본다.

대중이 직접 만들어가는 강연회

그런 내용을 얘기하는 강연회는 그 형식도 ‘대중의 주체성’을 어떻게 발현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특정 단체가 주최해서 대중을 동원하는 형식이 아니라, 이런 내용에 동의하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강연회 개최의 주체로 참여하는 형식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강연회 준비위’를 대중적으로 구성하려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였다. 준비위원의 첫 번째 조건은 이런 내용에 동의하면서 강연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은 강연회 준비의 주체로서 최소한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만원의 준비기금을 내고, 주위에 이에 대해 홍보하고 사람들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준비위원의 역할의 전부이다.

행사를 치르기 위해 돈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강연회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후원금을 내겠다는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준비위원을 다수를 확보하거나 동원을 위한 계획을 별도로 세우지도 않는다.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든 그렇지 않든 이번 강연회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자기 스스로 강연회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소통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넓혀가자

자기 스스로 참석하는 문제와 함께 주체적 고민과 생각을 갖고 참석해서 풍부한 토론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주요한 목표이다.

부안투쟁에 대해 잘은 모르기 때문에 부안투쟁에 대한 얘기를 듣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주체성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부안투쟁에서의 생생한 얘기를 듣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울산지역과 현장에서의 문제점과 극복방안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강연자와 실무준비자와 준비위원과 다수의 대중이 준비과정에서부터 형식적 역할분담을 넘어서 내용과 서로의 고민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연회 준비과정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과 함께 강연회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도 사전에 충분히 공유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코뮌놀이로 본 부안항쟁』에 대한 내용소개, 강연회 취지와 목적에 대한 계속적인 전달, 준비과정에 대한 공개, 다양한 형태로 강연회에 대한 의견표현 등의 사전 준비사업들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또 강연자와도 준비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수시로 연락하면서 강연자의 문제의식을 사전에 공개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공개적이고 유기적으로 진행되는 준비과정 속에서 강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갖고 토론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강연회 준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통하고 스스로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작은 실험이 시작됐다

이런 작은 실험으로 운동의 문제점이 획기적으로 극복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실험이 어느 정도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지도 자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런 실험들은 끊임 없이 조직되어야 한다. 그런 다양한 실험들 속에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운동의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적극적으로 모색될 수 있고, 그런 속에서 대중적 자발성과 창조성을 높여내기 위한 노력들이 진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강연회 준비위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공개된 후 1주일 만에 30명 가까운 이들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고, 아직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저런 형태로 강연회 홍보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자발적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 이런 실험을 시작하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호응하고 참여할 것인가를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작은 실험의 첫발이 성공적으로 놓여졌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이 실험이 좀 더 확대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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